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5 토벌의 결과 =========================================================================
덜커덩, 덜컹-.
덜커덩…, 덜컹!
“크윽…….”
길을 따라 이동하다가 돌부리에라도 부딪혔는지 수레가 튀어 오르자 짙은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엇.”
메마른 신음성에 여성이 반응했는데, 그녀의 곁에 누워있던 남성은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깜빡.
깜빡깜빡.
“으음….”
의식을 되찾은 남성, 불릿이 눈을 깜빡이며 주변의 사물을 인식하고 있었다.
“와, 이제야 일어났구나?”
“…올리비아?”
마물과의 일전에서 탈진한 끝에 정신을 잃었던 불릿을 올리비아가 간호하고 있었나보다.
어디서 급조했는지 모를 엉성한 수레에 실린 불릿은 마물과의 일전이 떠오르자 대뜸 정령을 소환했다.
“땅의 하급 정령 흙덩이여,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지어다.”
사아악…
그러자 나무판에서 솟아나듯 흙덩이가 형체를 구축하더니 한층 더 애틋해진 눈빛으로 불릿을 쳐다보았다.
- 아프지 마…
작은 체구의 흙덩이가 누워있는 불릿의 곁에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미약한 빛이 새어나오며 그를 치유하려고하자 불릿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흙덩이를 말렸다.
“본인은 괜찮다네, 흙덩이여. 기운이 없을 뿐이지 상처는 없으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흙덩이는 기껏 인간세상에서 모은 기운을 소모하면서까지 불릿의 치료에 여념이 없었다.
기운이 없던 불릿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흙덩이를 내버려두고, 시선을 돌려 올리비아를 바라보았다.
“올리비아, 토벌은, 토벌은 어찌 되었는가?”
이제 막 깨어난 그가 가장 궁금했던 것. 그것은 자신 이렇게 되면서까지 해내려했던 토벌의 결과였다.
성공이냐, 실패냐.
올리비아에게 두 선택지를 강요한 불릿에게 그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흐흑, 토, 토벌은 말이야….”
“무슨 일인가?! 설마!”
그녀의 기색이 슬퍼보이자 불릿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가 금세 비틀거리며 올리비아의 품안으로 쓰러졌다.
포옥-.
“아앗!?”
“이, 이런. 미안하오.”
“아니, 야, 아니야. 나야말로….”
여인에게 수치를 줬다는 점(그의 기준에선), 결과가 안 좋다는 생각이 겹치자 불릿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올리비아는 무슨 생각인지 슬퍼하다가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을 더듬는다.
“그, 그게 말이야, 사실은, 아니, 그러니까, 설, 설마 네가 그렇게까지 반응할 줄, 은….”
“…무슨 뜻이오?”
“토벌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고! 그냥 널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소리다!”
예상 외로 반응이 격렬하자 장난치려던 것도 관두고 소리를 지르는 올리비아.
그리고 그녀의 행동에 주변에 동행하던 용병들이 슬쩍 쳐다보았다.
“아주 지극정성이시구만. 카악, 퉤.”
“질투내지 마, 임마. 저 정령사는 영웅이라고, 영웅.”
“저 올리비아라는 여자도 마찬가지지. 듣기로는 B급이라더니 A급 못지않던걸?”
하급 마물과의 결전을 모든 용병과 병사, 기사들이 목격하였다.
기사들도 우후죽순 죽어나가던 상황,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던 것을 둘의 활약으로 극복했으니 영웅이라 칭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게다가 토벌령이 내려졌던 이유도 마물 때문이었으니 원인을 제거한 시점에서 토벌도 종료, 목숨줄을 틀어쥐고 귀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곳에 모인 전사들이 목숨을 담보로 살아가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단 뜻은 아니었다.
“뭐, 난 안 죽었으니 그걸로 족하련다.”
“시벌, 마물이란 게 하급이라고 해서 안심했더니 존나 세더만. 다시는 토벌령 따위 내려져도 참가 안 해!”
살아남긴 했어도 난이도를 잘못 책정한, 아니 잘못인지 거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데빌로안 영지에 대해 용병들의 신뢰도는 하락했다.
의뢰란 게, 위험하긴 해도 그것은 용병들이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였다.
사전에 얼마큼 위험하다고 고지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의뢰한 임무를 용병들이 받아들지 않거나 잘못하면 위약금을 물 수도 있는 것이다.
용병길드의 설립기원 자체도 용병들을 등쳐먹는 의뢰주들을 견제하려던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에휴휴.”
