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또 막아주면 됩니다! (2)
중앙선에서 다시 경기가 시작되었다.
『정규 시간이 10분쯤 남았습니다.』
『아쉬운 경기입니다. 유니온 시티가 리듬을 찾아 가고 있었거든요. 카알의 경우는 심리적 부담이 대단할 텐데 빨리 털어 내고 경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아스널, 득점 이후로 더욱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니온 시티는 박상민과 레믹으로 이어지는 공격 라인이 원활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Arsenal we're on your side(아스널, 우리는 네 편이야)!”
아스널 관중들이 우렁찬 응원가로 레드 블레이트를 압박하고 있었다.
레믹이 건네준 공은 꼼빠니와 데이빗, 카알을 거쳐 신준석에게 연결되었다. 그사이에도 아스널 선수들은 쉴 새 없이 달려들어 공을 뺏기 위해 애썼다.
“헤이! Jun!”
데니가 손을 들었고, 신준석이 얼른 그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정지우는 날카롭게 경기를 지켜보았다.
아스널은 원래 프리미어리그에서도 4강 안에 드는 강팀이다. 그런 아스널이 오늘은 전체적인 리듬까지 좋아서 쉽게 꺾일 것 같지 않았다.
분위기를 바꿔 줄 필요가 있었다.
“예에에-!”
데니가 꼼빠니에게 패스한 공을 옥슬레이드 채임벌린이 가로채며 원정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스널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헤- 에이! 데이비- 잇!”
정지우는 목이 찢어져라 데이빗을 불렀다.
그가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나가!’
‘뭐?’
데이빗은 뭔가 잘못 본 건가 하는 얼굴이었다.
‘준비하라고! FA컵 예선 때처럼!’
공은 이미 아르테타를 거쳐 지루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예에에-!”
아스널 선수 6명이 유니온 시티 진영을 달리는 상황이었다.
투욱! 툭! 툭!
빠르다. 아스널의 패스는 정말 빠르다.
지루가 산티카솔라에게, 산티카솔라가 산체스에게, 산체스가 다시 외질에게, 마치 농구처럼 빠르고 정교한 패스를 연결했다.
‘이번엔 제대로 보여 주마!’
정지우는 이를 악물며 자세를 잡았다.
패스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눈보다 빠를 순 없는 거다.
저들이 세계적인 선수라고 해서 반드시 골을 넣는다는 보장 또한 없다.
주춤주춤.
정지우는 공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빠르게 짧게 짧게 몸을 움직였다.
라파엘과 무둔바가 양쪽을 막아섰고, 스웰던과 신준석이 페널티 에어리어 양쪽을 지킨다.
동료들이 악착같이 막아서고 있어서 공은 쉽게 페널티 에어리어를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다.
“상민아! 야! 박상민!”
정지우는 페널티 에어리어로 뛰어온 박상민을 불렀다.
“이쪽! 이쪽을 막아!”
그러고는 오른쪽 골대를 가리켰다.
박상민이 빠르게 달려와 골대의 오른쪽을 막아섰다.
투욱! 툭!
그사이 공은 또 아르테타에게 갔다가 다시 외질에게 넘어갔다.
달리는 도중에 발의 바깥쪽을 이용한 패스, 공을 받을 것처럼 하다가는 그냥 지나쳐 다음 선수에게 연결하는 센스까지.
아스널은 페널티 에어리어 외곽에서 기회를 노리고, 유니온 시티는 정지우를 포함해서 8명의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을 지켰다.
“상민아! 내가 소리 지르면 무조건 달려!”
정지우는 공에 시선을 준 채로 악을 썼다.
한국말이다. 그나마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에 있는 신준석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큼 함성이 엄청난 상황이었다.
“수비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뛰어! 일직선으로!”
고함을 얼마나 질렀는지 목이 아플 정도였다.
한국말로 악을 쓰고 있어서 다들 박상민에게 수비를 지시하는 거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퍼어엉!
외질이 정지우의 왼편으로 공을 날렸다.
후욱! 후욱!
정지우가 빠르게 왼편 골포스트로 움직인 직후에,
터억!
가슴으로 공을 받은 아르테타가 스웰던을 제쳤다.
“예에-!”
함성이 터져 나왔고,
투욱!
날카로운 패스가 정지우의 오른쪽으로 이어졌다.
‘질 줄 알아!’
정지우는 빠르게 골대의 중앙으로 움직였다.
카알과 데니까지 수비에 가담해서 공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공을 받은 산티카솔라는 슈팅 찬스를 잡지 못했다.
그는 공의 방향만 바꿔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의 빈 곳으로 찔러 주었다.
신준석이 달려들었으나 산체스가 좀 더 빨랐다.
퍼어엉!
그는 골라인 근처까지 악착같이 달려가 골대 앞을 향해 공을 날렸다.
실력 있는 팀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선수들이다.
골라인 바로 앞에서 급하게 날린 센터링이 골키퍼를 훌쩍 넘길 정도로 완벽하게 기회를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정지우가 기다리던 기회이기도 했다.
