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잘할 거지? (3)
스웰던의 발에 걸려 넘어진 것은 맞지만, 정지우가 보기에는 정말이지 달려들다가 발이 엉킨 거였다.
그런데도 페널티킥 위치를 가리킨 주심은 스웰던을 부르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정지우는 빠르게 움직여 주심의 앞을 막았다.
“선심에게 물어보죠! 의도적인 게 아니었잖습니까!”
시선이 마주친 직후였다.
주심은 정지우에게 비키라는 의미로 손을 들어 옆으로 밀어냈다.
‘퇴장이구나!’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파울이라 페널티킥은 당연한 일이고, 골키퍼와의 일대일의 찬스를 파울로 막았으니 규정대로라면 퇴장은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의도적인 게 아닌 파울이라면 퇴장까지는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게다가 당장 10명으로 싸우기는 버겁다.
정지우는 어떡해서든 퇴장만은 막으려고 애썼다.
상황을 충분히 짐작하는 주장 데이빗이 곧바로 달려왔고, 카알과 꼼빠니까지 와서 주심을 막았다.
“의도적이 아닌 것만은 인정해 줘야죠!”
정지우는 몸을 돌리려 움직이려는 주심의 앞을 또다시 막아섰다.
여차하면 옐로카드를 받을 각오였다.
그렇게 해서 뭔가 미안해진 주심이 스웰던에게도 옐로카드를 꺼낼 수 있었으면 싶었다.
“이제 그만하고 물러나!”
주심이 단호한 음성으로 정지우에게 경고했다.
“뛰어들다가 다리가 엉켰다니까요!”
“왜 이래? 이렇게까지 항의하면 나도 더는 넘어가지 못해.”
주심은 바지에 손을 넣은 채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꺼내려면 빨리 꺼내라.
그래서 내게 옐로카드를 주고, 대신 스웰던에게도 레드카드가 아니라 옐로카드로 끝내 주라.
“페널티킥도 받아들이잖습니까? 그런데도 경고는 좀 심하잖아요!”
정지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삑! 삑!
정지우를 상대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시선을 피한 주심이 휘슬을 불며 스웰던을 불렀다.
그리고 말릴 틈도 없이 레드카드를 번쩍 들었다.
“우와아아아-!”
“우우우-!”
9만 명의 관중들이다.
그들이 둘로 나뉘어 리버풀 관중들은 함성을, 유니온 시티 관중들은 야유를 퍼부어 댔다.
마틴이 그라운드 바깥에서 손을 들어 가며 항의하고 있었지만, 이미 상황은 끝나 있었다.
터덜터덜.
스웰던이 불만 가득한 태도로 그라운드를 걸어 나가 선수 전용 터널로 빠져나갔다.
이미 전반 정규 시간은 끝나 있어서, 대기심이 ‘5’라고 찍힌 보드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추가 시간이 5분임을 알려 주었다.
“리버- 풀! 리버- 풀! 리- 버풀!”
엄청난 응원가였다.
당연히 골을 기대하는 상황이어서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리버풀의 응원가가 웸블리를 가득 메웠다.
“후-!”
정지우는 독이 바짝 오른 얼굴로 오른쪽 골포스트에서 시작해 반대쪽으로 걸은 다음, 중간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고는 크로스바를 향해 점프했다.
터억!
“이예에에에-!”
정지우의 행동을 아는 유니온 시티 관중들이 환호했지만,
“리버- 풀! 리버- 풀! 리- 버풀!”
아무래도 페널티킥을 앞두고 있어서 함성이 작았던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리버풀의 응원가가 유니온 시티 관중들의 함성을 꿀꺽 삼켜 버렸다.
짝짝짝짝짝짝짝!
“하하하하하!”
조동익은 가슴 높이에 두 손을 올리고 느긋하게 손뼉을 쳤다.
월드컵 대표팀은 조금 전 0 대 0으로 전반을 마쳤다.
어쩐지 끈적끈적하게 말려들어 가는 느낌이긴 했는데, 비록 유효 슈팅은 하나밖에 없을지라도 슈팅은 5개나 날렸다.
이제 후반이면 분명 승리를 거머쥘 거다.
꼴좋게 됐다.
FA컵 결승이랍시고 설치더니 수비수 한 명은 퇴장당했고, 정지우는 페널티킥을 막기 위해 골대 앞에 서 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후련할 수가 있을까.
“교활한 놈!”
주심의 앞을 가리며 온갖 수를 다 썼지만, 현명한 주심은 그것에 속지 않았다.
유니온 시티는 아무래도 리버풀보다는 한 수 아래다.
이 페널티킥을 끝으로 축구 팬들의 관심이 다시 쿠웨이트전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니, 숲 한가운데 앉은 것처럼 들이마신 숨이 청량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릴리는 상체를 돌려 엄마인 메기의 가슴을 끌어안았다.
“마미!”
“괜찮아. 괜찮을 거야.”
