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52화 (252/262)

제5장. 130년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 (2)

“예에에에에에에에에-!”

설명하기조차 어려운 함성이 터져 나온 직후에, 그라운드 바깥에서 넘어온 폭풍 같은 함성이 레드 블레이트를 덮쳤다.

“우와- 아!”

바로 옆에 있던 무둔바가 괴물처럼 고함을 질렀는데, 그 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와아! 유니온 시티! 유니온 시티의 우승입니다!』

캐스터 역시 이성을 내던진 사람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정지우의 선방! 박상민의 결승골로 유니온 시티! 세계 최고의 리그에 속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을 이뤄 냅니다!』

『정지우! 동양인 최초 프리미어리그 선발 골키퍼에! 우승을 확정 지은 경기의 선발이구요! 박상민 선수! 오늘 그렇게 활약하더니 결승골을 만들어 냈어요! 자랑스럽습니다! 굉장합니다!』

거인이 한쪽을 잡아서 위아래로 흔드는 것처럼 관중석이 일렁였다.

관중들은 미친 듯이 자리에서 뛰었고, 통로의 입구에 있던 에이미가 스태프들을 부여안고 펄쩍펄쩍 뛰어 댔으며, 그 냉정하던 쥬피터가 연신 얼굴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해냈어!”

팀 닥터 스미스가 나이를 잊은 채 마틴에게 달려들었고, 그들을 스태프들이 얼싸안았다.

거칠게 다투던 웨스트햄이다.

그런데 그들과 그들의 벤치에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내 주었고, 심지어 웨스트햄 관중들 대부분이 퇴장하지 않고 유니온 시티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 주고 있었다.

“이 괴물아!”

데이빗이 정지우의 얼굴을 움켜쥐고 이마를 가져다 댔다.

“우리가 해냈어! 우리가 우승이야!”

미친 사람들 같았다.

데이빗이 정지우를 붙든 그 직후에 라파엘, 스웰던, 꼼빠니, 무둔바, 데니, 하여간 동료들 전체가 골대로 달려와 정지우를 덮쳤다.

“워- 호!”

“믿을 수가 없어! 우리가 해냈어!”

“우승이야! 우승이라고!”

누가 누구랄 것 없이 서로 머리와 등을 두들겨 주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그라운드 안팎에서 웃옷을 벗어 든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그걸 빙빙 돌리며 미친 듯한 함성을 쏟아 냈다.

퍼어엉! 퍼어엉! 퍼어엉!

폭죽이 뒤늦게 터졌다.

화려한 가루가 레드 블레이트를 덮었고, 그 안에서 관중들, 벤치, 선수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뛰고 악을 쓰며 승리를 기뻐했다.

우는 관중들도 많았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제자리를 뛰는 관중들의 모습이 TV 화면에 고스란히 잡혔다.

한국의 호프집 역시 미친 사람들을 모아 놓은 딱 그 모습이었다.

경기가 끝나면 하이라이트를 보여 준 뒤에 끝내는 것이 통상적인 중계 방식이었는데, 오늘 TV는 레드 블레이트의 이곳저곳을 계속 보여 주었고, 간간이 정지우의 선방과 박상민의 결승골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 주었다.

“정지우! 정지우! 정지우!”

사장과 직원, 손님을 가릴 것 없이 다 같이 주먹을 불끈 쥐고 TV 화면을 향해 악을 써 댔다.

유니온 시티 펍의 광경은 좀 더 극적이었다.

부둥켜안고 펄쩍펄쩍 뛰는 사람들, 테이블에 얼굴을 처박은 채 서럽게 우는 노동자, 가게의 천장을 바라보며 포효하는 사람들까지.

백발의 할머니는 결국 소파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었고, 놀란 아들이 서둘러 물에 적신 수건을 할머니의 머리에 올려 주었다.

“믿을 수 없어. 우리가 우승한 게 맞니?”

“맞아요, 어머니! 그러니 내년 우승도 보셔야죠.”

할머니는 계속해서 우승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130년 만이야! 우리가 그걸 직접 본 거지? 그렇지?”

“맞아요, 어머니!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고 원하셨던 우승이에요!”

손자와 손녀들이 할머니의 무릎 근처에서 그녀를 위로해 주고 있었다.

부장과 장진모는 시원하게 맥주를 들이켰다.

“카하! 그동안 고생했다.”

“나도 저 우승에 조금이나마 도움 된 거겠죠?”

씨익 웃어 준 부장이 확신처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레드 블레이트 바깥은 발 디딜 틈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챔피언처럼 양팔을 위로 치켜들고 환호하는 관중,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노동자, 남편은 아내를 안아 주고, 아내는 남편을 끌어안은 채 기뻐했다.

“우리가! 우리가 우승팀이야!”

