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다들 가자! (3)
왼쪽 터치라인 근처에 떨어진 공이 나갈 듯 나갈 듯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라인을 타고 굴렀다.
반즐리의 9번 샘과 14번 폴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 달렸고, 유니온의 23번 멜스와 5번 라파엘이 그들을 저지하고자 있는 힘껏 뛰었다.
투욱!
공을 건져 낸 것은 반즐리의 9번 샘이었다.
그는 라인 방향으로 공을 툭 차 놓고 멜스를 피해 달려 나갔다. 그 바람에 역동작에 걸린 멜스는 샘을 전혀 저지하지 못했다.
“우우-!”
홈 관중들의 야유 속에서 반즐리의 샘은 유니온 시티의 골대를 향해 대각선으로 찔러 들어왔다.
라파엘이 뒤를 쫓았고, 카알이 그의 앞을 막아서는 순간이었다.
투욱!
샘이 페널티 에어리어 앞으로 공을 흘리듯 넘겨주었다.
정지우는 자세를 낮춘 채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오른편을 맡던 멜스가 왼편에서 허둥거리고, 그 대신 오른쪽에 선 무둔바는 카알의 빈자리를 메워 주기는커녕, 당황한 채 페널티 에어리어로 향해 오는 공만 보고 뛰어들고 있었다.
고함 지를 겨를도 없을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투욱!
7번 조쉬가 공을 잡는 순간이었다.
촤아악!
그나마 뒤늦게 달려온 데이빗이 절묘한 슬라이딩 태클로 그가 슈팅을 하지 못하게 막았다.
조쉬가 공을 옆으로 차며 방향을 잡을 때, 포그이가 데이빗을 도우며 조쉬를 압박했다.
툭! 투욱! 툭!
반즐리의 7번 조쉬는 공을 정교하게 다루지 못했다.
데이빗과 포그이 사이에 갇혀 무리하게 드리블을 시도하던 조쉬가 공을 뒤쪽으로 빠트리고 말았다.
“우우-!”
운은 아직 반즐리 쪽에 미련을 두었던 모양이었다.
악착같이 달려든 11번 사이먼이 역시나 비슷하게 뛰어든 무둔바에 앞서 간발의 차이로 공을 잡았다.
주춤, 주춤.
툭! 툭!
반즐리의 사이먼이 좌우로 페인트 동작을 펼칠 때마다 무둔바의 커다란 몸이 휘청거리는 것처럼 흔들렸다.
사이먼이 페널티 에어리어의 오른쪽으로 빠르게 치고 달리자, 무둔바가 겅중겅중 뛰는 것처럼 어색한 걸음으로 그를 따랐다.
‘제발 좀!’
정지우는 최대한 사이먼과 골대의 각을 죽여 가며 이를 악물었다. 골키퍼와의 동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둔바의 움직임 탓에 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엉!
그때 느닷없이 슛을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못 봤다!
사이먼이 슈팅을 날렸는데 공을 눈에 담지 못했다.
정지우가 움찔하는 순간이었다.
티잉!
무둔바의 뒤를 받치기 위해 뛰어든 카알의 발에 걸린 공이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으로 튀었다.
“우와- 아!”
원정 응원단의 요란한 함성과 함께 반즐리의 19번 벤이 달려들며 그대로 슛을 날렸다.
퍼어엉!
가뜩이나 급하게 날린 슈팅인 데다 정교함마저 부족해서 공은 오른쪽 코너 플래그가 있는 곳을 향해 심하게 휘어져 날아갔다.
“후우!”
정지우는 커다랗게 숨을 내쉬었다.
하마터면 꼼짝 못하고 당할 뻔했었다.
바깥쪽에서 굴려 준 공을 골대 앞에 놓은 정지우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콕콕.
10명 대 10명이다.
전반에 실점만 하지 않는다면 후반에 틀림없이 승산이 있는 경기인 거다.
몸을 앞으로 움직인 정지우가 있는 힘껏 공을 차 주었다.
퍼어엉!
높다랗게 뜬 공이 중앙선을 훨씬 넘어가 반즐리의 진영에 떨어졌다.
두 번의 헤딩 뒤에 유니온의 8번 포그이가 공을 차지했고, 그는 여유 있게 데이빗에게 패스했다.
“헉헉! 헉헉!”
있는 힘을 다해서 뛰고는 있는데 반즐리 선수들은 그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툭! 투욱!
사람이 아무리 빨라도 공보다 빠르기는 어렵다.
거기에 압박을 하며 달려드는 것에 당황한 유니온 선수 중 누군가가 공을 놓치기라도 해야 하는데, 불행하게 그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투욱! 툭! 툭! 투우욱!
데이빗을 중심으로 돌던 공이 또다시 정지우에게 날아왔다.
‘멍청이!’
멜스는 빠르게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 주고 있는데, 무둔바는 오히려 정지우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정말 기본이다. 안 배웠을 리 없으니, 무둔바는 지금 당황해서 상황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반즐리의 9번 샘, 11번 사이먼, 14번 폴이 페널티 에어리어 앞이 최종 목적지인 사람들처럼 달려들었다.