“달려! 상민아!”
정지우는 고함을 버럭 지르며 골대의 왼쪽으로 뛰어나갔다.
와락!
박상민이 미친놈처럼 앞으로 달려갔고,
화아아악!
정지우는 아예 골대의 왼쪽으로 떨어지는 공을 향해 높다랗게 몸을 띄웠다.
이렇게까지 나섰는데 공을 못 잡거나 놓치면 변명의 여지없이 골을 먹는다.
조명등의 화려한 불빛 사이로 공이 떨어지고 있었다.
휘익! 휘이익! 휘익!
아르테타, 외질, 지루가 공을 따내기 위해 점프했고, 라파엘, 스웰던, 꼼빠니가 그들을 막기 위해 몸을 솟구쳤다.
‘끄으으!’
두 손을 뻗는 것보다 한 손을 높이 드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정지우는 공을 잡기 위해 오른손을 최대한 뻗었다.
터억!
걸렸다! 공이 손에 걸렸다.
콰악!
아스널 선수의 몸이 정지우를 건드렸다.
욕할 것 없다.
이런 동작을 통해 정지우가 공을 놓칠 수도 있어서 공격수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한 행동이었다.
꽈아악!
정지우는 농구 선수가 공을 잡아내는 것처럼 품에 안으며 바닥에 내려섰다.
상대 팀 선수와 부딪친 탓에 중심이 흔들린 상태였는데 악착같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와락! 콰악! 와락!
아스널 선수들을 스웰던과 라파엘이 막아 주었다.
“와아아-!”
데이빗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박상민은 중앙선을 향해 달리는 상황이었다.
놀란 외질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분명히 정지우가 좀 더 빨랐다.
휘이이이익! 철퍼덕!
중심이 흔들린 상태에서 있는 힘껏 달렸고, 외질을 피해 공을 던졌다.
그 바람에 정지우는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 커다랗게 엎어졌다.
“예에에-!”
고개를 들었을 때 데이빗이 공을 차 놓고 달리는 것이 보였다.
“달려! 달리라고!”
한국말로 지른 고함이었다.
아스널의 진영을 데이빗, 박상민, 레믹이 일직선으로 달리고, 아스널 수비수들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투욱!
데이빗이 메르테자커와 코시엘니의 사이로 공을 찔러 주었다.
“예에-!”
수비수가 몸을 돌리는 짧은 틈을 레믹이 파고들었다.
체흐가 양팔을 쭉 뻗은 자세로 레믹의 앞으로 나섰다.
투욱!
레믹이 공을 한 번 앞으로 찼고,
주춤주춤!
체흐가 빠르게 앞으로 나왔다.
‘이 멍청아!’
쐈어야 했다.
드리블을 할 게 아니라 첫 번째에서 바로 슈팅을 날렸어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레믹은 체흐의 앞에 있었다.
각도와 거리로 봐서 골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결정적인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온다.
정지우가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투우욱!
레믹이 발뒤꿈치를 이용해 오히려 공을 뒤로 보냈다.
정지우마저 멍한 장면이었다.
레믹을 막기 위해 달려든 아스널의 수비수 두 명이 체흐와 엉켰고, 정작 레믹은 왼쪽 골포스트를 지나치고 있었다.
와락!
공을 노린 건 박상민이었다.
투욱!
박상민은 오른쪽으로 공을 한 번 밀었고,
퍼어어어엉!
오른발을 따라 몸이 붕 뜰 만큼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화아악!
체흐가 왼쪽 코너로 몸을 날렸지만,
철러- 엉!
꿈틀거리며 날아간 공이 골 그물을 커다랗게 흔들었다.
“예에에에에아아아아-!”
슈팅의 탄력을 이기지 못해 넘어졌던 박상민이 벌떡 일어나 달렸다.
『고오- 올! 고올! 박상민! 아스널을 상대로 극장골을 만들어 냅니다! 골입니다! 골! 박상민!』
“와아아아아아!”
관중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펄쩍거릴 때 박상민은 골대를 벗어나 레믹에게 달려들었다.
화아아악!
놈이 레믹을 향해 뛰어들며 바닥을 굴렀고, 동료들이 레믹, 데이빗, 데니의 순서대로 그 둘을 덮쳤다.
정지우는 피식 웃으며 그 모습을 보았다.
이런 극적인 골을 넣으면 코너 플래그 앞에 가서 사진도 좀 찍히고, 카메라에도 얼굴 디밀고 해야 하는데.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
“아! 멋진 놈!”
신준석의 고함이 들렸다.
TV 화면은 골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 주었다.
