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237화 (237/262)

제7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경기를. (3)

박상민이 공을 잡아 빙글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콰아악!

발바닥이 보일 정도로 거친 태클이 날아들었다.

몸이 붕 떴던 박상민이 어깨부터 바닥에 떨어졌고, 휘슬을 분 주심이 빠르게 달려갔다.

『다분히 의도적인 태클입니다! 루카스도 그걸 짐작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데요? 리버풀 동료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주심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오른손이 들어간 거 보면 옐로카드를 꺼낼 모양이네요. 저 정도면 사실 바로 퇴장을 줘도 할 말이 없을 정도거든요. 박상민 선수, 많이 다치지 않아야 할 텐데요.』

통뼈에다 워낙 힘이 좋은 박상민이다. 그런 녀석이 아직 일어나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의료팀을 부른 주심이 루카스를 향해 옐로카드를 높게 들었다.

『오늘 첫 번째 옐로카드입니다!』

『박상민 선수는 한참 폼이 올라오고 있었거든요. 우리 선수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리는데요. 정말 부상 조심해야 합니다.』

스미스와 스태프의 도움을 받은 박상민이 절뚝거리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아직 교체 사인은 없었다.

전반 35분쯤에 중앙선 바로 앞 유니온 시티 진영에서 얻은 파울이었다.

공을 세운 꼼빠니가 찰 준비를 하는 동안, 리버풀 선수들은 포메이션을 유지한 채 수비에 집중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퍼엉!

꼼빠니는 데니에게 공을 찔러 주었다.

『공을 받은 데니, 신준석에게! 신준석, 무둔바에게 패스!』

『리버풀이 워낙 단단하게 틀어막았기 때문에 유니온 시티가 파고들 틈이 좀처럼 보이질 않네요.』

『리버풀의 전술을 참고할 팀들이 많겠습니다.』

『사흘 뒤에 맨시티와 경기가 있구요, 그다음이 아스널이거든요. 중앙 미드필더들이 박상민, 이정렬, 레믹을 일대일로 막는 데다, 박상민이 공을 소유하면 거친 태클로 연결을 끊는 방식인데 전반까지는 효과가 제법 있네요.』

무둔바를 거쳤던 공은 라파엘에게로 연결되었다가 다시 정지우에게 돌아왔다.

퍼어엉!

정지우는 왼편의 꼼빠니에게 길게 차 주었다.

『잔뜩 웅크린 리버풀, 쉽게 달려들지 않습니다!』

『보세요! 꼼빠니가 공을 잡자마자 전부 중앙선 너머로 넘어갔어요. 피르미노, 엠레찬, 루카스, 헨더슨까지 오늘 리버풀 선수들도 정말 많이 뜁니다!』

박상민은 이제야 그라운드 바깥에서 들어가겠다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레믹과 이정렬이 좌우로 움직이며 공을 받았다가 다시 뒤편의 꼼빠니와 데니에게 연결하는 동안, 박상민이 그라운드로 들어왔다.

투욱!

오른쪽 터치라인에서 공을 잡은 데니가 박상민을 향해 차 주었다.

리버풀 선수들이 여전히 거칠게 박상민에게 달려들었다.

손을 슬쩍 잡아당기는 건 영국 축구에서 애교 수준인 거다.

그런 건 힘으로 적당히 뿌리쳐야지, 공연히 넘어져서 주심을 바라보면 파울을 유도하는 선수라는 낙인만 얻는다.

박상민은 피르미노와 랄라나를 뿌리치며 공을 지켜 냈고, 왼편에서 기다리던 꼼빠니에게 공을 차 주었다.

투욱!

“와아- 아!”

엠레찬이 훅 뛰어나와 박상민의 패스를 가로챘다.

리버풀 관중들의 함성이 쏟아졌고, 피르미노와 랄라나, 루카스가 단숨에 중앙선을 넘어 유니온 시티 골대를 향해 달려왔다.

이를 악문 박상민의 표정이 독했다.

녀석은 악착같이 달려서 엠레찬을 따라붙었다.

분명 한 걸음 늦었다. 그런데도 박상민은 어느새 엠레찬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렸다.

콰악! 콱!

어깨와 어깨가 부딪쳤고, 박상민과 엠레찬의 팔이 엉켰다.

그리고 그 직후에,

투욱!

마침내 박상민이 엠레찬의 발아래 있던 공을 빼냈다.

“와아- 아!”

공을 잡은 스웰던이 앞으로 밀어 준 공을 박상민이 받았고, 뛰어나와 있던 이정렬에게 넘겼다.

『유니온 시티! 역습입니다!』

투욱!

이정렬이 공의 방향만 틀어 왼쪽으로 흘렸다.

『박상민이 또 공을 잡습니다! 박상민! 안으로!』

투욱!

두 번쯤 공을 치고 들어간 박상민은 왼편에서 뛰던 꼼빠니에게 공을 넘겼다.

퍼어어엉!

꼼빠니는 굴러오는 공을 그대로 세차게 띄웠다.

『꼼빠니! 크로스!』

휘이익! 휘익!

