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42화 (42/241)

00042  마물 토벌대  =========================================================================

“흙덩이여, 돌벽 10개 소환!”

- 응…

드드드드득-

그의 명령에 따라 가로세로 2미터의 돌벽이 토벌대를 둘러싸는 형태로 소환되었다.

비틀-.

“크윽, 뭐하고 있소! 빨리 대열을 갖추지 않고!”

불릿이 극심한 정령력의 소모를 감당하면서까지 일종의 바리케이드인 돌벽을 만들어내자 기사들이 정신을 차리며 고함을 외쳤다.

“전군! 벽을 앞세워 놈들의 돌격을 막아내라!”

“죽기 싫다면 벽을 사수하라!”

기습을 당하는 와중에 불릿이 소환한 돌벽은 매우 든든한 아군이나 마찬가지.

일단 돌격만 막아내면 기습의 효과는 사라질 터였다.

“허억, 허억.”

아직 중급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한 불릿에게 있어 돌벽은 몸에 부담이 되는 기술이었다.

그가 적정수준이라 여긴 5개가 거의 절반에 해당되는 정령력을 소모시키는데, 여관에서 마정석을 소모해 정령력을 키웠다한들 10개는 무리였다.

그는 황급히 품에서 얼마 남지 않은 마정석을 꺼내들고 정령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우우웅-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직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불릿이 몹시 지친 모습을 보이자 걱정이 된 올리비아가 물음을 건넸다.

그녀의 걱정에도 불릿은 정신없이 마정석을 흡수했고, 흙덩이는 그의 곁을 지키며 몬스터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젠장, 무슨 일인지…, 빨리 끝내라고!”

그녀는 불릿을 등지며 뽑아든 검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자세한 것은 몰랐으나 불릿 덕분에 쓸려나갈 뻔했던 전열이 지켜졌단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지쳤다는 것까지 유추하자 지금으로썬 그를 지키고 있는 것이 최선이란 판단을 내린 것이다.

- 크와앙!

마물의 우렁찬 외침에 기사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놈이 더 강해졌군.”

카를로스와 그의 동료기사들은 얼마 전에 봤을 때보다 마물이 더 강해진 것을 깨닫고 좀체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하급 마물은 마기를 품고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기보다는 육체의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육체에 의존하기 때문에 덩치가 커지고 골격이 기괴해진다. 그 몸을 감당하기 위해선 대량의 식량이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 닥치는 대로 주변을 먹어치운다.

결국 자신이 살아남고자 펼치는 파괴행위이기에 쫓아내더라도 다시 습격한다.

이번이 벌써 4차 토벌대, 그동안 하급 마물에 이끌린 몬스터들의 수를 줄이는 데엔 성공했으나 정작 본체인 하급 마물은 처리하지 못했다.

“크아앗! 죽엇!”

“케헥-.”

- 커허헝!

마물과 용병들이 뒤섞여 혈투를 치른다. 병사들은 본신 능력이 떨어지기에 용병들을 보조하거나 자기들끼리 뭉쳐 접근을 막아내기만 했다.

불릿의 돌벽 덕분에 기습을 막아내긴 했으나 그것이 전세를 뒤집을 만큼의 역할을 하진 못한다.

마기의 영향으로 광폭화된 몬스터를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 그저 죽여야만 했다.

“단장, 놈이 너무 거대합니다.”

“접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떡해야 하지요?!”

용병들이 비명횡사하는 와중에 기사들이라고 뾰족한 수는 없었다.

저 거대한 동체의 하급 마물에게 다가서려면 몬스터를 죽여야 하는데, 그걸 가만히 내버려둘 놈이 아니었다.

게다가 놈의 두꺼운 피부와 튼실한 하체는 아무리 공격해봤자 무용지물.

하급 마물을 쓰러뜨리려면 방법은 단 하나, 머리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으으음…….”

이곳에서 기사단은 최고로 중요한 전력. 용병들이 몬스터를 잡는 데엔 전문가였으나 마물에겐 생체기 하나 내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고뇌하는 장면을 불릿이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

‘이들은 지식으로만 마물을 상대했나보군. 대개 저런 놈은 머리, 그 중에서도 이마를 공격하면 효과적이거늘.’

“볼레트, 이제 괜찮아?”

“지켜주어 고맙소.”

전황을 지켜보던 불릿은 등을 내보인 채 검을 치켜들고 있던 올리비아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예전 결사대원들이 은연중 자신을 감싸주던 장면이 겹쳐 보였다.

올리비아를 보자면 아릿한 향수가 느껴졌기에 불릿은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올리비아, 저들의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겠소?”

불릿이 손가락으로 기사들을 가리키자 그녀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왜 묻는데?”

