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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21화 (21/258)

검술 가문의 네크로맨서 21화

“부전주님이 여기엔 무슨 일입니까?”

신유현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라면 대충 짐작이 갔다.

분명 정태성 일행에 관한 일 때문이겠지.

“죄송합니다. 전주님의 안전을 지켰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신유현의 물음에 부전주인 최정훈을 시작으로 이연화와 김재현이 고개를 숙이며 일단 사과부터 해 왔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 있는 신유현은 현무전의 주인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신유현을 호위하는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주작전의 말단 대원들이 신유현의 단전을 폐쇄하기 위해 습격해 온 것조차 막지 못했다.

그것도 가문이 관리하는 구역에서.

아무리 신유현이 현무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전주라고 해도 정태성 일행들의 습격은 그들의 실책이었다.

“그건 여러분들의 공통된 의견입니까?”

“예.”

최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 말에 신유현은 물끄러미 최정훈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자신을 대신해서 현무전을 운영해 온 인물.

나이는 40대 후반이나 외모만 놓고 보면 30대 후반으로 젊어 보였다.

그리고 짙은 브라운 계열의 배리어 코트를 입고 있는 덕분인지 젠틀한 느낌의 사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무려 5성 최하급의 실력을 가진 절정 경지의 검사였으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로 유명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현무전은 훨씬 더 힘든 상황에 처했었겠지.’

이전 삶에서는 알 수 없었다.

그 당시 현무전의 상황이 어땠는지.

하지만 과거로 회귀를 한 지금, 현무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파천검가의 3남인 신유현이 직계라는 이유로 현무전의 전주로 부임했으니까.

기력 개방도 하지 못한 신유현이 전주로 온 탓에 현무전은 시간이 흐를수록 세력이 작아져 갔다.

그나마 부전주인 최정훈의 성실한 성격 덕분에 그럭저럭 지금까지 현무전을 운영해 올 수 있었을 뿐.

“솔직히 의외네요. 여러분들이 절 만나러 올 줄은 몰랐는데.”

신유현은 자신을 찾아온 인물들을 둘러봤다.

부전주인 최정훈이 찾아올 거라고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무전을 운영하는 핵심 부서 3인이 다 함께 찾아올 줄이야.

“상황이 변했으니까요.”

신유현의 말에 현무전의 인사를 담당하는 인물인 이연화가 웃으며 말했다.

나이는 30대 후반이나 겉모습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미녀.

그녀는 현대식으로 개량한 세련된 디자인의 퓨전 한복을 입고 있었다.

퓨전 한복의 상의는 하얀색 바탕에 붉은색 무늬가 들어간 고급스러워 보이는 저고리였고, 하의는 옆단이 크게 트인 짙은 보라색 치마로 하얀 다리가 훤히 드러나 보였다.

또한, 퓨전 한복은 디자인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배리어 코트와 같은 방어 성능도 가지고 있었다.

퓨전 한복은 그녀 전용 전투복이었다.

그리고 손에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긴 담뱃대가 들려 있었다.

‘인사부장, 이연화.’

신유현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머리카락과 검은 눈을 가진 동양적인 미녀.

하지만 다크 서클이 보이는 눈가와 나른한 표정, 그리고 화려한 한복 차림 때문에 관능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위험한 느낌도 들었다.

실제로 그녀를 건드렸다가 손모가지가 날아간 자들도 있었다.

그녀는 현무전 내에서 손가락에 꼽는 강자로 4성 최상급의 실력을 가진 검사였으니까.

“설마 우리 셋째 도련님이 힘을 숨기고 있는 줄은 몰랐네요. 후후훗.”

이연화는 나른한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보며 웃어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를 비롯한 최정훈과 김재현은 신유현이 힘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

그렇지 않고서야 재능이 없다는 소리를 듣던 신유현이 단기간에 3성 검사들을 제압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신유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딱히 숨기고 있던 건 아닙니다. 실제로 기력 개방을 한 지 아직 며칠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럼 정말 단기간에 이만큼이나 강해졌다는 말입니까?”

이번에는 현무전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재정관리부장 김재현이 놀란 표정으로 물어 왔다.

그 또한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30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안경을 쓰고 있는 탓인지 깐깐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였다.

신유현은 김재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그러자 그들은 놀란 표정으로 신유현을 바라봤다.

“허, 그런 일이…….”

그들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신유현이 어떤 방식으로든 힘을 숨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힘을 숨기고 있다가 드러냈다는 편이 더 현실성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힘을 숨기고 있던 게 아니라니?

그렇다면 정말 믿을 수 없는 성장 속도이지 않은가?

비록 아직 3성 최하급이긴 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상상할 수 없는 성장 속도였다.

“그래서 사과를 하기 위해 절 찾아온 겁니까?”

신유현은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 대충 느낌이 왔다.

이전 삶에서는 그들이 다 함께 자신을 찾아온 적이 없었다.

그나마 가끔 부전주인 최정훈이 찾아왔을 뿐.

“저희들은 셋째 도련님을 따르기로 결정했습니다.”

