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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39화 (239/241)

00239  마지막  =========================================================================

“의식이 시작되었다, 지금 그녀를 막지 않는다면 마계는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오?”

“72악마군주는 마왕을 섬기는 자들, 그러나 진정한 의미는 왕이 되고자하는 후보들이라고 봐야겠군.”

“후보?”

지금도 헬 게이트에선 마계의 암흑군단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으니, 그녀는 재빨리 설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괜히 서열이란 것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들의 서열이란 누가 왕의 자리에 도전할 자격을 갖췄는지 알아볼 수 있는 척도이고, 서열 1위가 되었을 땐 지상으로 강림해 진정한 마왕에 어울리는가를 시험받지.’

중간계는 분명 탐나는 곳이긴 했다. 마계에선 보지 못한 풍족함과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곳이었고, 생명이 살아가기에 최적화된 장소였기 때문.

하지만 죽음을 먹고 사는 마계의 존재들에게 반드시 필요하진 않았다.

그녀는 빠르게 의미를 전달하려고 의념으로 대화를 걸었다.

‘본좌가 지키던 곳은 힘의 손실 없이 중간계로 나올 수 있던 곳, 그러나 베히모스로 틀어막았으니 앞으로 수만 년간 놈의 수명이 다할 때까진 열릴 일은 없을 것이다.’

‘저걸 처리할 시간도 없소?’

‘그러다간 늦는다. 아스타로트가 마왕이 되면 중간계는 그녀의 치맛바람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치명타를 입게 될 것이다.’

아스타로트는 다산의 화신, 성욕이라면 그녀를 따라갈 마족이 없었고, 인간이 아닌 이종족이더라도 그녀의 마수를 벗어나기 어려웠다.

누군가는 인간을 홀리는 데엔 몽마 서큐버스나 인큐버스가 최고라 했지만 그들은 끽해야 꿈속에서나 정기를 갈취하는 자들, 아스타로트와는 급이 달랐다.

마왕이 되어 힘의 계승까지 이루어진다면 그야말로 폭발적, 인간을 홀리던 악마가 신까지 홀리게 될지 몰랐다.

‘마법사는 달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저들에게 맡기고 우린 아스타로트에게 가자.’

우락크는 불릿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당장의 생명을 구하느냐, 모두의 미래를 구하느냐.

일반적인 상식으론 당연히 모두의 미래를 구하겠지만 저들 중에는 불릿의 측근인 가신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렇게 고심하던 불릿에게 선택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흙덩이였다.

꾸욱, 꾸욱.

고개를 아래로 내리니 흙덩이가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명령만을 기다린 채 몰려드는 암흑군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직 불릿의 옷자락만이 그녀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요소인지라 너무도 애처로웠다.

흙덩이가 공포를 극복하지 못했음에도 자신을 따라온 이유를 떠올린 불릿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스윽스윽.

“불릿 오, 오빠?”

“카미스 백작! 미러링 마탑주! 본체를 칠 것이니 조금만 버텨주시오!”

“나도 가겠소!”

미러링도 심상찮은 마기를 감지했기에 심처로 들어서려 했으나 불릿이 이를 말렸다.

“불릿 폰 바포 백작 진(眞)의 이름으로 맹세한다! 날 믿어어!!”

절박한 그의 음성에 셰실리코프가 크게 외쳤다.

캉!

“여기는 저희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십쇼!”

“삼광! 그게 무슨 소리인가! 각하만 저 안으로 들어가라니?!”

“투툰께서 당신을 보호하라 명하셨습니다!”

“저도 가겠습니다!”

셰실리코프가 해골전사의 목을 팔로 비틀며 외치자 크레파토스, 카미스 백작, 제노시스가 연달아 이에 반박했다.

그러나 그들은 불릿의 이어지는 말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진(眞)의 이름에 거짓은 없다!”

왕국에 단 둘뿐이며 목숨보다도 중히 여기는 진(眞)의 맹세에 그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그들은 정신없이 전투를 치르다가 더 이상 말을 않고 멀어져가는 불릿의 등만 힐끔힐끔 훔쳐볼 뿐이었다.

“이놈들!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문을 막아선 사내는 일그러진 얼굴과 반쯤 타버린 머리카락으로 흉측한 몰골을 가리고 있었다.

이 사내가 바로 흑마법사의 수장이자 아스타로트를 섬기는 신도, 라스불그였다.

