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시간을 거슬러 왔다
나는 기이한 꿈을 꿨다. 내 미래에 대한 꿈을.
내가 가진 봉제 공장이 망하고, 어머니는 쓰러지고 그렇게 비참한 꼴이 되는 꿈이었다.
‘악몽이군.’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꿈이라는 것을 대번 깨달았다. 봉제 공장이 그렇게 망할 리가 없었다. 어이가 없기에 실소를 흘리며 꿈에서 깨려 했지만,
‘어?’
이상하게도 꿈은 강제로 계속되었다.
게다가 그 뒤는 더욱 터무니없었다. 혜성 그룹의 회장이라는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하지 않나, 우리를 거둬준다고 해놓고 정작 어머니 병세를 악화시키지 않나, 이해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였다.
결국 꿈속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고, 정부가 혜성 그룹을 탄압하는 뉴스까지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나서야 나는 이 꿈이 범상치 않은 꿈임을 깨달았다.
‘예지몽인가……?’
예지몽이라면, 터무니없을 정도로 먼 미래까지 보여 주는 예지몽일 것이었다.
그룹이 해체되고, 이복형제에게 쫓겨나 빈털터리가 되고, 다시 사업가로 재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들리느냐.”
순간 이상한 목소리가 꿈을 파고들어 왔다.
나는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엔 미래의 내가 실의에 빠진 모습뿐이었다. 반평생 동안 일구었던 재계 순위 71위의 회사도 리먼 브라더스 사태에 휩쓸려간 직후.
주변의 가족들도 죄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 끔찍한 악몽 속에서,
“내 목소리가 들리느냐.”
나는 아주 익숙한 목소리를 들었다.
마치, 내가 늙었다면 꼭 저런 목소리였을 텐데- 하며.
* * *
눈을 뜨니 낯선 천장이 보였다.
“여기는?”
“오빠, 깼어?”
옆에서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생, 이지현이었다.
난 고개를 돌려 지현의 얼굴을 봤다.
‘왜 이렇게 어려 보이지?’
꿈에서 본 얼굴보다는 확실히 앳되어 보였다.
하긴, 꿈속에서는 50대였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여기는 어디야?”
“어디긴. 병원이지.”
“병원? 내가 왜?”
“뭔 소리야? 오빠, 교통사고 당했잖아.”
“아.”
지현의 말을 들으니 생각났다.
어젯밤, 공장에서 돌아오던 길에 사고가 났다.
골목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오토바이에 들이박은 것이다.
“엄마는 집으로 돌려보냈어. 공장 일 보고 오셔서 피곤해 보였거든.”
“……그래?”
지현이가 어머니를 언급하자 순간적으로 감정이 울컥했다.
‘왜 슬프지? 어머니가 살아계신 건 당연한 일인데.’
이게 다 빌어먹을 꿈 때문이었다.
병 든 어머니가 그렇게 돌아가시다니.
아무리 꿈인 걸 알고 있어도 슬픔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오늘 왜 이렇게 멍해? 머리 아파?”
“괜찮아.”
“뭐 필요한 건 없고?”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세안대로 가서 세수했다.
차가운 물이 얼굴을 적시자 잠이 좀 깨는 거 같았다.
그러나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하필 이런 개꿈을 다 꾸다니.”
봉제 공장이 망하는 장면부터가 비현실적이었다.
빠듯하기는 해도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질 공장은 아니었다.
남는 게 거의 없다시피 해도 공장이 그럭저럭 돌아가고는 있었던 것.
대기업 회장이 아버지란 사실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비록 어머니가 아버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피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기업 회장이라니?
빚쟁이거나, 안기부 요원이라는 게 더 현실성 있을 거 같았다.
‘근데 왜 이렇게 찝찝하지?’
꿈 치고는 묘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더군다나 IMF나 리먼 브라더스 등, 내가 원래 알지도 못했던 용어들도 꿈에 나왔다.
(개꿈이 아니라 그게 너의 미래다. 내가 꿈을 통해 너의 미래를 알려준 거야.)
