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136화 (136/262)

제1장.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1)

아직 경기를 한참 앞둔 시간이었다.

Blue is the colour, football is the game

We're all together, and winning is our aim

So cheer us on through the sun and rain

Cause Chelsea, Chelsea is our name

첼시의 팬들이 ‘Blue is the colour’란 응원가를 박수와 함께 부르고 있어서, 웸블리의 그라운드에서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은 정지우는 동료들과 함께 그라운드로 나섰다.

“첼시!”

짝짝짝!

“첼시!”

짝짝짝!

응원가를 끝낸 첼시의 관중들이 팀 이름을 외친 후, 짧고 강렬한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했다.

그나마 FA컵 결승에서 웸블리를 경험했던 동료들은 여유를 보였는데, 정지우의 동기 3명은 아직 긴장을 털어 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정지우가 그라운드에 세워 놓은 원판 사이에서 몸을 풀고 있을 때였다.

“유니온 시티는 지는 경기가 없지! 세상에서 제일 강하지!”

비틀스의 ‘오블라디 오블라다’란 곡에 가사를 붙인 응원가가 유니온 시티 응원단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처음 듣는 응원가였다.

주장인 데이빗이 관중석을 돌아보는 것으로 봐서 휴식기 동안 만든 모양이었다.

“오늘 승리하는 팀은 유니온 시티! 이건 절대 변하지 않지!”

분명 처음 듣는 응원가인데도 친숙하게 다가왔다.

“유니온! 유니온! 유니온 시티! 세상에서 제일 강한 팀!”

응원가는 거기에서 끝났다.

그래서 정지우가 얀센과 공을 주고받을 때는,

“오오- 오! 오오- 오!”

관중들이 함성과 함께 자리에서 뛰며 유니온 시티 선수들을 응원해 주었다.

양 팀이 한 번씩 불렀다고 해서 조용해진다면 영국 리그가 아닌 거다.

다시 첼시의 응원단이 독일의 민요 느낌이 나는 ‘Blue Flag’를 불러 댔는데, 응원가가 반복될수록 흥분이 고조되는 느낌이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났다.

몸을 푼 정지우는 얀센과 함께 통로를 향해 걸었다.

중앙선 건너편 진영에 있던 첼시 선수들 역시 중앙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첼시 선수들의 첫 느낌은 ‘강하다!’였다.

그들이 가진 여유가 더욱 그렇게 보이게 했는지 모른다.

브라질 국가대표와 저 팀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

국가 대항전과 클럽 대항전을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어쩐지 첼시가 좀 더 강하게 느껴졌다.

“후!”

정지우는 짧게 숨을 뱉어 내며 첼시 선수들에게서 느낀 감정을 털어 냈다.

어차피 축구는 득점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아무리 기록상으로 뛰어난 팀이라도 골을 먹으면 지는 거고, 시쳇말로 승리한 팀이 강한 팀이 되는 경기인 거다.

지난 시즌, 유니온 시티 역시 엄청난 팀들과 겨뤄 FA컵 우승을 이뤄 냈고, 프리미어리그에 승격했으니 공연히 주눅 들 이유는 없었다.

이긴다. 이긴다는 생각만 한다.

비록 오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지 못해 지켜보기만 하겠지만, 리그에서는 저 팀을 상대로 무실점을 이뤄 낼 거다.

정지우는 통로를 향해 걸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

저들이라고 해서 무패나 전승으로 우승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만 생각했다.

라커룸에 들어온 정지우는 옷을 갈아입고, 가벼운 운동복을 덧입었다.

서브 선수들이 먼저 벤치로 나갈 시간이었다.

정지우는 서브 선수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옆에 있던 얀센이 긴장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정지우는 그가 내민 손을 꽉 잡고서 오른쪽 가슴을 부딪쳤다.

“멋진 선방을 기대할게. 가족들과 우리 관중들에게 오래 기억될 경기를 보여 줘.”

“고마워, Ji!”

이어서 문으로 움직이며 데이빗, 카알, 레믹과 손을 마주쳤고, 가장 바깥쪽에 앉아 있던 스웰던과도 손을 맞잡았다.

달칵.

“첼시!”

짝짝짝!

“첼시!”

짝짝짝!

문을 열자 라커룸 앞을 기웃대던 응원 구호가 단박에 달려들었다.

자그락, 자그락.

“지우야! 잠깐만!”

그렇게 그라운드 쪽으로 걷기 시작했을 때, 느닷없이 박상민이 정지우를 불렀다.

아직 경기 시작 전이라 시간 여유는 충분했다.