라그불그 또한 한때 흑탑이라 불렸던 마탑의 탑주, 게다가 그는 대륙의 마법사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무언가에서 벗어났기에 온전히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라스불그의 주특기는 소환이고 아스타로트의 가호를 받아 마계의 마족도 소환이 가능하다.

“그분의 종이여, 부름에 답할지어다! 나와라, 암흑군단….”

순간, 그는 멈칫하더니 그대로 멈추어섰다. 라스불그에게 지옥송곳을 명하려던 불릿은 갑자기 그가 움직이질 않자 또 다른 수작인가 싶어 발걸음을 멈췄다.

“이…럴 수…….”

스르륵-

부릅떠진 라스불그의 눈에서 억울하다는 감정이 여실히 나타나며 목에 실선이 그어졌고, 이내 로브며 겉에 드러난 팔목까지 조금씩 어긋나더니 바닥에 쏟아졌다.

촤악!

철푸덕-, 투두둑-

“히익!”

“무슨 일인가?!”

불릿은 기겁하는 흙덩이의 눈을 재빨리 팔로 끌어안으며 가렸는데, 그 순간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저런 놈에게 소모할 시간은 없다, 어서 가자.”

“말이라도 하고 하시오! 애가 놀라잖소!”

“별…꼴이야.”

“???”

“아니다, 그녀를 따라가자.”

그들은 자신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허무하게 최후를 맞은 라스불그를 뒤로하고 앞으로, 앞으로 향했다.

* * *

탁탁탁-

“후욱, 후욱!”

“헤엑…, 히, 힘들, 헤엑….”

불릿과 흙덩이는 정령력을 아끼기 위해 육체의 힘만으로 복도를 달리고 있었다.

아스타로트가 얼마나 강할지 예상이 되질 않았기에 그런 것인데, 아스타로트의 강함을 라스불그와 비교해선 안 되었다.

하지만 라스불그가 허무하게 죽었다고 그가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분수에 맞지 않는 강력한 존재를 소환하기 위해 방어에 소홀했던 것이 패착.

그렇다곤 해도 마스터를 뛰어넘는 경지의 우락크에겐 당해내진 못했을 것이다.

“나! 헤엑! 더 못! 헤엑, 헤엑!”

“우락크! 후욱! 복도가 너무 긴 것 같소! 후욱!”

불릿의 말은 이대론 죽도 밥도 안 될 것 같으니 조금 속도를 낮추자는 의미였지만 그녀는 다르게 해석했나보다.

그녀가 우뚝 멈춰 서자 흙덩이는 다리가 풀리듯 주저앉았다.

풀썩!

“헤엑, 헤엑!”

“안 되겠군, 후욱, 흙덩아, 치유.”

“으응, 헤엑, 응!”

우우웅-!

치유능력을 사용하자 풀려가던 다리에 활력이 생겨나고 가빴던 숨이 한결 나아졌다.

“후우우…, 이제 됐으니 다시 가면 될 것 같소.”

“아니다, 이만하면 됐다.”

“? 아직 통로는 한참 남았소만?”

복도의 끝이 보이질 않았음에도 우락크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시간에 여유가 없었기에 어서 움직이자고 재촉하려 입을 여는 순간, 그녀의 입이 먼저 열렸다.

“이미 도착했다. 이 더러운 창년! 언제까지 우리를 농락할 셈이더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우락크의 목소리에 화답하듯 공간이 일그러지며 또 다른 제단이 나타났다.

아까의 제단과는 다르게 서른 명 정도가 들어서면 꽉 찰 것 같은 아담한 사이즈였다.

그리고 끄트머리에 있는 제단엔 다리를 꼬고서 고혹적인 자세를 취한 여성이 있었고, 그 여성과 쏙 빼닮은 조각상이 양쪽에서 각자 다른 자세로 조각되어 있었다.

“네년이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지 난 가만히 있었는걸? 그치, 자기야?”

우락크의 성난 말에 차분히 대꾸하던 여성은 가슴을 엇갈려서 가린 가죽 띠를 한번 툭 튕기더니 옆에 우뚝 서있는 남성의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불릿은 남성을 보고서 눈이 부릅 뜨였다.

“사령관!!?”

“…….”

“사령관, 나다! 불릿이라고! 사령관! 사령관! 아틱 커맨더 이놈아, 나란 말이다!!”

“…….”

“레인보우 아틱 커맨더어!!!”