“어이구야, 살아서 돌아가는구나.”
“데이비슨네는 어찌하나. 가족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병사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걱정이 있었다. 용병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았으나, 병사들은 일반인이 훈련받은 수준에 지나지 않았으니 많은 이들이 사망했다.
말이 대거 도망쳐 몇몇을 제외하면 터벅터벅 걸어오는 기사들 또한 안색이 밝진 않았다.
“후우,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살아남은 토벌대를 이끄는 카를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임무는 마물을 퇴치하는 것도 있으나 보다 많은 인원을 살려서 데려가는 것.
희생자가 발생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안에 기사들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의 예상을 뒤엎는 마물의 강함에 많은 기사들이 죽었기에 앞으로 영지를 꾸리는 것에 애로사항이 발생하리라.
슬쩍 그의 시선이 정령과 투닥거리고 있는 올리비아에게로 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인가….’
올리비아의 위험천만한 행동에 기겁했었지만 그래도 그녀 덕분에 원래라면 상대하지 못했을 마물을 퇴치했고, 그녀 또한 무사했다.
다만, 올리비아가 정령사라지만 용병에 지나지 않은 볼레트라는 사내에게 집착하는 모습이 조금 걸렸다.
‘내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건지….’
토벌은 성공했으나 그 피해가 컸다. 당장 영주에게 뭐라고 보고해야 할지 골치 아픈 상황.
카를로스는 더 이상 그들에게서 신경을 끊고 자신의 문제에 끙끙 앓기 시작했다.
- 불릿이 그러기 전에, 죽었어. 괴물.
올리비아가 허둥지둥, 소란스럽게 굴자 흙덩이가 불릿을 그녀에게서 슬쩍 떼어놓으며 대답했다.
흙덩이의 언어구사력은 아직 부족하기에 불릿이 중간에 알아서 걸러들어야 하는 점이 존재했다.
“그렇군. 놈이 죽었단 말이지….”
“어, 응, 어. 주, 죽었어. 부르르- 떨면서 말이지.”
몸소 상황을 재연해주며 어색함을 날려버리려는 올리비아.
그런 올리비아를 흙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불릿에게 알려주었다.
- 저렇게 바보같이 아냐. 쟤 바보야.
‘왜 이렇게 사이가 안 좋은 것인가?’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흙덩이가 올리비아를 싫어하는 것을 이젠 불릿도 알 수 있었다.
무표정, 특유의 애달픈 눈만을 하고 있었으나 그는 언뜻 불만이 엿보이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불릿이 자신 때문에 올리비아에게 질투한다는 것을 알지는 못한다는 사실.
질투의 이유까지야 당사자(?)가 털어놓지 않는 이상 알 도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만, 거기까지 하시오. 과인(寡人)이 호통을 쳐야 그만둘 터인가?”
“……아니. 미안.”
- 불릿, 나 미워하지 마…
몸에 기운도 없고, 올리비아의 장난에 살짝 짜증이 치솟은 상태에서 둘이 투닥거리자 자신도 모르게 본성이 나와버렸다.
백작으로서 가신과 백성들을 다스릴 때 분란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면 불릿은 이렇게 반응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불릿 자신도 놀라버렸다.
‘이런, 본인도 모르게 실수를 저질렀군.’
긴장의 끈을 느슨하게 놓을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혈기왕성한 육체의 반응.
그것을 지긋한 나이의 불릿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가 위치한 수레가 조용해졌으니 휴식이 절실한 불릿에게 있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었다.
“내 둘을 미워해서 그리한 게 아니니 마음상해 하지 마시오. 우리는 함께 전장을 헤쳐 온 동지가 아니오?”
“응…, 그래. 동지지, 동지야….”
불릿의 말에 왠지 모르게 입을 삐죽이며 고개를 살짝 돌리는 올리비아.
- 불릿, 동지가 뭐야?
그리고 동지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흙덩이는 그에게 의미를 물어왔다.
“흙덩이여, 동지라 함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목적이나 뜻이 같은 이를 의미하네. 말하자면 동행자라고 할 수 있겠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설명하는 불릿의 말에 흙덩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아선 구별하기도 힘들었으나 근래 흙덩이와 자주 붙어있던 불릿은 그것을 포착해냈다.
홱.
올리비아와 마찬가지로 불릿에게서 고개를 돌린 흙덩이.
상황이 이렇게 되니 수레는 불릿의 양 옆에 위치한 둘이 바깥으로 고개를 돌린 형국이 되었다.
“그래, 나는 좀 쉴 테니 경계를 서주면 고맙겠소.”
