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7 의뢰 =========================================================================
“그래서 이로 인해 영주의 의지가 확고하단 것도 알 수 있었기에 의뢰를 받아들인 것이오.”
“우린 그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데 죽인다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질이 안 좋은 놈들, 쓰레기 같은 녀석들만 처리할 것이오. 게다가…….”
잠시 뜸을 들이는 불릿. 그는 올리비아의 말을 상기하고선 이내 말을 이었다.
“올리비아는 하지 않아도 좋소. 의뢰를 받을 때에도 나 혼자였으니 그대가 있지 않더라도 뭐라 할 이는 없소.”
그러면서 불릿은 전날 밤의 대화를 떠올렸다.
* * *
“…의뢰는 받겠소. 다만, 내가 보기에 살 가치가 없는 놈들만 죽일 것이오.”
“놈들 중에 살만한 가치가 있는 자가 있을지 의심스럽군요.”
소년, 콜드 파르탄의 눈에서 기이한 열기가 엿보였다. 어떤 고초를 겪었을지 짐작되는 부분.
불릿은 어린 영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몇 가지 충고를 했다.
“내 영주에게 필요한 충고를 해줄 것인데, 들을 의양이 있소?”
“해보십쇼. 받아들일 만한 얘기는 알아서 추리겠습니다.”
상대를 존중해 말은 듣겠다, 그러나 그것이 옳고 그른지는 자신이 판단하겠다는 뜻.
응당 영주라면 판단은 자신이 해야 했기에 불릿도 별다른 불만 없이 충고를 시작했다.
“먼저 주변의 인물들을 추리시오. 이 자가 정녕 믿을 만한 자인지, 아니면 간신배인지를 구분해야 한단 말이오.”
“계속하시지요.”
눈을 빛내며 콜드가 쳐다보자 불릿이 짐짓 기침을 뱉으며 말을 잇는다.
“커흠, 그 다음으로는 사람을 다스리는 것인데, 영지민들이 자신이 속한 영지를 사랑하게끔 만드시오. 비록 영주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영지에 애착과 자랑스러움을 느끼게 되면 같은 곳에 속했다는 사실에 헛된 마음을 품지 않게 될 것이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평민이라고 무시하지 마시오. 평민이야말로 영지의 힘의 근원이오. 당신이 먹는 음식, 대체 누가 만들겠소? 평민이오. 빵을 만드는 밀가루? 평민이 재배해서 기른 밀로 만드오. 밀을 빻는 이? 그것도 평민이 하지. 이곳까지 밀가루를 옮기는 사람? 그 역시도 평민이 하오. 이처럼 빵 하나를 먹는 데만 하더라도 귀족들이 무시하는 평민의 손길이 안 닿는 데가 없소.”
“으음, 그렇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불릿이 꼬집어주자 고개를 끄덕이며 고뇌하는 콜드.
불릿은 어린 영주를 보면서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단순히 무시하지 않는 것, 사람으로 대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당신을 성군이라 칭송하며 받들 것이오. 그리고 부당한 착취, 그것만큼 악질적이고 비효율적인 것도 없소.”
“저는 부당한 착취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건 당신의 시선에서나 그런 거고, 평민들이 보기엔 안 그럴 수도 있소. 당신은 평민들의 수입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어…….”
언제나 수치화된 자료로만 보기에 콜드는 순간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평민의 수입? 그걸 알아서 뭣 하는가? 세금만 제때 내면 되는 것이지.
“간단한 예를 들어주지. 한 달에 100실버 버는 자가 있고 10실버 버는 자가 있소. 그런데 둘 다 똑같이 세금을 5할을 걷는다면 어떨 것 같소?”
“…공평하지 않습니까?”
“아니오, 아니오! 절대 아니오.”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똑같이 5할을 걷는데 왜 불공평하다는지 이해할 수 없던 콜드가 불만어린 어조로 물었다.
불릿은 또박또박, 그의 뇌리에 새길 듯이 말을 이었다.
“이점이 함정이오. 살아가기 위한 생활비로 평민들은 8실버가 필요하오. 아무리 못해도 5실버는 있어야하지. 그런데 세금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걷어 가면 대체 뭘 먹고 살란 말이오?”
콰광!
콜드는 벼락처럼 내려오는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갸우뚱…
덥썩.
재빨리 불릿이 잡고서 바로잡아주어도 중얼중얼거릴 뿐이다.
“나, 나는, 그토록 되지 않고자 했던 악덕영주였던 것인가…?”
꽤나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기에 이번엔 채찍 대신 당근을 주는 불릿.
“반성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절반은 온 것이오. 생각해보시오, 100을 버는 자에게 50을 받아야지 10을 버는 자에게 5를 받아서야 되겠소?”
“그럼 어쩌면 좋습니까?”
“그들이 100을 버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시오. 제일 좋은 방법은 그들 스스로가 돈을 벌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것이지.”