자꾸 말하지만 정지우가 당황할 리 없고, 또 공은 항상 사람보다 빠른 거다.
투우욱!
정지우는 한 템포 빠르게 데이빗의 옆에 있는 포그이에게 공을 넘겨주었다.
10명의 선수 중 3명이 정지우 앞에 있는 상황이었다.
앞쪽이 훤하게 뚫린 반즐리의 진영을 향해 포그이가 짧게 공을 찔러 주었다.
“우와- 아!”
레믹이 공을 잡고 5미터쯤 달려가자, 지금껏 답답함을 참고 있던 홈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 댔다.
투욱!
레믹은 왼편에서 달리던 맥슨에게 공을 넘겨주고 빠르게 반즐리의 골대를 향해 뛰었다.
투욱! 툭!
맥슨은 제법 속도가 있었다.
그는 반즐리의 3번 조든과 어깨를 부딪쳐 가며 골라인 근처까지 파고들었다.
투우욱!
골라인 아웃되기 직전에 맥슨이 골대 앞을 향해 공을 띄워 주었다. 골대 앞에서 기다리던 레믹에게는 정말이지 기가 막힌 패스였다.
휘이이익! 퍼억!
그러나 몸을 날렸던 레믹은 반즐리의 5번 르윈에게 떠밀려 커다랗게 엎어졌다.
“우와-!”
관중들이 페널티킥을 기대하며 함성을 질렀고, 바닥에 주저앉은 레믹이 두 손을 번쩍 들었는데 주심은 고개를 저으며 그를 외면했다.
“헤이!”
“뭐야! 이 빌어먹을!”
흥분한 관중들이 주심을 향해 손가락을 뻗치며 욕을 퍼부어 대는 사이, 반즐리의 반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퍼엉!
2번 제임스 브리가 기다랗게 질러 준 공을 7번 조쉬가 중앙선 부근에서 잡았다.
“헤이! 무둔바! 거기! 자리를 지켜!”
정지우는 또다시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뛰고 있는 무둔바를 향해 빠르게 고함을 질렀다.
앞쪽에서는 데이빗과 포그이가, 그 뒤에서 라파엘과 카알이 중심을 잡을 거라서, 무둔바는 외곽을 파고들 선수를 미리 경계하는 게 맞는 거였다.
투우욱!
역시 반즐리의 7번 조쉬는 무둔바를 노렸다.
그가 유니온의 오른쪽으로 차 준 공을 잡은 11번 사이먼이 또다시 공을 툭툭 차면서 무둔바 앞으로 달려왔다.
“자리! 자리를 뺏기지 마!”
키가 크고, 덩치가 대단한 무둔바다.
그가 슛을 쏘기 적당한 위치를 지키는 동안, 카알과 꼼빠니가 반즐리의 사이먼을 압박했다.
툭툭!
역시 압박과 협력만큼 좋은 수비는 없다.
좌우로 몸을 흔들며 설치던 반즐리의 11번 사이먼은 결국 그보다 기술이 뛰어난 꼼빠니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투욱!
공은 다시 데이빗에게 갔고, 데이빗은 그 공을 곧바로 맥슨에게 넘겨주었다. 속도로는 또 유니온의 맥슨이 반즐리의 3번 조든을 이긴다.
근처에 있던 레믹이 반즐리의 수비수 둘을 달고 움직이는 사이에, 맥슨은 수비수 조든을 뚫어내기 위해 힘차게 내달렸다.
콰아아악!
그러나 이번엔 반즐리의 수비수 2번 제임스 브리의 태클에 공이 아웃되고 말았다.
유니온의 멜스가 터치라인에 서서 공을 던져 준 직후에,
삑! 삐이이익!
추가 시간이 15분이나 주어졌던 전반이 끝났다.
모니터 안에서 정지우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기대를 주지 말던가?
한승관은 무언가를 받았다가 다시 빼앗긴 기분이었다.
“징그러운 새끼!”
왜 그런지 저 먼 영국에 있는 정지우가 서서히 목을 조여 오는 느낌도 들었다.
“저 새끼가 빨리 없어져야 하는데.”
한승관은 괜히 목을 좌우로 비틀어 보았다.
별것 아닌 놈이다.
문광국이 월드컵 예선을 멋지게 통과하면 더 이상 신경 쓸 이유조차 없는 놈이기도 했다.
라커룸에 들어선 정지우는 자리에 앉아 장갑을 벗고, 오른쪽 양말을 아래로 내렸다.
굳이 정강이 보호대를 내리지 않아도 알아차릴 정도로 발목에서 한 뼘 정도 위쪽이 부어올라 있었다.
정강이 보호대를 빼자 시퍼렇게 든 멍도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
“지금은.”
라파엘의 질문을 정지우가 가볍게 받았다.
등을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자세로 앉았을 때였다.
문이 열리더니 커다란 가방을 든 팀 닥터 스미스가 들어와서는 정지우를 향해 곧바로 다가왔다.
