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53화
“네? 채화 언니요?”
남연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유현이 이채화에 대해 물어볼 줄은 몰랐으니까.
“네, 마법에 관심이 있어서요.”
“유현 씨가요?”
신유현의 말에 남연아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일반적으로 동양의 무사들은 마법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마법보다 무공이 훨씬 뛰어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3클래스 마법사들은 동양의 무사들에게 힘을 쓰지 못했다. 마법 발동 속도보다 무사들의 움직임이 훨씬 빠르니까.
무영창 마법을 시전할 수 있는 4클래스가 되어야 무사들과 붙어 볼 만하다.
다만 문제는 마법이 무공보다 배우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4클래스 이상의 마법사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지만.
“마법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보통 무사들은 한 가지 오러 속성밖에 사용하지 못하는데 마법사들은 다양한 보조 마법을 사용하니까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궁금해서요.”
“하긴 마법사들과 무사들은 마나를 제어하는 방법이 다르죠. 그리고 마법 술식을 사용하고요.”
“네. 특히 고위급 마법에 대해 알고 싶네요. 3서클 마법까지라면 혼자 어떻게든 알아보겠지만 4서클 이상은 알기가 힘들더군요.”
“그건 좀 아쉽네요. 저도 마법사인데…….”
남연아는 아티팩트를 개발하는 마도공학자임과 동시에 3서클 마법사였다.
그래서 3서클까지라면 신유현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었다.
하지만 4서클 이상의 마법을 알고 싶다는 신유현의 말에 남연아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죠. 괜찮습니다.”
신유현은 헛웃음을 흘렸다.
사실 마법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말은 이채화를 만나기 위해 적당히 둘러댄 것이다.
4서클 이상의 마법에 대해서도 유현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 유럽의 마녀라고 불리던 마리아와 연인 관계였으니까.
그녀에게서 더욱 효율적으로 마나를 제어하는 법을 배웠으며, 마법에 대한 이론도 배웠다.
덕분에 내공심법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고, 고유 스킬 리미트 마나 오버 드라이브를 습득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역시 마법을 사용하는 건 무리였지만.’
검사나 창술사, 권법가 등등 동양의 무사들과 마법사들은 마나를 수련하는 방법이 다르다.
무사들은 단전에 마나를 축적시키고, 마법사들은 심장에 마나서클을 만들어 나가니까.
그 때문에 무사들과 마법사들은 서로의 능력이나 기술을 사용할 수 없었다.
회귀를 하면서 차크라 스텟을 가진 신유현만이 네크로맨서의 흑마법과 파천검가의 무공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알겠어요. 채화 언니와는 잘 아는 사이니까 이야기 한번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이채화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남연아의 말에 신유현은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남연아는 신유현을 데리고 이채화가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 * *
“채화 언니!”
“연아 왔구나.”
남연아는 이채화가 있는 테이블에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20대 초반인 남연아와 20대 후반인 이채화는 언니 동생 하는 친한 관계로 보였다.
‘역시 재벌가의 영애인가. 발이 넓네.’
평소 연구소에 틀어박혀서 아티팩트 개발을 하며 사는 남연아였지만, 이채화와는 안면이 있었다.
왜냐하면 아티팩트는 마법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아티팩트 개발에는 마정석과 마법진이 필요하기에 마법 연구를 빼놓을 수 없었다.
당장 남연아만 해도 3성 하급에 해당하는 3서클 러너의 마법사이지 않은가.
그 덕분에 남두그룹의 파티장에서 이채화와 만난 이후로, 이들은 서로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분은……?”
서로 안부 인사를 마친 이채화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이미 알고 있겠지만 파천검가의 신유현 님이에요. 그리고 얼마 전 미확인 던전 게이트 탐사에서 절 구해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이분이 널 구해 줬다고?”
“네.”
남연아의 말에 이채화는 놀란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신유현에 대해서라면 알고 있었다.
경매를 하면서 서로가 누구인지 사회자가 이야기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설마 눈앞에 있는 청년이 남연아를 구해 준 인물이었을 줄이야.