그렇더라도 어차피 벤치에 가면 계속 함께 앉아 있게 될 텐데 굳이 통로에서 이야기할 게 뭐가 있을까?

동기 2명과 서브 선수들이 앞서 나간 뒤에서 정지우는 박상민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미안한데, 볼 한 대만 세게 쳐 주라.”

통로에 울리는 응원가 때문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오랫동안 경기에 못 나가서 그런지 긴장이 안 풀려서 그래. 한 대 맞으면 차라리 좀 나을 것 같아서.”

그런데 박상민이 통로를 살핀 후에 다시 건넨 말을 듣고 나자,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알았다.”

답을 들은 박상민이 각오한 것처럼 이를 꽉 깨무는 것이 보였다.

“상민아!”

정지우의 주먹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왼쪽 볼과 눈을 찌푸린 채로 박상민이 볼썽사납게 시선을 돌렸다.

“맞았다고 생각해라. 네가 지금 이런 방법으로 긴장을 이기게 되면 넌 앞으로 경기 때마다 볼을 맞아야 할 거다. 그리고 언젠가 네 앞에 있는 제자가 긴장한 걸 보면 볼을 때리게 될 거고.”

정지우는 박상민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당장은 잘 안 되고 정말 힘들겠지만, 우리도 긴장을 즐기는 법을 익히자. 그래서 다른 경기에서는 웃으며 이런 긴장과 맞서 보자. 우리 감독님께 그렇게 배웠었다.”

입구를 통해 달려온 빛이 정지우의 얼굴과 어깨를 넘어 긴장한 박상민을 분명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넌 옛날보다 더 강해졌구나.”

“사실은 나도 떨려, 인마!”

박상민이 어색하게 웃었다.

“가자!”

어깨에 얹을 것처럼 팔을 뻗은 정지우가 박상민의 뒤통수를 퍽 소리가 나게 때렸다.

“뭐야! 긴장을 즐기라더니!”

“이건 그거와 다른 거야.”

그러고는 좀 더 편안해진 얼굴의 박상민과 함께 그라운드를 향해 걸어갔다.

지겹던 중간 광고가 끝나고 선수들이 통로로 들어서고 있었다.

『양 팀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화면에 그라운드 모양이 먼저 나타났고, 그 위로 첼시의 골키퍼가 돌아서서 뒷짐을 지는 모습이 올라왔다.

『첼시는 오늘 4-2-3-1의 포메이션을 선택했습니다. 먼저 골키퍼 쿠르투아, 수비 라인에 아스필리쿠에타, 케이힐, 존 테리, 이바노비치.』

수비를 맡은 4명의 선수가 차례로 돌아서면서 뒷짐을 지는 장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중앙에 마티치, 하미레스, 그 앞으로 아자르, 파브레가스, 윌리안, 마지막으로 공격수 레미입니다.』

레미가 돌아선 이후로 바로 유니온 시티의 선수 명단이 전술판 같은 그라운드 그림 위로 떠올랐다.

『유니온 시티는 오늘 4-4-2의 포메이션입니다.』

이어서 얀센부터 레믹에 이르기까지 순서대로 설명이 끝났다.

『기대를 모았던 우리 선수들 네 명은 모두 서브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지우 선수를 비롯해 신준석, 박상민, 이정렬 선수가 모두 서브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70분쯤에 있을 교체 타이밍을 기대해 봐야겠습니다.』

해설자가 분명하게 박상민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박상민의 모친이 버릇처럼 거친 손을 비벼 댈 때였다.

양 팀의 벤치를 차례로 비추는 그 순간에 마틴의 뒤에서 정지우와 이야기를 나누는 박상민의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여보! 우리 상민이! 지우 옆에!”

몸이 아파 제대로 거동도 못하던 부친이 소파에 기대 있던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우리 선수들 모습이 보입니다. 정지우와 박상민 선수인데요, 긴장이 굉장할 텐데 상당히 여유 있는 표정이네요.』

『그렇습니다. 보기 좋네요. 오늘 우리 선수들이 교체로 투입되길 바랍니다.』

행사가 모두 끝났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걸어서 첼시 선수들과 악수를 나누었고, 이어서 우렁차게 터져 나오는 응원가를 들으며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섰다.

주심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이후에 좌우를 둘러보았다.

유니온 시티의 선공이었다.

“후! 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떨린다.”

“왜? 뒤통수 한 대 더 맞을래?”

박상민이 고개를 짧게 저으며 뒤를 힐끔 보았다.

신준석과 이정렬의 가족들이 바로 뒤에 있었다.

신준석의 모친은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어깨가 벌써 뻐근했다.

말로는 뭘 모르겠나.

