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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32화 (232/241)

00232  마지막을 향해  =========================================================================

터벅, 터벅.

“…….”

끼리리릭, 덜커덩-.

“에휴휴.”

심처에 가까워진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토벌군은 더 이상 밝은 분위기를 띠지 않았다.

첫 격돌을 제외하곤 사상자가 그리 없었지만 악마의 심장이라는 것들이 어떤 강함을 지녔는지 알게 되고, 그러한 대군을 아무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없앴다.

자신들은 강하다고 자만하고 있던 연합군에겐 물을 끼얹는 효과를 지녔던 사건이기에 긴장감만 고조되는 상태였다.

하지만 불릿이 보기엔 지금의 분위기가 딱 적당한 듯싶었다.

“자만심이 줄어들어서 다행이야.”

마차를 타고 가던 불릿은 창틀의 틈으로 보이는 군대의 상태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창문을 닫아버렸다.

탁.

“와, 언니 엄청 세다.”

“으, 응?”

“엄청 세다….”

반짝반짝-.

흙덩이가 눈을 빛내며 어색한 표정을 짓는 우락크를 쳐다보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흙덩이는 스스로 모을 수 있는 정령력이 미약했기에 제대로 활약하기 위해선 불릿에게서 힘을 전해 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물론 섹스라는 이름의 자가충전(?)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정령력을 사용하는 내내 연결되어(??)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불릿에게서 정령력을 몽땅 전해 받더라도 우락크처럼은 불가능했다.

올리비아와는 다르게 진정 언니라는 느낌을 주는 의젓함까지 있어 더욱 동경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우락크도 피곤한 일이긴 했었다.

베히모스를 봉인하던 때와는 별개로, 수가 워낙 많았기에, 그리고 조용히 처리하려고 해서 그런지 더욱 많은 심력을 쏟아야 했다.

“대단해! 엄청 세고, 대단해!”

“으으음….”

흙덩이의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맑은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는지 그녀는 불릿을 바라보며 구원요청신호를 보냈다.

이에 불릿이 눈짓을 보내니 루나가 흙덩이를 조심스레 자신의 허벅지에 눕혔다.

“응? 나 안 졸린데?”

불릿의 지시가 있다하더라도 이런 행위는 자칫 무례하게 받아질 수도 있었지만 흙덩이는 그런 개념이 없었고, 루나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얌전히 그녀의 손길을 받았다.

사라락, 사라락-.

“조금만 주무세요, 잠을 별로 못 주무셔서 피곤하실 거예요.”

새벽의 소동 때문에 난리도 아니었고, 우락크의 활약으로 아무런 피해 없이 끝났으나 다른 이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기에 아예 아침 일찍부터 출발했다.

루나의 나긋한 말과 부드러운 손길에 흙덩이는 졸리지 않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점점 눈이 감기고 있었다.

“기분…좋…아….”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사락-, 사라락.

흙덩이의 기다란 머리카락을 쓸어넘겨주니 조그마한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는 이내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최근엔 불릿과 응응(?)을 하지도 않았기에 접촉만으로는 체력회복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새벽의 사건까지 겹치자 조금씩 길어지는 여정으로 쌓인 피로가 터지며 꿈나라로 떠나게 된 흙덩이.

“고맙다, 루나.”

“별말씀을요.”

우락크의 감사에 겸손함을 보이는 루나, 그리고 이 둘의 대화를 바라보던 불릿도 중간에 끼어들었다.

“둘이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별로.”

“글쎄요….”

“흠, 말하기 싫으면 마시오.”

여자들은 별 것도 아닌 일도 비밀로 만들어 서로 공유한다는 것을 세 명의 부인을 통해 배웠기에 캐묻지 않고 넘어갔다.

덜커덩-.

그때, 무언가에 걸리기라도 했는지 부드럽게 나아갔어야할 불릿의 고급마차가 크게 흔들렸으나 흙덩이의 몸은 우락크가 재빨리 받아주어서 잠에서 깨지 않았다.

그녀의 친절에 불릿은 잠이 든 흙덩이 대신 말을 건네주었다.

“고맙소.”

“으음…,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서나 얘기하도록 하지.”

“그러시오.”

부끄러워서 그런지 침음성을 흘린 후 화제를 전환하는 우락크의 뜻대로 넘어가주는 불릿.

