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57화 (257/262)

제7장. 팬들의 바람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

쿵. 쿵. 쿵. 쿵. 쿵. 쿵.

“레드와 Ji가 사이좋게 지냈지!”

얀센이 손을 들어 박수를 보내며 달려오는 동안, 마틴은 정지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고함을 질러 댔다.

“이봐! Ji! 멋지게 끝내 버려!”

정지우가 단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주는 장면이 TV 화면에 가득 나왔다.

쿵. 쿵. 쿵. 쿵. 쿵. 쿵.

“Ji가 경기에 나가면 레드는 이렇게 말했어!”

달려온 얀센은 교체의 의미로 정지우의 손에 손을 내리쳤다.

정지우가 안으로 뛰어들려는 순간이었다.

얀센이 팔을 커다랗게 벌려 정지우를 끌어안았다.

“부탁한다, Ji!”

그의 진솔한 감정과 바람이 고스란히 정지우에게 전달되었다.

얀센의 등을 툭 쳐 준 정지우가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쿵.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Ji! Go, Go, Go my Ji!”

느긋하게 뛰었다.

허리에 손을 얹은 첼시 선수들이 답답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터엉!

정지우는 바로 골포스트를 발로 찼다.

터엉!

그리고 반대편 포스트를 또 발로 찬 다음,

휘익!

골대 중앙에서 크로스바를 건드렸다.

“예에에에에에-!”

아무리 봐도 다른 팀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유니온 시티만의 함성이었다.

『1 대 1의 상황에서 정지우가 나왔습니다.』

삐이익!

『주심! 휘슬로 경기 시작됩니다! 첼시는 사실 이 승부가 절박할 것은 없거든요?』

『그렇더라도 유니온 시티의 무패 우승을 첼시가 완성한다는 점이 굉장히 못마땅할 거예요. 어떡해서든 막고 싶겠지요.』

『첼시! 공을 뒤로 돌리고 있습니다! 파브레가스! 몸을 돌려서 패스!』

정지우는 자세를 낮춘 채 공을 따라 움직였다.

“스웰던! 헤이! 거기!”

수비수들의 위치를 잡아 주었고, 데이빗을 좀 더 아래쪽으로 끌어내렸다.

승리를 원하는 게 아니다.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한 이 분위기를 유지해서 남은 시간을 버티는 게 중요한 상황이었다.

『커뮤니티 실드에서 맞붙었던 첼시! 이번 시즌 유니온 시티와는 운명처럼 결정적인 경기에 맞붙게 됩니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레믹까지 전부 중앙선 아래로 내려와 있어요! 무패 우승을 지켜 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해 보이네요!』

『골을 허용한 쿠르투아 골키퍼도 바짝 올라와 있습니다!』

공이 빠르게 유니온 시티 진영으로 넘어왔다.

“상민아! 야! 박상민!”

정지우는 박상민을 불러 첼시의 4번 파브레가스를 가리켰다. 지금까지와 다르게 바싹 붙어 달라는 의미였다.

콰악! 콱!

박상민을 떨쳐 내기 위해 파브레가스가 팔을 뻗었고, 그 팔을 끌어안는 것처럼 박상민이 달렸다.

투욱!

파브레가스가 못 견디겠다는 것처럼 공을 패스했는데도 박상민은 끈질기게 그를 따라 달렸다.

공은 아자르에게 연결됐다.

“예에-!”

『아자르! 이번 시즌 활약이 좋지 않았던 아자르! 무둔바를 제친 아자르! 아자르! 슈웃!』

퍼엉!

오른쪽 페널티 에어리어를 파고들던 아자르가 바깥쪽을 노리는 슈팅을 날렸다.

화아악!

그러나 각도가 워낙 없었고, 그나마 남은 공간을 카알이 완벽하게 막아 주었다.

꽈악! 털썩!

정지우는 공중에서 공을 꽉 잡은 채 바닥에 떨어졌다.

이럴 때 공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 다 막아 놓고도 상대 선수가 발로 톡 차 넣을 수도 있다.

정지우는 얼른 공을 품에 안고 엎드렸다.

급하게 달려온 라파엘과 무둔바가 정지우를 지키듯 선 다음이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정지우는 오른쪽에 있는 신준석에게 공을 던져 주었다.

『추가 시간까지 3분가량 남았습니다! 지금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면, 경기 종료와 함께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시간입니다!』

신준석은 데이빗과 공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벌었다.

퍼어엉!

그러고는 공을 받은 직후에 앞쪽에 있는 박상민에게 연결했다.

투욱!

박상민은 스웰던에게 빼 주었고, 스웰던은 라파엘에게, 라파엘은 다시 카알에게 넘겨주었다.

『2분 남았습니다! 첼시 선수들! 어쩐지 발에 힘이 빠진 모습입니다!』

콰악! 콰다당!

삐이이익!

