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81 상처 입은 올리비아의 마음 =========================================================================
“가정교사? 이제 와서?”
뜬금없는 말이었기에 불릿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불모의 황무지 개간이나 흑마법사 토벌, 그도 아니면 내실강화 등의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흙덩이를 언급하더니 가정교사를 두자고 한다.
분명 흙덩이가 바포가의 안주인이 되기엔 조금 모자람이 있었으나, 불릿은 굳이 그녀에게 억지로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싶진 않았다.
귀족의 예의범절은 지나치게 까다롭고 딱딱한 면이 있기에 흙덩이의 자유분방하면서 귀엽고 사랑스런 행동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내년에 있을 혼인식에서도 아이처럼 방방 뛰어다니실 순 없으시잖아요?”
‘아이 맞는데 뭐 어때서.’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그대로 내뱉을 수도 없는 것이, 흙덩이의 현 모습은 열여섯쯤은 되어보였고 일부 특정 부위(가슴이나 엉덩이? 올리비아가 비교하면 시무룩해하는 그곳들)는 압도적인 발육을 자랑했다.
“나머지 두 부인들이 알아서 잘 관리할 것이니 상관없다.”
불릿의 말에 얌전히 듣고 있던 올리비아가 괜히 얼굴을 붉혔으나 그는 거기에까지 신경 쓸 겨를 이 없었다.
“그보다 마실이라…, 생각해보니 그 이후로 영토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제대로 확인해본 적이 없군.”
끼이익-.
불릿은 의자에 몸을 푹 묻었는데, 이 때문에 불릿의 무릎에 앉혀져있던 올리비아는 중심을 잃고 허둥대며 그의 품에 안겨왔다.
포옥.
“아앗! 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요.”
“상관없다니까. 안기고 싶으면 언제든 안겨라. 안아줄 테니까.”
포옹.
서서히 식어가던 얼굴에 또 다시 작은 홍조가 피어올랐다.
“…저기 있잖아, 자기야?”
“왜 그러는가.”
스윽, 스윽.
그는 그녀가 흙덩이라도 되는양 머리를 쓰다듬어줬는데, 그것이 부끄러웠던지 올리비아는 붉힌 얼굴을 한 상태로 입을 열었다.
“우리도 거리구경 가면 안 될까?”
“흠….”
그동안 불릿은 너무 일에만 집중했다. 다른 영지로 가는 길도 여행이라는 탈을 썼지만 실제론 딱히 구경한 것도 없었고, 여행기분을 낸 것도 응응(?)을 제외하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던 것이다.
…평소에도 응응(?)은 하니까 빼면 없을 듯하다.
올리비아는 예전 생각이 나는지 좀 더 불릿에게 달라붙으며 웬일인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여기서도 할 수 있는 건 많지만, 밖에보다도 품질도 좋지만, 조금 답답하더라. 그리고 자기는 너무 열심히 일해.”
좋은 향료를 쓴 것인지 들어올린 머리칼에서 흘러나온 향기가 그의 콧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스으읍.”
“흑마법사 토벌에 나서면 언제 시간이 날지 알 수 없으니까, 응? 우리도 나가서 놀면 안 될까…?”
결국 하고픈 말이 놀자는 것이었기에 불릿은 그녀의 향기에 취한 상태에서 고민을 했다.
‘확실히 변경백에 돌아온 이후론 활발한 게 장점인 올리비아를 너무 가둬둔 경향이 있어.’
올리비아가 씩씩한 여장부라곤 하지만 마차여행을 제외하곤 항시 성에서만 생활했기에 점점 주눅이 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가 귀족출신이라지만 몰락한 집안에서 언제 이렇듯 으리으리하고 거대한 성에서의 생활을 겪어봤겠는가?
그리고 일전에 흙덩이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올리비아는 친구도, 가족도 없다.
가족이야 불릿이 만들어주겠지만(응?) 친구만큼은 참으로 곤란한 문제였던 것이다.
바포 변경백에서 그녀의 위치는 불릿의 첫째부인, 즉 큰 마님의 호칭을 갖고 있었기에 몸가짐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격을 맞춰서 사람을 사귀어야 했기에 행여 불릿에게 해가 될까봐 노심초사하는 올리비아에게 상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불릿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귓가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닫혔던 입을 떼었다.
“살갗이 하얗게 변한 것을 보니 너희들끼린 거의 안 나갔었나 보구나.”
