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라운드의 지배자-75화 (75/262)

제2장. 다들 가자! (2)

그러나 실력 차이는 분명하게 존재해서 투박하게 달려드는 19번 벤의 공을 유니온의 8번 포그이가 가로챘다.

“우와- 아!”

반즐리 선수들은 아예 전반만 뛰고 경기를 마칠 선수들처럼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헤이!”

중앙에 선 데이빗이 꼼빠니를 가리켰다.

투욱! 투우욱! 퍼어엉!

포그이가 꼼빠니에게 넘긴 공이 멜스에게 갔다가, 저 멀리 반대편에 있는 맥슨에게 날아갔다.

이런 패스는 정말 멋지다.

공을 향해 거칠게 달려드는 반즐리의 빈 곳을 정확하게 찌른 것이어서 특히나 그랬다.

비기는 것과 지는 것의 차이가 없는 반즐리는 작정한 것처럼 4-3-3의 포메이션을 택했고, 그것을 극단적으로 2-5-3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두말할 것 없이 중앙에서부터 있는 힘껏 밀어붙여서 승부를 내겠다는 의미였다.

“헉헉! 헉헉!”

경기 시작 후 고작 15분이 되었을 때, 반즐리 선수들은 전반을 마친 선수들만큼이나 급한 숨을 토해 내며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다.

다 아는 것처럼 축구장의 규격은 길이 100에서 110미터에, 가로 65에서 75미터다.

그러니 양쪽 백이 공격을 위해 중앙선을 넘어왔다가 수비를 위해 다시 달려가면 짧아도 왕복 40미터, 전체 80미터를 전력 질주로 달린 꼴이다.

그나마 그냥 일직선으로 뛰는 것도 아니라, 패스하거나 드리블하는 유니온 시티의 선수들을 따라 이리저리 방향까지 틀어야 하는 거다.

삐이이익!

그 바람에 반즐리는 공을 빼앗겼거나, 유니온 시티 선수들을 놓치겠다 싶으면 거의 무조건이라고 할 만큼 손으로 붙잡거나 거친 태클을 날렸다.

“헉헉! 헉헉!”

데이빗이 공을 놓은 바로 앞에서 반즐리의 7번 조쉬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물러나 줘야 한다. 그런데도 당장 데이빗이 공을 뿌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료들이 잠시라도 위치를 잡을 수 있도록 공 바로 앞에 서 있는 거였다.

축구 선수는 전력 질주를 한 뒤에 공이 다른 곳으로 향한 틈을 이용해 최대한 빨리 호흡과 근육의 피로를 풀어내야 한다. 그런데도 반즐리 FC 선수들은 휴식이고 뭐고 없이 아예 끝장을 보자는 것처럼 달려들었다.

전반에 어떡해서든 한 골을 넣고, 그 뒤로 무조건 잠그고 버티겠다는 작전쯤?

그러니 지금처럼 데이빗이 기습적으로 패스할 타이밍을 악착같이 막아서야 하기도 할 거다. 골을 먹으면 반대로 유니온이 잠글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삑! 삐익!

주심이 반즐리의 7번 조쉬를 향해 경고성 휘슬을 불었다.

그가 적당한 간격으로 물러선 직후였다.

퍼어엉!

데이빗은 중앙선 부근에서 아예 정반대로 정지우를 향해 공을 보냈다.

이때 좌측의 스웰던과 우측의 멜스는 양쪽으로 간격을 벌려서 정지우가 편안하게 공을 패스할 수 있도록 위치를 잡아 줘야 한다.

뭐, 이 정도는 선수들에게 일종의 상식과 같은 거다.

그걸 아는 반즐리의 14번 폴과 10번 리얀, 9번 샘이 정지우와 양쪽으로 벌려선 수비수들을 노리고 유니온 시티의 골대를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들었다.

잔인하지만, 이미 계획에 있던 방법이었다.

전반을 이렇게 뛰게 해서 퍼진 반즐리를 상대로 후반에 쐐기를 박아 넣자는 것이 유니온 시티의 계획인 거였다.

뒤로 물러나는 척하며 정지우는 달려드는 반즐리의 10번 리얀이 마지막까지 달리도록 유인했다.

투우욱!

정지우가 라파엘을 향해 공을 차 주는 순간이었다.

콰아악!

반즐리의 10번 리얀이 전혀 그럴 필요 없는 지점에서, 터무니없다고 할 만큼 다리를 높게 든 자세로 정지우의 발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정지우는 급하게 위로 몸을 솟구쳤다.

터어억! 콰각!

“아악!”

그러나 높다랗게 든 10번 리얀의 발바닥에 오른쪽 발목 부근이 걸렸고, 그대로 허공에서 앞으로 엎어지는 것처럼 그라운드에 처박히고 말았다.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우우-!”

삑삑삑삑삑삑삑!

“Goddamn it(젠장)!”

퍼억! 콰당!

