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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10화 (210/241)

00210  몬스터 웨이브  =========================================================================

식당에 미리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벤젼스는 의자에서 일어나서 군례를 올렸다.

처척.

“최고사령관각하께 대하여, 충성!”

지금은 전시상황이었기에 군인으로서 불릿을 대하는 벤젼스에게 불릿은 손짓으로 앉으라는 행동을 취했다.

“알겠으니 자리에 앉게, 식사하지도 않았는데 체하겠네.”

“작은아씨는 이리로….”

뒤이어 들어온 흙덩이는 애첩이었던 하녀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폴짝 앉았다.

폭-.

“밥 줘, 밥!”

“작은아씨,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식사예절에 어긋나는….”

“괜찮다. 흙덩아, 편히 먹으렴.”

“헤헷, 역시 불릿이 최고야! 밥, 밥, 밥-.”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며 배운 것인지 동요와 비슷한 노래를 부르며 나이프와 포크를 쥐고 식탁을 두드리는 흙덩이.

그녀가 즐거이 기다리는 동안 불릿도 자리에 앉으며 벤젼스에게 말을 걸었다.

“대략적인 상황은 이우우스를 통해서 들었네. 그에게 알려준 것 말고 본인이 알아야 할 사항이 있는가?”

이우우스가 1, 2구역을 총괄하는 입장이긴 해도 모든 것을 다 처리할 순 없다.

세부적인 내용은 같이 파견 나온 행정관들이 담당하고 있었고, 특히 군사적인 부분은 벤젼스가 전담한다고 봐도 맞을 것이다.

그의 물음에 벤젼스는 식탁을 채워가는 음식을 바라보며 굳게 다문 입술을 떼었다.

“바스톤에서의 일은 잘 전해 들었습니다.”

“…그렇군.”

이우우스는 둘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지루해하는 흙덩이에게 말을 걸며 잡담을 속닥였다.

“마물연합사건 이후 날마다 생각했습니다. 과연 제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막을 수 있었을까.”

하급이라지만 마물이 다섯이나 뭉치는 일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비록 흑마법사의 소행으로 여겨지지만 마수의 숲에서 튀어나온 놈들을 막지 않은 우락크도 수상했고, 왜 바람이 머무는 곳엔 단 한 마리의 마물도 습격하지 않았는지도 말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됐는지 서신만으론 알기가 어려웠지만, 일반적 마물떼의 예를 비교해 봐도 4천 규모의 몬스터 군단을 뚫고 놈들을 죽인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더군요.”

“흐음, 소드익스퍼트 상급이어도 말인가?”

“1:1로 맞서면 몰라도 그런 대군의 앞에선 저 또한 일개 개인일 뿐입니다.”

“미안하네, 내 검사가 아니라서 몰랐었어.”

불릿이 창술을 익히곤 있지만 그건 정통창술이 아니라 실전에서 체득하고 배운 기술이라서 그런지 누구와 비교를 하기엔 좀 그랬다.

일단 스스로가 정령사이기 때문에 날붙이는 어디까지나 보조라는 생각이 강했기에 기사들끼리의 수준을 비교하는 건 가능했어도 실전에서 어느 정도까지 통용되는지는 몰랐던 것이다.

“아닙니다. 아마 최상급으로 올라서면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마물만 처리한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몬스터 군단은 빼고?”

“무립니다. 마스터라 할지라도 검사는 기본적으로 적에게 근접해야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시간을 들인다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비교할 만한 자가 없어서….”

“그러한가.”

“그래서 각하와 작은아씨께서 대단하신 겁니다. 그런 업적을 세우셨으니 말이지요.”

벤젼스의 말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주변 군벌들로부터 경계를 받겠지만 동시에 쉬이 손을 댈 수 없는 강자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바포 변경백은 다른 곳들에 비해 정예화된 병사들과 대영주 직속 기사단 라체나가 유명했기에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았었다.

하지만 군벌의 군주들과 란푸스, 그리고 연합체의 수작으로 인해 단장을 비롯한 주요 수뇌부가 전멸해버렸고, 란푸스와 흑마법사의 소행으로 또 다시 반란을 겪으며 많이 약소화한 상태였다.

그래서 벤젼스는 이걸 적극 활용해서 널리 퍼뜨려야 다시는 놈들이 건드리질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릿에게 강한 어필을 고했다.

