< -- 57 회: 12장. 또 다른 과금전사 -- >
12장. 또 다른 과금전사(2)
도퍼가 아닌 일반인이 몬스터를 사냥한다?
그 말에 강현이 놀라고 있을 때. 채영이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일반인은 아니겠네요.”
그 말과 동시에 황금 슈트를 입은 사내의 헬멧이 철컥하고 열렸다. 드러난 얼굴이 화면에 클로즈업됐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조각 같은 얼굴의 미청년이었다. 날렵한 콧날과 금발을 스타일리쉬하게 좌우로 넘겨 시원스럽게 드러낸 이마 사이에 위치한 벽안의 눈동자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그리고 화면에 알렉스 루엘이라는 자막이 떴다.
“저 사람은?”
“예거를 공급하는 루엘 그룹의 체어맨이자 알렉스 루엘. 보통사람은 아니죠.”
“그런 사람이 왜?”
“글쎄요?”
채영은 잠자코 티비를 바라봤다.
채영가 알고 있는 정보로는 알렉스 루엘에게 도퍼 능력이 없었다. [ 예거 ]를 개발해서 공급하는 중추를 담당하는 루엘사의 회장이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고 할까?
황금 슈트를 입은 알렉스 루엘은 천천히 날아서 자신이 쓰러트린 몬스터 위에 내려섰다.
- 안녕하십니까? 알렉스 루엘입니다. 예거드럭을 발표한 지 15년. 저희 루엘사에서는 또 하나의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예거아머. 저 같은 도퍼 능력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도. 몬스터에게 대항하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알렉스 루엘의 말에 강현과 채영뿐만 아니라. 이 중계를 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충격에 빠졌다. 이제까지의 도퍼를 중심으로 몬스터를 대항했던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그것도 겨우 몬스터에 생채기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C급 몬스터를 혼자서 잡을 정도의 강력함. 강현에게는 못 미치지만 어지간한 도퍼들의 능력을 상회하는 성능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다. 저 예거아머를 도퍼가 입고 싸운다면?’
채영과 강현은 동시에 같은 상상을 했다.
도퍼가 슈트를 입고 싸웠을 때의 강력함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쉽게도 제가 입고 있는 이 예거아머는 아직 단 한 벌뿐입니다.
손가락을 하나 치켜든 알렉스 루엘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발표는 충격이었다.
-곧 한 벌이 더 완성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서 제안합니다. 이다음 예거아머를 입을 사람을 공개적으로 선발하고자 합니다.
천문학적 가치를 지닌 [ 예거아머 ]를 판매가 아니라 선발한다? 그렇다면 그 조건은 얼마나 까다로울까? 이어질 알렉스 루엘의 말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다.
-바로 제가 최근 오픈한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 이름하여 JS 온라인의 최종 우승자가 되는 겁니다. 자세한 건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시죠.
그 말에 강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목시계로 변해있는 [ 콩 ]을 쳐다보니까. [ 콩 ]이 자신의 시계 화면에 [ Yes ] 라는 글자를 띄웠다.
‘역시.’
서비스 중단된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을 사들여서 개조해서 만든 일반인들을 위한 몬스터 전투 교육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그거 알렉스 루엘이 이야기하는 [ JS 온라인 ]이었다.
그럼 당장 강현이 해야 하는 건 분명했다.
“저기 채영씨. 혼자 있고 싶은데 좀 나가주시겠어요?”
“네? 네.”
강현의 말에 채영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강현은 채영이 돌아간 걸 확인한 다음에 [ 콩 ] 에게 지시했다.
“그 게임에 접속해야겠어.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접속할 수 있댔지?”
-체크했습니다. 마스터. 그 게임이 아니라 [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 ]입니다.
“또 언제는 게임이라며.”
-아닙니다. [ 예거 시뮬레이션 온라인 ] 혹은 [ JS 온라인 ]
[ 콩 ]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우기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 게임에 접속하기 싫을 때와는 상황이 변했다.
“시끄러워. 한시가 급하다. 네가 원하는 데로 파파팍 클리어해줄 테니까. 얼른 접속시켜줘.”
-체크했습니다. 접속모드로 변환합니다.
그 말과 함께 시계 모양이었던 [ 콩 ]은 얼굴을 다 덮는 고글 모양으로 변했다. 강현은 그대로 침대로 가서 누웠다.
“이건 꽤 편하군. 좋아 접속.”
-체크했습니다. [ JS 온라인 ] 접속합니다.
[ 콩 ]의 메시지와 함께 순간 강현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채영은 의자에 겨우 의자에 걸터앉았다. 엄청난 중대발표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관리국에 속한 채영은 조금도 시간을 허비할 순 없었다.