레믹과 이정렬이 몸을 솟구쳤고, 그 뒤편에서 데니가 달려들었다.

『걸렸어요! 저건 걸린 거예요!』

리버풀의 수비수 로브렌과 사코가 몸을 띄운 직후였다.

터어엉!

공은 레믹의 머리에 맞았다.

『오오오-!』

타이밍은 죽였다. 그런데 레믹의 머리에 맞은 공은 골대가 아니라 공을 날려 준 꼼빠니 쪽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꼼빠니! 슈웃!』

가슴으로 공을 받은 꼼빠니가 떨어지는 공을 그대로 걷어찼다.

터어억!

“예에-!”

미놀레의 반사 신경이 돋보인 멋진 선방이었다.

공은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으로 튀어나왔다.

『박상민! 슈웃!』

정면에서 달려든 것은 박상민이었다.

녀석은 오른발 안쪽으로 튀어나오는 공을 정확하게 찼다.

회전을 먹은 공이 오른쪽으로 휘어 나갔다.

화아아악!

미놀레가 몸을 날렸고,

휘이익!

사코가 공을 향해 번쩍 몸을 띄웠지만,

철렁!

공은 오른쪽 코너를 제대로 파고들었다.

“예에에에에에에-!”

레드 블레이트의 반쪽이 벌떡 일어서는 느낌이었다.

『고- 올! 골입니다! 고- 올! 박상민이 시작하고! 박상민이 끝내는 골입니다!』

두 번이나 골을 실패한 직후에 간결하고 정확한 슈팅이 골대를 파고든 거였다.

홈 관중들이 펄쩍펄쩍 뛰었고, 벤치에서는 스태프와 서브 선수들이 손을 마주 잡으며 기뻐했다.

박상민이 왼쪽 가슴에 찍힌 유니온 시티의 엠블럼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관중석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정지우 선수가 다 들어간 리버풀의 골을 강제로 끌어냈다면, 박상민 선수는 튀어나온 유니온 시티의 골을 끝내 밀어 넣었어요!』

『꼼빠니의 슈팅을 미놀레 키퍼가 정말 잘 막았습니다만, 그 공이 박상민 선수에게 바로 날아갔습니다! 이런 게 정지우 선수의 선방과 비교되는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도 있겠는데요, 공이 없을 때 박상민의 위치 선정과 움직임을 칭찬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TV에서 레믹이 공에 머리를 대는 장면이 나왔다.

골대로 방향을 틀기 위해 머리를 휙 휘둘렀는데 타이밍이 안 맞아서 공은 꼼빠니에게 날아갔다.

『꼼빠니에게 바로 날아가는 것으로 봐서 어시스트한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부러 저렇게 보내기도 힘든 방향이거든요.』

『여기서 꼼빠니의 슈팅이 있었구요, 미놀레 키퍼가 멋지게 막아 낸 공을 우리 박상민 선수가 발 안쪽으로 기가 막히게 넣었습니다!』

박상민이 코너 플래그를 향해 달리는 모습이 화면 가득 잡혔다. 열광하는 관중들을 배경으로 달리는 도중이었다. 가슴을 두드리던 녀석이 검지를 들어 승리를 다짐하는 것처럼 흔들었다.

동료들이 달려들어 녀석을 감쌀 때였다.

쿵. 쿵. 쿵. 쿵. 쿵.

“Wild Sang!”

박상민의 응원가가 커다랗게 터져 나왔다.

쿵. 쿵. 쿵. 쿵. 쿵. 쿵.

“You make my heart sing(너는 내 심장을 노래하게 해)!”

쿵. 쿵. 쿵. 쿵. 쿵. 쿵.

“I think you move me(넌 나를 움직이게 해)!”

데이빗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중앙선으로 움직이는 동안에도 응원가는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Wild Sang(거친 박상민)!”

테크니컬 지역에 있던 마틴이 슬쩍 내민 손을 박상민이 기분 좋게 마주쳐 주었다.

전반 추가 시간은 4분이었다.

대기심이 패널을 좌우로 흔들 때 주심이 경기를 시작하라는 휘슬을 불었다.

한 골이다.

무리해서 덤비다가 한 골을 더 얻어맞으면 리버풀은 경기를 뒤집기 어려워진다. 후반을 노리는 게 분명한 리버풀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경기를 풀어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이제는 익숙해질 만도 한데 유니온 시티의 홈 관중들은 처음 이겨 보는 사람들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리듬은 무섭다.

축구에서 이런 리듬은 터무니없이 터져 나온 골이나, 혹은 멋진 슈팅에 따라 훅 넘어오기도 하고, 한순간에 상대 팀의 것이 되기도 한다.

만약 전반 중반에 터진 골이었다면 유니온 시티는 분명 한 골을 더 넣었을 거다.

삐이익! 삑!

고스란히 남은 후반을 노린 리버풀이다. 그들의 바람대로 별다른 반전 없이 전반의 추가 시간도 끝났다.

“예에에에에에에에-!”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의도적인 함성을 질렀다.

