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과금전사-34화 (34/113)

< -- 34 회: 7장. 퍼스트 도퍼 -- >

7장. 퍼스트 도퍼(5)

공기를 잡아 비틀어내는 듯한 파공음과 함께. 하늘에서 시커먼 사내가 떨어졌다. 그 사내는 몸을 일으키자면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1드으으으으응!”

그 소란에 주위에 앉아서 정리 중이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쪽을 쳐다봤다.

사내는 예상보다 한산한 주변의 모습에 의아해서 옆에 있던 정장 차림의 남자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여기가 맞지? 그 A급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구원 요청했던 곳 말야.”

정장 차림의 남자는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자세를 똑바로 했다.

“앗. 당신은?! 퍼스트 도퍼 노정석님? 안녕하십니까. 전 본 레이드팀 당당을 하고 있는 김지훈이라고 합니다.”

“담당자? 잘됐네. 그런데 여기 레이드 팀에서 부른 거 아니냐고.”

그렇게 말하며 정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십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은 마치 야유회 뒷정리하듯 부산스러웠지만. 몬스터의 흔적은 보이질 않았다.

서슬이 퍼런 정석의 모습에 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이쪽 팀에서 호출한 건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숨을 들이마신 지훈은 좀 더 난처한 표정으로 정석의 의문에 대답했다.

“이미 잡아버렸습니다. 몬스터를 잡은 곳은 저 언덕 너머고요.”

“뭐?! 벌써?”

지훈의 말에 정석이 깜짝 놀랐다. 인천항 쪽에서 국내에서 최초로 A급 몬스터가 출현했을 때만 해도 자국의 도퍼로는 퇴치 시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고 도움을 청했던 한국 정부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출현 소식이 들리자마자 1순위로 찾았던 것도 자신 아니었던가.

“와아 한국에 레이드팀 수준이 그 정도로 높아진 거야? 그러려면 난 왜 부른 거야. 에이 젠장.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정석이 짜증 난다는 듯이 투덜거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우습다는 듯이 한마디 툭 뱉고 가는 말을 들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정석이 그 말을 뱉은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방금 뭐라고 했어?”

깜짝 놀란 지훈이 옆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정석을 말렸다.

“앗. 정석님 왜 그래요. 윤재님이 뭐 실례되는 일이라도 한 건가요? 어쨌든 이건 좀 놓고 이야기하세요.”

하지만 정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윤재를 집어들었다. 윤재는 조여오는 목을 부여잡으면서 간신히 말했다.

“컥. 티,팀이 아니라. 혼자서 잡았다고요.”

“뭐? 네가?”

“아뇨. 저쪽에 계신 분이요.”

윤재가 가리키는 곳에는 정석이 이렇게 소란을 피우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앉아있는 한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남자는 고통스러워하며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한쪽 손으로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힐러가 중상자에게 하는 치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치료하는 모습을 자세히 본 정석은 눈을 크게 떴다.

자신이 힐러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5년 가까이 여러 도퍼를 봐왔지만 저런 식으로 회복시키는 도퍼는 본 적 없었다. 마치 녹아내린 듯한 부위가 강현의 손길이 닿자마자 새로 살이 돋아나는 듯 원래의 형태를 갖추면서 생겨났다.

“가, 감사합니다. 강현님.”

회복을 마친 뒤에 치료를 받은 남자는 머리가 땅에 닿을 듯 숙이면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강현은 그 남자에게 핀잔을 줬다.

“광수 씨. 그러니까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딱 봐도 감당 안 되어 보이던데.”

“네네. 제 불찰입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니, 농담이었어요. 무사했으니까. 됐죠. 레이드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 와중에도 신속하게 지시하시고 계시는 모습 보고 감탄했습니다.”

강현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연신 사과하는 광수의 어깨를 잡았다. 이어지는 위안의 말에 눈물을 훔쳤다. 강현은 남자가 그런 모습을 보이는 데 당황해 황급히 시선을 사람들에게 돌렸다.

“다들 그럼. 더 다치신 분 없죠?”

“네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정석은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

광수를 회복시킨 강현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자신의 능력회복능력이 생각보다 융통성 있는 걸 보고 스스로도 깜짝 놀란 참이었다.

‘이거라면... 부활도 가능할까?’

강현은 몬스터 레이드 온라인에서의 부활시스템에 대해서 생각했다. 분명 주변에 PK나 사냥 중에 쓰러진 플레이어는 회색으로 변해서 쓰러져서 사망 표시가 뜬다. 그때 서포터의 극 후반 스킬일 [ 부활 ]을 사용하면 에너지의 십 분의 일정도만 남긴 채로 살아났다. 단 플레이어가 쓰러진 직후 30분 이내만 가능했다.

‘게임상으로는 사망으로 표시되지만. 실제로는 치명상으로 기절했을 때일 수도 있겠지. 어쨌든 언젠가는 한번 실험해볼 필요는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몸을 돌렸을 때. 누군가가 강현의 앞을 턱 하니 가로막았다. 못 보던 얼굴이었다.

