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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34화 (234/241)

00234  마지막을 향해  =========================================================================

마법사로부터 체온을 보존하는 마법을 받자 흙덩이의 떨림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원래 흙덩이는 평균보다 살짝 높은 체온을 지녔기에 만지면 따뜻한 편이었는데, 마법으로 인해 외부로 빼앗기는 체온이 줄어드니 불릿은 마치 손난로를 품은 것처럼 따스했다.

“이제 내려서야지?”

“우웅, 벌써?”

“네가 해줄 일이 있어.”

마법사들이 흙덩이를 찾을 이유란 것은 정해져 있었기에 불릿은 이미 대략적인 짐작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투정을 받으며 바닥에 내려놓으니 살짝 불퉁해진 볼을 보여주는 흙덩이.

“아저씨는 뭘 부탁할 건데?”

“아, 아저씨….”

충격이라도 받은 것인지 마법사는 잠시 비틀거렸으나 이내 중심을 잡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맑고 순수한 눈망울은 악의가 없었음을 알려주었기에 더욱 충격을 받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흙덩이는 어서 말을 하라고 재촉을 하고 있었다.

“바포 부인이여,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겠습니까?”

대지의 기억을 사용해달란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수상쩍거나 진행이 막혔을 때에 흑마법사가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기억을 읽을 수 있는 기간 내에 흑마법사가 다녀갔다면 뭐라도 건질 수 있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함정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우우웅-!

그녀가 정령력을 일으키자 바닥으로부터 흙인형이 솟아나 꾸물럭거리기 시작했다.

그 후 모래와 흙을 덧칠해 마치 로브를 착용한 듯한 모습을 연출해주어 주변에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마법사들과 비슷한 복장을 갖추게 되었다.

“놈들인가 보군.”

“나 잘했어?”

며칠 간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던 놈들에 대한 단서를 찾아냈다는 것에 흙덩이는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기양양해 했는데, 불릿은 그런 그녀의 약간 차가운 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불릿은 진즉에 체온을 보존해주는 마법 히트 프로텍트를 받았기에 그녀보다 체온이 높아 그녀의 차가운 입술을 녹여주고 있었다.

그런 후 살짝 눈을 감은 흙덩이에게 혀를 감아가며 진공키스를 했다.

“츕, 쪼오옥-.”

“하아, 아아, 쭙-아아아….”

결혼식을 치르진 않았으나 부부사이기 때문에, 그리고 선남선녀이어서 보기는 참 좋았다.

문제는 눈앞에 흑마법사의 인형이 행동을 취하기 직전 차가운 공기를 밀어낼 정도로 끈적한 애정행각을 취하니 마법사는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자료를 받았던 것과 똑같으시네.’

바포 백작의 육체가 회춘(?)한 뒤론 강한 성욕을 보인다더니 맞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편단심(?)이라서 세 부인을 제외하곤 은근히 들이대는 여자들에겐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하니 방탕해진 것은 아닌 듯했다.

‘근데 왜 내 앞에서 이러느냔 말이다!’

마법의 힘이 있다지만 추운 것은 추운 것이다. 본인의 몸이야 마법으로 보호한다지만 나머지 도구나 음식은 여전히 차가웠으니 인간의 따뜻한 체온과는 상반되어 더욱 차이가 났다.

상부에서도 적극 지원해주라는(말을 했음에도 주는 불릿이었으나 대외 상으론 마탑 또한 연합의 한 축) 명령이 있었기에 웬만하면 두 연인의 애정행위를 막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크흠, 큼!”

거의 10분이 지나도록 서로에게서 떨어지질 않았고, 달아오르는 중이었는지 흙덩이는 망토를 등 뒤로 둘러매고서 서로가 서로의 은밀한 부위에 손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보기 민망한 나머지 마법사가 기침을 뱉으니 이에 화들짝 놀라 멀어지는 두 사람이었다.

“허험, 아가?”

“으, 응…, 잠깐만.”

흙덩이도 요샌 부끄러움을 알아가는 중이어서 마법사 몇이 눈을 힐끔하며 쳐다본 것을 깨닫고 망토로 몸을 가렸다.