잡담도 이쯤하면 충분했기에 그는 아스타로트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아스타로트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겠소? 마법사에게 고서를 해독케 했지만 온통 찬양과 더럽고 추잡한 내용으로 가득 차 짐작밖에 하질 못하겠더구려.”

한때 여신이었건 뭐건 간에 그 성격이 어딜 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아스타로트는 인간이 감당하기엔 버거운, 나쁜 의미의 사랑의 여신이었다.

다산을 상징했다고 했던 것 같지만 강간이라거나 창녀의 수호신이라니, 불릿이 아니더라도 미친 신인 것 같았다.

기록으로만 보면 정신계열, 그것도 현혹 같은 능력을 사용할 것 같았으나 지금까진 쭉 몬스터와 마물을 통한 무력싸움이었기에 그 특징이 드러나지 않았다.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마수의 숲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외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었고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수천 년이면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영원을 산다는 마족에게도 기나긴 시간이었다.

그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스타로트라고 하여 변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한때 여신이었던 자가 악마가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듯, 지금에 이르기 까지도 그만한 시간이 흘렀었기에.

그래서 우락크는 불릿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하지만 대리자가 이 몸을 찾아왔던 이유라면 아스타로트가 어떤 방식으로 강림한 것인지 짐작이 가는구나.”

“그게 어떤 방식이오?”

“온전한 힘을 갖추기 위해 같은 동족을 제물로 삼아서 세상의 규칙을 비틀어놓았겠지. 그게 아니라면 분신체가 소환됐을 터인데….”

말을 하면서 자신을 힐끔 바라보니 불릿은 그녀의 마음속까지 들여다볼 듯한 맑은 눈동자에 움찔했다.

수천 년이나 살아온 것치곤 어린 소녀처럼 너무도 순수한 눈이었기에 더욱 의외였을지 모른다.

잠시 말을 흐리던 우락크의 입이 열리며 굳어있던 불릿의 몸을 일깨웠다.

“악마군주라 할지라도 분신체라면 본좌를 찾아왔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감이랄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일까, 자신을 찾아왔으니 그게 곧 아스타로트가 온전한 힘을 갖추고 강림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72악마군주의 서열 1위인 아스타로트를 중간계에서 유일하게 죽일 수 있다고 하던 우락크는 얼마나 강할까?

신격을 잃었다는 것치곤 지나치게 강한 우락크, 그래도 아군이니 불안함보다는 든든함이 더욱 컸다.

“우락크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오, 새벽의 일은 거듭 고마움을 표해도 모자랄 지경이니까.”

“알겠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아스타로트를 상대하려는 것이오? 아스타로트가 그렇게 강한가….”

그녀밖에 아스타로트를 죽일 수 없다고 했으니 그게 계속 신경이 쓰이는 불릿.

우락크의 강함은 이제 그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그렇다곤 해도 그녀만이 일격을 가할 수 있다니, 우락크도 신격을 잃었으니 불릿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때가 되면 알게 된다.”

“음?”

“때가 되면….”

중얼거리던 우락크는 팔짱을 끼더니 잠도 없으면서 잠을 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잠이 없다는 것은 하녀인 루나도 아는 사실이었기에 불릿은 어이가 없었다.

“때가 되면 알게 된다니, 뭔 소리야?”

아스타로트와 대면했을 때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을 터이니 전략을 짜고자 미리 알려달라는 소리였는데 이게 뭔 땅바닥에서 헤엄치는 소린가?

하지만 우락크가 생각이 없을 리는 없었을 테니 결국 숨기고자 이런 어색한 연기를 하는 것이리라.

“후우, 대체 하나같이 다들 왜 이러는지….”

답답한 것은 군소군벌의 귀족들로도 충분했기에 우락크까지 이러면 감당이 안 된다.

그렇다고 여신이 추천해준 조력자인 우락크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불릿은 연합군을 이끌면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이었다.

“새액-, 새액-.”

이 와중에도 흙덩이는 졸렸었는지 깨지도 않고 잘도 잔다.

여전히 잠버릇은 그리 좋지 못해 원피스가 위로 말려 올라가니 의자를 짚고 몸을 기울여 직접 내려주었다.

스윽.

“보기는 좋은데 감기 걸리게스리….”

