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74화 (174/262)

제7장. 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1)

스웰던이 스로인을 하며 경기가 시작되었다.

토트넘은 뒤를 뚫린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 앞까지 5명의 미드필더가 모두 내려섰다.

이럴 때 무리하면 토트넘에게 역습 기회를 줄 수 있는 거다.

투욱!

왼편에서 공을 받은 꼼빠니가 오른편 뒤에 있던 데이빗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데이빗이 카알, 카알이 데니, 데니가 오히려 길게 뒤로 빼서 신준석에게 공을 돌리며 시간을 끌었다.

『전반을 이렇게 마치려는 걸까요?』

『토트넘이 수비 라인을 제대로 세웠거든요, 무리하다가 역습을 당하느니 유니온 시티도 충분히 전열을 가다듬겠다는 의도로 보이네요. 좋아요! 리듬을 잘 조절하고 있어요.』

마틴은 팔짱을 낀 자세로 테크니컬 에어리어에 서 있었다.

멋지다! 훌륭하다!

마치 능숙한 댄서가 춤을 추는 것처럼 강약을 환상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거였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말이다.

빼앗겼던 리듬을 찾아온 것은 정지우였다.

결정적인 기회를 두 번이나 날린 레믹이 마지막에 바라보았던 동료도 정지우였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으로 팀 전체의 리듬을 유지시킨 것 역시 정지우였다.

저런 선수를 하마터면 6개월 임대가 끝난 뒤에 돌려보낼 뻔했다. 그때를 생각하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마틴은 고개를 돌려 릴리의 커다란 걸개를 슬쩍 보았다.

행운의 마스코트!

저 어린 아가씨가 정지우를 깨우고, 유니온 시티에 정지우라는 괴물 골키퍼를 선물해 주었다.

마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지우를 살폈다.

“데이빗!”

그는 주장을 불러 라인 전체를 조절하고 있었다.

이기면 승점 3점, 비기면 1점, 지면 꽝.

두 게임 이기고, 네 게임을 지면 승점 6점이다. 그리고 여섯 게임을 내리 비겨도 승점은 역시 6점을 얻는다.

같은 것 같지만, 두 상황이 주는 결과는 완전히 다르다.

여섯 경기를 비기면 상대 팀이 가져가는 승점 역시 6점이 되는데, 반대로 두 경기 이기고 네 경기를 지게 되면 빼앗긴 승점이 12점이 되는 거다.

복잡할 것 없다.

상대 팀에게 승점을 적게 주는 것이 유니온 시티가 순위를 유지하는데 유리하다는 것만 기억하면 된다.

정지우의 무실점 선방이 얼마나 팀에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자는 뜻이다.

무실점은 패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지우가 38라운드 전 경기를 무실점하면 기본적으로 얻는 승점이 38점. 느낌이 잘 안 올 텐데, 38점이면 어지간해서는 강등권을 벗어난다고 이해하면 좀 쉽다.

강등을 벗어나는 거다!

이번에 승격된 유니온 시티가, 그것도 정지우 혼자 힘으로.

이보다 더 든든한 버팀목이 어디 있겠나.

선수들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거기에 으스대거나 잘난 척하지 않는 정지우의 모습에 그를 점점 더 신뢰하고 따른다.

그렇게 얻어진 결과가 3라운드까지 프리미어리그 선두다.

전 세계 스포츠 매체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성적.

마틴은 좀 더 냉정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오늘 유니온 시티는 분명 한 걸음 더 발전한 모습이었다.

기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박용근과 정지우가 이 팀에 남아 있지 않을 상황이.

이미 프리미어 상위 팀에서 두 사람을 탐내고, 세계 4대 리그의 유명한 팀들이 다시금 돈을 준비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쥬피터 회장이 자다가 벌떡 일어날 금액이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전반이 끝났다.

정지우가 동료들과 함께 라커룸으로 향할 때,

“Ji! 레믹의 뒤통수를 한 방 갈겨 줘!”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관중의 요청이 들려왔고, 그 소리에 주변의 모두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레믹을 미워하는 게 아냐! 그가 골을 넣는 걸 보고 싶을 뿐이야!”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엄청난 고함을 지를 수 있지?

고개를 들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 얼굴을 익히는 건 별로 좋을 게 없다.

대신 정지우는 기분 좋게 웃는 얼굴로 통로로 들어섰다.

TV 화면에 전반의 하이라이트가 나왔다.

당연하게 레믹과 정지우의 활약이 빠질 수가 없었다.

신준석이 길게 공을 날리는 장면도 두 번이나 보여 주었다.

박상민의 부친과 모친은 오늘도 거실의 TV 앞에 앉아서 유니온 시티 경기를 지켜보았다.

아들 박상민은 주로 교체로 나온다.

광고가 끝나고 후반 25분이 지날 때가 교체 타이밍이다.

나와서 활약하는 거? 골을 넣는 거?

