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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금전사-48화 (48/113)

< -- 48 회: 10장. 프리 서버 -- >

10장. 프리서버(3)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는 지하 3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자 강현과 불똥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갑게 맞이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뜻밖에 여성이었다.

“안녕하세요. 그쪽이...”

“네. 유노에요. 이유노”

불똥도 의외라는 듯이 강현에게 귓속말했다.

‘여자인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미인인 줄은 몰랐는데요?’

자신을 유노라고 밝힌 여자는 미인일 뿐만 아니라 관리실에서 죽치고 일하는 차림이라기에는 너무 화려했다. 하늘하늘한 소재로 되어있는 블라우스 입고 짧은 레이스가 많이 달린 검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거기다가 오늘 미용실에서 세팅해온 것처럼 탐스러운 웨이브 머리에 백옥같이 보이는 신부 화장을 했다.

마치 특별한 기념일에 데이트하는 여인의 차림. 아니면 친구 결혼식장에 과시하러 가는 하객? 어쨌든. 전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불똥이 말한 것처럼.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넓은 사무실을 혼자 지키고 있으면서 볼 사람도 없는데... 그냥 취미인가?’

환하지만 휑한 사무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노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이쪽이 그 유명하신 아크로드님?”

“네. 더 월드의 무법자라고 하면...이 아크로. 악.”

불똥이 머리를 얼싸안았다. 강현은 유노가 대뜸 캐릭터이름을 꺼낸 것도 당황스러웠는데, 불똥이 기회다 싶어서 떠들려고 드는 걸 주먹으로 뒤통수를 때렸다.

“적당히 해.”

강현이 간신히 얼굴에 철판을 깔고 유노를 보고 인사를 했다.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유강현이라고 합니다.”

“저한테는 아크로드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데요? 아크오빠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아크 오빠?”

“그건 좀...”

강현은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워낙에 넷카마를 혐오하기도 했고. 온라인 게임상에서 여자는 없다는 주의였던 터라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놈들은 피케이하면서 박살 내버리는 게 일상이었다.

유노는 강현이 말이 없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일부러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는지 계곡을 이루고 있던 가슴이 강현에게 닿아서 모양이 바꿨다.

“같이 게임을 했는데 저 모르시겠어요? 전 일부러 이름을 캐릭터 닉네임으로 썼었거든요. 유노라고요.”

“전 이름 딱 보니까 기억나던데. 계속 형이 여자인 척 굴면 때린다고 했잖아요. 아니. 정말 때렸던가?”

그렇게 말하며 불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강현은 불똥을 보면서 더욱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겨우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과했다.

“하하 그래?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죠?”

“아뇨. 그보다 정말 기억 안 나세요?”

유노는 사과보다 자신을 기억하는 게 중요했는지 강현의 얼굴에 더욱 가까이 대며 물었다. 이제는 거의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웠다.

강현이 머리를 아무리 굴러봐도 떠오르는 이름은 없었다.

“글쎄요. 제가 캐릭터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라. 저 녀석처럼. 특이한 경우가 아니면 말이죠.”

불똥으로 화제를 넘기자 겨우 유노가 멀어졌다. 그녀는 불똥의 어깨를 쓰다듬으면서 피식 웃었다.

“네에. 불똥님 닉네임 들으면 절대로 까먹지 않죠.”

“헤에. 제가 좀 인상에 잘 남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며 불똥은 헤벌렸다. 강현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반면에 닉네임이 너무 강렬해서 이름이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할까요?”

“엑 형. 저 이름 몰랐어요?”

강현의 말에 불똥이 펄쩍 뛰었다. 그러고서는 삐쳤다는 듯이 고개를 휙 돌렸다.

“오랜만에 봐서 그래. 남자가 뭐 그거로 삐치고 그래.”

“헤헷. 농담이었어요.”

불똥이 다시 이쪽을 쳐다보면서 혀를 쭉 빼고 메롱 하는 모습을 보고. 강현은 자신이 잘못했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꼭 한 대 때려야 하겠다는 기분이 휩싸였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유노가 중얼거렸다.

“역시...”

“네?”

“아니에요. 그런데 이 게임은 왜 그렇게 하고 싶으신 건가요?”

강현은 유노가 중얼거린 말이 신경 쓰였지만.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에 신경 끄기로 했다.

“아, 별거 아닙니다. 게임에서 이제 갓 만렙찍고, 여기저기 사냥하고 아이템 좀 갖추면서 즐기려고 했는데 갑자기 서비스 종료되어서요. 게이머로서 아쉬운 마음이 컸죠. 어차피 서비스 중단된 마당에 프리서버라도 돌려서 놀아볼까 해서 이 녀석 시켜서 알아본 거죠.“

“그럼 어쩌죠? 서비스가 중단되는 동안 이것저것 새로운 업데이트를 하는 바람에. 이제 만렙이 확장되었거든요. 컨텐츠도 좀 더 레이드물에 맞게 바뀌었다는데 그건 개발팀에서 나온 말이라. 저도 아직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요”

‘이거다.’