응원이 대단하다는 소리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데 직접 그 한가운데 앉아 있자니 다리가 덜덜 떨려서 당최 어쩔 줄을 모를 지경이었다.

삐이이익!

주심이 커다랗게 휘슬을 분 직후였다.

“이예에-!”

당장 관중석을 뛰쳐나갈 것처럼 관중들이 함성을 질러 댔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아서 신준석의 모친은 시선을 바로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아들에게 주었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다리가 부들거리는데 벤치에 있는 아들은 오죽할까?

그때였다. 박상민을 따라 고개를 돌린 정지우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세상에!’

신준석의 모친은 엉뚱한 외마디를 속으로 떠올렸다.

정지우가 웃어 주었는데, 그 짧은 순간에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잘할 거예요.’ 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운동하더니.

그 와중에도 어머니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챙기던 아이였는데.

왜 그랬을까?

신준석의 모친은 정지우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유니온 시티가 공을 천천히 돌리고 있습니다. 카알이 주장 데이빗에게, 데이빗, 공을 옆으로 돌렸습니다.』

『첼시가 오늘 전방 압박이 대단하네요. 라인을 많이 끌어 올렸어요. 보세요. 유니온 시티 선수들이 공을 앞으로 보내지도 못할뿐더러, 줄 곳도 여의치 않아요.』

『말씀드리는 순간 공을 받은 라파엘, 골키퍼 얀센에게 공을 넘겼습니다.』

“우와- 아!”

첼시의 레미가 악착같이 달려드는 바람에 얀센이 급하게 공을 걷어 냈다.

터치라인을 벗어난 공이 1층 관중석 중간에 떨어졌다.

『위험한 장면이 연출될 뻔했습니다.』

『그렇네요. 유니온 시티는 허리에서 공을 지켜 줄 선수가 필요합니다. 지금 마티치나 하미레스, 그리고 파브레가스가 미드필드에서 굉장히 많이 뛰고 있거든요. 그걸 이겨 낼 필요가 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유니온 시티 힘겹게 경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바노비치가 터치라인에 서서 공을 던져 주었다.

투욱!

그 공을 하미레스가 길게 내차서 유니온 시티의 오른쪽 공간에 떨어트렸다.

“우와아아아-!”

윌리안과 스웰던이 거의 비슷하게 공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윌리안이 확실히 좀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

콰아아악! 콰다당!

스웰던이 거칠게 어깨로 들이받은 다음이었다. 선심이 깃발을 높게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삐이이익!

『첼시, 유니온 시티의 오른쪽에서 파울을 얻어 냈습니다.』

『코너킥보다 훨씬 좋은 자리예요. 레미가 골키퍼를 압박해서 얻어 낸 스로인을 결국 프리킥으로 연결했어요. 오늘 첼시! 분명히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양 팀 선수들이 골대 앞에서 치열하게 자리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얀센이 전에 없이 커다랗게 선수들을 불렀다.

그는 레믹과 데니, 맥슨으로 수비벽을 쌓게 하고, 무둔바와 라파엘에게 원하는 수비를 요구하기도 했다.

스웰던과 아자르가 거칠게 밀고 밀치며 얀센의 앞을 뛰어다녔다.

‘밀어내! 얼른!’

정지우가 보기에 아자르는 일부러 스웰던을 데리고 얀센의 앞을 막아선 거였다.

두 선수가 모두 앞쪽에 있어서 얀센은 그만큼 반경이 좁아져 있었는데, 그 둘을 제대로 밀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이 날카롭게 울렸다.

마티치가 공을 향해 달려든 직후였다. 선수들이 뒤엉켜 골대로 뛰어들었다.

와락! 휘이익!

윌리안, 아자르, 파브레가스 사이에서 무둔바가 공을 향해 높다랗게 뛰었다.

‘나와! 나와서 쳐 내!’

정지우가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무둔바의 머리를 스친 공이 윌리안의 머리에 정확하게 걸렸다.

터어엉!

공은 눈으로 좇기도 어려울 정도로 골대로 날아갔고,

티잉!

크로스바를 정면으로 때리고 위로 높게 솟구쳤다.

『오오- 우!』

『윌리안의 헤더! 유니온 시티의 골망이 아니라 골대를 커다랗게 흔들었습니다! 공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슈웃! 슛!』

골대 앞에 떨어진 공을 파브레가스와 하미레스가 연달아 골대로 날렸으나, 라파엘과 몸을 던진 무둔바를 맞고 튀어나왔다.

『무둔바! 등으로 한 골을 지켜 냅니다!』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으로 나온 공을 마티치가 빠르게 달려들어 옆으로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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