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23화 (23/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3화

“아, 오셨군요.”

신유현의 등장에 회의실 앞에 서 있던 협회 직원이 반색하며 맞았다.

그리고 헌터들도 적잖이 술렁였다.

신유현이 파천검가의 직계였으니까.

그만큼 국내 헌터들 사이에서 파천검가가 가지는 위명은 매우 컸다.

전 세계에서 손에 꼽는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철혈의 검왕 신성일이 있는 집단이니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신유현입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강유찬입니다.”

“김우성입니다.”

4성 헌터들을 시작으로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나눈 신유현은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때 신유현을 안내한 직원이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제가 빼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신유현은 자신이 의자를 빼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단상에 있던 협회 직원 중 한 명인 이성재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다른 직계와는 다르군.’

파천검가의 직계들은 3성이 되면 협회에서 헌터 라이선스를 발급받는다.

그건 3성이 된 문하생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협회에서는 파천검가의 직계들이 찾아오면 최상급으로 예우하며 모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철진은 협회에 서비스가 좋지 않다고 시비를 걸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때 신철진이 부린 행패 때문에 헌터 협회는 파천검가의 직계들을 대하는 데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언제 신철진처럼 행패를 부릴지 몰랐으니까.

그런데 신유현은 달랐다.

다른 직계들과 달리 스스럼이 없는 느낌이었다.

당장 방금 전만 해도 신철진이었다면 자기 자리를 왜 미리 세팅해 놓지 않았냐며 시비를 걸었을 테지.

그 때문일까?

협회에서 헌터들을 관리 담당하는 팀장인 이성재는 호의적인 눈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하지만 신유현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남두그룹의 장녀, 남연아.’

회의실 단상에서 협회 직원인 이성재가 이번 조사대 임무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 사이, 신유현은 여성 헌터 한 명을 바라봤다.

현대식으로 개량한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퓨전 한복 위에 과학자 같은 하얀 가운을 걸치고 있는 여성.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등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였다.

그리고 마도공학자이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눈가에 다크 서클이 살짝 있는 퀭한 인상이었다.

마도공학자들은 배리어 코트와 같은 마도공학의 산물인 아티팩트를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 개발하는 엔지니어들이기 때문이다.

현대에서 아티팩트란 마법과 과학의 결정체로 초인 헌터들의 기본 장비였다.

수많은 기업들이 아티팩트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으며, 특히 남두그룹은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대기업으로 아티팩트 개발의 선두주자였다.

남연아는 남두그룹에서 마도공학의 천재로 불리며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지.’

강릉에서 발생한 미확인 던전 게이트 조사대에서 생존자는 4성 헌터 단 한 명뿐.

헌터 협회에서는 감추고 싶어 하는 큰 실태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두그룹의 장녀까지 연루된 사건이지 않은가?

그 때문에 헌터 협회와 남두그룹은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시켰다.

자신들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나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신유현은 자택에서 근신 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문에서 쫓겨났기에 바깥세상에 대한 정보를 잘 알지 못했다.

거기다 헌터 협회와 남두그룹에서 정보를 은폐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은 알 수 없었다.

단지 무색 던전의 등급이 3성이며 생존자가 한 명이고 이상하게 생긴 마수들이 있다는 사실만 들었을 뿐.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

무색 던전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무색 던전의 생존자.

그가 속한 신인 헌터 파티가 전멸하는 사고가 몇 번인가 발생했다.

그 사실을 수상히 여긴 헌터 협회에서 추궁한 결과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때문에 그가 무색 던전 조사대를 전멸시켰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신유현은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이전 삶과는 달리 이번 조사대에는 자신이 참가한다.

그리고 이번 조사에서 남두그룹의 장녀인 남연아를 구해 준다면.

‘내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마도공학자로서의 실력과 남두그룹이 가진 자금력.

만약 그녀와 친해질 수 있다면 가문 내에서 신유현의 입지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남두그룹의 연구소에서 개발하는 아티팩트들은 상당한 성능을 자랑하니까.

‘문제는…….’

신유현은 회의실 중앙 테이블에 앉아 있는 4성 중급 헌터 두 명을 바라봤다. 둘 다 나이는 서른 안팎이며 체격도, 실력도 비슷했다.

‘과연 누구일까?’

분명 저 둘 중 한 명이 조커, 빌런일 테지.

* * *

회의실에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조사대는 강릉으로 출발했다.

“이거 남연아 씨와 유현 씨 덕분에 편하게 가는 건가?”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쓴 4성 헌터들 중 한 명인 강유찬이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래대로였다면 조사대는 차를 타고 이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남두그룹의 장녀와 파천검가의 삼남인 신유현이 포함되어서인지 조사대 일행은 치누크 수송 헬기를 타고 빠르게 강릉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조사대 일행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강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둘 다 빌런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그사이 신유현은 4성 헌터들을 파악하려 했다.

강유찬은 유쾌한 성격에 말이 많은 인물이었고, 김우성은 말은 없지만 신중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또한 둘 다 4성 헌터로서 위엄을 풍겼다.

겉모습과 성격만 봤을 때, 그들 모두 도저히 조사대를 학살하고 신입들을 전멸시킨 빌런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여섯 명의 헌터들은 3성 중급에서 상급 사이의 초인들이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후반 정도.

