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72화
“하.”
신철호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붉은 마나포를 바라봤다.
자신과 주변에 있는 현무검대원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광선처럼 쏘아지고 있는 두 줄기의 붉은 마나포.
이미 피하기에는 늦은 상황이었다.
남은 건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
신철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바로 그때.
“본 실드!”
스스스슥!
붉은 광선처럼 쏘아지는 마나집속포 앞에 하얀 뼈로 이루어진 방패들이 허공에 생겨나는 게 아닌가?
즈즈증!
본 실드는 마나집속포 한 줄기당 두 개씩 나타나 막았다.
그러자 본 실드에 막혀진 붉은 마나집속포가 사방으로 확산했다.
하지만 본 실드만으로는 마나집속포를 막을 수 없었다.
콰쾅!
마나집속포는 본 실드를 초고열로 녹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본 월!”
콰콰콰콰콰콰!
그때 지면에서 하얀 뼈로 이루어진 벽이 솟구쳐 올라오는 게 아닌가?
본 실드는 본 월을 생성하기 위한 시간 벌이였던 것이다.
이윽고 본 실드를 전부 다 파괴한 마나집속포가 본 월과 충돌했다.
콰가가가가각!
뼈가 깎여 나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본 실드보다 훨씬 더 두터운 본 월은 마나집속포를 막아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나집속포의 붉은빛이 사라진 것이다.
쿠구구궁.
마나집속포를 막아 낸 본 월은 지면 아래로 내려가며 사라졌다.
“사, 산 건가?”
“대체 누가?”
“저건 네크로맨서 마법인데?”
한 차례 위기를 모면한 현무검대원들은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건 신철호도 마찬가지.
대체 누가 자신들을 구했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키에에엑!
하지만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마수들이 건재했으니까.
신철호와 현무검대원들은 마수들을 노려봤다.
바로 그때.
쌔애액!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그것은 3성 마수 솔저 앤트들이 진을 치고 있는 한복판에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키에에에엑!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솔저 앤트들의 비명 같은 괴성이 터져 나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떨어져 내릴 때 생긴 충격파로 인해 자욱한 흙먼지가 수 미터가 넘게 치솟아 올랐고, 검은 화염이 흙먼지를 집어삼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솔저 앤트들 또한 충격파에 휩쓸리면서 튕겨 날아갔다.
잠시 후, 사그라지기 시작하는 흙먼지와 검은 화염 속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무늬가 새겨져 있는 흑색 코트를 입은, 붉은 검신을 지면에 꽂아 넣고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앉아 있는 사내.
그 사내를 중심으로 반경 3미터에 가까운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늦진 않았군.”
잠시 후, 흑염을 꺼트리며 사내가 일어났다.
“너, 너는……?”
신철호는 경악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4성 보스 헤비 아머 앤트의 마나포를 막아 내고 수십 마리가 넘는 솔저 앤트를 순식간에 날려 버린 인물.
다름 아닌 신유현이었다.
“형이 어떻게……?”
신철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틀림없었다.
조금 전 네크로맨서 마법으로 헤비 아머 앤트의 마나집속포를 막아 낸 건 신유현일 터.
‘더 강해졌어.’
신철호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물론 현무검대원들은 헤비 아머 앤트의 일격에 그저 손을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신유현은 아니었다.
공격을 막아 냈을 뿐만 아니라, 단번에 수십 마리가 넘는 솔저 앤트들까지 날려 버렸으니까.
“야, 오랜만이다?”
신유현의 눈이 자신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신철호를 향했다.
차크라 개방을 하고 2성 던전 타락한 고블린의 숲에 가기 전, 뒤통수를 날린 후 처음이었다.
“여긴 뭐하러 온 거야?”
신철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수들이 가문을 습격해 와서 죽을 뻔한 사실과, 신유현이 목숨을 구해줬다는 사실까지도 말이다.
“뭐하러 오긴. 감히 가문을 습격하러 온 놈들을 보러 왔지.”
“……!”
순간 신철호는 몸이 떨려 왔다.
마수들을 노려보기 시작하는 신유현에게서 싸늘한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건 명확했다.
‘역시 나보다 강해졌구나.’
신철호는 이를 악물었다.
신유현을 넘어서기 위해서 죽어라 수련을 하고 나왔는데 넘어서지 못했다니!
“형이…… 언제부터 가문을 생각했다고.”
신철호는 겨우 쥐어짜듯 한마디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문의 사람들에게 무시를 받던 인간이 가문을 걱정할 리 없을 테니까.
“내 걸 건드리려고 하는 놈들이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
그 말에 신철호는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신유현이 파천검가의 후계자 경쟁전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그러니 가문을 내 것이라고, 광오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쓴 것일 테지.
그리고 그 말은 자신에게 끼어들지 말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저걸 보고도 형은 그런 소리가 나와?”
신철호는 눈앞에 있는 마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신유현이 강해졌다고 해도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 이러다가 다 죽어!”
200마리에 육박하는 4성 마수들.
거기에 4성 보스 헤비 아머 앤트와 5성 보스 레드 제너럴 앤트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현무전의 간부들인 최정훈 일행들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였다.
지금 그들은 5성 보스 천둥쥐 팬더마우스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신유현 한 명이 가세해 봤자 절망적인 상황을 뒤집는 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지금 마수들은 갑작스러운 신유현의 등장에 상황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앞으로 10초도 지나기 전에 200마리가 넘는 마수 무리들이 북쪽 정문을 향해 몰려올 터.
“포기하면 거기서 끝날 뿐이지.”
