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6 불모의 황무지 =========================================================================
덜컹, 덜커덩-
이곳은 마차 안, 이와는 별개로 밖에서 불모의 황무지로 향하는 이들의 인원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하나하나가 기사급인 기마병 50인의 호위병대장인 크레파토스, 정예병사(종기사 내정) 200, 십인장(신생 라체나 기사내정) 20, 그리고 지휘관인 백인장(신생 라체나 선임기사내정) 세스터스로 구성된 토벌대.
그리고 소드익스퍼트 하급이며 보조마법에 능한 마검사인 제노시스와 세 번의 칼질을 빛살처럼 뿌린다는 삼광(三光) 셰실리코프까지.
이 정도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영지는 병력이 맞붙는 순간 그대로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용병시절엔 ‘발키리’라 칭송받으며 불릿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올리비아와 아직까진 현직 기사인 유실리아, 그리고 지금 불릿의 손을 자신의 가슴에 갖다 대고 있는 정령출신(?) 흙덩이가 있었다.
몰캉몰캉.
“부드럽지? 크지? 기분 좋지?”
“크흠!”
흙덩이는 불릿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랑하고 애타게 갈구한다.
그래서 그런지 올리비아와 유실리아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애정행각을 벌인다.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아는 불릿은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다가올 때마다 받아주었지만, 이렇게 은밀한 부위를 스스럼없이 밀착해올 때면 올리비아나 유실리아와 시선을 마주치기 어려웠다.
“기분이 좋으신가봐요, 바포 백.작.님?”
“저는 그렇게까진 못하겠…, 죄송해요, 불릿님….”
“아니, 그러니까 이건….”
올리비아는 흘겨보고 유실리아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여기까진 평소와 같았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경갑옷으로 무장한 두 여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두에 서는 행위는 말렸으나 불릿과 흙덩이가 가는데 자신들만 있을 순 없다고, 손을 보태겠다며 나서는 것을 불릿은 말리지 못했다.
아, 참고로 흙덩이는 여전히 새하얀 원피스다. 저번에 정령력의 사용을 자제하라고 했으나 하도 힘들어하니 그냥 사용을 허락해서 쌩쌩한 상태.
이처럼 서로 살을 맞대며 응응(?)을 하면 금세 회복되니까.
“헤헤, 불릿이랑 이어지면 아프지도 않고 좋아.”
“예쁜아? 그런 말은 좀….”
“크흠, 작은아씨, 저도 있습니다만….”
“응? 불릿, 이 아저씨는 왜 여깄어? 같이해?”
“푸웁!”
흙덩이의 발언에 침이 뿜어지는 불릿이었으나 다행이랄까, 바닥을 향해 뿜어졌기에 그의 타액이 묻은 이는 없었다.
“얘는 진짜! 좀 가려서 말햇!”
“자, 작은아씨, 아무리 그래도 자베르님 앞에서는 조금….”
“히, 힝, 다들 왜 그래…, 자기얌, 내가 잘못했어?”
흙덩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묻자 불릿은 그녀의 가슴에서 간신히 손을 떼고선 흙덩이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기댔다.
“한숨자라. 도착하면 깨울 테니.”
“쓰다듬어 줘야해?”
스윽, 스윽.
그녀의 바람대로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부터 맨살이 드러난 어깨까지 쓰다듬어주자 서서히 감기던 흙덩이의 속눈썹은 이내 닫혀버렸다.
“하아, 대체 못하는 소리가 없어.”
올리비아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자 불릿이 자베르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네, 자중한다고 했는데 차마 말리진 못하겠으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만큼 백작님을 좋아한다는 뜻이겠죠.”
자베르는 작게 고개를 저으며 의사를 표하다 의문을 드러냈다.
“음? 어쩐지 마차의 온도가 높아진 것 같은데, 벌써 냉기가 사라졌나? 콜드(cold).”
휘이이-
그의 영창에 의해 높아져가던 내부의 온도가 낮아지자 잠이든 흙덩이의 표정도 더욱 풀어졌다.
“아, 덥다 더워.”
“……? 방금 마법을 시전했습니다만….”
“아,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
“크흠, 자베르, 주변에 몬스터가 감지되나?”
