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75화 (175/262)

제7장.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2)

항의한다고 판정이 달라지는 일은 없다.

데니는 물론이고, 그 순하던 꼼빠니까지 양손을 위로 들고 억울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는데, 주심은 고개를 저어 가며 뒤로 물러났다.

“눈을 제대로 뚫어 줄 테니까 이리 와!”

목청이 유난히 컸던 관중이 분통을 터트렸고,

“선심의 시력부터 검사해!”

앳된 홈 관중의 목소리가 관중석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티라노사우루스가 느닷없이 나타나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주심이 판정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였다.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요리스가 공을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베르통언에게 차 주었다. 잠시 좌우를 살핀 베르통언이 앞쪽에 있는 알리에게 공을 넘겨주는 순간이었다.

화악!

“예에-!”

박상민이었다.

그가 중간을 톡 자르듯이 뛰어들어 알리의 바로 앞에서 공을 가로챘다.

투욱!

빠르게 달려드는 바람에 몸의 중심을 잃은 박상민이 악착같이 공을 밀어 주었다.

『박상민! 토트넘의 진영에서 공을 가로챕니다!』

『이런 게 경험입니다. 박상민 선수! 공이 어디로 흘러갈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길목을 잘랐어요!』

느닷없이 중앙선 진영에서 숨통이 확 트였고, 그만큼 유니온 시티는 활력을 얻었다.

토트넘은 휘청거렸다.

이럴 때 결정적인 한 방을 꽂아 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승부가 갈린다.

데니가 공을 몰고 올라가다가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 있던 박상민에게 다시 공을 빼 주었다.

투우욱!

“예에-!”

이건 뭐, 박상민이 공을 찰 때마다 함성이 터져 나온다.

토트넘의 수비수들이 데니가 있는 오른쪽으로 몰려 있는 틈을 이용해 박상민은 왼쪽에 있는 꼼빠니에게 공을 찔러 주었다. 완벽하게 비어 있는 곳을 찌르는 멋진 패스였다.

승부를 걸어야 할 시기였다.

정지우는 힐끔 돌아보는 라파엘에게 양손을 벌려서 앞으로 밀어 주었다.

포백 자리의 왼쪽 스웰던과 오른쪽의 신준석이 중앙선을 넘어서는 곳까지 밀고 올라갔고, 라파엘과 무둔바가 중앙선을 밟다시피 상대 진영 쪽에 자리 잡았다.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토트넘의 선수들이 모조리 페널티 에어리어에 몰려 있는 상황인 거다. 그들이 급하게 걷어 낸 공을 먼저 잡으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꼼빠니는 슬슬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로 공을 몰고 들어갔다. 워커가 자세를 잔뜩 낮춘 채 그의 앞을 막으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달려들었다가 뚫릴 것을 염려한 모양이었다.

뎀벨레가 워커를 돕기 위해 꼼빠니에게 다가갈 때였다.

투우욱!

꼼빠니가 어느새 페널티 에어리어 왼편으로 옮겨 와 있던 박상민에게 공을 길게 빼 주었다.

투욱!

공을 잡은 박상민은 데니를 보며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비수들이 골대 앞으로 달려드는 데니에게 쏠리는 순간이었다. 왼편에는 레믹이 양손을 들어 공을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퍼어어엉!

그런데 박상민이 느닷없이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순식간에 공이 골대로 향해서 관중들이 엉덩이를 뗄 틈도 없었다.

화아악!

요리스가 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어림없었다.

골인 줄 알았다.

터어어어엉!

그러나 크로스바 오른쪽 끝을 통렬하게 때린 공이 바로 앞 그라운드에 튕긴 후에 높다랗게 떠올랐다.

흥분했던 마틴이 멋쩍은 표정으로 벤치를 돌아볼 정도로 기습적인 슈팅이었는데, 정지우가 보기에도 아쉽기 그지없는 장면이었다.

데니가 달려들었지만, 토트넘의 수비수 데이비스가 한발 빨랐다.

퍼엉!

그가 급하게 걷어 낸 공이 골라인 바깥으로 높다랗게 떠서 빠져나갔다.

『박상민! 정말 아쉽습니다!』

『유니온 시티! 오늘 골 운이 따르지 않네요! 발등에 제대로 걸렸거든요! 박상민 선수! 완전히 물이 올랐네요!』

『박상민이 두세 명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 전까지 오른쪽에서 뛰던 박상민이 어느새 왼쪽으로 와서 공을 받고 다시 슈팅까지 날립니다.』

『경기장을 보는 시각이 굉장히 넓어졌어요! 축구 지능이 대단한 선수네요! 보세요!』

느린 그림으로 박상민이 꼼빠니에게 패스해 주고, 다시 달려가서 공을 받는 장면이 화면에 이어지고 있었다.