겨울용이라서 그런지 털도 달리고 좀 더 두꺼웠지만 기본적으로 그녀의 복장은 원피스, 다른 것은 일체 입지를 않았다.

불릿이 가슴을 주물러서 그 자리는 구겨져 있었고, 브라자가 위로 벗겨져선 거대한 둔덕의 끄트머리에 무언가 톡 튀어나와 있었다.

흙덩이는 발갛게 붉어진 볼을 어깨로 비빈 후 흐트러진 복장을 추슬렀다.

“그럼 흐, 흙덩이 할게요?”

“…그러시지요, 바포 부인.”

불릿도 민망했던지 겨울의 한기로 인해 딱딱해진 바닥을 괜히 툭툭 찼다.

그녀의 손길에 멈춰서 멍하니 있던 흑마법사의 흙인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예전의 수준을 뛰어넘어 흙이라는 것만 아니라면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정교함.

흙인형들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지팡이로 바닥을 쑤셨는데,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작은 구멍들은 마법진을 이루어가고 있었다.

“마법진?”

그리고 이 장면을 쳐다보던 불릿은 자신이 차고 있던 바닥을 훑어보았다.

“흐음….”

겉으로 보기엔 수분이 부족한 불모의 황무지다운 갈라짐이었으나 발바닥으로 비비며 모래를 살살살 지워나가니 흙인형이 만들어가던 조그마한 구멍이 연속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러한 장면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마법사는 주변의 동료들을 불러들이기에 이르렀다.

“메시지, 반경 50미터 한정.”

- ‘붉은 비’ 발령, 228로 집합!

마법사가 웅얼거리며 특수한 신호를 보내자 저 멀리 있던 마법사들까지 블링크를 시전하며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슈웅-, 슈우웅-.

1만 1천명이 죽던 그날에도 전열에 서지 않았던 마법사들이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니 불릿도 자연히 굳은 표정을 지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흑마법사 토벌로 인해 모였어도 분위기만은 가벼운 축에 속했기에 그렇다.

“큰일인가 보군.”

“불릿, 무슨 일이야?”

흙덩이는 자신이 밝혀낸 사실이지만 무슨 일인지는 알 수가 없어 어리둥절했다.

결사대의 일원이었던 불릿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있는데 세상에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흙덩이가 그러한 정보를 알고 있겠는가?

갑자기 불모지 한복판에서 사일런스를 비롯한 공간차단, 배리어 등으로 둘둘 말린 회의실이 마련되자 마법사들은 열띤 회의를 펼치기 시작했다.

“사실입니까?”

“붉은 비라는 증거는?”

“그걸 어떻게 알아냈지?”

“바닥에 구멍이….”

붉은 비라는 말에 뭉쳐든 마법사들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 그것은 붉은 비가 대규모 마법진 중에서 가장 위험한 등급에 속했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딱 한 번 등장했지만 잊을 수 없는 악몽을 대륙에 안겨준 대 마법진.

효과는 간단했다. 마법진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인 기운을 빨아들이는 부분을 극대화시킨 것뿐.

이것만 보면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사람이고 동물이고, 심지어 무생물까지 가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생기가 있으면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 결과 대지는 식물을 기를 수 없는 죽음의 대지로 변모하였고, 땅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생물도 미라처럼 말라가다 뼈도 남기지 못한 채 가루가 되어 공중에 흩날렸다.

일단 발동하면 막을 방법은 전무, 그저 효과가 다할 때까지 기다리며 그곳에서 벗어나는 것이 다였다.

“……기운 일치, 제기랄.”

한참동안 체내의 마나를 방출하던 플래티넘 클래스의 마법사, 즉 정체를 숨기고 연합군에 참여한 6대 마탑의 하나인 일루젼학파의 탑주 미러링(….)이었다.

마탑주들 중에서 가장 약세를 보이기 때문에 이런 역할엔 아군을 보호하는 프로텍터학파나 기운을 찾거나 위험을 예지해주는 점성학파가 어울렸음에도 그가 찾아온 것이다.

탑주들 중에서 누군가는 왔어야할 만큼 사건의 규모가 컸기에 그도 어쩔 수 없이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귀찮음에 가만히 있었으나 지금은 그도 나설 수밖에 없는 때가 왔다.