무슨 상황인지 알 리가 없는 불릿은 그들이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잔당을 주의한다 생각하며 기특한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선 도로 자리에 누웠다.
“…….”
- ……바보.
침묵 속에서 흙덩이의 한마디가 울려 퍼졌으나 정작 그 목소리를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깊은 꿈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토벌대가 돌아왔다!!”
“저 깃발을 봐! 토벌이 성공했나봐!”
“와아! 만세! 만세!”
토벌대가 영지에 도착하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영지민들은 환호와 함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짝짝짝짝짝-
“하핫! 안녕들 하시오!”
“크하하하하!!”
“커허험! 거기 처자, 오늘 나랑 함께하지 않겠어?”
영지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하는지 너나할 것 없이 모두 웃음기를 띠고 있었다.
“파발꾼이 제대로 도착했나봅니다.”
기사들은 소식이 전달되어 자신들이 돌아오는 것을 맞이해준 인파를 보며 한숨을 덜었다.
주민들이 나와서 환대를 해준다는 것은 영주가 그들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
그래서 살아남은 단원들도 비로소 웃을 수 있었다.
“자, 전사한 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소중한 보금자리를 지켰다.”
카를로스의 말에 토벌대의 인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은 사람은 이미 과거의 흔적이 되어 잊히게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이끌어갈 미래.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낼 미래이기도 했다.
“모두 수고했다! 자세한 보상은 정산을 통해 전달되겠지만, 섭섭지 않게 해주겠다! 오늘은 먹고 마시며 즐길 수 있도록!”
“와아아아아!!”
“기사나리 만세! 영주나리 만세!”
“기다려라, 소냐! 내가 간다!”
모두들 회포를 풀 생각에 들떠있는 이때,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
“……….”
- ……
둘, 아니 세 명(?)은 침묵을 고수하고 있었다. 불릿은 주변의 시끄러움에 막 깨어난 상태고 나머지 둘은 머뭇거리며 어색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후, 볼레트에게 뭐라고 해야 하지?’
토벌이 끝났으니 불릿과는 헤어질 시간이다. 그를 붙잡고 싶은 올리비아로선 무언가 접촉거리를 만들어야할 상황.
그때, 그들에게 기사단원 중 한 명이 다가왔다.
뚜벅뚜벅.
“볼레트 경, 잠시 괜찮겠습니까?”
이전에도 정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지금 기사가 보이는 예우는 흡사 높은 이를 대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마물과의 전투를 겪은 후 토벌대의 모두가 불릿과 올리비아에게 보이던 태도.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불릿은 자연스럽게 그것을 받아넘겼다.
“말해보시오. 무슨 일인데 그러하오?”
기사된 자가 아무 용무도 없이 다가왔을 리는 없다. 게다가 눈앞의 이자는 조금 전에서야 첫 대화를 튼 사이.
친분조차 없다는 소리였다.
불릿이 의문을 보이자 기사가 곧바로 그것을 해소해주었다.
“방금 전 영주님의 사자가 소식을 일러주었는데, 토벌대의 성공을 이끈 주역인 볼레트 경과 올리비아…씨를 모시고 싶답니다.”
“나와 올리비아를 성으로 초대한단 말이오?”
“…….”
불릿이 물음을 보이고 올리비아는 침묵을 지킨다. 기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습니다. 부디 참석해주시길 바랍니다.”
영주가 초대한 손님이라곤 하나 그 외에도 전장을 함께한 전우라서 그런지 호의를 담은 어투였다.
자신의 영지도 걱정되긴 했으나 어차피 휴식은 필요불가결.
위장신분인 볼레트라는 용병의 명성을 높일 필요도 있었기에 불릿은 이에 응했다.
“좋소. 내 영주님의 호의를 받아들이겠소이다. 올리비아는 어떻소?”
불릿이 초대에 응하자 올리비아는 애매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볼레트가 좋다면야…. 가자, 안 될 것도 없지.”
둘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사는 불릿과 올리비아에게 예우를 건네며 인사를 했다.
“묵고 계시는 여관으로 사람을 보낼 터이니 저녁까지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단순한 식사는 아닌 듯하군.’
인사치레를 위해서라면 용병 따위, 점심의 티타임에 만나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저녁에 부르는 것을 보니 조금 기대해 볼만할 터.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기사는 고개를 살짝 숙인 후 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 작품 후기 ============================
오늘도 추천과 선작을 해주신 독자분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내일도 저녁 6시와 12시에 올라오니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