그러면서 불릿은 영지차원에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영지민을 위한 공공기관의 설립공사를 한다던가 교육을 시키는 등, 그들 스스로가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것은 일자리 창출과 동시에 자신들을 위한 곳이 생긴다는 것에 영지에 대한 자부심이 늘어날 것이다.
어차피 영지 내부에서 쓰이는 것이니 불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번 돈은 영지에서 쓰이니 돈은 돌고 돌며 경제상태를 원활하게 만들 것이다.
인간으로 치면 혈액순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주변에 믿을 수 있는 자가 적습니다. 아까는 대충 흘려들었지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콜드의 말에 불릿은 잠시 고심하더니 입을 떼었다.
“가신이라 하여 대대로 물려받게 하지 말고, 능력제로 만드시오. 경쟁하지 않는 자는 도태되고 허튼 마음을 품게 되기 마련이오.”
원래 몸이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으며 누워있으면 자고 싶은 법이다.
권력이란 게 아무런 노력도 없이 유지가 되면 그들이 방탕해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발하는 이도 있을 것이오. 하지만 지금 단호하게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그들에게 끌려다닐 것이오.”
그러면서 불릿은 이 어리고 경험적은 영주의 눈을 마주보았다.
“명심하시오. 당신이 그들을 고용한 것이지, 그들이 당신을 부리는 것이 아니란 것을. 가신이 있기 전에 당신, 파르탄이라는 가문이 있다는 것을 말이오.”
* * *
그가 회상을 하던 사이, 올리비아가 탁자를 내려치며 화를 내었다.
탕!
“그게 무슨 소리야! 나보고 지금 빠지란 거야?!”
그녀가 화내는 모습은 흔치 않았고, 불릿에게 화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니,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불릿은 놀랐으나 그것을 티내진 않았다.
감정을 숨기는 데엔 익숙했으니 말이다.
“비겁하게 혼자 빠져있지 않겠어!”
“괜찮겠소? 사람을 죽이는 일인데.”
방금도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불릿은 그녀를 배려해 제외시키려던 것인데, 화를 내니 의아했던 것이다.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며? 나도 영지를 좀먹는 그런 놈들 싫어! 그런 놈들이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입술을 살짝 짓씹으며 읊조리는 올리비아. 과연 그녀는 그런 쪽으로 연관이 되어있었나 보다.
부득부득 이를 가는 그녀의 모습에 어떤 심정으로 참여하겠다는 것인지 충분히 알만한 상황.
불릿은 올리비아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앗? 뭐하는 거야!”
“이는 갈지 마시오. 그 또한 과년한 처자가 할 행동은 아니니.”
여성의 골격은 대체로 남성보다 약하다. 이빨 또한 뼈로 구분이 되니 관련성이 있었다.
불릿은 그저 몸이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 말린 것이지만 올리비아는 갑작스런 신체접촉에 울분을 터트리던 것도 잊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그, 그래. 알았으니까 이 손 좀 놓고 얘기하자….”
“음? 아, 실례했소. 아무튼 이는 갈지 마시오. 당신을 위해서라도.”
“어, 어어어. 그, 그래.”
우물쭈물, 이상한 분위기가(올리비아만) 되어가자 그걸 지켜보던 흙덩이가 난입한다.
불쑥.
- 언제부터 해?
무언가 조성되던 분위기는 흙덩이의 난입으로 인해 날아가 버렸고, 올리비아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볼을 부풀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불릿은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꾸해주던 중이기에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지금 당장.”
한적한 거리, 치안이 불안정한 파르탄 영지는 불한당이 급증해 인적이 드물었다.
게다가 어린 영주를 거부하는 반대파가 득세해 내란의 조짐이 보이자 주민들은 더더욱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런 인적 드문 거리에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이 자태를 뽐내며 거닐고 있었다.
사뿐-, 사뿐-
그녀의 모습은 매우 고혹적이었는데, 남자라면 누구라도 뒤돌아볼 만큼 성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 모습을 거리를 순찰하던, 사실은 상인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던 반대파 패거리의 기사가 발견했다.
“우효! 쭉쭉빵빵한데? 뭐지, 저년은?”
음흉한 표정을 지은 기사는 곁에서 같이 다니던 병사 둘에게 말을 걸었다.
툭툭.
“이놈들아, 저기 저 새끈한 여자는 누구냐?”
“글쎄요, 이 동네 젊은 처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년입지요.”
“오호라, 신출내기렷다?”
근래엔 조금 자제하고 있었으나 기사는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면 전후사정 가리지 않고 덮치는 파렴치였는데, 지금도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불끈한 것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쉬운 인물이었다.
그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어, 씨발, 골목길로 들어가네? 마침 잘됐군. 너희 둘, 저년 잡아.”
“예? 하지만….”
둘이 망설이는 듯하자 기사가 그들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음흉하게 웃었다.
“내가 먹고 나서 한입씩 줄 테니까 상처나지 않게, 알지?”
기사가 그렇게 말하자 불안과 불만이 엿보이던 병사들도 비슷한 표정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시다면야…, 헤헤.”