메기가 릴리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그러나 시선을 살짝만 돌려도 클레이와 얀센이 다리와 코를 잃은 표정을 하고 있는 판국인 거다. 그래서 그녀 역시 자신 있는 음성은 아니었다.
정지우는 리버풀에 전담 키커가 모두 빠져 있는 것에 감사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키커로 나선 벤테케가 만만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최근 12경기에 출전해 4골 1도움을 기록하고 있지만, 순간적인 폭발력이나 그림 같은 오버헤드킥을 성공시킬 정도로 골에 대한 집념과 집중력이 있는 선수였다.
“우와아아아아아-!”
리버풀의 관중들이 골을 기대하는 함성을 터트릴 때, 정지우는 힐끔 벤테케를 노려보았다.
웸블리를 가득 메운 관중들이 꼭 정지우에게만 부담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페널티킥은 넣으면 본전이고, 못 넣으면 팀의 사기를 뚝 부러트린다. 그러니 지금 페널티킥의 키커로 나선 벤테케도 정지우만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거였다.
정지우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린 채 들지 않았다.
양쪽이 똑같이 긴장된 시간을 보낸다면 키커가 훨씬 더 심적 부담이 커진다.
“우우우-!”
시간을 끈다고 생각했는지 리버풀의 응원단이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삑! 삑!
주심이 휘슬로 정지우를 불렀다.
스웰던이 퇴장당하지 않았다면 벌써 옐로카드를 받았을 행동이었다.
어디로 찰래?
아까는 앞쪽이었으니까 이번엔 어디?
막고 싶다. 막아 내고 싶다.
박용근과 전은주가 와 있는 이런 경기를 늘 상상했던 것만큼, 이 페널티킥을 막아 내서 얼마나 제대로 배웠는지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정지우는 ‘후우-!’ 하고 숨을 뱉으며 자세를 잡았다.
벤테케는 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뒤편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라인에 맞춰 양 팀 선수들이 쭉 늘어서서 달려들 준비를 마쳤다.
벤테케가 슈팅을 하기 전에 누구라도 안으로 뛰어들면 파울이다. 그러니 슈팅과 동시에 달려들어 다음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정지우는 벤테케와 공의 거리를 노려보았다.
짧았다. 그렇다면 바로 공으로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원을 그리듯 뛰어들어 슈팅을 날리겠다는 의미가 강한 거다.
정지우는 무릎을 구부린 자세에서 양팔을 넓게 벌렸다.
입술 앞에 모은 전은주의 손이 애처롭게 떨렸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유니온 시티의 관중, 그리고 심지어 리버풀 팬들 중에도 페널티킥을 보기 두려운 관중들이 고개를 비튼 채 곁눈질로 보거나, 손으로 눈을 감싸고 손가락 사이로 지켜보고 있었다.
전은주는 알 길이 없었다.
쿠웨이트전 전반이 먼저 끝나는 바람에 혹시나 하고 채널을 돌린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시청자들과 유니온 시티 전체가 침묵과 긴장 속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이 페널티킥을 지켜본다는 사실을.
9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숨이 턱턱 막히는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고작 11미터 앞에서 차는 슛이다.
0.4에서 길어도 0.5초 사이에 공이 날아오고, 골키퍼가 반응하는 데는 0.6초가 걸린다. 그러니 이론상 페널티킥 성공 확률은 100퍼센트다.
하지만 공연히 11미터의 러시안 룰렛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어서, 실제 페널티킥 성공률은 70퍼센트 위아래다.
게다가 결승전에서 얻은 페널티킥이었다.
9만 명이 지켜보는 앞에서 킥을 해야 하는 선수의 부담감과 심리적 압박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였다.
세게 찰래? 안전하게 찰래?
삐이이이- 익!
잔인하고 날카롭게 휘슬이 울렸다.
“우우우우우-!”
돌로 만든 거인이 웸블리에 나타나 괴성을 지르는 듯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벤테케에게 부담을 주려는 유니온 시티 응원단의 함성이었다.
벤테케가 주춤주춤 옆으로 움직이다가 공을 향해 똑바로 달려들었다.
벤테케의 골을 기원하는 조동익이,
“으으!”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 비명을 내질렀고,
“마미!”
릴리가 엄마의 품으로 고개를 파묻었으며,
전은주는 소리조차 못 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쿠웨이트전 전반을 보았던 거의 모든 시청자들이 꼼짝도 못하고 지켜보고 있었으며, 유니온 시티 곳곳에서 ‘우-!’ 하는 야유와 ‘제발!’ 하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세상이 캄캄하게 변했다.
모든 소리와 빛을 차단하는 것처럼 벤테케의 뒤가 시커멓게 보였다.
“후우우- 욱!”
벤테케의 숨소리,
차박! 차박!
심지어 그가 디디는 스파이크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후욱! 후욱!
정지우는 벤테케의 왼발만 보았다.
왼발의 끝이 디디는 방향이 공이 날아오는 방향이다.
