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4 회: 5장. 국가공인 스토커 -- >
5장. 국가공인 스토커(5)
“그럼. 교관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됩니까?”
채영은 발뒤꿈치를 딱 붙이면서 깔끔한 차렷 자세를 한 채로 물었다. 똑바로 선 모습이 날이 선 칼 같았다. 그만큼 기합이 확 들어 있었다.
‘이건 예상대로 쉽게 될지도.’
권채영의 직업은 어태커였다. 좋은 생각이 난 강현은 채영더러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 화타허준 ]이라는 서포터 캐릭터로 접속해왔다. 둘이서 파티를 짜서 플레이하기에는 이 조합이 적절했다. 혼자 레벨업하기 힘든 서포터에다가 제일 저렙이었던 만큼 이 기회에 레벨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계정귀속으로 묶여있는 아이템 외에 채영이 장착할 수 있는 아이템을 꺼내서 건넸다.
“이 아이템들 받으세요.”
“네.”
채영은 바로 대답을 하고 아이템을 건네받아 손에 들었는데, 왠지 표정이 석연찮아 보였다.
“무슨 문제라도...?
“강현님께 이런 귀한 걸 그냥 받아도 되는지...”
강현은 캐시템을 까서 아이템을 풀세트로 맞췄다.
지금 채영에게 건넨 아이템들은 어차피 저렙용 아이템이라서 팔아봤자 푼돈밖에 안 됐다. 그저 최근에 아이템정리를 못 해서 들고 있던 아이템들이었다. 그 정도로 저런 반응이라니.
그리고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틀려요.”
“네?”
“저는 지금 유강현이 아니라. 서포터 캐릭터인 [ 허준화타 ]입니다.”
채영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강현은 어떻게 설명해야 쉽게 이해할까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앞에 복잡한 용어가 붙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이런 종류의 게임을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하는 건데요. 게임 속에는 이렇게 자신이 만든 가상 캐릭터가 되어서 연기하는 겁니다.”
그 말에 채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그대로 만들어버렸는데.”
“그런 면에서 채영 씨는 이득이죠. 연기할 필요 없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동하면 되니까요.”
“아. 그렇군요.”
채영은 안도한 듯 표정을 풀었다.
“그렇다고 하면 더욱 이런 아이템들을 함부로 받을 수 없습니다. 평소의 저라면 안 그럴 테니까요.”
“그래요? 그럼 이러면 어떨까요?”
강현은 인터페이스를 조작했다. 그러자 채영의 앞에 선택 창이 나타났다.
“파티하시겠습니까? 이건...?”
“거기에 승낙하면 앞으로 게임 우리는 동료. 아니면 전우가 되는 거죠. 전우가 발목 잡지 않도록 아이템을 제공하는 것 정도는 괜찮죠?”
“이해했습니다.”
어쨌든 초보자의 검. 초보자의 옷. 초보자의 신발. 이렇게 초보자 시리즈로 도배되어있는 채영의 아이템은 5레벨대의 두꺼운 천 옷. 숏소드. 가죽 신발. 이렇게 아이템을 바꿨다. 이 정도면 10레벨까지의 장비로는 부족함이 없을 거였다.
“그럼. 강현님. 아니, 허준화타님. 어서 몬스터를 사냥가죠. 여기서는 게임시스템이 담당자의 역할을 해서 따로 담당자가 동석할 필요가 없죠?”
“잘 아시네요.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할 일 있습니다.”
강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작은 건물 앞에 있는 소녀를 가리켰다.
*****
“안녕하세요. 모험자님. 훌쩍. 저는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꽃을 꺾어 팔려고 하는데요. 훌쩍. 마을 외곽에 미니 크랩이 나타나서 꽃밭을 다 망쳐버리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꽃바구니를 팔에 끼고 있는 소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 소녀의 앞에서 이야기를 들었던 강현과 채영의 앞에는 [ 퀘스트 알림창 ]이 떠 있었다.
[ 퀘스트 알림창 ]
내용 : 마을의 꽃밭을 망쳐버리는 미니 크랩을 퇴치하자.
요구조건: 미니 크랩의 집게발 0 / 10
보상 : 경험치 10, 골드 5
수락하시겠습니다? [ YES / NO ]
강현은 이런 퀘스트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 꽃밭의 꽃이 얼마나 하길래 5골드씩이나 주고 미니 크랩을 퇴치하게 하는 거야?’
하지만 여기에 태클을 걸면, 신경을 쓰면. 유저로써 지는 거다. 어차피 자기가 하는 건 이 캐릭터를 세게 만드는 거다. 아마 게임시나리오 라이터도 크게 고민하고 만든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최초로 퀘스트를 받고, 퀘스트에 맞춰서 사냥하고 보상을 받는 이런 패턴에 익숙해지게 하는 게 목적이니까.
자유도가 높은 게임을 선호하는 강현도 이제까지 이런 퀘스트는 대부분 스킵하는 편이었다. 특정 아이템을 얻어야 하거나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기 위한 필수퀘스트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지만.