“허억!”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다급히 뒤를 돌아보니 정장을 차려입은 60대 노인이 화장실 문 옆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르신은 누구세요?”
(나는 너의 미래다.)
내 미래라고?
무슨 선문답을 하는 건가?
“그게 무슨 소리세요? 제 미래라니요?”
답답했지만 애써 차분하게 물었다.
상대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기 때문이다.
(쉽게 설명해서 나는 40년 뒤의 너다. 40년 아니, 42년을 회귀한 셈이지.)
“예?”
(여전히 이해가 안 가는 얼굴이군. 하긴, 그럴 만해. 나도 사실 이해가 안 가거든. 죽었더니 40년 전으로 회귀했다는 사실이 말이야.)
“…….”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회귀라니?
정말 노인은 자신이 회귀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금 정신에 문제가 있으신 거 같은데?’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상인이라면 회귀했다느니, 미래의 자신이라느니 그런 헛소리를 하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 병실이 어디세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나를 치매 걸린 노인네로 생각하는 거냐? 흐음. 내 말을 조금도 믿지 못하는 모양이군.)
“솔직히 말해서, 무슨 말씀을 하려는 것인지를 아예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내 말을 믿어 줄 것이냐?)
“여기서 그만 이야기하시고 일단 나가주셨으면…… 어?”
나는 순간 당황했다.
노인의 어깨를 잡았는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뭐, 뭐지?”
당황해서 노인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 보았다.
하지만 허공에 손을 휘저은 것처럼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귀, 귀신이세요?”
(쯧. 귀신이 아니라…….)
“허억!”
나는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쿵!
엉덩이가 아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귀신!
눈앞에 귀신이 나타났는데 그깟 통증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내가 이렇게 겁이 많았을 줄이야.)
혀를 차던 노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뒤로 물러났다.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공격 의사는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차분히 대화를 해봐도 될 거 같았다.
귀신과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역시 이성을 되찾는 속도가 빠르군. 자세는 꼴불견이긴 하지만.)
노인의 지적에 나는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르신이 제 앞에 나타난 이유가 뭡니까?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습니다.”
(몇 번을 말하게 하느냐. 나는 귀신이 아니다. 미래에서 회귀한 너 자신이야.)
“하지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회귀라니. 그리고 어르신이 저라는 사실도 믿기 어렵습니다.”
묘하게 낯익은 얼굴이긴 했다.
내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흰머리로 뒤덮이면 저런 얼굴이지 않을까?
키도 노인 치고 무척이나 큰 것이, 나와 엇비슷할 거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회귀라니.
공장 운영하느라 잠시 휴학 중이긴 해도 나는 나름 명문대에 속하는 대학교 학생이었다.
이 시대의 지성인이라는 뜻이다.
지성인으로서 노인의 말을 믿기란 쉽지 않았다.
(쓸데없이 의심이 많군. 그러면 내가 가까운 미래를 하나 예언해보마. 지금이 81년 9월이지?)
예언을 한다니?
정말 미래를 보는 것일까?
생각이 복잡해졌지만, 일단 대답부터 해주었다.
“예, 9월 15일입니다.”
(아직 올림픽 개최지는 확정이 안 났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일본 나고야와 서울을 두고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들었다.
70대 30 정도로 일본이 우세를 점하고 있다나?
“설마 한국에서 개최되는 겁니까?”
(그렇다. 아마 10월 초에 결정이 날 거다.)
그 말을 듣자 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은 미래를 보고 온 귀신인지 아니면 그냥 정신 나간 귀신인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건 예언도 뭣도 아니지 않습니까? 일본에서 개최될 확률이 높다고는 해도, 결국엔 둘 중 하나입니다.”
60대 40이니 70대 30이니 말은 많지만 결국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법.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으니, 설령 한국에서 개최된다고 해도 예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하지. 흠. 그럼 뭐가 좋을까. 이때 있었던 일이 뭐가 있었었지? 아 그래, 야구 이야기를 하면 되겠구나.)
“야구요?”
(곧 있을 경기 중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라. 내가 결과를 말해주마. 단, 40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염두하고.)