혹시나 잘못 맞아서 예상하고 다르다면 어쩔 수 없이 골을 먹겠지만, 그래도 왼발의 끝으로 판단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차박, 차박.
외롭다, 이 순간이. 뼈에 사무칠 만큼.
그리고 두렵다.
그물이 철렁이는 것이.
그 안을 구르고 있을 공을 보아야 하는 것이.
박용근과 전은주, 릴리, 유니온 시티의 응원단, 그리고 동료들에게 실망을 안기는 것이!
처버억!
벤테케의 왼발 끝이 정지우의 오른쪽을 가리켰다.
움찔!
하마터면 몸을 날릴 뻔했다.
진심으로 오른쪽인 줄 알았다.
그런데 왼발이 공 옆에 놓인 순간에 그의 몸뚱이 역시 오른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쿠웅!
정지우의 가슴이 커다랗게 내려앉았다.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찬단 의미였다.
세게 차기보다는, 안정적인 코스를 노리겠다는 뜻이었다.
‘이익!’
체중을 오른쪽으로 기울이다가 왼편으로 날리는 거다.
오른쪽 허리, 허벅지, 무릎, 정강이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파악!
이를 악물며 왼발에 체중을 실은 정지우가 몸을 기울였다.
투우욱!
벤테케는 확실히 오른발 안쪽으로 공을 띄웠다.
화아아아악!
봤다! 보인다! 왼쪽이었다!
절묘하게 좌측 상단 코너를 파고드는 공을 향해 정지우는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시선의 끝에 공이 있었고, 그 바로 앞에 정지우의 손끝이 있었다.
발의 안쪽으로 찬 공은 속도가 빠르지 않다.
방향만 맞으면! 거기에 타이밍까지 맞춘다면!
정지우가 누구에게서 배웠는지 증명할 시간이었다.
‘이이익!’
정지우는 있는 힘껏 왼손을 뻗었다.
터억! 티잉! 털썩!
“이예에에에에에에에-!”
온몸의 피가 뒤통수로 쏠렸다가 머리카락을 타고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함성이 정지우를 그렇게 만들었다.
바닥에 떨어진 정지우가 시선을 돌린 곳에서 공이 커다랗게 튕기며 뒤편의 광고 보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예에에에에에에-!”
방송 카메라가 흔들릴 정도의 함성이 웸블리를 가득 메웠고, 몸을 일으킨 정지우를 향해 동료들이 달려들었다.
얼싸안는 라파엘, 끌어안은 채로 뒤통수를 연신 두드리는 데이빗, 완전히 흥분한 꼼빠니, 두 팔을 내린 자세로 정지우를 향해 고함을 질러 대는 맥슨까지!
정지우는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거나 그들의 뒤통수를 쳐 준 다음, 벤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장갑 낀 양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입을 맞춘 다음이었다.
하늘을 바라본 정지우가 천천히 양손 검지를 위로 들었다.
“이예에에에에에-!”
승리의 시그널!
웸블리에 있는 유니온 시티 관중들과 유니온 시티 전체에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TV 화면에 그대로 잡혔다.
동료들의 머리와 어깨를 두드려 준 정지우가 손에 입을 맞추고, 하늘을 향해 검지를 드는 모습이.
“마미!”
릴리가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엄마의 품을 파고들 때, 함께 지켜보던 이들이 그녀를 향해 힘찬 손뼉을 쳐 주었다.
클레이와 얀센은 시뻘겋게 상기된 얼굴이었고, 데이지 역시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큼 커다랗게 박수를 쳤다.
조동익은 굳은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다.
전반이 먼저 끝난 다음, 추가 시간에 나온 페널티킥이었다.
이 장면을 못 보았다면 모를까, 지켜보았다면 어떤 축구 팬이 쿠웨이트전으로 채널을 돌리겠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인상적인 장면은 오래도록 각인된다.
“빌어먹을!”
조동익의 욕이 어쩐지 처량하게 들렸다.
흥분의 강도가 전혀 달랐다.
귀를 후비고, 정신을 아득하게 하는 고함이 웸블리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 대는 느낌이었다.
삐이익! 삐익! 삐이익!
리버풀이 올린 코너킥을 데이빗이 걷어 내는 순간, 주심이 전반 종료를 알렸다.
“예에에에에에에에-!”
유니온 시티 관중들은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날뛰고 있었는데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았다.
우우웅!
장진모의 바지에 두었던 전화기가 떨렸다.
한국은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다.
장진모가 전화기를 꺼내자 앞면에 부장이 보낸 문자 메시지 표시가 있었다.
엄지로 툭 전화기를 건드린 다음이었다.
[페널티킥 선방 장면 순간 시청률 19.3퍼센트. 네가 쓴 박 감독 기사 순간 클릭수 최근 3개월 내 일일 최고. 잘하면 올해 최고 클릭 나온다. 달라붙어라, 거머리.]
장진모는 고개를 흔들며 전화기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시선을 정지우에게 향한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