『수비수들이 레믹과 데니에게 몰린 틈을 파고들어서 저 자리를 차지했어요. 4-2-3-1에서 최전방 공격수 레믹의 바로 뒷자리예요. 맥슨이 부족했던 점이 무엇이었는지를 박상민! 제대로 보여 주네요.』

토트넘의 선수 교체가 있어서 경기가 잠시 중단되어 있었고, 그사이 박상민의 슈팅 장면이 반복해서 화면에 올라오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하늘을 바라보는 박상민이었다.

아쉬움과 허탈함을 털어 내는 것처럼 입으로 숨을 뱉어 내는 박상민이 화면 가득 나왔다.

‘그 집 아들이 축구 선수라고 안 혔소?’

‘예.’

‘어디 선수요?’

‘지금은 잠깐 직장 다녀요.’

‘축구 선수라믄 축구를 해야 않것소? 그랑께 그거시 인자는 축구를 안 하는 감네. 암! 소질이 없음사 그렇게라도 혀야 혀겠제! 그라고 요즘은 운동시킬라도 다 돈이 있어야 한다드마!’

화면 가득 담겨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면서 박상민의 모친은 이제 정말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앵커와 해설자는 연속해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실력을 칭찬하고 있었다.

‘절대 은혜 잊어버리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알았지? 아버지랑 엄마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감독님을 아버지처럼 어렵게 따르고 모셔. 상민아, 우린 못 배워서 널 제대로 못 가르쳐. 그게 너한테 제일 미안해.’

입을 쭈뼛거리는 모친을 보며 박상민의 부친은 공연히 주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껏 밥주발에 떠 놓았던 물이 오늘도 수도꼭지 옆에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이 몸뚱이를 다치지만 않았으면, 마누라를 보내서 저놈 경기 나가기 전에 따뜻한 밥이라도 먹일 건데. 오늘 같은 날은 잘했다고 대신 등이라도 다독이게 했을 텐데.

‘애비가 미안타.’

박상민의 부친은 잊지 않고 제자를 거둬 준 박용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기회를 만들어 준 정지우의 모습도.

됐다. 이렇게 살지만, 평생 남에게 나쁜 짓 않고 살아서 아들 박상민에게 이런 기회가 생긴 걸 거다.

『토트넘이 19번 뎀벨레를 빼고 28번 캐롤을 넣었습니다.』

『박상민 선수를 마크할 선수가 필요하거든요. 중앙에 새로 들어간 알리가 아무래도 제 몫을 못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우선 꼼빠니를 묶어서 박상민이 활약할 공간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보입니다.』

선수 교체가 끝났고, 유니온 시티의 코너킥으로 경기가 이어졌다. 카알이 코너에서 오른손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며 공을 향해 움직였다.

퍼어엉!

공은 골대 앞에 뒤엉켰던 선수들을 지나쳤다.

반대편에서 꼼빠니가 공을 잡아 뒤로 빼 주었다.

『꼼빠니, 데이빗에게 공을 빼 줍니다!』

『지금 토트넘의 페널티 에어리어에 골키퍼까지 9명이나 들어가 있거든요. 잘한 선택이에요. 급하게 몰아치는 것보다는 선수들을 조금 끌어낼 필요가 있어요.』

『데이빗, 카알에게, 카알, 신준석에게 공을 돌려줍니다.』

공을 받은 신준석이 다시 무둔바에게 넘겼다.

투욱!

무둔바가 라파엘에게 공을 돌리고 있었는데, 뒤로 뺐다고는 해도 중앙선 부근이었다.

다이어와 알리, 그리고 새로 들어온 캐롤이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왔다.

투우우욱!

라파엘은 아예 정지우를 향해 공을 길게 차 주었다.

젊은 피에 새로 교체해 들어온 알리와 캐롤이 100미터 선수처럼 정지우를 향해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투욱!

이런 거 시간 끌 정지우가 아니었다.

바로 스웰던을 향해 공을 돌려주었다.

투우욱!

스웰던은 중앙선과 토트넘 페널티 에어리어 중간에 서 있는 박상민에게 공을 찔러 주었다.

콰아악! 삐이이익!

알데르베이렐드가 박상민의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집어넣고는 밀어 버리는 바람에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박상민이 일어서는 동안, 알데르베이렐드는 뒷걸음질로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걸었다.

정규 시간을 10분쯤 남겨 놓은 때였다.

박상민이 앞으로 걸었고, 카알이 달려가 차기 좋은 자리에 공을 놓았다.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 양 팀 선수들이 뒤엉켜 카알이 날려 줄 공에 대비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일방적인 경기에 홈 관중들이 골이 터지기를 바라는 응원을 퍼부었고, 토트넘의 원정 관중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팔짱 낀 채 경기를 지켜보았다.

퍼어어엉!

카알이 공을 차는 순간에 수비수들을 뿌리치며 유니온 선수들이 골대로 달려들었다.

휘이익!

몇몇 선수들이 솟구쳤는데 공은 레믹의 머리에 맞았다.

『레믹 헤더! 요리스가 쳐 냅니다! 흘러나온 공! 데니! 한 명 제친 데니! 슈웃!』

골대 앞에 토트넘 선수들이 쭉 늘어서다시피 있었다.

터억!

