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56화 (56/241)

00056  의뢰  =========================================================================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어린 영주는 생각을 정리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불릿을 쳐다보았다.

콜드 파르탄의 시선을 받은 불릿은 이를 회피하지 않고 받아냈는데, 곧이어 콜드가 용건을 꺼냈다.

“도움을 청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말이오?”

콜드의 말을 듣기는 했으나 불릿이 생각하기에 자신은 아직 하급 정령사일 뿐이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이해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급 정령사에게 고개 숙이는 영주라니?

불릿이 상황을 이해했다 한들 그것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본인 스스로가 전직(?) 중급 정령사였으니 하급 정령사가 별로 대단치 않다 생각했기 때문.

‘흙덩이가 하급치고는 대단한 편이긴 하나….’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도 하급은 하급, 한계가 있는 것이다.

편법으로 중급의 경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더라도 부작용으로 몸에 무리가 가기에 하급이었다.

“부탁드립니다, 부디 도움을 주십쇼.”

머리까지 숙이며 부탁하는데 용병이라는 입장을 생각하면 거절하기도 부담되는 상황.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비로소 전쟁으로 인해 세력구도에 변화가 왔음을 느끼게 되었다.

평민에게 한 지역의 영주가 머리 숙여 부탁할 위치에 놓인 것이 현 정령사의 주소였던 것이다.

“그만하시고 고개를 드시길.”

‘나머진 차차 알아봐야겠군.’

음식도 급히 먹으면 체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을 듯했지만 꼬치꼬치 캐묻다간 이상히 여겨질 수도 있었다.

차라리 자신의 영지로 복귀해 알아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해주길 바라오? 무작정 도와달라 하면 아무리 부탁해도 곤란하오.”

불릿은 용병. 그리고 용병은 정보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는 비단 용병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데, 위험하다 여겨지는 일에 정보도 없이 뛰어드는 바보는 몇 없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지.’

…정정한다. 의외로 그런 사람은 많았다.

불릿의 태도에 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를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용병이시니 의뢰형식으로 진행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듯합니다.”

어린 영주는 언제 흘렸는지 모를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더니 호흡을 골랐다.

“후우, 제가 의뢰할 내용은….”

* * *

다음날이 밝자 불릿과 올리비아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으음…, 우물우물.”

올리비아는 식사를 하던 와중에도 흙덩이의 볼을 한 번씩 쿡쿡 찔러보았다. 그런 올리비아에게 붙잡혀서 애달픈 눈으로 불릿에게 구원요청을 하는 흙덩이.

불릿은 아침부터 노닥거리는 그들과는 다르게 어젯밤의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별다른 티를 안 내려고 했으나 말없이 식사를 이어나가는 불릿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했나보다.

드디어 올리비아는 장난을 그만두고 식사에 집중하다가 불릿에게 말을 건넸다.

“꿀꺽. 볼레트, 뭔가 고민이 있어?”

“…무슨 소리오?”

“아니, 왜 거 있잖아. 왠지 평소랑 다른 거 같아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불릿은 그녀의 말에서 옛 동료의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여자의 직감…이란 것인가.’

참견하기 좋아했던 결사대의 동료. 하지만 의외로 그녀의 참견은 오지랖이 아니었는데, 예상외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면이 있어 불릿도 마냥 무시하지 않았었다.

그녀를 떠올리자 불릿은 올리비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동료라면,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있어야겠지.’

그가 생각하는 동료란 생과 사를 함께하는 전우였다. 올리비아 또한 함께 생사를 오가는 전투를 함께했기에 전우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어색하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던 불릿은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꺼내었다.

“올리비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을 자신이 있소?”

불릿의 물음에 올리비아는 가슴을 탕탕 치며(…….) 소리쳤다.

“당연하지!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

“끄응, 대체 누구에게 알리려고 그리 크게 외치는 것이오?”

“실수야, 실수. 자, 말해보라고.”

“후우…, 조심하시오.”

- 바보.

그녀의 행동에 불릿이 핀잔을 주어도 행동은 당당했다.

그리고 올리비아에게서 해방됐던 흙덩이가 한마디 했는데, 그녀가 흙덩이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식사를 마친 후 올리비아의 방으로 가도록 하는 게 좋겠소.”