“믿을 수가 없어!”

그들이 외치는 말들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곳곳에 있던 기마경찰들이 손을 뻗어 관중들과 번갈아 하이파이브를 나누기도 했다.

정지우와 동료들이 벤치로 달렸다.

누구에게 달려들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박용근이 마틴, 스미스, 스태프, 서브 선수들과 얼싸안고 있어서였다.

휘이이익!

높다랗게 떠오른 정지우는 곧바로 뭉쳐 있는 박용근과 마틴, 스태프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와락! 콰다당!

“Ji! Ji!”

마틴은 잃어버렸던 아들을 찾은 것처럼 정지우를 불렀고, 정지우는 그의 등을 다독였다.

그리고 정해진 절차처럼 동료들이 그 위를 덮쳤다.

킁. 쿵. 쿵. 쿵. 쿵. 쿵.

“유니온 시티에는 두 사람이 살지!”

오색의 가루들이 계속해서 쏟아지는 가운데, 관중들이 유니온 시티만의 특별한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몸을 일으킨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모두 어깨를 걸고 관중들과 함께 뛰었다.

킁. 쿵. 쿵. 쿵. 쿵. 쿵.

“레드와 블레이트가 사이좋게 지냈지!”

방송 카메라가 선수들 바로 앞으로 몰려들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찍어 댔다.

킁. 쿵. 쿵. 쿵. 쿵. 쿵.

“레드가 시합에 나가면 블레이트는 이렇게 말했어!”

다 같이 어깨를 마주 잡고 펄쩍펄쩍 뛰면서 부르는 응원가였다. 그라운드 바깥에서 반 박자쯤 느리게 응원가가 달려들고 있었다.

킁. 쿵. 쿵. 쿵. 쿵. 쿵.

“Go, Go, Go my Red! Go, Go, Go my Red!”

응원가가 끝나자 ‘예에에에에에에-!’ 하는 함성이 들렸고,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관중석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정지우는 이제야 벤치 위로 시선을 들었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지우야!’

전은주가 삐죽이는 얼굴로 물개 박수를 보내 주었고,

‘당신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인 거 알아요?’

데이지가 환한 웃음으로 손뼉을 쳐 주었으며,

‘Ji! 나는 Ji가 승리를 지켜 줄 줄 알았어!’

릴리와 메기의 응원도 받았다.

TV에서는 연속해서 느린 그림으로 정지우의 선방이 나왔고, 이어서 신준석과 이정렬이 거칠게 부딪치는 장면, 마지막으로 박상민이 골을 넣는 모습이 이어졌다.

붕 날아가서 상대 선수의 발길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골을 넣은 박상민, 그가 벌떡 일어나 골대에서부터 코너플래그를 달리며 왼쪽 가슴에 달린 엠블럼을 두들기는 모습, 그 뒤에서 배경처럼 환호하는 관중들.

장면이 다시 바뀌어 페널티킥을 막고 일어선 정지우가 관중들을 향해 두 손을 위로 치켜드는 모습이 이어졌다.

화면이 또 바뀌었다.

허리를 낮춘 채 독수리처럼 양팔을 길게 편 정지우가 앞을 노려보는 장면이었다.

『이때만 해도 오늘 승리가 어렵겠구나 싶었거든요!』

캐스터는 이제야 좀 이성을 주워 든 모양이었다.

『이 페널티킥을 막아 내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유니온 시티로 넘어왔어요! 정지우 선수! 정말 칭찬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해설자가 맞장구를 치면서 몇 번을 봐도 지루하지 않은 장면들을 다시 설명했다.

믹스트존은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숫자의 기자들이 몰려와 있었다.

“페널티킥을 막아 내서 오늘 우승을 견인했습니다! 어땠나요?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나요?”

“다시 골대 앞에 서야 한다면 절대 못 막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좋은 슈팅이었습니다. 다만 홈 관중들이 보여 준 응원과 동료들의 믿음, 그리고 행운이 따라 준 덕분에 막아 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한국에서 온 동료들의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리는 한 팀으로 뛰었습니다. 벤치에서 기다려 주었던 선수들, 스태프, 관중들, 모두가 유니온 시티의 우승을 만들어 낸 주역입니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은 못해 봤습니다.”

“Ji! 유니온 시티 홈 팬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홈 관중들의 응원이 만들어 낸 우승입니다. 응원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정지우뿐만 아니라 믹스트존 곳곳에서 마틴, 박상민, 데이빗, 레믹, 이정렬, 신준석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정지우가 통로로 향한 순간이었다.

“Ji! 하마터면 브레드가 심장마비로 죽을 뻔했어! 이제 그는 부자가 되었다고! 부인도 베팅했다고 자랑하고 있어! 저녁을 사고 싶다고 꼭 전해 달래!”