아니, 그런 걸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아들이 경기장을 누비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 외에 더 바라는 거 없다.

박상민의 모친은 옆에 앉은 남편을 슬쩍 보았다.

간혹 벤치를 보여 주는 그 짧은 틈에 박상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갈 때면 남편의 고개가 움찔하면서 TV를 향한다.

“물 떠 놨어?”

“물 가져다드려요?”

“아니. 흠! 거, 상민이 잘되라고 떠 놓는 물 있잖아.”

어지간히 아들이 보고 싶기는 한가 보다.

“그런 거 하지 말라면서요.”

“그냥 물어본 거야. 그리고 거, 엄마의 정성이면 뭐, 상관없는 거지.”

박상민이 나왔으면 싶었다.

큰 실수하지 않고, 다치지 말고, 원하는 축구 마음껏 하는 아들 모습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후반전을 위해 통로를 나온 정지우는 곧바로 골대로 걸어가 양쪽 골포스트를 발로 한 번씩 확인한 뒤에 중앙으로 움직여서 높다랗게 뛰었다.

“예에에에에에-!”

개그 프로에 나오는 익숙한 유행어 느낌의 함성이지만, 지금 주는 홈 관중들의 함성이 동료들을 일깨운다.

선수 교체는 없었다.

삐이익!

양쪽을 돌아본 주심이 휘슬을 부는 것으로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토트넘 선수들은 자기 진영에서 빠르게 공을 주고받았다.

저러다가 한 방에 훅 달려든다.

강하다. 빠르다. 그리고 저돌적이다.

그러나 세기 조절이 부족한 것만은 분명했다.

레믹이 한 골만 성공시켰어도 토트넘의 멱살을 움켜쥔 것처럼 경기를 진행했을 텐데, 그게 좀 아쉬웠다.

투우욱!

라멜라가 다이어에게 공을 차 준 직후였다.

레믹과 꼼빠니가 동시에 달려들었고, 그렇게 매달린 덕분에 흘러나온 공을 맥슨이 얻어 냈다.

투우욱!

맥슨이 오늘 가장 활발하게 뛰는 데니에게 공을 주었고,

툭!

데니가 짧게 미는 것처럼 토트넘의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으로 공을 찔러 주었다.

삐이이익!

레믹이 달려들 때 주심이 휘슬을 들었고, 선심이 높다랗게 들었던 기를 어깨높이로 들었다.

레믹의 오프사이드 파울이었다.

수비수보다 더 골대 앞쪽에 있었다는 판정인데, 당사자인 레믹은 선심을 향해 검지를 와이퍼처럼 움직이며 ‘이건 아니다.’라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후반은 토트넘도 무리하지 않았다.

중앙선 바로 아래쪽에 5명의 미드필더들이 한 줄로 서서 라인을 지키며 기회를 엿보았다.

20분쯤, 상대의 페널티 에어리어로 번갈아 오가기는 했는데 골대를 향해 날아드는 결정적인 슈팅은 없었다.

유니온보다는 토트넘이 갑갑해하는 경기가 계속되었다.

퍼어어엉!

기회를 노린 것처럼 케인이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에서 중거리 슛을 날렸는데, 워낙 휘어 나가는 바람에 멋진 구경만 했다.

정지우가 공을 받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였다.

삐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선수 교체가 있습니다.』

『토트넘이 먼저 선수를 바꾸네요. 11번 라멜라를 빼고 20번이네요. 델리 알리 선수를 넣습니다.』

『역시 젊은 선수죠?』

『1996년생입니다. 확실히 올해 토트넘은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스쿼드를 구성하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라멜라의 자리로 들어가는 걸 보면 포메이션 변화는 없을 것 같네요.』

교체가 끝나고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정지우가 신준석에게 공을 굴려 주었고, 그 공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데니, 맥슨에게 천천히 이어졌다.

투우욱!

맥슨에게서 공을 받은 카알이 데니에게 다시 차 주었다.

데니는 공을 슬슬 밀고 토트넘의 진영을 향해 움직였다.

『카알에게서 공을 받은 데니! 툭툭 치면서 토트넘의 진영을 파고드는 데니!』

『오늘 샤들리 선수는 정말 힘들겠습니다.』

『데니! 뒤쪽으로! 신준석! 공을 잡아서! 정지우에게 패스!』

정지우는 받은 공을 바로 라파엘에게 넘겨주었다.