뭔가 말하기 꺼려하는 모습이었으나 불릿은 단호하게 되물었다.

“반드시 알아야 하오. 저들의 경지가 어찌되오?”

마치 그녀가 알 거라는 양 묻는 모습. 그녀는 조금 망설이더니 용병과 병사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에 결심을 굳혔다.

“익스퍼트긴 한데, 아직 중급의 경지엔….”

“흠, 익스퍼터라…….”

익스퍼트라면 초급의 경지일 지라도 하나의 벽을 뚫은 상태이기에 마나소드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불릿은 그들에게 좀체 믿음이 가질 않았다.

기사는 전장에서 지휘관이 되어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전투에 임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저들의 모습을 보라, 허둥대는 저 모습에서 지휘관임을 떠올릴 수 있느냐 이 말이다.

‘역시 저들과 연관이 있는 듯하군.’

혹시나 싶어 물어보았지만 올리비아는 대답을 하는 것을 꺼려한 것이지 기억을 더듬던 모습은 아니었다.

이는 올리비아가 기사들에 대해서 잘 안다는 뜻. 자신의 앞에서 저들을 모른 체했다는 것, 저들이 올리비아를 은연중 주시한다는 것.

앞서 종자기사가 내보인 행동만 제외하면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아직 마물은 날뛰지도 않았는데 단순한 외침에도 전세가 흐트러지고 있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하급 마물은 자신이 왕이라도 된다 생각하는지 위풍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거대한 동체가 마치 이동하는 요새를 보는 듯했는데, 이곳에 오기 전에 지나쳤던 라 쓰랑의 요새도시가 생각날 정도였다.

사람이라면 응당, 아니, 생물이라면 자신보다 2배 이상은 더 큰 존재를 보면 압도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도 하급 마물이 저렇게 클 줄은 몰랐다. 진짜 저게 마물 중에서도 약한 축에 드는 게 맞긴 한 건가?”

질렸다는 듯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올리비아. 그녀는 마기에 홀린 몬스터들을 맞상대하는 용병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너는 더 이상 나서지 않는 거야?”

처음 불릿의 활약은 눈부셨지만 전투가 시작된 이후 그의 활약상은 점차 잊히기 시작했다.

아직까진 마물떼를 상대로 용병과 병사들이 잘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가 나서준다면 전황이 급진될지도 몰랐다.

그러나 불릿은 그녀의 말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흙덩이가 하급 정령치곤 강한 축에 들지만 어디까지나 하급이오. 나 또한 하급 정령사이기에 흙덩이의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소.”

한계, 그것이 마물과의 전투에서 또 다시 발목을 잡는다. 모자란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었으나 불릿은 온갖 산전을 겪고 이 자리에 선 인물.

이 정도로 꺾이거나 하진 않았다.

“돌벽이란 것이 딱딱한 물체를 구현하는 기술이라 정령력의 소모가 심하오. 치명타를 날리기 위해선 호흡의 조절도 필요한 법이오.”

“응? 그러고 보니 돌벽이란 거, 다른 정령사들이 사용하던 거랑 조금 틀리네?”

기존 땅의 정령사들은 수비를 할 때 돌 대신 흙을 이용한다. 끌어올리기도 쉽고, 관통공격만 아니라면 충격의 흡수에도 용이했다.

하지만 불릿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몇 초이지만) 정령력의 소모도 심한 돌로 구현해냈다.

그 이유를 불릿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름지기 수비라 함은 아군과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가 관건인 것인데, 흙더미로는 벽을 설치하더라도 일회용 밖에 안 되오.”

흙은 충격을 잘 흡수한다. 하지만 형체를 유지하기 힘들었기에 몇 번의 공격도 막아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돌로 만들어낸 벽은 등지고 싸우기에도 용이하고, 전투가 끝날 때까지 유지가 가능하지.”

단단한 돌벽은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동시에 적의 진군도 방해한다.

거기에 더불어 순간적인 정령력의 소모가 클지는 몰라도 유지비용(정령력)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수비에만 신경 쓰지 않아도 됐다.

아무래도 흙이나 모래는 사방으로 흩어지니 말이다.

“흙덩이가 일점사격, 또는 광역공격으로 적을 쓸어버린다 해도 전투를 완전히 끝마칠 수 없다면 아군의 생존력을 높이는 게 답이 아니겠소?”

새로 개발한 지옥송곳으로 일정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지만 더 이상 남은 마정석이 없는 이상 무리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 공격에 하급 마물은 죽지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송곳의 길이는 지면으로부터 1미터가 한계였으니 말이다.

“그으래?”