“저는 엉덩이가 좋습니다요.”
“짜식, 취향 한번 독특하군. 난 거기는 안 먹으니까 빨랑 뛰어가서 잡아!”
“예썰!”
둘은 씩씩하게 대답하고서 곧바로 달려가 여인이 사라진 골목길로 쏙 들어갔다.
그렇게 1분이 지나고 2분, 3분, 5분이 지나자 기사도 슬슬 안달이 났다.
“커험, 슬슬 가볼까? 성질 좀 죽여놨겠지.”
짐짓 뒷짐을 지으며 팔자걸음으로 걸어가는 기사는 빳빳히 솟은 아랫도리를 감추지 않았다.
“흐흐흐, 앙칼진 것도 좋지만 내 명에 따라 기분 좋게 해주는 년이 일품이지. 암, 그렇고말고.”
허우적허우적 걸음을 옮기던 기사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놈들, 잘하고 있느냐?”
“…….”
그러나 골목길에 병사들은 온데간데없고 예의 쭉쭉빵빵한 여자만이 상자위에 다리를 꼬고서 턱을 괸 상태였다.
“흐응, 늦게 오네.”
“내 부하들은 어디 갔지?”
기사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주변엔 그의 부하들은 보이지 않았다.
앞은 막혀있는 돌벽, 다른 곳으로 가려면 왔던 길로 빠져나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사는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들에게 의문을 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뭐해 오빠? 나랑 놀자.”
하지만 섹시한 포즈로 기사를 유혹하는 여자에 의해 그는 다른 생각을 날려버리고 금세 숨이 거칠어졌다.
“헉, 헉. 조, 좀만 기다려라. 천국을 보여주지!”
허겁지겁 갑옷을 벗어재낀 기사는 뭐가 그리도 급한지 바지만 훌렁 까버리려 했다.
하지만 기사는 못내 욕망을 이루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쑤욱!
“헉!”
갑자기 땅이 사라진 듯 기사의 신형이 꺼져버리더니 구멍 속에 처박혀 나동그라졌다.
“이런 씨발, 무슨 일….”
“발동.”
- 지옥구덩이…
푸슈슈슉!
슈슈슈슈슈슉!
구덩이의 벽에서 송곳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기사는 삽시간에 갈가리 갈려져 곤죽이 되어버렸다.
그때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던 벽이 허물어지듯 바닥으로 사라지며 불릿이 나타났다.
뚜벅, 뚜벅.
스윽…
불릿은 구덩이에 빠져 흙더미와 함께 뒤섞인 고깃덩이를 보며 흙덩이에게 재차 명령했다.
“흔적을 지우시게.”
- 응. 냄새 안나.
그러자 구덩이를 흙이 덮으며 꾸물럭거리더니 이내 주변과 같은 평지가 되어버렸다.
그제야 여인은 한숨을 쉬며 바닥으로 내려섰는데, 민망했는지 손으로 배꼽을 가리며 달아오르는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어휴, 이 변태놈들. 아무리 내가 예쁘다고 해도 오크새끼도 아니고, 뭐하는 개수작이야?”
“덕분에 처리하기는 한결 쉬워졌소. 놈들 대부분이 이런 성향이라면 영지에서 사라지더라도 불만을 가질 이는 없을 것 같소.”
“……피.”
배를 가리며 부끄러워하던 것도 잊었는지 허리에 손을 얹고서 불릿을 노려보던 올리비아.
그에 반해 불릿은 별 관심이 없는지 구덩이가 있던 자리를 보며 고심하다가 흙덩이를 불렀다.
“흙덩이여, 이리 주시게.”
- 자.
펄럭-.
고사리 같은 흙덩이의 손이 건네준 것은 평범한 로브 한 벌이었는데, 그것을 받아든 불릿은 올리비아에게 입혀주었다.
“어, 어? 언제 이런 걸 다….”
“올리비아의 미모면 이런 놈들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끌릴 수 있으니 내 준비하게 됐소.”
“방금 뭐라고 했어?”
“…? 올리비아의 외모는 이런 곳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름다우니 그런 복장을 한 채로 다니면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잖소?”
올리비아의 복장은 몸의 윤곽을 한껏 드러낸 하늘거리는 재질의 실크드레스였고, 그나마도 팔이나 다리, 배와 가슴을 드러낸 노출이 심한 옷이었다.
그래서 신변의 안전에 해가 될까봐 일이 끝나면 가릴 의도로 중간에 한 벌 마련한 것이다.
목을 제외하면 모든 신체부위가 가려진 올리비아는 로브를 걸쳐서인지 열이 올라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났다.
“흠? 그렇게 덥소?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인지 내 미처 몰랐….”
“아냐! 아니니까, 괜찮아. 그냥, 고맙다고…….”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듣던 흙덩이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더니 손으로 무언가를 한다.
납작…
- ……
흙덩이는 납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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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반갑습니다.
그럼 저녁 6시와 12시에도 이어서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