“반갑습니다. 신유현입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채화와 그녀 옆에 있는 적탑 소속 여마법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반가워요. 이채화예요.”
“유현 씨가 마법에 대해 알고 싶대요.”
남연아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러자 이채화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파천검가의 자제분이 마법에 대해서요?”
“네. 예전부터 마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가령 마법의 경우 마나 제어 방법이…….”
신유현은 이채화와 함께 마법에 대해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마법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채화와 친해지기 위함이었다.
그녀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다짜고짜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마법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자 남연아도 함께했다.
그렇게 신유현은 그녀들과 함께 마법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 * *
‘대체 뭐 하는 사람이지?’
이채화는 테이블에 홀로 앉아 생각에 잠겼다.
마법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신유현과 남연아는 볼일이 있다며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신유현에 대해 강한 호기심이 일었다.
처음 마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서 말을 걸어왔을 때는 의심스러웠다.
국내 최고 검술 가문인 파천검가의 직계가 정말 마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마법이 아니라 자신이나 남연아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큰 착각이었다.
‘심장에 생성한 서클의 마나를 상시 순환을 시킨다고?’
6서클 비기너급 마법사인 이채화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
그 때문에 이채화는 신유현과 토론을 나누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과 달리 신유현이 마법에 대해 박식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새로운 마나 수련법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남연아나, 이채화가 데리고 온 적탑의 여마법사들은 터무니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들이 봤을 때는 실현이 불가능해 보였으니까.
그러나.
‘정말 불가능할까?’
이채화는 신유현이 말한 마나 수련법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느꼈다.
실제로 동양의 무사들이 수련하는 내공심법이 그러한 방식이었기에.
마법사들은 심장에 마나서클을 만든다. 그래서 내공심법처럼 경맥을 따라 마나를 흐르게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신유현은 그 고정관념을 깨 버린 것이다.
‘실증을 거쳐 봐야겠지만 불가능해 보이진 않아.’
심장의 서클을 시작으로 인체의 경맥을 따라 마나를 순환시키는 수련법.
이채화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기존 수련법보다 더 빠르게 마나서클을 만들 수 있겠지.
다만.
‘문제가 있다면 마나 제어법인가.’
신유현이 말한 방법으로 수련하려면 고도로 정밀한 마나 제어법이 필요했다.
이제 3서클, 4서클인 남연아나 이채화가 데리고 온 적탑의 여마법사들은 손조차 댈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흔든 것이다.
하지만 6서클의 경지에 오른 이채화는 달랐다. 신유현의 말을 듣는 순간 어렴풋하게 어떤 식으로 마나를 제어해야 할지 알 것 같았으니까.
다만 어떻게 마나를 제어해야 할지 구체적으로는 그녀 또한 아직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연구를 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이채화가 신유현이 말한 수련법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소름 돋는 일을 겪었다.
신유현이 자리를 떠나기 전, 전음으로 남긴 한마디 때문에.
- 마나 제어 방법을 알고 싶다면 연락 주세요. 당신이 가진 체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 전음을 듣는 순간 이채화는 자기도 모르게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
신유현의 전음에 등줄기를 타고 차가운 소름이 내달렸다.
신유현의 말대로 이채화는 개인적인 문제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5클래스 이상의 마법을 시전하면 마나가 제어에서 벗어나 폭주하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억눌러 왔던 그녀의 특이 체질이 활성화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음절맥이라는 성가신 체질이.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그 사실은 오직 이채화 본인밖에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신유현이 대체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의문투성이였다.
‘그나저나 이러면 화염 속성 마법을 전공한 의미가 없구나.’
이채화는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구음절맥은 강한 음기를 지녔다.
그래서 다양한 속성들 중에서도 오직 화염 마법만 전문적으로 배웠다.
마나 속성 자체를 아예 화 속성으로 바꿔 버릴 정도로.
마법사들은 다양한 속성의 마법을 배우지만, 일부는 단속성으로 하나만 배우기도 했다.
이채화를 포함한 적탑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그런 케이스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화염 속성 마나로 음기를 억누르며 버텨 왔다.