스웰던이 달려오는 속도를 이용해 일어서는 10번 리얀의 가슴팍을 세차게 밀치는 바람에, 이번엔 리얀이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Hey!”

그 모습에 흥분한 반즐리의 14번 폴이 그런 스웰던의 가슴을 밀쳐냈고, 이어서 양 팀 선수들이 사납게 뒤엉켰다.

꼼빠니와 라파엘, 카알이 스웰던을 악착같이 붙들었고, 반대로 반즐리 FC 선수들은 10번 리얀을 뒤에 두고 빙 둘러싸며 지켰다.

삑! 삐익! 삐익!

휘슬을 불어도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도 정지우는 발목과 정강이를 부여잡은 자세로 잔디에 얼굴을 묻은 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유니온 시티의 팀 닥터 스미스가 스태프 2명과 달려왔다.

“Ji! Ji!”

그는 정지우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잡아들며 빠르게 그를 불렀다.

화면에 반즐리 FC의 10번 리얀이 정지우의 오른쪽 정강이를 정확하게 찍는 장면, 이어서 정지우가 앞으로 커다랗게 떨어지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여보!”

손으로 입을 가린 전은주의 옆에서 박용근마저 눈에 독기를 잔뜩 품었을 정도로 거칠고 무식한 파울이었다.

뒤엉켰던 선수들이 조금씩 물러나고 있음에도 주심은 혹시나 모른 불상사를 대비해 반즐리의 10번 리얀을 보호하는 태도로 연신 선수들을 향해 뒤로 물러나라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었다.

침이 잔뜩 묻은 오징어 다리를 입에 문 장진모가 멍한 눈으로 부장을 보았다. 저 정도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알려 달라는 눈빛이었다.

“어후!”

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건 좀 봐야겠다. 저런 부상으로 망가진 선수들이 하나둘이 아니어서.”

“아니! 왜 좀 살아 보겠다는 애를! 저 개새끼가!”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장진모는 씹고 있던 오징어 다리를 앞에 놓인 쓰레기통에 홱 집어 던졌다.

‘예쓰! 예쓰! 예쓰!’

한승관은 이를 꽉 깨물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걸 함께 봤어야 하는데!

역시 사람이 진심으로 간절하게 원하는 건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는 정지우의 흉내를 내는 것처럼 자신의 방 천장을 바라보며 두 손을 들었다.

‘그저 더도 말고 1년만! 딱 1년이면 됩니다!’

그 정도면 뼈 부러진 후유증으로 선수들이 달려드는 것에 공포를 느끼며, 다음으로 서전트 점프나 민첩한 동작이 전처럼 나오지 않는다.

한마디로 폼이 뚝 떨어진 선수로 전락할 확률이 높은 거다.

“하아!”

한승관이 바라보는 모니터에서 정지우는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팀 닥터가 그의 양말을 내리고 정강이 보호대를 벗긴 뒤에 뼈를 만지고 있었는데 표정이 무척이나 심각했다.

주심이 반즐리의 10번 리얀의 앞에서 레드카드를 높다랗게 들었다.

“우-!”

어지간하면 이런 경우 홈 관중들이 탄성을 지르는데, 오늘만큼은 비난의 함성이 그라운드를 향해 쏟아졌다.

그런데 몸을 돌려 걸어간 주심은 유니온 시티의 스웰던을 향해서도 레드카드를 번쩍 들었다.

“우우-!”

관중들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거센 비난을 퍼부었고,

“뭐야! 뭐!”

마틴이 벤치를 뛰쳐나와 양팔을 높게 들고 악을 써 댔으며, 스웰던은 정지우를 가리키며 주심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안 돼! 스웰던! 지금은 참아!”

라파엘과 카알이 악착같이 스웰던의 상체와 목을 끌어안고 그를 진정시키려 애쓰는 앞에서, 데이빗이 주심의 코앞에 얼굴을 디밀고 평소 그답지 않게 항의를 멈추지 않았다.

어지간해서 비명을 지르지 않는 정지우였지만, 이번 통증은 정말이지 ‘악!’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끔찍했었다.

고개를 처박은 그라운드에서 강한 잔디 냄새가 올라왔는데 당장 코를 돌릴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다.

정강이 전체가 얼얼하고 뻐근했는데, 팀 닥터가 스프레이용 파스를 있는 대로 뿌려서 순간 마취를 해 준 덕분에 당장 통증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하여간 골키퍼는 교체하지 않으면 치료가 끝날 때까지 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거였다.

“교체하자.”

“일단 해 보고, 안 되면 교체 사인을 낼게요.”

“통증 부위나 상태로 봐서 이 정도면 실금이 갔을 수도 있어. 당장 봐도 부었잖아.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는 거야?”

정지우는 보일 듯 말 듯 웃기만 했다. 왜 이렇게 무리하냐는 질문에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일단 교체해.”

“오늘 비기기만 해도 남은 경기 안 나와도 돼요.”