“네?”

“아….”

“…….”

불릿의 중얼거림을 루나를 포함한 하녀 다섯이 의문을 드러내자 저도 모르게 속내를 중얼거렸음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으으음….”

흑마법사 토벌을 진행하는 동안엔 불릿이나 흙덩이, 두 사람 모두 성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있는 데로 쌓였다.

특히 남자는 여자보다 성욕을 참기 더욱 어려웠기에 불릿에게도 고역인 상황, 마차엔 온통 여자뿐이었기에 그것을 깨닫고 나니 순간 불끈해버렸다.

“…어머.”

“대영주님이…?”

“…….”

“저, 저는 아직 그런 것까지는…….”

누구는 입을 가리기도 했고 누구는 평소의 불릿을 떠올리고 의문을 가졌다.

말없이 가슴을 팔로 가리는 하녀도 있었고 아직 남자경험이 없어 고개를 수그린 채 수줍어하는 하녀도 있었다.

그리고 루나는….

“유실리아가 슬퍼할 거예요.”

자신의 친구이자 불릿의 연인인 유실리아를 언급하며 끈적해진 그의 눈을 직시하며 혼을 내었다.

하녀들과 무얼 하려고 할 생각도 안 했던 불릿이었는데 야한 생각이 들게끔 상황을 몰아가놓고선 그러지 말라니, 조금 억울한 불릿이었다.

“본인이 언제 그네들에게 손을 댄 적이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불쾌하군.”

물론 불릿도 남자이기에 바포 가의 예쁘장한 하녀들을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올리비아가 그의 마음에 불을 붙인 뒤로 젊어진 육체가 활활 불타오르며 좀체 꺼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그래서 말로는 불쾌하다고 하면서 슬쩍 몸을 비틀어도 부푼 바지춤 사이의 그것은 여전히 눈에 띄었다.

“죄송해요, 그냥…, 유실리아가 떠올라서요.”

“흠, 보고 싶긴 하군.”

불릿이 올리비아와 유실리아를 안 데려온 데엔 자신의 성욕 때문이기도 했다.

흙덩이만 있더라도 참기 힘들었기에 안전상의 이유를 들어 그녀들의 참여를 막아섰었다.

그래도 금욕생활이 10일을 넘어가니 잠도 잘 안 왔고, 밤새 그 생각으로 몸을 뒤척였으니 참으로 사춘기 남자아이가 따로 없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잠을 자는 척하던 우락크에게서 맑고 고운 음성이 들려왔다.

“이 여자들은 대리자의 여자들이 아니었던가?”

“…본인이 고용한 일손들이긴 하오만.”

설마 우락크가 음담패설을 할 리는 없었기에 상식적인 답을 주었더니 이상한 말이 들려왔다.

“그런데 왜 대리자가 손대는 것을 거부하는 거지? 군주의 아이를 배는 건 아랫사람의 축복이 아니었던가?”

“네에에에?”

“그게 무슨 소리요? 내가 왜 루나에게 손을 댄단 말이오?”

“흠? 군주는 왕, 왕이 거주하는 곳의 여자들은 모두가 왕의 것이 아닌가? 왕이 자신의 여자와 섹스를 하겠다는데 뭐가 이상한 거지?”

“왁, 오아아악!”

거침없이 말하는 우락크에게 당황한 불릿이 괴상한 소리를 내자 하녀들은 루나까지 포함해 모두 귀 끝까지 새빨개져서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들의 이상한 반응에 현 시대의 가치관이 어떤지를 몰랐던 우락크도 살짝 당황했다.

“왜 그러는 거지? 아이는 많을수록 좋지 않나?”

겉모습만 보면 우락크는 아름다운 미의 화신 엘프, 하지만 그녀가 대륙에 만연한 오크들의 조상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아이를 얼마나 낳았는진 모르겠으나 마을을 이룰 정도로 낳은 것만 치더라도 수십은….

어쨌든 간에, 그녀는 엘프였지만 머릿속은 자신의 남편이었던 오크족의 대전사와 같이 오크 그 자체인 듯했다.

========== 작품 후기 ==========

신작 '헌팅정령사'의 연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 또한 많은 사랑 바라오며 부족하지만 열심히, 그리고 성실연재를 저 자신과 독자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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