“한편으론 걱정도 됩니다.”

“어떤 점이?”

이미 음식의 대부분이 나와서 이우우스와 흙덩이가 불릿만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히잉, 언제 먹어!”

“식사부터 들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각하.”

“예, 대영주님.”

그 후 식기가 오가는 소리와 간만의 맛있는 식사에 신이 난 흙덩이의 웃음소리가 무거워졌던 장내를 살리기 시작했다.

덜그럭, 달그락.

슥삭슥삭.

유실리아에게 배웠던 대로 칼질을 하던 흙덩이는 큼지막하게 썰어선 그 조그마한 입에 잘도 넣어갔다.

“얌얌얌…, 맛있어!”

“그러니? 이제 기분은 괜찮아?”

“으, 응, 헤헤.”

먹는 장면을 불릿이 빤히 쳐다보니 그게 부끄러웠던지 냅킨으로 재빨리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닦는 흙덩이.

불릿의 관심이 그녀에게 쏠리려고 할 때, 벤젼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그러는가?”

보통 이렇게 이야기를 열 때는 나쁜 소식이나 부탁을 할 때였기에 그가 꺼낼 만한 주제를 머릿속에서 뒤적이는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 여정, 이쯤하면 충분히 하신 것 같습니다.”

결국 그만두라는 소리였기에 불릿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자네도 그 말이로군. 설마 본인이 위험성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가?”

슥, 스윽-.

“합. 우물우물….”

고기를 썰어 입에 가져간 불릿이 그것을 꼭꼭 씹어서 위장으로 넘겼다.

“꿀꺽.”

그가 음식물을 취식할 때까지 기다리던 벤젼스는 이야기의 흐름이 끊겼으나 그래도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나머진 저희가 수습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바스톤의 일을 전해 들었을 때 가신들에게서 엄청난 반발이 일었습니다.”

“반발? 이게 무슨 말인가, 이우우스.”

조용히 식사하던 이우우스는 결국 올게 왔다는 심정이었는지 식기를 내려놓았다.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고 나서 말씀드리려고 했었습니다.”

“본인이 모르는 일이 변경백 내에서 존재해서야 쓰겠나?”

짐짓 불쾌함을 드러내는 불릿에게 순식간에 음식을 다 먹은 흙덩이가 대꾸했다.

“나 졸려, 가서 잘래.”

“어, 그래. 먼저 가서 자렴. 꼭 씻고 자야한다? 거기 하녀, 들었겠지?”

“물론입니다, 바포 백작님.”

대답과 동시에 허리를 숙이던 하녀는 눈을 비비는 흙덩이를 데리고 종종걸음으로 식당에서 빠져나갔다.

끼이이-

달칵.

나머지 하녀들도 내보내자 식당엔 불릿과 벤젼스, 그리고 이우우스 단 셋만 남게 되었다.

꼭 듣겠다는 불릿의 의지에 이우우스는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대영주님께서 강행하신 이번 여정에 대해서 대부분의 가신들이 반대를 표명했습니다. 여기까진 대영주님께서도 아시겠지요.”

“일단 결과를 보고서 판단하라했지. 재산을 풀라한들 용병 하나 변변찮게 고용하지 않는 자들인데 무얼 바랄까?”

가신들이 재산의 일정분량을 내놓는다면 자금난에 허덕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용병도 듬뿍 고용해 안정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넘기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하급 마물이 다섯이나 뭉쳤던 4천 마리의 몬스터 군단은 단순히 돈으로 고용한 용병만으론 불가능했다.

그것을 막으려면 중앙영지의 군단 5천이 모두 뭉쳐야했고, 그나마도 피해가 심했을 것이다.

전쟁이란 것이 적을 많이 죽였다고 좋은 게 아니라 일단 자신이 다치지 않는 것이 최고였기 때문.

그래도 이번 여정은 불릿이 다짐했던 부분과 상충하는 것이었기에 잘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한 불씨는 바스톤 사건으로 인해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당장 복귀를 해야 한다와 조금 더 지켜보자는 쪽으로 말이지요.”

“지켜보자는 쪽은 본인에게 긍정적인가?”

“아닙니다, 언제 복귀하실지 논의했던 것이지 이번 여정엔 모두가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크흠.”