『전후반 내내 묶여 있던 박상민이 결국 레드 블레이트의 극장골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 상황에서 오른쪽으로 한 번 치고 나간 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박상민 선수! 솔직히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유니온 시티에 간 이후로 부쩍 실력이 늘었습니다! 사실 저 골만 놓고 보면 아스널의 몸값 비싼 선수들과 견주어도 뒤질 이유가 없거든요!』
『레믹의 멋진 어시스트가 있었습니다. 박상민, 레믹에게 고맙다고 저녁이라도 사야겠습니다.』
『상대 팀의 압박을 벗어날 실력까지 갖춘다면 박상민, 한국 축구를 빛낼 선수가 될 겁니다. 골키퍼 정지우, 수비수 신준석, 그리고 공격형 미드필더 박상민까지!』
해설자가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동하는 순간에 화면에서는 다시 뒤에서 잡은 박상민의 슈팅 장면이 나왔다.
몸이 붕 뜬 박상민의 앞으로 공이 날아갔고, 체흐가 몸을 날린 직후에 골 그물이 커다랗게 출렁였다.
이어서 ‘예에에에아아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홈 관중들이 벌떡 일어나 펄쩍펄쩍 뛰는 장면이 화면에 가득 잡혔다.
동료들이 다가와 정지우에게 손을 내밀었다.
“Ji, 굉장한 역습이었어.”
무둔바가 기쁜 얼굴로 팔을 뻗어 정지우의 손을 꽉 잡았다.
중지와 검지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는데 표시 내지는 않았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투욱! 툭! 툭!
내내 앉아 있던 벵거 감독이 터치라인까지 나와 손짓을 할 정도로 아스널은 적극적이었다.
정규 시간이 5분 정도 남았다.
레믹을 제외한 유니온 시티의 모든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를 둘러싸고 골을 지키기 위해 뛰었다.
“헤이! 데니!”
데이빗이 악을 쓰며 앞쪽 라인을 유지했고,
“준석아! 나가! 나가서 막아!”
정지우는 뒤쪽 라인을 지휘했다.
툭! 툭! 툭! 투욱!
빠른 패스를 막기 위해 라파엘이 몸을 던졌고, 스웰던은 아예 들이받다시피 아스널 선수들을 막아섰다.
투우욱!
그래도 아스널이었다.
그렇게 라인을 조율했는데도 외질은 마치 손으로 던진 것처럼 수비수들을 훌쩍 넘기는 패스를 보여 주었다.
와락!
그리고 지루가 곧바로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어엉!
정지우의 왼편 바로 앞에서 날린 슈팅이었다.
확! 터엉!
주저앉으며 쭉 뻗은 정지우의 왼발에 공이 걸렸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공을 잡은 것은 아르테타였다.
정지우가 일어난 직후에,
투욱! 퍼어엉!
스웰던을 제친 아르테타가 다시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보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화아- 악!
정지우는 이를 악물고 높다랗게 몸을 날렸다.
관중들은 정지우가 일어나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슈팅을 날리는 순간에 정지우는 이미 허공에 떠 있었다.
터억! 털썩!
“예에에에에에에-!”
골을 넣은 것만큼이나 관중들이 악을 써 댔다.
몸을 일으킨 정지우에게 동료들이 달려들었고, 빠르게 등을 두드리고는 수비를 위해 뛰어갔다.
시간이 급한 아스널의 코너킥이었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산체스가 곧바로 공을 향해 달려들었다.
퍼어어엉!
공은 골대 저 앞을 지나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 모서리에 떨어졌다.
와락! 퍼어어엉!
떨어지는 공을 지루가 그대로 걷어찼다.
이런 공은 높게 나는 것처럼 보이다가 뚝 떨어진다.
판단이 아니었다. 그냥 몸이 반응한 거였다.
뒤로 눕는 것처럼 몸을 띄운 정지우가 양손 주먹을 쭉 뻗어 내자,
터어어엉!
공이 앞으로 쭉 튀어 나갔다.
와락! 와라락!
양 팀 선수들이 공을 향해 달려들었고,
퍼어엉!
누군가 슈팅을 날렸다.
정지우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와서 공이 제대로 보였다.
“예에에에에에에-!”
관중들이 또다시 귀청이 터져 나갈 정도의 함성을 질러 댔다.
정지우가 공을 끌어안은 채 그라운드에 엎드려 있었기 때문이다.
라파엘과 무둔바가 달려와 정지우의 앞을 막아 주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을 때,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 있는 외질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지친 얼굴로 정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가 시간마저 얼추 끝나 가는 상황이었다.
마음 급한 아스널 선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이런 건 멀리 차 내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콕콕.
오른발로 바닥을 찬 정지우는 앞으로 달려 나가며 기다랗게 공을 찼다.
레믹이 혼자 버텨 봤으나 아스널 선수 두 명을 이기지는 못했다.
공을 따낸 코시엘니가 산티카솔라에게 길게 공을 차 주는 순간에,
삐익! 삐익! 삐이이익!
주심이 기다랗게 휘슬을 불어 경기가 끝났음을 알려 주었다.
“예에에에에에-!”
한 골을 허용한 아스널과의 경기가 겨우 끝났다.
그래도 승점 3점을 건져 낸 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