더워서가 아니라 더워져서(?) 그런 말을 내뱉은 올리비아였지만 자베르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의문을 드러내자 불릿이 화제를 전환했다.
“1km 반경 안에는 드러나지 않았습…잠시만.”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정신을 집중하는 자베르의 모습에 불릿은 물론이고 올리비아와 유실리아도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전방 800m부근에서 생명체 50여기 발견, 몬스터로 추정됩니다.”
그 말에 불릿은 창문을 열고선 밖에서 호위하던 크레파토스에게 알렸다.
“크레파토스! 전방 800미터에서 적 출현!”
“충! 백인장! 전방 800미터 적 출현!”
“적 출현! 정찰병 복귀신호!”
“정찰병 복귀!”
순식간에 복명복창을 통한 정보전달을 통해 그들보다 100미터쯤 앞에서 나아가던 정찰병들이 순식간에 그들과 합류하였다.
계속 나아가자 얼마 안 있어 토벌대를 반겨준 것은 바위군락지의 틈틈이 보이는 괴물들이었다.
“키메라! 키메라다!”
“호위병대는 뒤로 물러서라! 보병 앞으로 대기! 각하! 키메라입니다!”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불릿은 굳은 얼굴을 하고서 흙덩이를 깨웠다.
“흙덩아, 흙덩아.”
흔들흔들.
“우웅…, 할거야?”
뭔가 이중적인 의미였으나 애써 무시한 불릿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자, 몬스터사냥이다.”
“헤헤, 불릿이랑 사냥한다.”
심각한 상황인데도 흙덩이는 마냥 좋아했는데, 그녀에게 있어 사냥이란 불릿과의 나들이나 마찬가지여서 그렇다.
이 또한 정령일 때 기술을 연마하려고 자주 실험했던 대상이 몬스터였기에 이런 인식이 생긴 것이다.
흙덩이가 먼저 마차에서 펄쩍 뛰어내리자 이어서 밖으로 내려온 불릿.
그리고 자신의 남편을 지키기 위해 나머지 두 여인과 마법사 자베르도 마차에서 내렸다.
“놈들이 왜 다가오질 않지?”
자신들을 주시하며 바위틈에 가만히 있는 몬스터들을 보면서 불릿이 묻자 셰실리코프가 눈을 빛냈다.
“지형지물을 이용하려는 속셈입니다. 저기라면 기마병이 다가갈 수 없고, 검이나 창의 사용에도 제한이 따르니까 말입니다. 화살로부터 엄폐할 수도 있군요.”
뛰어난 검사이자 마수의 숲에서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영주답게 셰실리코프의 판단은 정확했는데, 놈들은 크고 작은 바위군락지의 틈바구니에서 이쪽을 바라보며 도통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이대로 다가간다면 키메라를 잡아내더라도 피해가 발생할 것이기에 고민하는 가운데, 흙덩이가 불릿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꾸욱꾸욱.
“불릿, 불릿.”
“음? 왜 그런가 아가…가 아니라, 흙덩아.”
애정행각을 자제한다고 해서 그게 마음되로 되진 않을 터.
괜히 김이 빠지려는 사이에 흙덩이가 말을 뱉었다.
“흙덩이는 흙덩이잖아?”
“…? 그렇지.”
당연한 말을 하니 뭐라 답해야할지 몰라 간단히 대꾸만 해주니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
“불릿이 힘 많이 주면 저기 돌 많은 곳 펑펑! 할 수 있어.”
“아.”
확실히 흙덩이가 인간소녀가 됐으나 근본은 땅의 정령이다.
애초에 그녀를 데려온 이유도 정령술로 적을 토벌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다만 키메라의 특성상 짜깁기한 시체나 다름없기에 제대로 숨통을 끊으려면 신체의 절반 이상은 날려버려야 했다.
그러니 큰 기술로 상대해야 했는데, 아직 키메라만 보이는 상황에서 많은 정령력을 소모할 순 없는 법이다.
“흙덩아, 죽음의 대지는 2번 사용하면 내가 탈진해버리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어째서?”
“어째서라니…, 흙덩이는 내가 쓰러져도 좋니?”