불쾌한 일이었기에 헛기침만 내뱉는 불릿. 하지만 이우우스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옥체를 보중하셔야 합니다. 후계도 없으신데 함부로 몸을 놀리시면 남은 저희는 어찌해야 합니까?”

“본인과 흙덩이가 아니었으면 바스톤은 그대로 밀렸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후계를 낳으시지요, 그러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또 그 얘기인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각하. 후계만 있다면 저희도 이렇게까지 걱정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부부가 동시에 사망했던 전례가 있기에 가신들의 걱정도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불릿이 아이를 가지지 않는 이유가 있었으니.

‘신혼생활 좀 즐기고 싶었는데 가신들의 반발이 심하군.’

이제 막 육체미에 맛을 들이고 있는 불릿이었기에, 그리고 부인들의 나이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차이가 났기에 웬만하면 그녀들이 25살쯤 되는 해에 가지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가신들은 불안과 초조에 휩싸여 지내야 할 것이고, 부인들도 불릿의 아이를 갖지 못해 자신을 사랑하지 않나 의심이 들지도 몰랐다.

저번만 하더라도 불릿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모든 부인들이 심경을 밝혔었고, 올리비아의 경우 광적일 정도로 그의 사랑을 갈구했었다.

그러니 아이를 갖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둘에게 끌려가는 듯해 입을 여는 불릿.

“그만, 알았다.”

멈칫.

그에게 다시 말을 걸려던 벤젼스와 이우우스는 알았다는 불릿의 말에 몸을 굳혔다.

침묵이 지속되는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이 사안을 꺼냈던 벤젼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여니 이우우스도 둘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다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명이 아니다, 알겠다고, 그만 좀 해라, 거 참….”

“에, 예…?”

육체에 정신이 따라가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온 세월이 있기에 애써 근엄함을 유지하던 불릿의 말이 짧아지자 당황하는 벤젼스에게 그는 다시 한 번 대답을 해주었다.

“낳겠다고, 하겠다고!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왜 이리 재촉을 해?”

“대영주님, 체통을 지키셔야 합니다.”

“그 체통 지킬 수 있게 너희가 좀 도와줘라. 사방팔방에서 애는 언제 낳냐, 그러면서 섹스는 적당히 해라, 복상사 겁난다, 짜증이 나는군. 너희만 짜증나는 줄 아느냐?”

폭발한 불릿의 불만에 이우우스도 입을 다물자 그는 냅다 속사포를 쏟아내었다.

“아 연애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너희 부인들에게나 지극정성을 쏟아라, 좀! 내가 박건 핥건, 물고 빨건 무슨 상관이야? 애 낳으라며? 그것의 일환인데 뭔 불만이 이리도 많아! 불만 있으면 돈이라도 좀 내놓던가? 너희도 생각하고 백성도 생각하는 마음에 대판 싸우고서도 여정을 잇는 중인데, 이 새끼들이 개지랄을…!”

“가, 각하!”

“죄송합니다, 대영주님.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주시길!”

둘이 식탁에 고개를 박듯이 용서를 구하자 불릿은 콧김을 내뿜으며 성을 내었다.

“후우, 본인의 입에서 꼭 이런 거친 말이 나오게 만들어야겠는가? 40년 동안 청렴결백하게 살았으니 이제 내 연애관도 진도를 빼도 되잖은가? 아니, 난 뭐 연애도 못하고 바로 결혼해야하나? 비록 상대가 정해져 있고 식도 잡혀있지만 그동안은 기분이라도 낼 수 있는 거잖나?”

“맞습니다, 각하.”

“저희의 생각이 짧았습니다.”

불릿이 그동안 쌓아두었던 속내를 털어놓자 술자리도 아닌데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둘이었다.

“길거리에 나가봐라, 죄다 연인이고 키스는 기본이다. 가슴도 만지며 찝쩝대는 것들도 많은데 그놈의 대영주 체면, 그냥 확 다 집어던지고 올리비아 유실리아, 흙덩이 셋만 데리고 잠적할까보다!”

“헉….”

“그것만은 참아주십시오.”

성난 황소처럼 멈출 줄 모르는 불릿의 태도에 둘은 쩔쩔매었고, 그의 입에서는 연신 쌓아두었던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깟 애, 열이건 스물이건 만들어 준다, 낳는다고! 올리비아 어딨어, 데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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