『무리하지 않는 유니온 시티! 라파엘, 카알에게!』

『후반은 완벽하게 유니온 시티의 리듬이네요! 토트넘은 빠른 리듬을 선호하는데 이렇게 되면 틈을 파고들기가 어렵죠.』

『공은 다시 데니에게! 데니! 또 앞으로 밀고 나갑니다!』

『메이슨이 샤들리를 좀 도와줘야 하는데요! 저렇게 데니를 계속 자유롭게 두면 오른쪽에서 힘들어지거든요. 오늘 데니 선수, 정말 많이 뜁니다. 지쳤을 만도 한데요.』

『박상민 선수와 교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데니가 맡은 오른쪽에 자원이 많아서요. 70분쯤이 마틴 감독의 교체 타이밍이니까 한번 지켜볼 만은 하죠.』

토트넘이 달려들었다가 물러나는 바람에 공간이 열리지 않았다. 앞에 있었던 두 경기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다급한 쪽은 아무래도 토트넘이었다. 그러니 유니온 시티는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저들이 빈틈을 보이길 기다리는 작전을 유지했다.

와락!

샤들리와 메이슨이 달려드는 바람에 공이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갔다.

삐이익!

그리고 주심이 다시 휘슬을 불었다.

『유니온 시티의 선수 교체입니다! 대한민국의 박상민 선수가 들어옵니다!』

『맥슨과 교체네요. 오늘 활약이 좀 아쉽기는 했는데, 그렇더라도 데니와 바꿔 주는 게 어떨까 싶었는데요.』

『박상민, 감독에게서 지시를 듣고 있습니다.』

터치라인에 선 박상민이 고개를 숙이고, 마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영어가 통하는 거 같지만, 저럴 때는 대부분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 봐!’ 하는 격려성 말이 전부다. 실제로 작전 지시는 벤치를 나서기 전에 통역을 통해 듣기 때문이었다.

짝짝짝짝짝짝짝짝!

홈 관중들이 전부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는 맥슨을 격려했다.

맥슨이 내밀고 있는 박상민의 양손을 내려치고 그라운드를 빠져나오자, 마틴이 그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박상민이 빠르게 뛰어들어 맥슨의 자리에 섰다.

화면 가득 새로 들어온 박상민의 얼굴이 나왔다.

모친은 곱은 손을 움켜쥐었다.

다치지 말고.

감독님 말씀 잘 듣고.

아들 박상민은 터치라인에서 공을 던지는 신준석의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정지우가 손을 입에 둥그렇게 대고 뭐라고 악을 쓰는 게 잠시 화면에 잡혔다.

‘고맙다, 지우야. 이 은혜, 죽어서도 잊지 않으마.’

사람이 고마움을 잊으면 결국 자식에게도 좋을 게 없는 거다.

휘이익!

신준석이 공을 던져 주었다.

최근 축구에서는 밀착 마크가 워낙 심해서, 대개 스로인을 받으면 바로 던진 선수에게 다시 패스해 준다. 그래서 다들 박상민이 신준석에게 공을 차 줄 줄 알았다.

턱! 휘익!

그런데 날아온 공을 발로 밟는 것처럼 움직인 박상민이 발 안쪽으로 툭 건드렸다.

놀라운 동작이었다.

오른발로 공을 굴려서, 왼발의 뒤로 빼냈다.

다들 공이 신준석에게 갈 거라고 생각해서 시선을 빼앗겼고, 박상민을 따라붙었던 알리까지 멍해 있을 정도로 예상하지 못했던 플레이였다.

힘과 타고난 통뼈를 이용해 몸싸움 위주로 경기를 풀어 가는 박상민이라 더 그랬다.

박상민은 그대로 토트넘의 골대를 향해 치고 달렸다.

“예에-!”

왼편으로 레믹과 꼼빠니가, 오른쪽에서 데니와 카알이 함께 달리고 있었다.

『수비 다섯! 공격 다섯! 박상민! 첫 번째 터치로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를 파고듭니다!』

지루하던 경기에 불을 확 지르는 플레이였다.

박상민은 있는 힘을 다해 페널티 에어리어를 넘어섰다.

뒤를 쫓던 케인과 알리가 죽을힘을 다해 그의 뒤에 거의 붙은 직후였다.

『박상민! 수비수 둘을 앞에 두고! 박상민!』

박상민이 슈팅을 날리려는 것처럼 걸음을 조절하는 순간이었다.

콰아악!

베르통언이 발을 낮추고 태클을 날렸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파울을 해서라도 박상민을 막겠다는 의도처럼 보였다.

투욱!

“예에에-!”

관중들이 세 번째로 엉덩이를 떼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벤치의 스태프와 선수들이 뛰쳐나왔으며, 마틴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

베르통언의 태클보다 정말이지 한 뼘 빠르게 박상민이 공을 찔러 준 거였다.

와라락!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레믹이 달려들었다.

퍼어어어엉! 화아아악!

토트넘의 골키퍼 요리스가 몸을 날렸지만,

철렁!

골 그물이 요란하게 출렁였다.

“예에에에에에에-!”

홈 관중들이 미친 사람들처럼 날뛸 때였다.

삐이이이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고, 선심이 또다시 어깨높이로 기를 들었다.

양 손바닥을 가슴 앞으로 모은 레믹이 억울함을 온 얼굴에 담은 채로 주심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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