불릿이 힐긋 그녀의 가운데로 모아진 가슴의 둔덕을 보며 말하자 올리비아는 얼굴을 붉히며 대꾸했다.
“그, 그게 말이야? 자리를 비웠다가 불릿이 불렀을 때 그…걸 못해주면…, 응…, 그래서 난 맨날 성에만…….”
“…….”
“호호, 마님이 워낙 절륜(?)하시니까, 아얏.”
“쉿, 뭔 소린진 모르겠는데 마님께 함부로 그런 단어 쓰지 마.”
“씨이, 너도 기사라고 절륜(?)해서 그런 거야?”
불릿이 침묵하는 가운데 이 대화를 듣고 있던 아일렌과 루나가 서로 투닥거렸다.
아일렌이 루나의 옆구리를 꼬집었으나 얼굴이 발갛게 변한 것은 루나가 아닌 아일렌이었지만.
여하튼, 어떤 이유로 올리비아가 성에서만 틀어박혀 있었는지 알게 되자 불릿은 불안정한 상태의 그녀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지속적인 스킨십을 해주면서 대화를 이어갔다.
“쪽, 내가 흙덩이랑 자주 있으니까 질투라도 난 거야?”
“그, 그렇다기 보단, 흐읏! …예쁜이보다 가슴도 작은데 왜 자꾸 만져….”
주물주물.
“너도 네 심리가 불안하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츄릅-.”
뻥! 소리를 내며 진공이 풀리는 그녀와 그의 입술.
“하악, 하악…, 그, 그런 것 같기도…, 왜, 왜 이리 대담해진 거야? 혹시 내가 집착하는 여자처럼 보여서?”
“네가 나에게 집착한다면 나도 너에게 집착하면 되지, 그럼 둘 중 하나는 평범해 보이겠…후루룩!”
낼름낼름.
불릿이 올리비아의 윗가슴을 핥자 벌겋게 변하는 올리비아의 안면.
그것은 아일렌 뿐만이 아니라 평소 올리비아를 자주 놀려먹던 루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악! 흐으응!! 그, 그만! 그만해! 애들이 보고 있잖, 앙! 아앙-!”
그녀는 참기 어려웠던지 달뜬 신음을 내쉬면서 그의 가슴팍을 움켜쥐었는데, 한껏 오므려진 발끝이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애무만으로 절정에 다다를 것 같았기에 불릿은 천천히 손으로 윗가슴을 쓸어주며 자신의 침을 닦아주고서야 놀자는 말에 대답을 주었다.
“후우우. 난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있고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 불안해하지마라. 나가자, 흙덩이랑 유실리아만 재미 보게 할 순 없지.”
불릿 또한 흥분되어가던 상태였기에 바지춤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으나 마음을 달래며 올리비아에게 나가자는 제안을 건넸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올리비아는 좀체 그의 품에서 벗어날 생각을 않고 있었다.
자신이 먼저 나가자 해놓고 왜 이러는가 싶어 그녀를 바라보니 올리비아가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하던 거 마저 하고서 나가면 안 돼?”
그러면서 불릿의 부푼 아랫도리를 감싼 천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달콤한 내음을 뱉어냈다.
“오빠도 하고 싶은 것 같고…, 응? 이, 이대로 나가면 너무 어중간하단 말야….”
결국 그녀를 달래주기 위한 행동이 오히려 달뜨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불릿은 루나와 아일렌의 눈치를 보다가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흐읍!…흐윽, 흐읏.”
“츄릅, 츄르릅-, 쩝쩝.”
간신히 애무가 끝났나 싶었더니 아예 일을 치르려하자 눈치 빠른 루나는 아일렌의 손을 잡고서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어, 엇? 왜 그래, 루나?”
“쉿,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호호호! 그럼 준비를 해놓을 테니까 마치시면 불러주시고요.”
루나의 음성에 불릿은 거친 손길로 올리비아의 옷을 벗겨가면서도 나가보라는 손짓을 해주었다.
끼이이…
달칵.
이내 문이 닫히고 진정 둘만이 남자 집무실엔 의자에 앉아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청춘남녀(?)가 정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끼익!
* * *
웅성웅성.
거리로 나선 불릿과 올리비아는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예전 용병생활 때처럼 복장을 갖췄다.
불릿의 중앙영지가 외부인이 적은 편이라곤 하나 용병이 없는 곳은 없었기에 그들의 외모를 제외하면 특별할 것은 없었다.