『중앙선 부근에서 윌리안의 거친 태클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니온 시티는 시간을 벌게 됩니다!』

『이번 파울은 오히려 유니온 시티를 도와주는 느낌이네요.』

『어쩌면 윌리안이 우리 정지우 선수를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리킥이라 레믹과 이정렬 정도는 상대 팀 골대로 움직일 만한데, 두 선수 모두 오히려 중앙선 아래에서 첼시 선수들을 따라다니느라 바빴다.

툭!

데이빗이 시간을 최대한 끌다가 툭 하고 박상민에게 공을 차 주었다.

『1분입니다! 1분 남았습니다! 유니온 시티의 관중들! 모두 일어나 양팔을 위로 치켜들고 있습니다!』

『박상민 선수! 마티치와 파브레가스를 상대로 공을 뺏기지 않네요!』

『박상민! 카알, 데이빗에게! 공을 다시 받은 박상민! 뒤로 천천히 움직입니다! 박상민! 신준석에게 패스! 주심! 휘슬을 입에 물었습니다! 무패 우승! 유니온 시티의 무패 우승이 이제 주심의 입에 걸렸습니다! 주심! 휘슬을 물고 불지는 않습니다!』

『대신 불어 주고 싶네요!』

신준석이 정지우에게 공을 차 준 직후였다.

삑! 삑! 삐이이익!

“예에에에에에에-!”

『경기 끝났습니다! 첼시와 1 대 1 무승부! 유니온 시티! 이번 시즌에 또다시 엄청난 기록을 만들어 냅니다!』

라파엘, 무둔바가 환호성을 지르며 정지우에게 달려드는 동안, 벤치에 있던 스태프와 서브 선수들이 일제히 뛰어나와 마틴에게 달려들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이다.

우승을 확정했던 웨스트햄전에 버금가는 엄청난 함성과 흥분이 스탠포드 브리지를 가득 메웠다.

***

『우리 시간으로 어젯밤 11시에 있었던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유니온 시티가 첼시를 상대로 1 대 1 무승부를 기록하며 무패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한국의 TV는 요즘 영국 축구 소식이 가장 먼저 나온다.

『먼저 실점을 허용하고 패색이 짙었던 유니온 시티! 해결사는 역시 박상민이었습니다. 후반 막판 중앙선 부근에서 공을 잡은 박상민은 첼시의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질주한 뒤에 패스했고, 그 공을 레믹이 골로 연결하면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렸습니다.』

화면에 박상민의 질주와 패스, 그리고 레믹의 득점 장면이 나왔다.

『유니온 시티의 마틴 감독은 남은 시간, 정지우에게 골대를 맡겼습니다.』

정지우가 그라운드로 들어서는 장면이 이어졌다.

『한 차례의 슈팅을 완벽하게 막아 낸 정지우의 활약으로 유니온 시티는 마침내 130년 만의 우승에 무패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추가로 작성했습니다.』

환호하는 관중석, 벤치의 모습, 그리고 정지우가 동료들과 기뻐하는 장면이 연달아 나왔다.

『우리 국가대표 박용근 감독과 유니온 시티 소속 선수들은 내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서 한일전에 대비할 예정입니다.』

방송은 물론이고 인터넷 스포츠 매체들 역시 유니온 시티의 무패 우승과 정지우의 소식을 메인에 전하고 있었다.

***

마틴은 텅 빈 레드 블레이트의 관중석 중간에 서서 파랗게 빛나는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허전하면 맥주 한 잔쯤 같이 마셔 줄 수 있어.”

팀 닥터 스미스가 가벼운 웃음과 함께 건넨 농담이었다.

“그런 눈 하지 말라고. 자네의 수입이 훨씬 좋으니까 자네가 사는 게 맞아.”

마틴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마치 꿈을 꾸고 일어난 것 같아.”

“리그 무패 우승이라니? 그렇다면 정말 더할 수 없이 좋은 꿈 아닌가?”

“그렇지. 어제 시작했던 것 같은데, 다음 시즌이 시작될 때까지 레드 블레이트가 고요할 거라는 게 믿기지 않는군.”

스미스가 웃으며 마틴의 등을 다독였다.

“이봐! 자네에게 이런 감상은 어울리지 않아. 당장 내일부터 다음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흰머리가 나도록 고민해야지. 가! 맥주는 내가 사지.”

“그렇다면야.”

두 사람이 기분 좋게 웃으며 레드 블레이트를 나섰다.

“그런데 Ji가 다음 시즌에도 분명 우리 팀에 있는 거지?”

“쥬피터 회장 말이라 의심을 떨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통로 앞에서 달려온 솔직한 답이 잔디 위로 흩어졌다.

***

한국으로 날아온 정지우는 곧바로 파주 축구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갔다.

다시 만나 일주일을 훈련한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은 5월 23일에 일본으로 출발했다.

“리그 우승하고 국가대표로 일본을 가는 게 꿈만 같다.”

“실감 나게 한 대 때려 줄까?”

“아니!”

박상민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비행기 바깥은 온통 구름만 보였다.

“상민아.”

정지우가 불렀고, 박상민이 창에서 시선을 돌렸다.

“잘해 줘서 고맙다. 감독님께 네가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 여러 번 했었다.”

“무슨 그런 소리를 해?”