‘아 금방 도착한 응원군인가? 그 퍼스트 도퍼라던. 이름이 아마 노정석이었지?’

회복하던 중에도 얼핏얼핏 들리는 소리를 들었었다. 강현은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사내의 모습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사내는 원래 군인 출신 아니었나?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 너무 다른데.’

지금 정석의 모습은 정리를 안 한 지저분한 머리에 수염도 아무렇게나 자라난 모양새였다. 딱 연휴에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아저씨나 다름없었다. 물론, 달라붙는 셔츠 밖으로 비쳐 보이는 굴강한 육체는 그가 강자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없긴 했지만.

“네 녀석이 나 물 먹인 녀석이렷다?”

“네?”

강현은 정석의 말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정석은 강현의 얼굴에 박치기할 기세로 얼굴을 들이밀고 으르릉거렸다.

“여기까지 고생해서 왔는데. 내 먹잇감을 홀라당 까먹어버렸잖아.”

“그런 억지가... 도와주러 오신 건 감사합니다만.”

강현이 한 발짝 물러서도 정석이 한 발짝 다가왔다. 정석이 금방이라도 주먹질할 기세로 강현을 몰아붙이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훈이 황급히 달려왔다.

“저, 저기 두 분 싸우지 마세요.”

“흥.”

정석이 코웃음을 치고 지훈을 뿌리쳤다. 강력한 힘에 지훈이 신음을 내며 바닥에 쓸어내리듯이 뒹굴었다.

“으읔”

“저기 좀 심하잖아요.”

지훈의 모습을 본 강현이. 열을 내며 정석에게 항의했지만. 정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먹을 들어 올리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면서 더욱더 도발했다.

“그래서 어때 한번 덤벼볼 거야? 응? 덤벼보라고.”

강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사내는 지금 정말 화나서 이렇게 굴고 있다기보다는 그저 재미삼아 시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문에 여기에서 자신이 맞서 싸우면 신나서 소동을 크게 일으킬 거 같았다. 그렇다고 강현이 피한다고 해서 이 사내가 그만두지 않을 거 같아 난감해하던 순간.

뒤늦게 날아온 헬기에서 정장을 입은 여성이 뛰어내렸다. 여성은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정석에게 달려와서 말리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여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지훈처럼 날려버리진 않았다.

“정석 님. 그만 하세요.”

“치 와버렸나.”

강현은 익숙한 얼굴을 보고는 반가움에 큰 소리로 불렀다.

“채영씨.”

“앗 강현님. 여기에 계셨었나요.”

채영도 강현에게 고개를 숙이면서 인사를 했다. 입꼬리를 살짝 들어 올려 미소를 지었는데. 채영을 아는 사람이라면 채영이 얼마나 반가워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터였다. 여기에서는 채영의 후배인 지훈과. 정석 정도만이 알아볼 수 있었다.

정석은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걸 보고 살짝 주눅이 들어서 입을 다물어 살펴보고 있었다.

“네. 그나저나 무척 바쁘셨나 보네요. 그 뒤로 도통 집에 오시질 않고.”

“같이 밤새우는 것도 꽤 즐거웠죠.”

“그때 지훈 씨가 측정기만 회수해갔는데 남은 짐은 잘 챙겨뒀으니까 언제든지 가지러 오세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집에 살았었는데. 그 정도야.”

두 사람이 다정한 대화를 듣고 있던 정석은 갑자기 강현에게 달려들었다. 정석이 뛰어난 능력자긴 했지만. 마구잡이로 손을 뻗어 강현을 넘어트리려고 했던 터라. 갑작스러운 공격에서도 맞잡고 버틸 수 있었다.

‘뭐 집에 와? 같이 밤을 새워? 같은 집에 살아?’

정석은 강현과 채영의 대화를 복기하면서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왠지 모르겠지만. 강현을 그냥 때려눕혀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난 그런 이야기 못 들었다고.’

속으로 그렇게 외치면서 발을 굴러서 강현을 넘어트렸다. 하지만 그대로 지면에 박히지는 않고 지면을 스치며 강현과 정석은 한 몸뚱어리가 되어서 쏟아져 나갔다.

지금의 상황에서 제일 황당한 사람은 강현이었다.

‘뭐야 이 사람. 아까는 장난으로 시비 거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꽤나 진심이잖아.’

살기까지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가볍게 받아들여다가는 어디가 한군데 부려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기세였다. 강현은 기운을 모아 힘을 줘 정석을 뿌리쳤다. 정석은 성난 들개처럼 으르렁거리면서 다시 강현에게 덤벼들었다.

그때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 강현과 정석을 둘러쌌다. 이 빛의 벽은 두 사람을 완전히 격리해 버렸다. 그때 미군의 헬기를 타고 온 엠마가 문밖으로 문을 내밀어서 정석을 불렀다.

“미스터 노. 뭐하는 거예요? 몬스터는 어쩌고.”