그렇지 못했다면 벌써 오래전에 절명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강한 화염 속성의 마나로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구음절맥이 가진 음기의 반동이 점점 더 커져 갔으니까.
그 때문에 고위급 화염 마법을 시전하려고 하면 강한 양기와 음기가 충돌하면서 마나의 제어력을 잃어 갔다.
그게 바로 이채화가 가진 문제였다.
그런데 그 문제를 신유현이 해결해 주겠다며 전음을 보낸 것이다.
소름이 돋을 만큼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 그럼 이제 어떡한다?’
자신에게만 따로 전음을 보냈다는 말은 무언가 원하는 게 있다는 소리.
그 때문에 이채화의 고민은 깊어졌다.
* * *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신유현은 자리를 떠나기 전, 이채화에게 미끼를 던졌다.
남은 건, 미끼를 물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
급할 건 없었다.
급한 건 이채화였고, 신유현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으니까.
‘그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나쁘진 않지.’
이채화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구음절맥을 치료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6서클 마법사이자, 화염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적법사들이 속한 적탑의 주인이니까.
도와줄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파천검가에서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될 테고, 게티아들을 상대하기 위한 협조를 받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유럽 쪽 마법사들과 손을 잡으려고 할 때도 적탑이 있으면 도움이 될 터.
그러니 이채화에게 도움을 주는 데 아까울 게 없었다.
오히려 그녀를 도와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았다.
‘6서클 마법사와 적탑의 후원이 있으면 든든하겠군.’
신유현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마법 토론을 끝낸 신유현은 남연아와 함께 최유리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경매 창고에 왔다.
경매 낙찰품을 미리 받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이건 배송을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경매 창고에 도착한 남연아는 혀를 내둘렀다.
다른 경매품들은 바로 받아서 들고 가도 3성 네임드 유니크 보스 헤카톤 비틀은 들고 가기 불편해 보였기 때문이다. 뿔과 몸통 길이를 합치면 3.5미터나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였으니까.
하지만 신유현은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괜찮아요. 가지고 갈 방법이 있으니.”
그러자 남연아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어떻게요?”
“이렇게요.”
- 까망아.
- 뀨!
마음속으로 까망이를 부르자 귀여운 울음소리가 신유현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 직후 신유현의 그림자가 커졌다.
하지만 창고가 전체적으로 살짝 어두운 탓에 남연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윽고 신유현의 그림자 속으로 헤카톤 비틀이 조금씩 빠져 들어갔다.
그 모습은 마치 창고 바닥 밑으로 헤카톤 비틀이 사라져 가는 것처럼 보였다.
“어? 어?”
그렇게 눈앞에서 거대한 몸을 가진 헤카톤 비틀이 사라지자 남연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예요?”
“비밀입니다.”
신유현은 웃으며 답했다.
그러자 남연아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유현 씨는 정말 비밀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좀 비밀이 많죠.”
“마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것 같고, 특이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법이야 이론을 좀 들여다봤을 뿐이고, 스킬도 연아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건 아니에요.”
신유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남연아는 모를 것이다.
신유현이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온 회귀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불사왕의 진전을 이어받았다는 사실까지도.
“그럼 이제 연아 씨의 연구소로 가 볼까요? 신형 코트가 어떤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중요한 이야기도 있거든요.”
“중요한 이야기요?”
“네. 가능하면 단둘이서 이야기했으면 좋겠네요.”
“아, 알겠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신유현의 태도에 남연아도 덩달아서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감과 설렘, 그리고 긴장감이 살짝 깃들어 있었다.
“그럼 갈까요?”
“네.”
그렇게 신유현은 남연아와 함께 그녀의 아티팩트 연구소로 향했다.
과연 신형 코트가 어떤 물건일지 기대하면서.
그리고 남연아는 차를 끌고 오겠다며 샤로테 호텔 로비 앞에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부아아아아앙!
신유현의 눈앞에 예쁜 빨간색 오픈형 스포츠카인 포르쉐 박스터를 탄 남연아가 나타났다. 그리고 신유현 앞에서 남연아는 소리쳤다.
“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