“무, 뭣?! 내, 내방?!”

다시금 커지는 목소리에 이번엔 주방에 있던 주방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요, 주문이오?”

“아니오.”

“소리 좀 낮추시오. 가뜩이나 뒤숭숭한데….”

어젯밤 영주일행이 들이닥치자 겁을 집어먹었던 종업원 중 하나인 주방장이 푸념을 내뱉었다.

비밀스런 일로 찾아왔기에 협박을 당했던 터라 예민했던 것이다.

반갑게 맞아주던 어제와는 다른 반응에 불릿도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갔는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의하겠소.”

순순히 대꾸하는 불릿에게 더는 할 말이 없는지 주방장은 구시렁거리며 주방으로 돌아갔고, 올리비아는 잘못한 걸 아는지 정중하게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마저 식사하시오.”

달그락-

올리비아와 불릿이 식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흙덩이는 멀뚱멀뚱 그들을 지켜만 보았다.

- ……

식사에 방해가 될까 심심하면서도 그것을 인내하는 착한 흙덩이였다.

뚜벅, 뚜벅.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지나 올리비아의 방앞에 도착하자 문을 열고 들어서려던 불릿.

그러나 그 행동은 저지를 당하고 말았다.

덥석.

“자, 잠깐만!”

“왜 그러시오?”

올리비아가 들어가지 못하게 불릿의 손목을 낚아채자 무슨 일인가 싶어 그녀를 쳐다보는 불릿.

그가 빤히 쳐다보자 올리비아가 입을 떼었다.

“아, 그게 말이야. 별건 아니고. 조금만 기다려!”

올리비아는 흙덩이와 불릿을 남겨두고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보여줘선 안 되는 물건이라도 있는 것인가?”

불릿이 생각하기에 올리비아의 저런 행동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비밀스런 물품이 있기에 그러는 것 같았다.

자신만 하더라도 가문의 비술을 몰래 행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동료라 하더라도 숨기고 싶은 비밀은 있는 법이었다.

- 무슨 뜻?

흙덩이는 보여줘선 안 된다는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불릿에게 되물었다.

이럴 때마다 불릿은 되도록 흙덩이가 이해하기 쉽도록 교육을 진행했다.

“보여줘선 안 된다, 그것은 보여주다의 반대되는 말일세.”

- 왜 안 돼?

“여러 이유가 있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올리비아가 보여주기 싫어서 아닐까 싶네만.”

불릿의 설명에 흙덩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신이 도출한 답을 내놓았다.

- 동료 아냐, 적, 때려.

“어허, 이번만은 본인의 말을 듣게나. 인간들은 자신만의 비밀을 하나정돈 가지고 있는 법일세.”

- ……

뭔가 뾰로통해 보이는 흙덩이였기에 불릿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주었다.

“듣는 이에겐 별것 아닌 것이라도 상대에게 있어선 중요한 일일 수도 있는 법일세.”

- 불릿도 있어?

“본인 말인가?”

자신에게 화살이 돌아오자 불릿은 어떻게 설명해주면 좋을까 고민했다.

흙덩이에겐 굳이 숨길 필요가 없긴 했으나 딱 한 가지, 거짓을 고한 게 있었으니….

스윽스윽.

바로 지금처럼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가 친밀함을 위한 의식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했고, 그런 이유를 대지 못했다면 불릿도 대놓고 이렇게 하진 못했으리라.

- 있어? 비밀?

“으음… 그럴지도.”

불릿의 말에 흙덩이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으나 불릿은 차마 흙덩이에게 말해주지 못했다.

애초에 그가 거짓말을 했던 이유도 체면이 손상될까봐 그랬던 것인데, 정령이 백작의 체면을 이해나 할까?

아니, 그 전에 겨우 체면 때문에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이유로 명령이나 소환을 거부할지도 몰랐다.

지금 상태로 보면 그럴 확률은 낮았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이 깎인다는 것은 분명했다.

- 말해줘.

“그건…곤란하네.”

- 왜? 나도 안 돼?

“…….”

제대로 대꾸하지 못할 때는 그저 열심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최고였다.

이 이상 거짓말을 늘리는 것은 흙덩이에 대한 죄악감만 커지는 것이기에 묵언으로 대신했다.

- 불릿?