불릿이 목청이 터져라 외쳐도 아틱 커맨더는 묵묵부답으로 대신하며 아스타로트의 야한 손길을 받고 있었다.

그런 불릿의 모습에 흙덩이는 이상하게 바라보았고, 우락크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아는 사람이야, 오빠?”

“이미 저년의 마수에 빠져들었다, 포기하라.”

불릿의 반응에 창년이라 불릿 여성, 아스타로트는 입가를 가리며 색기를 발산했다.

“호호호! 포기는 너희가 해야지, 응? 신력도 없는 년이 뭐하려고 여길 왔어?”

“…죽여버리겠다.”

고오오-

아스타로트의 도발에 우락크가 살기를 뿜어내자 아스타로트도 끈적한 마기를 발산해냈다.

그리고 이 정도의 기운들이라면 인간인 불릿과 흙덩이(?)는 견뎌낼 수 없어야 했지만, 이상할 정도로 둘은 차분할 수 있었다.

“둘이 뭐하는 거야?”

“왜 아무렇지도 않지?”

정령력을 끌어올리긴 했어도 그 외에 둘에게 있어 방어수단은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기에 마법사들을 믿고서 관련된 아티펙트를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 또한 불릿의 실수였지만, 그렇다면 지금은 왜 멀쩡한 것일까?

“그야 당연하지! 정령력은 신력의 일종이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조력자인 우락크가 아닌, 죽여야 할 대상인 아스타로트에게서 튀어나왔다.

그녀는 우락크와 기 싸움을 펼치면서도 눈은 불릿에게로 향해 있었는데, 안광에서 사악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이 과연 겉모습처럼 요녀라는 느낌을 확연히 주고 있었다.

“신력…?”

바포가는 대대로 정령사를 배출한 유구한 가문, 그런 가문의 정통계승자인 불릿이 정령력이 뭔지도 모를 리 없었다.

신력은 신을 믿는 자만이 품을 수 있는 것, 그래서 신관들이 펼치는 치료마법이 매우 놀라운 기적을 선보이는 것이며 마물을 상대로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령력은 정령에게 바치는 일종의 거래대가와 비슷했다.

불릿이 정령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신체능력을 약간 상승시킨다거나 기세를 발산하는 정도.

그 외에는 라그나로크라 불리는 기운을 폭사시켜 상대를 소멸로 이끄는 자폭 같은 것?

‘설마, 그래서 가이아 여신이 흙덩이의 정신체를 정령으로 정했던 것인가?’

신격을 낮춰 영원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긴 했어도 가이아 여신은 흙덩이에게 많은 것을 주고 싶었나보다.

첫 만남부터 흙덩이는 불릿의 빈약한 정령력으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각성과 본체를 찾은 후에는 정말 놀랍다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특히 첫 만남에서는 본래 나이대로 9, 10 살 정도로 보였던 가슴이 지금은 한손에도 안 들어올 정도로 풍만하게….

“큭, 대리자여! 이상한 생각을 보내지 말거라!”

어느새 검을 뽑아든 우락크가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불릿에게 눈을 흘기니 불릿도 화들짝 놀라 망상(?)을 집어던졌다.

“거기 오빠, 밤일이라면 내가 전문인데 이쪽으로 붙지 그래? 그러면 서로 기분 좋게 피곤할 수 있잖아? 이 오빠처럼, 호호홋!”

과연 창녀들의 수호신이라 불릴만한 입담이었다. 자신을 죽이려고 온 자에게 자신을 담보로 유혹을 하다니, 넘어가면 바보이겠지만 기 싸움을 하는 중에도 여유를 부리며 아틱 커맨더의 솟구친 바지춤을 잡는 미려한 손길은 남자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안 돼! 불릿은 내꺼야!”

“흐응, 그게 마음대로 될까 몰라?”

흙덩이가 자신의 가슴에 불릿의 팔을 끌어안는 것을 보고 아스타로트가 가느다란 손가락을 혀로 핥으니 불릿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며 음욕이 치솟음을 느낄 수 있었다.

“크으윽….”

“거기에 넘어가지 마라! 바보같이!”

불릿이 아스타로트의 권능에 넘어가려하자 우락크는 기운을 폭발시켜 그의 혼탁해진 정신을 되돌려주었다.

“흐아아아앗-!!”

고오오오-!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며 뽑아든 검에 마나가 응축되자 그것은 푸르게 불타오르며 아스타로트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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