하지만 오히려 신유현은 마수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전 삶에서 신유현은 모든 것을 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분노에 몸을 맡기긴 했지만, 검을 들고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존재인 게티아에게까지 덤벼들었으니까.
그 결과,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신유현은 두 번째 찬스를 손에 넣었다.
미래의 기억과 불사왕의 권능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혼자서 뭘 어쩌겠다고…….”
신철호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등을 보이며 마수들을 향해 나아가는 신유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신유현의 등이 어딘가 모르게 커 보인다고.
“내가 혼자 왔다고 말했었나?”
등 뒤에서 중얼거리는 신철호의 말에 신유현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그리고 허리에서 마검 이그니스를 뽑아 들고 4성 보스 헤비 아머 앤트를 가리켰다.
“케이론, 충각돌진.”
그 말에 신철호와 현무검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직후.
쌔애액!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파공성이 하늘 위에서 울려 퍼졌다.
사실 신유현은 북쪽 정문으로 올 때, 헤카톤 하이퍼 비틀로 진화한 케이론을 타고 온 것이다.
그리고 케이론은 상공에서 대기 중이었다가 신유현의 명령에 헤비 아머 앤트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중이었다.
키이잉!
갑작스러운 이변에 헤비 아머 앤트는 다시 한번 마나를 집속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두 개의 포문이 위쪽으로 들리며 붉은빛의 마나 구체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투확!
이윽고 붉은 마나포가 쏘아졌다.
하지만 아직 첫 번째 발사 후 냉각이 끝나지 않은 데다가 급하게 쏘느라 처음보다 화력이 떨어져 보였다.
마나포의 붉은 광선이 옅어 보였기 때문이다.
슈아아아아악!
대기 중의 수증기를 증발시키며 쏘아진 붉은 마나포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던 헤카톤 하이퍼 비틀 케이론을 직격했다.
즈즈즈즈증!
하지만 드릴처럼 회전하는 헤카톤 하이퍼 비틀의 뿔이 헤비 아머 앤트의 마나포에 간섭을 일으키면서 흩어 버렸다.
애초에 케이론의 키틴질 아머는 물리 공격에 대한 방어력도 높지만, 대마력 코팅이 되어 있어서 마법 공격에 대한 내성도 굉장히 높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당신의 헤카톤 하이퍼 비틀 케이론이 대방어 스킬, 충갑을 사용합니다.]
4성 유니크 보스 트리스탄과 융합하면서 진화한 케이론이 새로 생겨난 충갑 스킬을 사용한 것이다.
그 덕분에 비약적으로 방어력이 올라간 케이론은 마나포를 튕겨 내며 드릴처럼 회전하는 뿔을 앞세우고 헤비 아머 앤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키에에에엑!
쩌억! 철컹철컹!
그 모습을 올려다보던 헤비 아머 앤트는 몸을 감싸고 있던 검은색 생체 장갑 일부를 들어 올리며 전방으로 향했다.
콰앙!
이윽고 케이론과 헤비 아머 앤트가 서로 충돌하면서 사방으로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키엑! 끼에엑!
헤비 아머 앤트 주변에 있던 솔저 앤트들은 괴성을 지르며 튕겨 날아갔다.
콰가가가각!
그리고 케이론은 회전하는 뿔로 헤비 아머 앤트의 생체 장갑을 꿰뚫고 들어갔다. 케이론의 뿔은 헤비 아머 앤트의 머리 바로 앞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췄다.
“케이론의 뿔을 막았나?”
신유현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헤비 아머 앤트의 생체 장갑이 단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케이론, 초진동파.”
키이이잉!
신유현의 명령에 케이론의 뿔이 하얗게 빛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
파아앙!
케이론의 뿔에서 초진동파가 터져 나오며 바로 앞에 있던 헤비 아머 앤트를 덮쳤다.
키에에에엑!
케이론의 뿔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진동파에 짓눌린 헤비 아머 앤트의 머리가 지면으로 처박혔다.
이어서 헤비 아머 앤트의 거구도 지면 위로 쓰러졌다.
쿠구구궁!
초진동파의 영향으로 몸의 균형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콰가가가각!
그 직후 초진동파를 내뿜으며 드릴처럼 회전하던 케이론의 뿔이 헤비 아머 앤트의 머리와 가슴 사이를 보호하는 생체 장갑을 향해 꽂혀 들어갔다.
키이이잉!
그때 헤비 아머 앤트의 등에 달려 있던 두 개의 포신에서 마나가 집속되기 시작했다. 지근거리에서 포격을 가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물러나라.”
신유현은 다급히 케이론에게 명령을 내렸다.
부우우웅!
그러자 케이론은 날갯짓을 하며 뒤로 펄쩍 뛰며 날아올랐다.
그 순간.
슈아아아아악!
케이론이 있던 자리에 헤비 아머 앤트의 붉은 마나포가 지나갔다.
쌔애액! 콰아아앙!
그뿐만이 아니라 붉은 화염의 창이 케이론이 있던 지면에 비스듬하게 날아와 꽂혔다.
5성 보스 레드 제너럴 앤트가 적염의 창을 소환해서 케이론을 향해 내던진 것이다.
“이 타이밍에 움직인다고?”
상공에서 붉은 화염의 날개를 소환해 공중에 떠 있는 레드 제너럴 앤트를 올려다보며 신유현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레드 제너럴 앤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신유현도 생각이 있었다.
“모두 나와라.”
신유현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스스슥!
신유현의 그림자 속에서 귀여운 디아와 까망이가 폴짝 뛰어나왔다.
이어서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금빛의 여신처럼 아름다운 슈브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르셨나요, 마스터.”
색기가 흘러넘치는 슈브의 모습에 신철호와 현무검대원들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