평소와 다른 불릿의 태도에 흙덩이가 재차 물었으나 반응이 없던 그때, 올리비아가 들어섰던 방의 문이 열렸다.

덜컥.

둘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에 올리비아가 문을 열고선 불릿과 흙덩이를 맞이했다.

“오래 기다렸지? 들어와도 좋아.”

“그럼 실례하겠소.”

타인의 객실인데도 불릿은 아무렇지 않게 방에 들어섰고, 흙덩이는 불릿의 방과 흡사한 방인데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불릿과 올리비아, 둘은 탁자를 두고 마주보며 앉고서야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파르탄의 영주, 콜드 파르탄이 의뢰한 내용은 정적을 제거해달라는 것이었소.”

“뭐? 지금 사람을 죽여달라는 거야?”

“직접적인 비유를 하자면, 그렇소.”

“열다섯 짜리가 청부살해를 의뢰하다니, 썩었네.”

확실히 영주의 나이는 어렸다. 열다섯이라면 아직 세상의 때가 채 묻지도 않았을 나이인데,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적을 제거해달라는 소리를 하다니.

용병일로 단련된 올리비아로서도 사뭇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영주의 판단은 적절한 것이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군가를 다스리는 지도자라면 단호함도 보여야 하는 법.”

“…뭐야, 그게.”

불릿의 말에 올리비아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은 올리비아가 누군가를 다스려본 경험이 없기에 떠올릴 수 있는 생각.

불릿이 보기엔 영주의 판단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영주라고 해서 그러고 싶었던 것은 아닐 것이오. 다만 세상이 흉흉할 뿐이지.”

어린 영주의 판단력은 좋았지만 콜드를 그런 지경에 내몰은 세상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다.

“설마…, 그럼 아버지도 그랬었던…….”

뭔가 괴로워하는 올리비아를 보자니 다시금 나온 ‘아버지’라는 말을 묻기도 뭐했다.

대체 그 아빠, 아버지라는 존재가 누구길래 저러는 것인지 궁금했으나 불릿은 연장자로서 그것을 참아낼 수 있었다.

‘궁금하긴 하군. 어떤 인물이기에 무의식중에 언급할 정도인지 말이야.’

하지만 언제까지고 지켜만 볼 수는 없기에 이어서 말을 꺼내는 불릿.

“이에 대한 대가로 이것을 받았소.”

그러면서 불릿이 품에서 꺼낸 것은 오래되어 보이는 하나의 펜던트였다.

“……겨우 그거?”

올리비아가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었기에 불릿이 사기라도 당한 것은 아닌가 의심스런 상황.

불릿은 고개를 저으며 부가설명을 이었다.

“마탑에 의뢰를 넣을 수 있는 물품이오. 돈으로 받는 것보다 값진 대가라고 생각하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그거 하나로 끝내?”

올리비아의 출신이 높다고 생각되지만 마탑을 모르는데 있어선 그럴 만하다고 여겨졌다.

대륙사람이라면 마탑은 알아도 정확히 마탑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마법사와 연관이 되어있거니 하면서도 인맥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마탑이었다.

불릿은 펜던트를 추스르더니 품안으로 넣고선 다시 얘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진품의 여부는 내가 이미 확인했으니 달리 알아볼 필요는 없소.”

“어떻게 알아?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게 있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알려주도록 하지.”

“와, 진짜 너무하네. 맨날 자기만 신비스럽고, 치사하다 치사해!”

‘올리비아, 당신도 만만치 않게 비밀이 많소만.’

올리비아는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것에 삐졌는지 고개를 팩 돌렸으나 불릿의 생각엔 그녀도 털어 놓는 비밀이 없으니 피장파장이었다.

불릿이 펜던트를 진위여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백작위에 위치한 인물임과 동시에 결사대에서도 이유를 찾아볼 수 있었다.

결사대에는 마탑출신의 마법사가 많았고, 결사대에서 대부분의 자료를 처리하며 그들을 뒤에서 다독여주던 불릿이기에 아는 것이 많았다.

결국 그것은 다재다능한 불릿의 경험과 노력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물품 하나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이지만 말이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읽어주신 분들과 추천, 선작을 해주신 데에 감사인사를 올립니다.

내일도 같은 시각, 같은 분량이 연재되오니 잘 부탁드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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