유노의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이런 업데이트는 오히려 강현이 바라던 바였다. 만렙 확장에. 게임이 레이드물에 맞게 바뀌었다면 더욱 유용한 스킬도 추가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네. 그건 들었습니다. 게이머로서는 오히려 더 환영이죠. 할게 많아 진다는 건.”

여기까지 말한 후. 강현은 유노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유노 님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만렙찍을 때까지 종종 들려서 플레이해도 될까요? 아니면 설정상 레벨업이 빠르게 한다던 가해서 빠르게 만렙 찍고 즐기게만 해주셔도 됩니다.”

“이 형이 만렙 매니아라서 그래요. 서비스 종료 전에도 만렙찍는다고 얼마나 난리였는지. 같이 며칠 밤새느라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불똥이 옆에서 거들었지만. 유노는 두 사람을 쳐다볼 뿐 별다른 말이 없었다.

‘잠시 게임에 접속하게 해주면 되는 걸로 가볍게 생각했던걸. 만렙 찍을 때까지 계속 플레이시켜달라고 요구하면 쉽게 대답 못 하긴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강현이 자신의 도퍼 카드를 꺼냈다.

“안됩니까? 사례를 충분히 하겠습니다.”

“아뇨. 이미 사례금 너무 많이 받았는걸요. 그러니까 느긋하게 즐기시면 돼요. 어차피 보러오는 사람도 없으니. 그러면서 까먹지 않을 정도로 친해지는 것도 좋고 안 그래요?”

“네에.”

“물론. 원하신다면 게임 내의 데이터도 조정해드릴게요. 프리서버 같게 말이에요. 게임 내부시스템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서 겨우 경험치 정도 조작할 수 있지만요.”

“그건 좀 부탁합니다.”

뭔가 찜찜하지만 일단 허락을 얻은 셈이었다. 이제부터 강현이 할 일은 무슨 문제가 생겨서 출입이 금지되기 전에 최대한 레벨업을 하는 거였다.

“형. 저쪽에 접속실 있네요.”

불똥이 사무실 저편에 있는 부스를 가리키며 쿵쾅거리며 뛰어갔다. 덩치 때문에 실제로 소리만 요란할 뿐 빨리 걷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 뒤를 따라서 강현과 유노가 천천히 걸어갔다.

“접속실이 따로 있다니. GM 분들이 쓰시는 곳인가요?”

“그렇긴 한데. 저곳은 기존의 컨트롤 헬멧과 다르게 풀다이브 할 수 있는 캡슐이에요. 좀더 감각이 일체화되는데다가 피로도도 훨씬 적고. 장기간 플레이 할 수도 있어요.”

“그것 좋군요. 나중에 서비스 재개하면 집에 한 대 들여놔야겠어요.”

“어머. 꽤 비쌀 텐데요. 하긴. 게임한다고 그 정도 거금을 선뜻 내놓으실 수 있으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죠.”

접속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한쪽에는 안마의자 같은 곳에 컨트롤헬멧이 달려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1인용 욕조 정도 크기의 캡슐이 수십 대가 좌르르 놓여있었다.

“형. 이거 관 같지 않나요?”

“이런 하얀 관도 봤냐. 불길한 소리 조 그만해.”

왠지 모르게 겁을 집어먹은 듯한 불똥에게 쓴소리는 한 마음에 유노를 돌아봤다.

“아참. 그럼 제 캐릭터를 연동해서 쓸 수 있나요? 혹시나 싶어서 제 컨트롤 헬멧에 저장되어있는 데이터는 복사해 왔어요.”

“괜찮아요. 사용자 데이터는 아직 서버에서 보관 중이니까요. 그럼 한번 해보시죠.”

그렇게 말하면서 유노는 캡슐의 뚜껑을 하나 열었다. 강현이 들어가려다 말고 불똥을 돌아봤다.

“그럼. 불똥 너는 어쩔거야?”

“에이. 저도 해야 돼요?”

“싫으면 말던가. 아니다. 나중에 레이드할때는 혼자보다는 둘이 인 게 낫겠지.”

“네네 그럼 나중에요.”

불똥은 의자에 앉은 채로 꼼짝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강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캡슐로 들어갔다. 강현이 들어간 걸 확인하고. 잠금장치를 한 유노가 불똥을 되돌아봤다.

“같이 안 하시고요?”

“네에. 일단 저 캡슐에 제가 들어갈 거 같지도 않고. 콘트롤 헬멧 접속하려고 해도 제 전용 헬멧을 가져와야 되거든요.”

“그런.”

씁쓸하게 이야기하는 불똥을 쳐다보고 있던 유노가 천천히 불똥에게 다가갔다.

“그럼 오늘은 우리 강현씨 기다리기는 동안 재밌는 거 하지 않을래요?‘

“넹?”

불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유노가 매니큐어를 바른 기다란 손가락으로 불똥의 살찐 목덜미를 살살 간지럽혔다.

“이런 데서 혼자 있으면 많이 외롭거든요.”