박상민이 쑥스럽게 답을 한 직후였다.

“뭔데? 둘이서 뭘 그렇게 재미나게 이야기하는데?”

신준석이 좌석 사이로 고개를 불쑥 디미는 바람에 셋이서 함께 웃었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일본 사이타마에 도착했습니다. 우리 대표팀은 내일 한 차례 적응 훈련을 한 뒤, 모레인 25일 저녁 7시에 일본과의 평가전을 가질 예정입니다.』

화면은 먼저 호텔에 들어서는 한국 대표팀을 보여 주었다.

『이번 평가전에는 FIFA의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AFC의 회장과 임원들 상당수가 관전할 예정이어서 여러모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정장 차림의 일본 협회 임원들이 귀빈들과 경기장을 둘러보는 장면이 이어졌다.

『한편, 일본 협회는 우리 대표팀의 숙소를 사이타마 스타디움과 두 시간이 넘는 거리에 배정하고, 경기장 적응 훈련 시간을 임의로 옮기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행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화면이 다시 운동장을 뛰는 우리 선수들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번 평가전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들은 물론, 아시아 전역에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습니다. 우리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지금의 축구 관련 소식은 한일전에 온통 쏠려 있었다.

경기장 적응 훈련을 하기 위해 그라운드를 살피던 박용근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웃고 말았다.

해가 쨍쨍 비치는 날, 그라운드만 홍수가 난 것처럼 잔뜩 젖어 있었다. 이 상태로는 공을 차기는커녕 가벼운 달리기조차 하기 어렵다.

무리했다가 삐끗하는 순간이면 공연히 부상자만 생긴다.

박용근은 과거 경기가 끝난 후에 그라운드를 주먹으로 때려 가며 분해하던 나와구치의 모습이 떠올랐다.

얼굴에 침을 뱉어 가며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던 그가, 협회의 부회장이 된 지금은 이런 치졸한 수법을 내세워서라도 승리를 원하고 있었다.

“해도 너무하네요!”

함께 움직였던 기자들이 박용근보다 더 분통을 터트리며 일본 기자들에게 거칠게 그라운드 상태에 대해 따져 댔다.

프로 선수들이다.

정지우를 비롯한 선수들은 그라운드 안에 고개를 디밀어 잔디를 살피는 게 전부였다.

“이래서 훈련은 어렵겠고, 다들 걸어 보면서 감각만 익혀라!”

박용근의 지시에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들어섰다.

정지우는 강태섭과 함께 골대로 움직여 골키퍼 에어리어 앞과 골키퍼들이 서 있는 자리의 잔디 상태를 확인했다.

천천히 걷다 보면 잔디가 눌린 자리, 패인 자리, 그리고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굴곡이 느껴지는 곳이 있다.

정지우는 천천히 그라운드를 가로질러서 반대편 골대로 향했다.

골포스트를 만져 보기도 했고, 크로스바를 올려다보기도 했다.

“형은 긴장 안 되세요?”

질문을 던진 강태섭이 커다랗게 숨을 뱉어 냈다.

“야! 나도 사람이야! 긴장될 때도 있고, 떨릴 때도 있지.”

“형은 안 그래 보여요. 거기에 큰 경기 뛰어 본 경험도 있잖아요.”

정지우는 웃으며 강태섭의 뒤통수를 툭 쳐 주었다.

“네가 가장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모습만 상상해. 나머진 동료들에게 맡기는 거야. 골키퍼가 자신 있게 달려들면 필드 선수는 거기에서 힘을 얻는다.”

처음 듣는 말인지 강태섭은 과외를 받는 학생 같은 표정이었다.

“어떻게 할까? 동료들을 불안하게 하는 골키퍼, 아니면 동료들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골키퍼. 둘 중 뭘 선택할래?”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되는 질문이었다.

“너의 멋진 선방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를 때까지 상상하고, 또 상상해. 동료들은 그걸 알아본다. 알아보게 되면 의지하게 되고. 그때부터 네가 지시하는 게 보다 더 잘 먹혀들 거다.”

강태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 정렬이 슈팅을 그렇게 잘 막아 놓고 뭔 걱정이야?”

“그거야 형이 알려 주었으니까 그렇죠.”

“알려 준다고 해도 실력이 없다면 그렇게 막지 못했을 거다.”

강태섭이 그런가 하는 눈을 했을 때였다.

“가자!”

통로 앞에서 박용근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저녁을 먹고 나서 선수들이 하나둘 몰려들더니 급기야는 노숙자들처럼 여기저기 구겨져 자리를 잡았다.

대화 주제는 역시나 축구였다.

결정적인 골을 넣었을 때의 상황을 물었고, 박상민과 이정렬, 신준석이 번갈아 가며 답을 했다.

친해졌다. 그래서 깊어 가는 밤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신준석이 엉뚱한 말을 던져서 다들 킬킬거린 다음이었다.

“이제 자야지?”

뭔가 멋진 말을 해 주길 바랐나 보다.

그러나 정지우가 빤히 바라보기만 하자 다들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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