예거아머와 JS 온라인에 대한 정보 입수해서 상부에 보고하고 논의를 거쳐 정부 차원에서도 대응방향을 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채영은 조금도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나는 왜...’
허무한 눈빛으로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단련으로 군살 없이 매끄러운 손이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침들이 꽂혀있던 자국이 보였다.
채영이 어렸을 때 있었던 비밀리에 운영되던 정부의 고아원시설. 그 시설에 있는 고아들은 조금이나마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동물의 기분을 느끼거나. 염동력으로 휴지를 움직인다거나. 남들보다 기억력이 조금 뛰어난 정도. 미약한 능력이었지만. 정부에서는 비밀리에 그 능력을 활용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몬스터가 나타나고서 중요해진 것은 몬스터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일 뿐이었다.
정부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채영은 예거를 신청해서 노정석의 배려로 먹었다.
하지만. 도퍼의 재능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방법을 찾았다. 그 뒤로 노정석이 미국으로 향하는 사이. 일반인을 도퍼 능력자로 만드는 각종 실험에도 응했다.
그 과정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애석하게도 결과는 실패.
순간적으로 잠깐의 능력은 발휘할 수 있었지만. 정말 순간적이었다. 몬스터 레이드는 불가능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폐기되고 채영은 겨우 안전관리국의 관리자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고통과 좌절은 모두 도퍼 능력이 없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돈과 기술로 해결한다고?
채영은 허탈감을 느끼면서 중얼거렸다.
“그야말로 월렛 워리어(Wallet Warrior)”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알렉스 루엘은 채영이 꿈꿔왔던 힘을 타인에게 나눠준다고 했다.
‘부자의 알 수 없는 변덕? 아니면 또 다른 계획?’
어쨌거나 채영에게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으로 꾸역꾸역 허탈감을 집어넣었다. 채영이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채영을 호출하는 벨소리가 들렸다.
*****
뉴욕 맨해튼.
한바탕 쇼를 마친 알렉스 루엘은 다시 헬멧 마스크를 착용하고 자신의 집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쇼였다.
‘회장이 직접 예거아머를 입고 나서서 몬스터와 싸웠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충격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스 루엘이 신경 쓰는 건 따로 있었다.
‘이걸로 미스 유도 날 다시 봤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로켓의 출력을 높였다. 알렉스 루엘은 순식간에 맨해튼 제일 고층인 루엘 타워 꼭대기 위에 도달했다. 그리고 널찍한 발코니에 내리자. 로봇팔이 나타나서 알렉스 루엘이 장착하고 있는 예거아머 파츠 하나, 하나 벗겨 냈다.
‘으악. 이거 왜 이래. 나중에 정밀도를 조정해야겠다.’
알렉스 루엘은 투박한 움직임 때문에 고통스러웠지만, 스타일 구길까 봐 억지로 참아냈다. 그리고 발코니 안쪽에 있는 두 여인에게 조각 같은 미소로 인사했다. 유창한 한국말이었다.
“제 활약상이 어땠습니까? 미스 유. 미스 설.”
그런 알렉스를 맞아주는 건 발코니에서 느긋하게 있던 유다현과 설소유였다. 소유는 일어서서 나긋한 미소로 고개를 꾸벅여 라엘을 맞이했다. 한편 다현은 알렉스의 말투가 징그럽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참. 알렉스도 그냥 다현이라고 부르라니까요.”
그런 말을 하는 다현의 손에는 닭 다리가 들려있었다. 루엘가의 인류요리사가 다현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요리였다.
“편하게 지내고 계시는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알렉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음식 왔는데 나가버리셔서 다 식어버렸잖아요. 그래서 기다리다가 먹었죠. 그래도 이거 엄청나게 맛있어요. 저는 양념통닭쪽이 더 좋지만.”
다현이 닭다리를 들고 입맛을 다시자. 알렉스가 다현의 뒤쪽으로 소리쳤다.
“양념통닭? 세바스찬!”
“네, 알아보고 준비시키겠습니다.”
뒤쪽에 있던 그림자처럼 집사가 고개를 숙인 뒤에 사라졌다.
“근데, 어디 다녀오셨어요? 몬스터 사이렌도 울렸었는데.”
다현의 말에 알렉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몬스터 출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을 때. 멋지게 쓰러트리고 온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나왔었다. 아마도 그때 마침 도착한 요리나에 정신이 팔렸으리라. 다현을 처음 봤을 때와 똑같아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알렉스는 모양새가 안 서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설명했다.