“그, 그러시군요.”

유노는 여전히 당황하고 있는 불똥의 위로 슬며시 올라탔다. 불똥은 처음 겪는 상황에 심장이 쿵쾅거리는 거 같았다. 여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유혹하다니.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일이었다.

‘오늘 이렇게 차려입고 맞아준 것도 혹시 유혹하기 위해서?’

자신이 아니라 강현 형을 노린 거였을 수도 있지만. 불똥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는 지하에 매력적인 여성이 자신을 유혹한다는 꿈같은 상황만으로도 이성을 날려버리기 충분했다.

불똥은 힘차게 콧바람을 내쉬며 눈앞에 드러난 두 덩이의 융기에 절로 손을 뻗었다. 그때. 유노가 불똥의 손을 잡았다. 혹시 불쾌했을까? 하고 속으로 몇십 번이나 욕하며 후회하고 있을 때. 유노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오늘은 제가 마음대로 할 테니까. 가만히 있어요. 힘 빼고요.”

“네넵!”

불똥이 힘차게 대답하자. 유노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불똥이 어찌할지 모르고 눈을 질끈 감았을 때. 유노는 잡아챈 불똥의 팔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움찔했을 때.

철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

“오빠도 참~ 이렇게 숫기가 없어서야.”

휴대폰을 비행기모드로 바꾸기 전에 강현에게 연락한. 다현은 휴대폰을 끄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 데이트하러 가서도 몬스터랑 싸우고 왔다는 소리나 하고. 다현은 오빠가 도퍼가 되고 나서 돈을 잘 벌어오는 건 좋지만. 계속해서 사건에 휘말리는 거 같아서 걱정이었다.

‘슬슬 여자도 만나고 결혼도 해야 할 나이인데 말야.’

다현은 굳이 오빠가 여자를 만나는 데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이제까지 게임만 하던 오빠라서 제대로 된 여자를 못 만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저번에 데이트하러 간다고 했을 때도 기꺼이 백화점에서 옷 고르는 걸 도와줬었다.

‘문제는 여자를 만나도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야지.’

다현은 친구들에게 도퍼들이 목숨 걸고 벌어들이는 돈만을 노리는 여자들도 한둘이 아니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었다. 그런 것만은 친동생으로도 절대로 용납 못 한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또 한가지. 드물다고는 하지만. 오빠처럼 게임을 좋아하는 여자도 질색이었다.

다현의 비어있는 옆자리 좌석에 누군가가 다가왔다. 강현이 누군가 싶어서 올려다보니 커다란 가슴밖에 보이질 않았다.

“응. 수지야. 이미 비행기 탔다니까. 응. 도착해서 전화할게. 끊어.”

그 커다란 가슴의 주인은 전화를 끊고서는 다현을 향해 빙긋 웃었다. 처진 눈매에 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옆자리네요.”

“헤헤. 안녕하세요.”

다현은 인사하면서도 흔들리는 가슴에만 눈이 갔다.

‘아까 본 가슴 큰 여자잖아. 그러고 보니 오빠 취향이 거유였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여자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그러고는 조용히 다현에게 말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저 앞쪽 열과 뒤쪽좌석에 도퍼 분들이 지키고 있다네요. 평소에는 비행기에 두세 명이 탄다는데. 여기에 혹시 위험이 있을까 봐 대비하는 거랬어요.”

그 말에 다현이 자기 일 때문인 줄 알고 고운 눈썹을 찌푸려드렸다.

“그 성제라는 놈이 그렇게 흉악한 놈이래요? 그냥 우리 집에 강도질하러 온 것뿐 일 텐데. 마피아 보스라도 되나?”

“성제...”

“아는 이름이에요?”

“알기는 아는데. 아니겠죠.”

무언가 생각하는듯한 여자는 통성명을 안 했다는 걸 깨닫고 자기소개를 했다.

“아참. 제 이름은 소유라고 해요. 설소유.”

‘소유라고? 아버님이 이름을 잘못 지으셨네! 흐흐.’

그런 다현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제 이름은 유다현이라고 합니다.”

“네 잘 부탁해요”

소유는 정말 반갑다는 듯 선한 미소를 지었다.

‘끄응. 저렇게 순수한 표정을 짓는 여자가 저런 거유이라니 사기야.‘

다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소유가 다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혹시 게임 좋아하시나요?”

*****

‘오랜만에 접속하는 화면이네.’

게임에 접속한 강현이 익숙한 화면을 보고는 로그인을 했다. 그리고 캐릭터 선택화면 창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강현은 깜짝 놀랐다.

‘어라. 혹시 뭔가 잘못된거 아냐?’

자신의 소중한 만렙 캐릭터들이 하나도 안 보였다.

‘이거 데이터 날아갔는가보다. 나가서 유노님한테 다시 조정해달라고 해야겠어. 여차하면 내가 들고온 데이터를 복사해달라고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게임 밖으로 나가기 위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몇 번을 눌렀지만.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 작품 후기 ============================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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