“와, 저 여자 엄청 예쁘다.”
“옆에 남자는 뭐지? 기둥서방인가?”
“쉿, 둘 다 용병이잖아. 말조심하라고.”
“무슨 용병이 저렇게 피부가 하얘? 어디 귀족가의 자녀들 아냐?”
…워낙 특출난 외모였기에 관심은 있는 대로 받았지만 말이다.
꼬옥.
“자기야, 예전이랑 비슷하게 꾸민 건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쳐다보는 걸까?”
그녀는 불릿을 잃을 뻔한 기억 때문인지 자신의 가슴에 그의 팔을 파묻듯 껴안았는데, 그녀의 그러한 행동은 주변 남자들의 질투심을 유발시켰다.
화르륵!
“크으, 저 남자놈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런 미녀를!”
“나랑 하룻밤만 지낼 수 있다면 단방에 뺏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이런 남자들의 반응은 곧바로 제지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보, 밥 먹기 싫어? 아예 나가서 살래? 응?”
“그럼 저 여자한테 떡치자 하려고? 대영주님 영토에서 그런 짓 하다가 목이라도 잘리고 싶어? 아니, 그 전에 나한테 죽자, 죽엇!”
끄아악!
어디선가 굵직한 비명소리가 들렸으나 불릿과 올리비아는 이미 다른 곳을 향해 걷는 와중이었기에 잘 들리진 않았다.
“응? 뭐지, 누구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올리비아는 소드익스퍼트 하급,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신체능력을 지녔기에 뛰어난 청력으로 그것을 감지했으나 불릿의 손길에 곧바로 관심을 껐다.
“이곳만큼 치안이 좋은 곳도 없으니 너의 착각일 거다.”
“그렇겠지?…요?”
그녀는 반말도, 존대도 아닌 엉성한 말로 대꾸하며 불릿의 팔에 더욱더 밀착했다.
중앙영지는 대영주인 불릿이 거주하는 곳으로, 주변 팔방을 둘러싼 여덟 곳의 영지들이랑은 비교가 되지 않는 성세를 자랑했다.
영토나 작위가 없는 대부분의 귀족들은 이곳에서 거주한다고 보면 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노점상이라고 해도 깨끗하고 그럴 듯한 가건물을 갖추고 있어 미관을 망가뜨리지 않았다.
“헤헤, 이렇게 불…, 오빠랑 나오니까 좋다.”
아직까진 딱히 무언가를 한 것도 아닌데 올리비아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불릿이 그녀에게 한가지 물음을 던졌다.
“흙덩이야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만, 너는 왜 내게 오빠라고 부르는 거지?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상관없다만.”
“뭐야, 그럼 난 늙었다는 거야?”
그의 말에 삐졌는지 올리비아의 입술이 뾰루퉁하게 튀어나왔으나 그것마저 사랑스러웠는지 불릿은 쪽, 소리가 나게 짧은 입맞춤으로 입술을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열아홉이 늙은 거면 나는 관속에 들어가야겠군.”
“으읏, 갑자기 뽀뽀하면!…놀라잖아.”
발그랗게 달아오르는 그녀의 얼굴에 불릿을 제외한 주변인들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쿵!
“으헉…, 사귀고 싶다!”
“크으으, 얼마야? 얼마면 돼?!”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가겠다. 아내 얼굴보고 어떻게 자냐….”
자신들이 올리비아의 연인도 아닌데 호들갑을 떠는 사이, 그녀는 불릿에게 이어서 말을 건넸다.
“…죽는다는 소리, 장난으로라도 하지 마. 무서웠단 말이야.”
올리비아의 귀여운 투정에 불릿은 슬쩍 미소를 띠웠다.
“아마 죽더라도 네 품에서 죽지 않을까? 복상사로.”
화아악.
“무, 무슨! 나 그렇게 헤픈 여자 아니야?!”
손사레까지 치며 부정하는 그녀의 말에 불릿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갑자기 웃음을 뚝, 멈춘 불릿은 그녀의 등허리를 와락 안고선 자신을 올려다보는 올리비아의 입에 키스를 가했다.
“내가 언제 먼저 나가떨어진 적이 있나?”
“…모, 몰라, 바보….”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져주듯이 불릿의 키스를 받아주고 있었다. 늘 그렇듯 최후의 승자는 불릿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