데니의 슈팅이 알데르베이렐드의 발에 맞고 튀어나왔다.

흘러나온 공을 다시 박상민이 왼쪽으로 보내 주었고, 레믹이 옆으로 쓰러지며 오른쪽 골포스트를 향해 슈팅을 날렸다.

터어엉!

『또다시 골대가 한 골을 막아 냅니다! 토트넘의 수비수, 데이비스 공을 멀리 차 냅니다!』

『이건! 정말 유니온 시티가 오늘 골 운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지금도 박상민 선수가 기가 막히게 찔러 주었고, 레믹의 슈팅도 나무랄 데가 없었거든요. 역동작인데도 반대편 골대를 노렸어요!』

『골키퍼 요리스가 꼼짝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공이 골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왔습니다! 토트넘! 골대에 주급을 지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틴이 허탈하게 웃으며 넥타이를 쓸어내렸다.

유니온 시티의 코너킥 기회였다.

이런 경기를 나무랄 감독이나 벤치가 어디 있겠나.

이 좋은 리듬에서 공연히 잘게 썰어서 패스한 뒤에 분명하게 넣으라고 했다간 선수들의 흐름만 바꾼다.

괜찮다. 지금같이 골대를 맞힌 건 정말이지 운이 없었던 거니까, 이대로 경기를 진행해도 문제 될 것 없다.

그나저나 박상민이 저 정도였었나?

마틴은 슬쩍 박용근을 보았다.

이거, 아무래도 박상민까지 좀 챙겨야 하게 생겼다.

카알이 오른쪽에 있는 데니에게 공을 짧게 주었다.

데니는 공을 그대로 골대 앞으로 길게 날렸다.

데이빗이 다이어를 뿌리치며 앞으로 달려들었고, 레믹이 데이빗의 뒤에서 기회를 엿보았다.

화아악!

그때 생각지도 못했던 꼼빠니가 불쑥 뛰어올랐다.

『꼼빠니! 공을 흘려줍니다! 박상민! 한 명 제친 박상민!』

“예에에에-!”

박상민이 오른쪽 골대 앞으로 공을 툭 찔러 주었다.

알리와 샤들리 사이를 파고드는 멋진 패스였다.

퍼어엉!

데니가 달려드는 동작 그대로 골키퍼 요리스와 골대 사이로 강력한 슈팅을 날렸다.

터억! 터어어엉!

요리스의 왼손에 맞은 공이 다시 골포스트를 맞고 뒤로 흘러 나갔다.

“우-!”

『요리스와 골대의 선방이 이어집니다! 반대편에 있던 레믹이 공을 주지 않았다고 양손을 들어 보입니다.』

『나쁘지 않았어요! 각이 좀 부족하긴 했지만, 레믹에게 공을 보냈다가는 요리스 골키퍼의 손에 걸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박상민! 오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만, 교체 들어와서 완벽하게 유니온 시티를 살려 냅니다.』

『그렇죠! 저렇게 분위기를 바꿔 줄 수 있는 선수라면 벤치는 언제나 기대하게 되죠! 오늘 박상민! 유니온 시티가 왜 자신을 스카우트했는지 완벽하게 증명하고 있어요!』

또다시 유니온 시티의 코너킥이었다.

카알이 짧게 차서 데니에게 연결해 주었고, 공은 다시 페널티 에어리어를 스치듯 넘어가 박상민에게 연결되었다.

“와아-!”

박상민이 공을 잡자 단박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홈 관중들도 그가 무언가를 해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툭!

미칠 일이다.

공을 잡은 박상민이 등 뒤에 알데르베이렐드를 붙인 채로 오른발 발뒤꿈치로 툭 공을 찔러 넣은 거였다.

“예에에-!”

불쑥 레믹이 튀어나오자 관중석은 완전히 미쳐 날뛰는 분위기였다.

오프사이드 라인을 만들기 위해 라인을 올렸던 그 뒤로 공이 들어갔고, 레믹이 불쑥 나오는 바람에 골키퍼와 레믹이 마주 서 있었다.

삐이이이익!

그리고 거짓말처럼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고개를 돌린 곳에서 선심이 또다시 깃발을 어깨높이로 들고, 근엄한 얼굴로 레믹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우-!”

“무슨 짓이야! 어떻게 그게 오프사이드라는 거야!”

“눈으로 보라고! 눈으로! 코나 입으로 경기를 보지 말고!”

관중석에서 대번에 거친 항의가 쏟아져 나왔고, 마틴이 대기심에게 격렬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주심과 부심 역시 분명하게 경기의 일원이고, 판정 또한 플레이의 일부라고 인정해야 한다.

레믹이 공을 밟은 채로 서서 선심을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박상민이 달려가 레믹의 목을 끌어안고 중앙선으로 몸을 돌렸다.

『레믹이 박상민 선수를 보고 웃습니다.』

『오늘 기회를 정말 많이 줬거든요. 저렇게 되면 동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지요!』

박상민이 레믹의 뒤통수를 툭 치면서 걸어 나오는 장면이 화면에 커다랗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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