그래도 초보자가 가볍게 하기에는 괜찮은 퀘스트다. 미니 크랩은 1레벨의 몬스터로 1레벨의 플레이어가 3대 정도 때리면 사냥할 수 있으니까.
“자, 그럼 여기에 퀘스트창 하단에 YES 버튼을 누르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채영을 봤다가 강현은 깜짝 놀랐다.
“지금 어머니는 얼마나 위독하신 건가요? 병명은? 급하다면 국가 긴급의료지원 시스템을 알아봐 드릴게요. 지금 이렇게 한가하게 의뢰나 하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 다른 쪽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던가. 아니면 직접 몸을 단련해서 퇴치해야지요. 언제까지 남에게 의지하실 건가요?”
NPC 캐릭터를 훈계하고 있었다. 마을소녀는 채영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저기 채영씨. 그냥 그렇게 설정되어있는 거예요. 어차피 퀘스트를 완료한다고 해서 소녀가 어머니 약을 사러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초보 모험자한테 또 같은 의뢰할 거예요.”
“그럼 혹시. 이 소녀는 어머니가 위독한 게 아니라. 미니 크랩의 집게발을 팔아서 이득을 남기고 있는 걸까요?”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저번부터 생각했지만. 채영은 엉뚱한 면이 많았는데, 그 엉뚱한 면이 다른 사람과 다른 시점에서 생각하게 해서 혀를 찌르는 이야기를 종종 했다.
채영의 말 때문인지 다시 소녀를 쳐다보자 뒷세계의 브로커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퀘스트 수락하고 게임 진행하죠.”
“네”
강현의 눈에도 이제는 순수해 보이지 않는 소녀의 모습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마을 어귀로 나왔다.
*****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움직이는 건 게임 내의 시스템 영향을 받는다. 일반인의 신체능력보다는 당연히 게임 내의 캐릭터의 신체능력이 좋다.
특히 고레벨이 되어갈수록 한 번의 점프로 수십 미터를 뛰어오른 다던가 하는 게임에서 초인처럼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강현은 현실에서 단련한 몸놀림이 게임에서 이렇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숏소드를 휘두른 후의 딜레이 때문에 미니 크랩의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해 데미지를 입었지만. 그 뒤에는 절묘한 간격과 몸놀림으로 한 대도 맞지 않고 유린한 것이었다.
그렇게 세 마리째를 사냥하고 나서 채영의 레벨이 올랐다. 채영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는 스테이터스창의 증가표시를 보면서 놀랐다.
“이건?”
“그게 레벨업 이라는 겁니다. 이제 2레벨이 되셨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캐릭터의 능력치가 오르고, [ 스매시 ]라는 스킬도 생겼을 거예요. 어때요? 좀 세진 거 같이 느껴지시나요?”
강현의 말에 채영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런 거 같네요.”
“자 그럼 얼른 마저 사냥해서 퀘스트를 완료하죠.”
“네!”
의욕적으로 대답한. 다른 미니 크랩에서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강현도 몬스터를 사냥했다.
강현은 서포터였지만 이미 캐시템으로 몸을 꽁꽁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보주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한 마리씩 쓰러트릴 수 있었다.
덕분에 퀘스트 조건은 금방 달성했다. 둘 파티를 맺고 있어서 퀘스트 조건이 중첩해서 쌓인 탓이었다.
둘은 꽃 파는 소녀가 있던 곳으로 가서 말을 걸어 퀘스트를 완료했다. 소녀는 덕분에 살았다며 인사를 했지만. 꽃을 꺾으러 가거나 하진 않았다.
어쨌든. 보상으로 받은 경험치 때문에 채영과 강현이 레벨업했다. 각각 3레벨과 6레벨이 되었다.
“레벨업 축하해요.”
“허준화타님도요.”
사소한 거지만 해냈다는 달성감 때문에 채영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이다음에는 어떻게 하죠?”
의욕 넘치는 채영의 질문에 강현은 꽃 파는 소녀의 조금 옆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아저씨 쪽을 쳐다봤다. 식당 앞에 서 있는 아저씨는 주방장 모자를 쓰고 있었다.
둘이서 그 아저씨 근처로 가자 아저씨가 들으란 듯이 말을 걸어왔다.
“아이고 모험자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지금 한창 미니 크랩이 맛있을 때인데 요리재료가 다 떨어져서 곤란하던 참이지 뭡니까? 제가 가게를 비울 수도 없고. 마을 어귀에 미니 크랩이 많이 있는데 좀 잡아다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 사례는 톡톡히 하겠습니다.”
[ 퀘스트 알림창 ]
내용 : 요리 재료가 부족해 곤란한 주방장을 위해 미니크랩을 잡아오자.
요구조건: 미니 크랩의 집게발 0 / 20
보상 : 경험치 30, 골드 40
수락하시겠습니다? [ YES / NO ]
‘분명. 이 안쪽에 팔고 있던 미니 크랩 요리가 2골드 했었지?’
강현이 그렇게 속으로 태클을 걸면서 꽃 파는 소녀 쪽으로 돌아봤다. 꽃 파는 소녀는 당연하게도 새롭게 등장한 초보 모험자에게 하소연을 시작하고 있었다.