“으으응, 아니.”
도리질을 치며 대답하는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녀가 적도 아닌 아군들에게 폭탄발언을 꺼내놓았다.
“불릿이 나랑 섹스하면 되잖아?”
“커헉!”
“푸우웁-.”
“워, 워어 세, 섹….”
비틀-.
우당탕!
각자가 요란한 동작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올리비아가 빽! 하고 소리쳤다.
“야아아!! 사람들 다 듣는데 뭐라고 하는 거야아앗!!”
설마 그런 말을 꺼낼 줄은 몰랐기에 침착함을 유지하던 자베르도 황당해 했다.
“백작님, 대체 작은아씨께 무슨 짓을…?”
“아, 아니야, 이상한 거 아니니 오해하지 말게!”
“이 천사 같은 분에게 노출플레이(?)를 가르치시다니….”
“아니라고!”
그리고 그들이 소란스럽게 굴자 시야의 앞에 닿아있는 키메라들이 반응했다.
- 키이익, 크아아!
- 쿠후, 쿠우후!
“으으, 모두 진정하라!”
“이 정도로 흔들리다니, 단체로 기합 받고 싶은가!”
크레파토스와 세스터스가 나서서 토벌대를 지휘하자 간신히 진정되기 시작했고, 셰실리코프는 말없이 키메라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자 불릿이 헛기침을 뱉으며 자세를 낮춘 채 흙덩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커흠, 흙덩아? 그런 건 아무데서나 하는 게 아니란다, 응?”
“하지만 불릿이 나한테 박아줘야 정령력 차오르잖아?”
“쿨럭….”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터라 불릿이 사례에 들리자 유실리아가 다가와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토닥토닥.
“괜찮으세요, 불릿님?”
“…크흠. 난 괜찮…, 유실리아. 얼굴 터지겠구나.”
“네, 네?”
“후우, 흙덩이 덕분에 고생이 많구나.”
“네에….”
불릿의 위로에 유실리아는 잘 익은 토마토가 되어버린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평소 흙덩이를 보살피는 일은 몇 없는 여자들이 번갈아가며 맡았기에 그런 말을 건넨 것이다.
“올리비아, 흙덩이에게 부끄러움이란 게 무엇인지 가르치긴 했는가?”
올리비아라고 얼굴에 피가 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실리아보단 한결 나아보였다.
“인간이 되면서 아주 애가 되어버렸단 말이야! 반년도 안 됐는데 어떻게 다 가르쳐?!”
흙덩이가 인간이 된 기간은 이제 3개월에서 4개월 차로 넘어가는 시점,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정령과는 다르게 쉬이 감정에 휘둘리고 잘 잊는 인간의 육체는 그녀를 다른 인물로 바꿔놓기 충분했다.
오직 하나, 불릿에 대한 사랑만을 제외하고.
그들은 자베르의 아이스 터치로 기껏 체온이 낮아진 상태였는데 부끄러움으로 인해 급격히 상승하는 몸으로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있었다.
당사자인 흙덩이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불릿에게 매달렸지만.
“자기얌, 빨리 끝내고 쉬자. 나한테 힘 많이많이 주면 기분 좋은 거 하면서 채우면 되잖아?”
“쉿, 쉿. 부하들 다 듣는 데선 조금 자중하렴.”
“웅? 하지만 남녀사이는 박고 박히는 거라고 안나가 가르쳐 줬는걸?”
“으득, 안나 네 이년을 그냥….”
순진한 흙덩이를 버려놓은 원흉이 안나라는 사실에 불릿이 이를 갈았으나 이를 흙덩이가 말렸다.
“나랑 하기 싫어? 나, 흙덩이 이제 싫어?”
언제나 자신을 난감하게 만들지만 이렇게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보면 치솟던 화도 사그라지는 불릿이었다.
그는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후우, 그래, 빨리 끝내자.”
“히힛.”
중무장한 병사들 사이로 자기혼자 새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를 바라보며 자베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토록 당돌한 아가씨는 처음보겠군.”
불릿을 위해서라면 야외플레이(?)도 마다치 않는 흙덩이였다.
========== 작품 후기 ==========
오늘 밤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