“심각하군.”

“언제부터 이리 된 것인지…..”

“서둘러야겠군요.”

“위치는 어디입니까?”

일루젼학파의 탑주 미러링의 확인선언에 마법사들이 시끄러워지자 미러링의 입에서 조용히 하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쉿, 생각 중이다.”

“…….”

“…….”

마법사가 높은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선 천재인 것 말고도 그 분야에 미칠 정도로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도 있었다.

그래서 경지가 높은 마법사들은 대부분이 괴팍한 성향을 지녔기에 그 중에서도 정점을 달리는 마탑주들에겐 휘하의 마법사들이라 할지라도 고분하게 말을 들어야 했다.

“불모의 황무지에 이걸 설치할 이유가 있을까?”

발동되지 않은 마법진이더라도 이들이라면 충분히 알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니 이 대 마법진은 설치된 지 얼마 안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불모의 황무지가 이리 된 이유가 곳곳에 만들어진 72악마군주를 상징하는 지하공동에서 기운을 빨아들여 중앙의 무언가로 보냈기 때문임을 카텐령의 지부장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붉은 비의 용도는 이것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비효율적이다.

이미 생기란 생기는 수백 년일지 모르는 기간 동안 빨리고 빨려 더 이상 남은 게 없었다.

얼마 전 흙덩이에 의해 마기가 정화되며 생기를 머금은 땅이 일부 있었지만 그건 황무지의 전체적 비율로 보자면 1%도 되지 않았다.

“바포 부인의 능력을 노리고 한 것 같진 않고….”

분명 반경 50미터 이내의 마법사들만 호출했으나 모여든 마법사는 어느새 천여 명에 다다랐다.

마탑에서 나온 마법사 대부분이 모여들어선 모두가 그의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마법사의 안 좋은 직업병 중에 하나인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든 미러링은 중얼중얼 자신이 아는 것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한참을 그렇게 고뇌하던 미러링의 안색은 핏기가 싹 빠지며 죽은 자처럼 창백해졌다.

그의 갑작스런 변화에 다시금 물음을 건네려던 마법사들은 앞으로 뛰쳐나가며 불릿에게로 다가왔다.

“백작! 바포 백작!”

“결과가 나왔나?”

불릿은 미러링이 마탑주인지를 모른다. 그의 정체는 오직 마법사들만이 알고 있으며, 마탑소속의 마법사들은 소속감이 강해 쉬이 입을 열지 않는다.

그래서 그를 심부꾼으로 여긴 불릿이 편히 하대를 하며 묻자 미러링이 소리쳤다.

“여기서 벗어나야 하오!”

“무슨…?”

“당장! 모두 죽게 될 것이오!”

“설명을 해줘야 나도 다른 자들을 설득할 것이 아닌가?”

마법사들이 회의를 통해 도출한 결과이니 허투루 듣지는 않았으나 다짜고짜 저렇게 말하면 불안하기만 하고 회군할 수도 없었다.

불릿의 태도에 미러링은 애써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후욱, 후욱-.”

하얀 입김을 내뿜고 들이마시는 그를 보며 불릿은 흙인형을 가지고 노는 흙덩이를 일으켜 세우고선 자신의 옆으로 끌어당겼다.

“저 아저씨 왜 저래?”

그녀가 손가락으로 미러링을 가리키며 묻자 불릿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해주었다.

“응, 마법사들은 원래 다 저래.”

마치 어린아이가 지나가는 이상한 아저씨를 가리키며 묻는 말과 비슷하자 흥분했던 미러링의 얼굴은 팍하고 일그러졌다.

“마법사가 뭐 어때서 그렇소! 똑똑하고 대접받고, 돈 잘 벌고! 무엇하나 부족하지 않거늘!”

그의 말대로 일단 마법사라고 인정받으면(견습 제외) 대륙 어디를 가더라도 대접받는 것이 마법사였다.

그래서 론 타로 왕국의 사냥꾼 마을같이 오진 곳으로 발령받은 마법사도 마탑을 떠나지 않고 소속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유지만 해도 돈은 꾸준히 나왔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 학구열이 가라앉은 자들은 오히려 외지발령을 더욱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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