그는 정지우가 뻗은 오른발의 정강이를 살피기 위해 자세를 낮췄다.
“어때?”
“견딜 만해요. 스프레이를 너무 뿌렸나 본데요? 화끈거려서 그게 더 신경 쓰여……. 아!”
부은 부분을 스미스가 손으로 꾹 누르는 바람에 하마터면 그를 걷어찰 뻔했다.
“통증이 어떻게 느껴져? 찌르는 느낌? 울리는 느낌? 아니면 다리 전체로 퍼지는 느낌? 어떤 건가?”
정지우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본 스미스가 잔인하게 다시 정강이를 엄지로 꾹 눌렀다.
“으……!”
이번엔 진심으로 걷어차는 것을 참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누를 때만 깨지는 것처럼 아파요.”
“흠, 그렇다면 조금은 안심이 되는군.”
다친 곳을 그렇게나 눌러 놓고 안심이 된다고?
정지우의 심정과 다르게 스미스는 그나마 편안한 표정으로 몸을 세우더니 가방을 들고 방을 나섰다.
“후반은 원래 계획대로 가?”
“그렇게 해야지. 어차피 열 명씩 뛰는 경기니까 원래대로 하자고.”
데이빗의 질문에 답을 한 정지우가 고개를 돌렸다.
“무둔바.”
덩치가 커다란 무둔바가 비례에 맞춘 것처럼 커다란 머리를 돌려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아까는 고마웠어.”
그가 유독 하얗게 보이는 눈을 움직여 정지우를 바라보았다. 비꼬는 건지, 칭찬인지를 알고 싶은 눈치였다.
“후반에 혹시 페널티 에어리어 앞을 지켜 줄 수 있겠어?”
“내가?”
“그래. 아까처럼 위치를 잡고 반즐리 애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 줄 수 있겠냐고?”
“그럼 내가 맡은 자리는?”
“카알과 꼼빠니가 도와줄 거야.”
무둔바가 확인하는 것처럼 시선을 돌렸을 때, 데이빗이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여 답을 해 주었다.
“대신 네가 맡은 쪽을 절대로 빼앗기지 말고, 두 번째로 헤딩을 내주지 마.”
“헤딩? 헤더(header, 축구에서 머리로 공을 다루는 패스나 슛) 말이지?”
“그래. 어떤 놈이 달려오더라도 따라가거나 흔들리지 마. 그저 나하고, 상대 선수의 사이에서 공간만 잡아. 그러면 후반에도 우린 무실점이야.”
무둔바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본인 딴에는 임무를 맡은 것이 만족스러운 모양인데, 얼핏 보기에는 정지우를 불 위에 매달 생각을 하는 놈처럼 보였다.
“넌 수비수로 최고의 몸을 지녔다. 몸싸움에 밀리지 않는 게 첫 번째, 그렇다고 반대로 상대 선수를 밀지 않는 게 두 번째.”
무둔바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하면 페널티킥을 준다. 명심해.”
“맡겨 두라고.”
지능이 좀 떨어지나?
라커룸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선수들의 표정에 담긴 뜻은 그랬다.
아무튼, 대화를 끝낸 정지우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레믹, 자신 있어?”
“몇 골이나 넣어 줄까?”
무둔바와는 정반대로 촐싹거림과 단순의 대명사 레믹이 거만하게 질문을 던져 왔다.
내심 한숨이 푹 나왔는데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후반은 무둔바를 중심에 두고 좌측은 라파엘, 우측은 카알이 맡아 준다. 남은 인원은 전부 데이빗을 기준으로 위로 올라가.”
동료들의 시선을 받은 정지우가 천천히 라커룸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기다렸던 쇼 타임이다. 멋진 경기로 홈 관중들을 미치게 만들어 주자.”
저절로 나오는 미소가 있다.
유니온 시티 선수들의 입과 눈에 걸린 웃음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후반을 위해 터널에서 그라운드로 걸어 나오는 순간에도 홈 관중들은 자리에서 뛰며 응원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전, 후반을 합쳐 90분이 넘는 시간이다.
응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기초 체력을 다져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홈 관중들은 열광적인 응원을 펼쳐 내고 있었다.
양 팀 선수들이 중앙선을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주심이 좌우를 둘러보았다.
삐이이익!
유니온 시티의 선공이었다.
데이빗이 발바닥으로 공을 굴려 포그이에게 건네주자, 그는 바로 카알을 향해 공을 차 주었다.
전반과 같은 방식으로 반즐리 선수들이 달려들 때였다.
퍼엉!
뒤로 돌릴 줄 알았던 카알이 기다랗게 앞으로 공을 넘겼다.
“우와- 아!”
공을 받은 꼼빠니는 그대로 반즐리 진영을 향해 치고 달렸다. 그 옆으로 포그이, 레믹, 맥슨이 한꺼번에 밀고 올라가자 반즐리 수비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투우욱!
포그이가 골대를 향해 공을 밀었고, 레믹과 맥슨이 동시에 반즐리의 수비수들 사이를 헤치고 뛰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