리그 4강을 노리는 리버풀 관중들을 자극하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효과는 차고 넘쳤다.

굳은 표정의 리버풀 관중들이 깍지 낀 손을 정수리에 얹은 채 퇴장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그랬다.

라커룸에 들어간 정지우는 박상민을 살폈다. 의자에 앉은 녀석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였다.

“상민아! 괜찮냐?”

“욱신거린다.”

“의무실에 가 봐. 리그 아직 안 끝났다. 여기서 무리하다간 오래갈 수도 있어.”

박상민이 굳은 얼굴로 라커룸을 나섰다.

오른쪽 발목이 아픈 필드 선수가 무리하다가는 바로 왼쪽 무릎에 이상이 오고, 다음으로 허벅지 뒤쪽 근육을 다치는 일이 생긴다.

일반인의 경우에도 흔히 나오는 증상인데, 그런 상태를 자꾸 끌고 나가면 고질병으로 발전해서 툭하면 부상을 입는 소위 유리몸이 되는 거다.

별거 아닌 부상에도 필드 선수들이 2주씩 휴식하는 이유다.

발목, 무릎, 허벅지 순으로 돌기 시작한 부상은 금방 허리, 등까지 올라간다.

프로 선수에게 부상은 피할 수 없는 장애물과 같다.

그러니 지금 같은 때에는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는 거였다. 특히 필드 선수라면 더더욱 더.

박상민이 염려스럽긴 했지만 당장 큰 부상은 아닌 듯했고, 전반 막판에 잡은 분위기를 깨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물을 마시며 10분쯤 쉬었을 때 마틴이 들어섰다.

“후반에는 Sang을 대신해서 맥슨을 넣겠다. 꼼빠니! 아래로 내려가서 데이빗 옆을 지키고, 맥슨에게 왼쪽을 맡겨 줘.”

“알겠습니다.”

지시를 마친 마틴은 커다랗게 손뼉을 쳐서 시선을 훅 당겨 갔다.

“이 경기를 맨시티와 아스널이 지켜보고 있다.”

이제는 한 경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음과 그다음의 경기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처럼 들렸다.

“프리미어리그 19개 팀이 우리를 노린다. 우승을 노리는 팀은 말할 것도 없고, 강등권에 있는 팀은 절박함으로, 그리고 4강에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는 팀들은 그들만의 간절함으로 우리를 노릴 거다.”

마틴이 날카로운 눈으로 선수들을 돌아보았다.

“우리에게 힘겨운 판정이 있을 수도 있고, 부상이 따를 수도 있다. 기억할지 모르지만, 리그 출발 전에 우리의 예상 성적은 19위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선두다!”

마틴이 엄지를 세워 가슴 앞에 들었다.

“우리가! 유니온 시티가 리그 선두인 거다! 지난 130년의 역사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너희가 만들었다! 이 환상적인 기록을 지킬 수 있는 것 또한 너희다.”

갑자기 축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끊어서 어쩐지 더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짧은 침묵을 타고 그라운드에서 달려온 응원가가 라커룸을 비집고 들어왔다.

“우승을 이끈 주장, 우승을 만들어 낸 스트라이커!”

마틴의 시선을 받은 레믹이 눈빛을 번쩍였다.

“우승을 끌어낸 미드필더, 우승을 지켜 낸 포백! 저 응원가에 답하는 경기를 보여라! 사자처럼 용맹하게 달리고, 언제나 똑바로 들려 있던 리버풀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강한 비와 바람이 돼라! 이 경기가 끝났을 때!”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열변이었다.

감독인 마틴도 알고, 동료들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이 우승을 향해 가는 가장 중요한 길목이라는 것을.

“고개를 떨군 리버풀 선수들을 나와! 관중들에게 보여 줘!”

우승 경험이 없는 유니온 시티는 반드시 이대로 승기를 잡으며 끌고 나가야 마지막까지 우승을 노릴 수 있다.

띵동! 띵동! 띵동!

후반전을 준비하라는 벨이 울렸다.

선수들이 일어설 때까지도 마틴은 라커룸에 있었다.

그는 먼저 움직인 레믹의 등을 두드려 주었고, 데이빗과 손을 맞잡았으며, 무둔바의 커다란 얼굴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빤한 스쿼드를 지닌 유니온 시티다.

어느새 팀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된 박상민을 빼고 리버풀을 상대해야 한다는 염려가 오랜 감독 생활을 거치며 익힌 마틴의 본능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지우가 라커룸의 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Ji, 이 경기를 부탁해.”

아무렇지도 않은 척 등을 툭툭 두드려 주며 마틴이 말을 건넸다. 정지우가 힐끔 돌린 시선에 마틴이 꾹꾹 눌러 놓은 긴장이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코치.”

정지우는 웃으며 마틴에게 고개를 돌렸다.

옆에 있던 동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시선을 돌리는 앞이었다.

“고개를 떨군 리버풀 선수들을 보여 드리죠.”

정지우의 대꾸에 마틴이 정말이지 보기 좋은 얼굴로 웃었고, 동료들이 비슷하게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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