“그러면 제 모교인 단군대의 경기 결과를 알려주세요.”
(상대는 누군데?)
“인화대입니다.”
(오호! 그 경기는 내가 확실하게 기억한다. 왜냐하면 완패하거든. 인화대가 9:0으로 이기게 되지.)
“9:0이요?”
끔찍한 점수 차이였다.
그리고 찍어서 맞추기 힘든 점수였다.
“만약 진짜 그렇게 된다면 어르신의 말을 믿어보겠습니다.”
(나를 믿을 수밖에 없게끔, 더 확실하게 이야기해주지. 내가 그 경기를 자세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인화대의 김영일 선수가 노히트 노런을 했기 때문이다.)
“……정말입니까?”
(그래! 내가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기억한다.)
노히트 노런이라니!
만약 이걸 맞춘다면 미래를 봤다고밖에 설명하기 어려웠다.
대학 야구에서 노히트 노런이란 이제까지 겨우 세 번밖에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었다.
“정말로 인화대가 9:0으로 이기고 김영일 선수가 노히트 노런을 한다면··· 더는 어르신의 말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나는 어디 좀 가 있겠다. 이따 저녁쯤에 돌아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라.)
“예? 어디 가십니까?”
(어차피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안 믿을 거 아니냐?)
“그건 그렇습니다만.”
(너는 일단 저녁까지 쉬고 있어라. 퇴원하면 할 게 많으니 마지막 휴식이라 생각하고 푹 쉬어.)
갑자기 나타나서 놀라게 할 때는 언제고, 푹 쉬라니.
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지만, 노인은 내 기분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뿅 하고 사라졌다.
귀신이라서 그런지 사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정말 미치겠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심란한 얼굴로 지현이가 가져다준 책을 읽었다.
하지만 아무리 집중하려고 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차라리 내가 미친 것이었으면 좋을 텐데.’
꿈속에서 본 미래가 현실이 되는 것보단,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헛것을 보는 게 오히려 나았다.
어머니가 병사하고 동생이 자살하는 미래란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이었으니 말이다.
‘근데 만약 그 귀신의 말이 진짜라면? 내가 진짜 꿈에서 미래를 본 거라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책을 덮고서 자리에 누웠다.
한숨 자고 나서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거 같았다.
하지만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꿨던 꿈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자고 있었군. 내가 왔으니 이제 일어나라.)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꿈이 아니었네요.”
(왜? 싫으냐?)
“……아닙니다.”
(딱 봐도 싫은 표정이면서 아닌 척은. 아무튼, 이제 내 말을 믿겠지?)
“예?”
(경기 결과 나왔잖아. 설마 모르고 있었나?)
난 황급히 시계를 봤다.
어느덧 오후 8시였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됐지?’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결과가 나왔습니까?”
(내 예언대로 됐다. 노히트 노런에 인화대가 9:0으로 이겼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엔 의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악령들이 이렇게 산 사람을 꾄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 순간은 맞았다.
(허허, 녀석.)
“일단은 제가 직접 확인할 겁니다.”
끄응.
나는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 했다. 어디든 티비가 있는 곳으로 가 볼 셈이었다.
그러나 귀신은 그런 나를 보고 말없이 옆 침대를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환자복을 입은 아저씨들이 시끄러운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김영일이가 사고 칠 줄 알았다고!”
“으하하! 노히트 노런까지 예상했다고?”
“물론 그건 몰랐지. 흐흐! 아무렴 어때! 더 크게 사고 쳤으면 우리야 좋은 일 아니겠어?”
“아무렴! 노히트 노런이라. 이게 몇 년 만이야!”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나는 황급히 노인을 돌아보았다.
(이제 믿겠느냐?)
“어떻게……!”
(나는 미래의 너라고 했지 않느냐.)
노인의 눈은 잔잔한 웃음을 그렸다.
(내가 과거의 너였을 때, 어디서 경기 결과를 들었겠느냐. 지금의 너처럼 이 병실에 있었을 텐데.)
“……진짜군요!”
노인이 맞춘 노히트 노런 소식.
그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내 인생은 급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