최정훈을 시작으로 이연화와 김재현이 신유현의 앞에서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그들은 신유현을 현무전의 전주로 인정하고 따르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사실 그들은 신유현이 2성 던전 타락한 고블린의 숲에서 보스를 잡고 돌아왔을 때부터 고심하고 있었다.

신유현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말 것인지.

과거에는 현무전의 위세가 드높았지만, 마나의 재능이 없다고 알려진 신유현이 부임한 이후부터는 하락세를 걸었다.

다른 수호검전이 유능한 인재들을 빼앗아 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현무검대는 축소되어 갔다.

재정도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 스스로가 신유현을 내칠 수도 없었다.

신유현을 전주 자리에 앉힌 인물은 다름 아닌 파천검가의 가주 신성일이었으니까.

그들 마음대로 현무전의 전주를 바꾼다는 건 곧 가주인 신성일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과도 같았다.

그 때문에 그들은 내심 신철호가 현무전의 전주로 새롭게 부임해 오기를 기대했다.

가문에서 역대급 재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는 신철호라면 현무전을 다시 재건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믿었던 신철호가 신유현에게 패했다는 게 아닌가?

거기다 파천검가의 가주인 신성일이 신유현을 가문의 일원으로 인정하기까지 했다. 이연화의 말대로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셋째 도련님이라면 현무전을 재건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라면 아직 소속을 정하지 않은 실력 있는 문하생들을 영입할 수도 있겠지요.”

“검대원들이 늘어나서 던전에 파견할 수 있다면 재정 상황도 나아질 겁니다.”

그들은 희망적인 표정으로 한마디씩 했다.

특히 마지막 재정관리부장인 김재현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대부분 수호검전은 던전을 공략하고 얻는 이익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검대원 숫자가 적어진 현무전은 던전 공략을 많이 하지 못하기에 재정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신유현이라면 현무전의 상황을 바꿀 수 있을 터.

후계자 후보의 직계 권한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그럼으로 인해 현무검대의 숫자를 늘려서 재정 상황이 좋아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저도 현무전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재건할 생각이지요.”

신유현은 최정훈을 비롯한 이연화와 김재현을 바라봤다.

현무전의 재건을 위해 그들이 따라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데 제가 여러분들을 어떻게 믿죠?”

“예?”

냉정하기 짝이 없는 신유현의 말에 최정훈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이연화와 김재현도 마찬가지.

그들은 신유현의 말을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신유현은 차가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재차 말을 이었다.

“현무전의 재건은 제가 믿을 수 있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들을 믿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군요.”

“그건 어떤 의미입니까?”

“여러분들은 현무전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하지 않았지요.”

신유현의 말에 최정훈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금 신유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챈 것이다.

신유현의 눈앞에 있는 그들 세 명은 각자가 담당하고 있는 부서보다 먼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전주님의 호위 임무 말이로군요.”

“예.”

신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신유현은 현무전의 전주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신유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신유현을 외면해 왔다.

그 결과 정태성 일행이 신유현을 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그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그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 점에 관해서는 저희들의 잘못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최정훈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호위 임무에 관해서는 그들의 잘못이라고 명확히 인식한 것이다.

‘좋아.’

신유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초인 사회는 약육강식의 세계.

그건 눈앞에 있는 인물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틈을 보인다면 자신을 손에 쥐고 흔들려고 할 터.

‘내가 주도권을 잡아야 돼.’

그래서 이미 한 차례 사과를 받았음에도 호위 관련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그들을 손에 쥐고 흔들 생각이었으니까.

“일단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제 책임이 완전히 없는 것도 아니니까요.”

신유현은 자신 때문에 현무전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힘이 없는 존재가 전주로 있었으니 여러 가지 차별을 받았을 테지.

실제로 지금의 현무전은 과거에 비해 세력이 약해져 있는 상황.

신유현이 전주로서의 일과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래서 일단 한발 물러나 사과를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신유현의 대답에 최정훈은 한시름 놓은 듯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이연화와 김재현의 표정도 살짝 풀렸다.

분명 신유현이 자신들을 믿기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신유현이 사과를 받아들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단, 여러분들이 정말 절 따르고 싶다면 신뢰를 증명하십시오.”

신유현은 그들을 바라보며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유현이 사과를 받아 준 이유는 그들에게 배려를 했다는 느낌을 주면서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위함이었으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현무전의 전주로서의 능력과 자격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무엇을 했죠?”

신유현은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가문의 후계자 후보까지 되었다.

이 정도면 현무전의 전주로서 자신을 충분히 증명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유현에게 무엇 하나 보여 준 게 없었다.

단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고 말로 사과를 했을 뿐이고, 무릎을 꿇으며 자신을 따르겠다고 말만 했을 뿐.

지금까지 자신을 외면하고 무시해 왔으면서 말이다.

“제가 여러분들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 줬으면 합니다.”

“…….”

신유현의 말에 그들은 침묵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은 건, 그들의 선택뿐.

설령 그들이 자신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떠나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게티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인물들이 필요했으니까.

잠시 후, 최정훈의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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