커다랗게 악을 쓰는 교장 선생님을 향해 정지우는 손을 들어 주었다.

라커룸에 들어선 동료들이 다시 손을 맞잡고 어깨를 두들기며 서로를 칭찬했다.

여기에서 무슨 말이 필요하겠나.

괴성! 웃음! 그리고 혹시 있다면 ‘잘했어! 정말 굉장했어!’ 하는 칭찬이 전부였다.

“아이그! 이 기특한 자식!”

신준석이 박상민의 볼을 움켜쥐고 흔들어서 다 함께 웃기도 했다.

“지우야!”

흥분이 어느 정도 가라앉았을 때였다.

이정렬이 정지우를 향해 다가왔다.

“고맙다. 이곳에 함께 있게 해 줘서.”

“네가 잘한 거야. 오늘 경기 굉장했어.”

둘이서 손을 꽉 잡았다.

잘됐다. 정말 잘됐다.

박상민의 아버지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아들이 골을 넣는 순간까지 잘 참았었다. 그러나 이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그라운드 바깥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결국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들은 자꾸만 그라운드 안을 살피고 있었다.

내 아들이다!

골을 넣고 관중들 앞에서 가슴의 엠블럼을 두드리며 달리는 저 선수가!

엄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틀 안에 갇혀 있던 감정이 불쑥 튀어나왔고, 진한 눈물이 부친의 얼굴을 온통 적셨다.

고맙다, 내 아들.

해 준 것 없는 아버지는 할 말이 이거밖에 없다.

고맙다, 상민아. 고맙다, 지우야.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모친은 굽어진 손가락으로 아직도 눈물을 찍어 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시간이 평소와는 다르게 엄청 늦었다.

무엇보다 우승의 기쁨을 나누는 데 시간이 꽤 끌렸고, 다음으로 흥분한 관중들이 둘러싼 레드 블레이트를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신준석까지 함께 소파에 있었다.

어딘가 맥이 쭉 빠져 버린 듯싶었고, 다음으로 그토록 펄쩍펄쩍 뛰다 왔는데도 막상 집에 들어오자 우승이라는 실감이 나질 않았다.

“굉장한 경험이다.”

박용근이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는 듯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우승을 놓고 다투는 경기를 했다는 것과, 결국 우승을 이뤄 냈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나나 김 감독은 접해 보지 못한 응원 문화도 그렇고.”

박용근은 정지우를 시작으로 신준석, 박상민, 이정렬을 쭉 돌아보았다.

“오늘 정말 수고 많았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정지우의 대답을 박용근은 웃는 얼굴로 받았다.

“이제 자야지?”

“예.”

들뜨는 것과 반대로 피곤이 훅 달려들어서 몸이 축축 늘어졌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쉬세요, 감독님.”

동기들도 비슷한 얼굴로 2층으로 올라갔다.

신준석도 자고 갈 모양이었다. 2층에 방이 두 개라 이제는 아예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게 자연스러웠다.

방으로 들어간 박용근은 김문호의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박 감독?]

“미안해. 생각보다 늦게 도착했네.”

[이 친구는 하여간! 굉장했어! 축하해, 박 감독!]

“내가 축하받을 일인가? 그나저나 이 녀석들은 우리와 비교도 못할 정도로 성장하는 거 같지?”

[우리가 못했던 경험을 쌓는 후배들을 보면 뿌듯하고 자랑스럽지. 그런 면에서 지우는 정말 복이다! 복! 그렇지?]

박용근은 잔잔하게 웃기만 했다.

[살다가 우리 박 감독이 그렇게 좋아하는 걸 다 보네?]

“내 얼굴이 보였어?”

[내가 2번 개야! 그걸 모르겠어?]

박용근은 또 실없이 웃기만 했다.

[일본전 잘 부탁합니다! 박용근 감독님!]

김문호의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전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다음 날 회복 훈련을 위해 레드 블레이트에 도착했을 때, 관중들과 관광객, 기자들이 얼마나 몰려 있던지 마치 경기가 있는 날처럼 보였다.

그라운드에서 회복 훈련을 하는 선수들을 카메라들이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회복 훈련이 아니라 쇼처럼 보였다.

평소보다 짧게 훈련을 마친 정지우는 마틴의 방을 찾았다.

“정신없지? 나도 그렇더군. 그래도 130년 만에 찾아온 거라면 한 번쯤은 웃어 줄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비타민이 섞인 물병을 건네주며 마틴은 시종일관 웃음을 감추지 못한 얼굴이었다.

“설마 우승을 축하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닐 테고?”

“남은 경기에 얀센을 선발 골키퍼로 넣어 주셨으면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정지우의 답이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시설이 잘된 배수구로 물이 빠지는 것처럼 마틴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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