“그 몬스터를 퇴치하고 왔습니다. 혼자서요.”
“어? 도퍼는 아니라고 하셨던 거 같은데.”
다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알렉스가 씨익 웃었다. 드디어 자신의 대단함을 어필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네. 도퍼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에서 특별히 개발한 예거아머를 입으면 도퍼처럼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까. 도퍼인 거군요?”
“아뇨. 그러니까. 도퍼가 아닌데, 도퍼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죠.”
“아하.”
다현이 이제 알겠다는 듯이 손바닥을 마주쳤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해한 것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네.”
“아까 입고 오셨던 그 코스튬을 입으면.”
“코스튬이 아니라. 예거아머인데. 일단 넘어가죠.”
“그 예거...코스튬을 입으면 몬스터를 쓰러트리는 힘을 얻게 된다. 이 말인 거죠?”
“네 정답입니다.”
다현의 대답에 알렉스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디어 이해력 떨어지는 여자를 이해시킨 것인가? 새삼 자신의 유능함에 으쓱해졌다.
“그러니까. 도퍼가 아니었다가. 저 갑옷을 입고 도퍼가 되는 거였군요.”
알렉스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졌다. 자칫하면 바닥에 주저앉을뻔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좌절감이었다.
그때 옆에 잠자코 미소 짓고 있던 소유가 다현에게 속삭였다.
“다현아. 아마 저 갑옷을 입으면 악당을 물리치는 슈퍼히어로가 되는 모양인 거 같아. 그 영화에 나오는 강철맨처럼 말이야.”
“아하. 이해했어요. 엄청나게 대단한 갑옷이네요.”
다현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리고는 알렉스 쪽으로 쳐다봤다.
“그걸 알렉스가 만드셨다는 거죠? 대단한데요.”
“네. 하하.”
“나참 알렉스도. 좀 더 쉽게 이야기하지 않고선. 괜히 헷갈리게 해서는 두통 오는 거 같잖아요.”
알렉스는 다현의 뒤늦은 칭찬에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내 다현이 뺨을 부풀리고 자신을 나무라는 모습을 봤다. 그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왠지 심장이 덜컹했다. 이제까지 많은 여자를 만나봤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근거림이었다.
“야, 약을 준비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세바스찬!”
알렉스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황급히 테라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휴우. 내가 왜 저런 여자의 은혜를 입어버려서.’
누가 볼까 봐 얕은 한숨을 내쉬는 알렉스의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캐릭터 이름부터 바꿔야겠네.”
접속한 강현이 제일 먼저 생각한 건 이름이었다.
처음 이 게임에 접속할 때에는 [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 ]에 쓰던 자신의 캐릭터 데이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오류로 로그아웃도 안 되던 상황. 일단 게임이자 해보자고 캐릭터를 대충 만들었었다.
그래서 만든 캐릭터의 이름이 1234.
‘아무리 그래도 랭킹 1위가 되었는데, 1234라고 발표되면 좀 그렇잖아?’
김칫국부터 마시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강현은 충분히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 아직 이 게임에 접속하고 있는 플레이어는 강현 자신뿐이었다. 아마 기존에 있던 컨트롤 헬멧으로는 접속을 못할 테니까. 그 관모양의 접속캡슐을 구해서 접속하는 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터였다.
-체크했습니다. 캐릭터 이름을 변경하는 데는 십만 달러 캐시가 소모됩니다.
강현은 [ 콩 ]의 말에 깜짝 놀랐다.
십만 달러. 한국 돈으로 거의 1억에 가까운 돈이다. 겨우 캐릭터 이름 바꾸는데 돈이 그 정도나 들어간다고?
“에잇. 있는 놈들이 더한다더니.”
강현은 그 알렉스 루엘이라는 자의 의중을 파악하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예거아머를 미끼로 한몫 제대로 잡으려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누구나 군침 흘릴 신기술. 그걸 손에 넣기 위해서 단순히 게임만 열심히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이런 가벼운 게임 내에 소모되는 캐시 말고도 게임 안에 천문학적인 돈이 투자될 터였다. 좋은 장비는 수십억 수백억 하게 될지도 몰랐다.
강현이 천억을 가지고 있지만. 세계의 부자들에 비하면 거지나 다름없었다. 그걸 손에 넣기 위해 국가단위에서 예산을 쏟아부을지도 일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상위 랭커 플레이어들의 노출과 신변보호도 중요할 터였다. 상위랭커를 게임상에서 제치는 것보다 게임 밖에서 제거해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럼 이름이나 바꾸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강현은 그렇게 말하고 [ 콩 ]에게 다른 주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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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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