“이 자식이 몬스터고 채영이고 다 자기가 먹어버렸어.”

영어로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대화에 강현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정석은 답답하다는 듯이 이 빛의 벽을 부숴버릴 정도로 마주 후려쳤다.

“무슨 소리야?”

빛의 벽이 천천히 금이 가고 있을 때. 그게 아랑곳하지 않고 엠마가 다시 소리쳤다.

“어쨌거나 지금. 미국에서 긴급호출이 왔으니까. 이대로 돌아가요. 최우선 사항입니다. 제임스의 지시에요.”

제임스라는 말에 움찔한 정석은 엠마에게 반문했다.

“뭐야? 그럼 그 범죄자는 어떡하고? 클레임말야. 클레임.”

“지금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몰라요. 일단 알아보고 다시 한국으로 와요.”

“에잇.”

정석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벽에서 손을 뗀 뒤에 강현에게 말을 걸었다.

“좋아. 너 이름이 강현이라고 했나? 나 대신 클레임을 잡아오면 내가 채영이 손잡는 거까진 인정해주지.”

“정석님...”

정석을 말리려고 채영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정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채영을 향해 빙긋 웃었다. 그 모습을 황당하게 보고 있던 강현이 항변하려던 찰나에 엠마의 날 선 재촉이 말을 끊었다.

“무, 무슨 소리야? 채영 씨랑 난 아무 사이도...”

“미스터 노. 어서!”

정석은 엠마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다시 한 번 다짐을 받아두듯 이야기했다.

“알았어! 그럼 다음에 올 때까지 클레임 꼭 잡아둬. 그럼 난 간다.”

그 말을 남기고 크게 발을 구른 정석은 엠마가 타고 있던 헬기 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석을 실은 헬기는 금방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버렸다.

‘뭐, 뭐야.’

강현은 바람처럼 사라진 정석을 황당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정부 측에서 준비한 간이 회의실.

담당자 김지훈이 앞에 서 있고 그 앞에 이번 레이드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그중에서는 당연히 강현도 끼어 있었다. 김지훈은 자신의 앞에 놓인 태블릿 PC를 연신 훔쳐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번 레이드 정산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B급 1마리와 D 급 2마리의 경우....”

뒤를 이어서 지훈의 설명이 이어졌다. 원래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에 혈안이었던 광수가 강현에게 치료받은 뒤에 마음을 고쳐먹었는지. 평소의 분배안대로 적절하게 나누는데 아무런 반발도 하지 않았다.

다른 팀원들도 자신들이 받는 이번 몬스터 레이드의 정산액이 중요했지만. 그보다 이번에 처음 나오는 A급 몬스터의 정산이 어떻게 되는지에 더 관심이 많은 듯했다.

“그럼 이번에 나온 A급 몬스터 정산부터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이번에 A 몬스터의 코어 같은 경우에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나왔지만. 첫 번째는 노정석 도퍼 팀이 사냥해서 그대로 미국에서 회수해갔습니다.

아직 국내에서는 제대로 분석해서 정확한 가치를 산정하기 힘들지만, 기존의 몬스터 코어보다 그 크기만 두 배 이상인 만큼. 그 가치도 수배 이상에 달할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맙니까?”

강현의 옆에 앉아있던 부탱 윤재가 얼른 본론부터 이야기하라는 듯 소리쳤다. 그 소리에 움찔한 지훈은. 확인하듯이 태블릿 피시에 나타난 숫자를 다시 한 번 세어보고는 힘겹게 힘을 열었다.

“100억입니다.”

100억.

그 숫자의 무게에 회의실의 공기가 술렁였다. 도퍼들을 하나같이 입을 떡하니 벌린 채로 100억의 주인공인 강현을 쳐다봤다.

강현도 생각보다 높은 금액에 놀랐지만. 이제 돈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인지 예전처럼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놀라진 않았다. 그저 앞으로는 정말 돈 걱정할 필요 없겠다는 느낌 정도? 그보다 강현에겐 채영이 안 보이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또 어디로 간 거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부탱인 윤재가 회의실 모두가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강현 형님. 축하합니다. 대박 나셨으니 한턱 쏘세요.”

그런 말을 하며 친근하게 웃는 윤재의 얼굴을 보니 강현은 왠지 모를 소름이 돋았다. 아까 몬스터 탱킹때도 자신을 등에 업고 리더를 무시하는 모습도 은근히 거슬렸었다. 여러모로 친하게 지내기에는 싫은 타입이었다.

그래도 축하하는 사람들 속에서 불쾌한 기분을 꾹꾹 억누르고 있을 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소유가 보낸 저녁 초대문자였다.

============================ 작품 후기 ============================

아슬아슬하게 저녁 연참 성공하고 갑니다.

세이프... 맞죠?ㅠㅠ

어쨌든. 저녁먹고 내일 올릴 분량 또 쓰러갑니다.

독자분들께서 재밌게 읽으셨길 바라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