이것만 봐도 파천검가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신유현을 습격했던 정태성 일행들만 해도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3성 중급과 상급이었으니까.

‘던전에 들어가서 찾아야겠군.’

현재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4성 헌터들이었다.

하지만 둘 중 누가 빌런인지 알 수 없는 상황.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렇게 신유현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강릉에 도착한 조사대 일행은 치누크 수송 헬기에서 내렸다.

“저게 무색 던전…….”

3성 헌터들 중 한 명이 긴장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 멀리 강릉시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미확인 던전 게이트가 보였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지만 지그재그로 공간을 가르고 하얀 금.

하얀빛이 새어 나오는 공간의 틈은 다른 던전 게이트보다 훨씬 더 컸다.

그리고 그 너머로 황폐해진 광야가 펼쳐져 있었다.

6성 이상 보스급 거대 마수에 의해 초토화가 된 강릉의 현재 모습이었다.

‘미개척 위험 지역인가.’

신유현은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바라봤다.

던전 게이트에서 수많은 마수들이 뛰쳐나오는 스턴피드 현상.

강릉은 운이 없었다.

6성 던전 게이트가 발생하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스턴피드 현상이 발생했으니까.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수들과 함께 6성 보스급 거대 마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로 인해 강릉은 괴멸적인 타격을 입으며 초토화가 되었고, 지금도 다양한 등급의 마수들이 배회하는 위험 지역이 되어 버렸다.

그 때문에 섣불리 강릉 지역을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현재 무색 던전 주위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고, 헌터 협회에서 파견한 초인들이 과거 강릉이 있던 광야를 감시하고 있었다.

‘이전 삶에서는 강릉 근처에도 갈 수 없었지.’

앞으로 수년 뒤, 강릉에는 수많은 던전 게이트가 발생한다.

그리고 또다시 던전 게이트에서 마수들이 뛰쳐나오는 스턴피드가 생긴다.

그 때문에 강원도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수들로 가득 차게 되며 서울시까지 집어삼켜졌다.

‘그것도 게티아 놈들 때문이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미 게티아들도 이쪽 세계로 넘어온 상태였다.

그 때문에 마수들을 상대해야 할 초인들이 게티아 놈들 앞에서 부지기수로 죽어 나갔다.

‘그나마 무색 던전이 초입에 발생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무색 던전은 강릉시로 들어가는 입구보다 좀 더 앞쪽에 생겨났다.

덕분에 마수들이 배회하는 도시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던전에 진입한다. 각자 최종 준비를 마치도록.”

미확인 던전 게이트 앞에 도착하자 강유찬이 3성 헌터들을 향해 말했다.

이번 조사대의 대장은 강유찬이었으며, 부대장은 김우성이었다.

그들은 4성 헌터들이었으니까.

약육강식의 세계답게, 초인 사회에서는 등급이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하대를 할 수 있었다.

다만 같은 3성일 경우 세부 등급과 상관없이 동기와 같은 관계를 갖는다.

그렇기에 강유찬과 김우성은 자연스럽게 3성 헌터들에게 하대했다.

“협회에서 이야기한 대로 던전에 입장하면 팀을 둘로 나누겠습니다.”

하지만 신유현과 남연아는 예외였다.

둘은 신분이 달랐으니까.

신유현은 대한민국 4대 명문 무가 중 하나인 파천검가의 후계자 후보이자, 사대수호검전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남연아는 대한민국에서 아티팩트를 연구 개발하는 대기업 남두그룹의 장녀이며 장래가 촉망받는 마도공학자였다.

그 때문에 비록 등급이 낮다고 해도 신분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존대를 했다. 지금은 그들이 자신보다 등급이 더 높기 때문에 최소한의 예우를 해 준 것이다.

그리고 초인들 중에서 강유찬과 김우성은 그나마 예의가 있었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둘 중 누가 조커인지 파악하기가 힘들었지만.

“사전에 이야기한 대로 무색 던전의 등급이 3성이면 두 팀으로 나누어 조사를 시작한다. 가능하면 전투는 피하도록.”

“반대로 4성 이상이면 퇴각하겠다.”

강유찬과 김우성은 3성 헌터들을 돌아보며 차례대로 말했다.

무색 던전은 들어가기 전에는 등급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예상할 수 없는 돌발 상황이 많았다.

그래서 3성 등급이면 공략을 해도 되지만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팀을 나눠서 조사한다.

하지만 4성이면 즉시 퇴각해야 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그럼 진입하겠다.”

일행들의 준비가 끝나자 조사대는 하얀빛이 새어 나오는 무색 던전을 향해 들어갔다.

[미확인 던전 게이트에 진입합니다.]

신유현은 몸이 붕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던전 게이트에 진입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감각이었다.

이제 몇 초 뒤면 인류가 던전이라고 부르는 배틀 필드로 전이를 완료하겠지.

그 순간.

[긴급 상황 발생. 시공간 완충지대인 배틀 필드 형성에 실패하였습니다.]

[비상 시스템 발동. 시공 터널 구축 완료. 긴급 배틀 필드 구축…… 실패. 재시도합니다.]

[……긴급 배틀 필드 생성 완료. 전이를 시작합니다.]

의문스러운 시스템 메시지가 신유현의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여긴 뭐지?”

전이를 완료한 신유현은 자신이 미지의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