“자. 얼른 수락하세요. 퀘스트하러 가죠.”
채영은 이미 익숙해진 듯, 강현을 재촉했다. 강현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신도 수락버튼을 눌렀다.
1시간 뒤.
미니 크랩을 20마리 사냥하고 요리사 앞으로 돌아온 강현과 채영은 퀘스트를 완료하고 보상을 받았다. 사냥과 퀘스트 보상까지 한 덕분에 각각 5레벨과 7레벨이 되었다.
“허준화타님 옆에 또 퀘스트를 주는가 봐요.”
“네에...아마도 그렇겠죠.”
벌써 살짝 질려버린 강현은 옆 건물 앞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NPC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할머니였다.
“에고에고. 내가 마을 어귀에서 목걸이를 우리 죽은 할아범에게서 받은 건데 아마 미니 크랩이..(이하생략)”
[ 퀘스트 알림창 ]
내용 : 할머니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는 미니 크랩을 잡아서 목걸이를 되찾아 오자.
요구조건: 할머니의 목걸이 0 / 1
보상 : 경험치 20, 골드 20
수락하시겠습니다? [ YES / NO ]
형태는 조금 바뀌었지만. 결국, 목걸이가 나올 때까지 미니 크랩을 사냥하라는 퀘스트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니 크랩을 사냥하는 숫자가 정해져 있는 앞의 퀘스트 보다. 질이 나빴다.
‘또 미니 크랩 사냥이야? 내가 이래서 이런 노가다 퀘스트는 별로 안 좋아한단 말이야.’
강현은 투덜거리며 어느새 퀘스트를 수락 후에 신나서 뛰어가는 채영의 뒤를 쫓아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미니 크랩으로 아이의 장난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아줌마. 알록달록한 무늬의 미니 크랩이 갖고 싶다는 울보 꼬마. 미니 크랩의 집게발로 등을 긁어야 시원하다는 촌장 등...
한참 동안 퀘스트가 이어졌다.
*****
“다녀왔습니다.”
저녁 시간.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현은 익숙한 적막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채영 언니도 있을 텐데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빠? 채영 언니?”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두 사람 모두 컨트롤 헬멧을 쓰고 있었다.
“일거수일투족 감시해야 한다더니. 게임도 같이 하고 있나 보네.”
평소 같으면 강현을 흔들어서 게임 그만하고 밥 먹을 준비하라고 재촉했을 테지만. 오늘 채영 언니도 있기에 게임 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메신저를 통해서 슬슬 그만하고 밥 먹으러 나오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다가 게임 폐인만은 안됐으면 좋겠는데.”
강현의 방을 나서면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채영을 쳐다봤다.
잠시 후 저녁 식사 시간.
다현이 힘을 내서 오늘은 어제보다 한껏 호화롭게 저녁 식사를 차렸지만, 채영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어딘가 안절부절못해 보였다.
“언니? 괜찮으세요?”
“네. 이 햄버거 너무 맛있어요.”
그렇게 웃으며 말한 뒤에 채영은 자신의 접시에 놓여있는 햄버거를 다 먹은 다음. 강현을 쳐다보면서 물어왔다.
“있다가도 게임하실 건가요?”
“글쎄요. 피곤하니까. 좀 쉴까 생각했는데….”
“그렇군요.”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채영을 보면서 강현은 이번 작전은 성공했다며 자축했다.
게임을 할 때 반복퀘스트는 지겹기도 하지만. 플레이어에게 평소에는 쉽게 느끼지 못하는 달성감을 손쉽게 반복적으로 주기 때문에. 평소에 상명하복을 잘하고 일 처리를 완벽히 하면서 규정에 맞게 처리해 오는 사람이 빠지기 쉬웠다.
특히나 제작자에서 플레이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 만든 쓸데없는 퀘스트가 많은데, 이런 유저는 자신이 놓치는 퀘스트가 있는 걸 용납 못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퀘스트가 무한히 있다면? 다른 생각을 못 하고 게임에 빠지게 될 터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숟가락을 놓으면서 강현이 이야기했다.
“역시 딱히 다른 할 일도 없고. 게임이나 하죠.”
“네.”
밝게 대답하는 채영의 모습을 보고 강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야.’
*****
다음 날 새벽.
멀리서 동이 터 오기 시작할 때. 부엌 구석에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다현은 종이에 뭔가를 쓴 다음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채영에게 내밀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 오빠는 정말 괜찮은 거죠? 제가 뭔가 실수 한 건 없죠? ]
어둠 속에서 적은 글자라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심란한 탓이었을까? 다현이 적은 글씨는 평소답지 않게 비뚤비뚤했다.
종이를 본 채영이 고개를 까닥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현은 조심스럽고 가늘게 숨을 토했다. 그런 다음 자신이 쓴 종이를 잘게 찢은 다음 물에 적혀서 하수구를 통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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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후부터 몸이 으슬으슬하네요.ㅠㅠ
다들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