“자넨 프로 선수야. 몸이 재산이라고. 지금 물러나서 오래 뛰는 게…….”

“돌아보세요. 13년 만의 승격을 고대하는 홈 관중들을 위해서라도 우린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어요. 그리고 여기에서 내가 물러나면 반즐리의 계획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어요.”

스미스가 기가 막힌 눈을 하고 픽 하고 웃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도 교체를 원하는 선수가 있는 반면에, 이렇게 악착같이 달려드는 선수도 있는 게 이 바닥인 거다.

“스프레이 한 번 더 뿌리자.”

“그러죠.”

스미스가 새로운 캔을 꺼내 스프레이를 있는 대로 뿌려 댄 후에 몸을 일으켰다.

“우- 와!”

기대감이 찬 함성이 쏟아져 나올 때였다.

정지우는 정강이 보호대를 고정한 다음, 양말을 높다랗게 올렸다.

“우와아- 아!”

그리고 정지우가 일어섰을 때, 레드 블레이트가 떠나갈 것처럼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장진모가 숨을 토해 내는 것처럼 웃었다.

“저놈은 정말 주인공 기질이 있네!”

선수들이 다가와 정지우의 머리와 등을 두드려 주는 것을 보며, 장진모는 완전히 감동한 눈으로 헤벌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봐요, 형! 저렇게 일어섰으니 상대편은 아예 기가 죽을 거고, 같은 편은 투지가 일어나지 않겠어요?”

“멋지긴 하다.”

“멋진 것뿐이 아니라니까! 빛이 나잖아! 빛이!”

“야! 너 기자야. 특정 선수에게 그런 감정을 갖는 것 자체가 문제 되는 거야. 당장 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나도, 동양인 두 번째 프리미어리그 진출 선수가 되는 기사를 써야 할 놈이.”

부장의 말에 장진모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웃음이나 장난기를 쏙 뺀 진지한 눈빛이었다.

“형! 취재나 기사를 쓸 때 이런 거로 흔들리지 않을 정도는 되는 놈이요. 대신.”

“대신 뭐?”

“나 오늘부터 쟤 팬 할 거요.”

부장이 완전히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웃었다.

정지우가 일어섰는데도 박용근과 전은주는 마음을 놓지 못한 눈으로 모니터에 집중했다.

경기가 15분쯤 지연되었는데, 정지우가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골대 앞을 걷고 있어서 경기가 진행되지는 못하고 있었다.

“괜찮겠지? 여보?”

“그래야지.”

답을 하고서도 박용근은 고개를 갸웃했다.

선수 생활, 감독 생활을 하며 쌓인 경험이 그의 가슴 한쪽에 불안함을 모락모락 피워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니터 화면에 가득 잡힌 정지우가 높다랗게 몸을 띄워 크로스바에 손을 댔다.

『우와아아아!』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그러자 커다란 함성이 먼저 터져 나왔고, 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난 홈 관중들이 힘찬 박수로 정지우를 격려했다.

삐이익!

주심의 휘슬로 경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10명씩 뛰는 경기였다.

부상으로 경기가 중단된 덕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한 반즐리 선수들이 뻔뻔스럽게 보일 정도로 투지 넘치게 뛰기 시작했다.

저런 상대 팀 선수들 앞에서 들것에 실려 나가라고?

반즐리가 강등권에 들어서는 것만큼이나 13년 만에 겨우 잡은 승격 기회를 놓치는 것 역시 그만큼 끔찍한 일이었다.

투욱! 툭!

데이빗이 공을 잡아 포그이에게 넘겼고, 그 공이 꼼빠니에게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퍼억! 콰다당!

반즐리의 7번 조쉬가 꼼빠니와 부딪쳤고, 둘이 동시에 바닥에 쓰러졌다.

삐이익!

이 정도는 충분히 양해할 만한 동작이었다.

반즐리 진영을 향해 중앙선을 살짝 넘은 지점이었다.

데이빗이 공을 세웠을 때 주심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유니온 시티의 선수 교체였다.

수비수 스웰던 자리가 비어서 공격수인 브라운을 교체 아웃하고, 21번 무둔바를 집어넣었다.

키가 큰 토고 출신의 무둔바는 원래 오른쪽 수비수였다.

그래서 그는 뛰어오면서 멜스에게 왼편으로 가라고 손짓하고는 대신 오른쪽을 맡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오- 오오! 오- 오오!”

퍼어엉!

관중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배경으로 데이빗이 공을 기다랗게 차 주었다. 맥슨이 높게 뛰었는데, 공은 반즐리의 3번 조든의 머리에 먼저 맞았다.

높다랗게 떴다가 떨어지는 공을 향해 반즐리의 14번 폴과 레믹이 함께 뛰었는데, 이번에도 공은 반즐리 폴의 머리에 맞고 안쪽으로 날아왔다.

공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퍼엉!

반즐리의 7번 조쉬가 논스톱으로 걷어 냈고, 그 공이 단박에 유니온 시티 진영으로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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