그럼에도 무언가 미심쩍다는 올리비아의 발언에 불릿은 그녀의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 했다.

“뭐, 그런 이유들도 있지만 나는 당신이 걱정되오.”

“……나 말이야?”

뜬금없는 소리에 뒤늦게 터져 나오는 반응. 불릿은 여자에 대해서 무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잘 알기에 자신에게 그런 로맨틱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인지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체스도 마찬가지로, 직접 플레이할 때보다 옆에서 훈수를 두는 이가 상황을 더 잘 파악한다고 하지 않는가?

“올리비아처럼 아름다운 레이디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 혼란스런 전장에서 으뜸 되어야 할 사항 아니겠소?”

여자치고 예쁘다는 소리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레이디라는 단어는, 모든 여성들이 좋아하는 말 중 하나였다.

그렇다곤 해도 이런 닭살 돋는 대사에 홀리는 여자가 있기는 한 것일까?

화아악-

“흐, 흥. 이런 상황에서 그런 소릴 해봤자 기분 좋진 않다고.”

불릿에게 등을 보인 채 말하는 올리비아. 그녀는 말과는 다르게 귀까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만 그 모습을 불릿이 보지 못했지만.

상황의 추이를 보려던 불릿으로선 데빌로안 영지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 짐작되는 올리비아를 잠재운 것에 만족했다.

- ……때릴까?

그 와중에 살벌한 소리를 내뱉는 흙덩이. 자칫 불상사가 발생하기 전에 불릿은 재빨리 손을 놀려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달래기 바빴다.

남들이 보기엔 여유롭게 여자를 끼고 전투를 관람하는 한량의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 * *

- 크헝, 커허헝…

이 전장에서 그 누구보다도 광기에 짙게 물든 존재. 거대한 동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하급 마물의 한 종인 놈은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며 조그마한 인간들을 노려보았다.

츄르릅-.

입맛을 다시는 것인지 입이라 여겨지는 곳에서 질퍽한 액체가 흘러나오다 뱀처럼 휘둘러진 혀에 도로 삼켜졌다.

이 거대한 괴물의 행동을 본 것인지 저 멀리서 인간 몇이 움찔, 멈칫하다 몬스터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본인이 무얼 한 것이 아님에도 존재자체만으로도 생물을 압박하는 하급 마물의 위엄.

오히려 중급 이상의 마물들의 크기가 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급 마물은 지나치게 컸다.

따닥. 따닥.

“으으…, 저, 저걸 무슨 수로 이겨….”

“방금 우릴 보고 입맛을 다신 거야?”

“행여 도망칠 생각마라… 도망치다 뒤진 놈들이 한둘이 아니니까.”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투 중에 지레 겁을 먹고 도주하다 등에 칼날이 박히거나 뒤따라 잡혀 죽는 경우는 흔했다.

대부분의 몬스터는 인간보다 빨랐고, 마물을 상대로 도망쳐봤자 결국 더 강대한 재앙이 되어 들이닥칠 뿐이었다.

- 크르르르…

하급 마물의 울음소리는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간간히 피어(fear)를 흘리는 것만으로도 전투에 숙련된 인간들과 몬스터를 대등하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런 놈의 시선은 느릿하지만 또렷하게 어느 장소를 주시하고 있었다.

흉측한 놈의 얼굴이 향한 방향을 따라가니 그곳의 끝엔 강철로 무장한 기사도, 위협적인 화살을 날리는 용병도 아닌 누런 피부색의 미소녀에게 향해있었다.

- ……?

나뭇가지처럼 비리비리해 먹을 만한 부위도 없어 보이는 남자.

그리고 남자의 곁에는 새끼인간 다음으로 맛있는 여자의 쫀득한 근육이 엿보였다.

- 킁, 킁킁.

유달리 맛있는 냄새, 마나의 향. 암컷이라는 맛있는 음식에 마나의 향이라는 조미료까지 첨가되자 먹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 크크큭!

뼈다귀와 흡사한 수컷과 누런 피부의 애새끼에게서 역겨운 냄새가 났지만 쓰레기는 치워버리면 그만.

서둘러 놈들을 치워버리고 맛있어 보이는 암컷인간들로 배를 채우고 싶었다.

- ……

오줌처럼 노란 애새끼가 자신을 주시하는 것을 느꼈으나 코웃음을 쳤다.

자신도 저런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먹을 수도 없는 놈(?)에겐 관심이 없다, 이 말이다.

푸취익-!

콧김이 수증기처럼 뿜어지며 콧바람을 내자 저 멀리 콩알처럼 보이는 누런 애새끼도 새침한 자세로 자신을 따라하는 것이 보였다.

훽!

하는 것처럼 보이는 고갯짓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12시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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