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1 마물 토벌대 =========================================================================
불릿이 생각하기론 마물이 출현했다면 몬스터가 적어도 지금의 2배는 더 있었어야 했다.
게다가 하급 몬스터만 보였고, 중형급은 한 마리도 보이질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토벌대의 구성이 너무도 빨리 끝났다.’
용병을 모으고, 정리하며 배분하는 병사들의 솜씨. 그들을 다루는 기사들의 능숙함까지.
토벌대라는 것이 흔하게 꾸려지는 것이 아닌지라 그들의 일솜씨는 이상할 만치 뛰어남을 자랑하고 있었다.
‘마치 여러 번 해본 것처럼 말이지.’
의문이 쌓이자 이것을 해소하지 않고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거라 여긴 불릿은 슬쩍 올리비아에게 말을 걸었다.
“올리비아, 물어볼 것이 있소.”
“응? 뭔데?”
올리비아는 몸에 묻은 피를 닦으며 불릿을 응시했다.
“이번 토벌대는 몇 차로 꾸려진 것이오?”
보통 토벌령이 떨어지기까지 과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영지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다가 안 되면 도움을 청하는 것이지, 무턱대고 용병들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 사람들이 영주의 능력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위험성 외에도 대량의 용병을 고용한다는 것에서 금전적 압박감도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네 번째. 4차 토벌대라고 부르더라.”
“4차라…, 알겠소.”
“근데 그건 왜?”
“생각보다 쉽게 진행이 되어서 그렇소.”
쉽긴 쉬웠다. 그의 ‘예상’보다는. 지금도 사상자가 나와 죽은 이들은 땅에 간이로 매장됐고, 나중에 토벌이 끝나고서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와, 이게 쉬워? 너 장난 아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질렸다는 표정을 짓는 올리비아를 뒤로한 채 불릿은 전진을 시작하는 토벌대를 보며 근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선봉대의 희생이 컸겠어.’
미지의 적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적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전력을 가지고 어디서 자신을 습격하는 것인지 몰랐던 선발대.
그들은 큰 희생을 치르고서야 놈들을 이곳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그래서 전장에서 가장 먼저 희생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정찰병이나 수색대원들이기도 했다.
“올리비아.”
“왜, 너도 닦을래?”
그녀는 자신의 몸을 닦던 수건을 건넸는데, 피가 묻어있음에도 은은한 향기가 배어나오는 듯했다.
“뭐해? 받으라구. 자.”
휙-.
“음…….”
올리비아는 피가 묻은 가장자리를 곱게 접은 후 수건을 불릿의 품에 안겨주었다.
얼떨결에 받아든 불릿은 난감함을 드러내지도 못했다.
그녀가 자신을 생각해 건네준 것인데 필요 없다며 바로 돌려줄 수도 없지 않은가?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불릿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흙덩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왜?
자세히 보니 흙덩이의 몸에도 몬스터에게서 튄 오물이 묻은 것이 보였다.
생각해보면 전투 후에 흙덩이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는 것을 떠올린 불릿은 자세를 낮추며 흙덩이의 눈높이, 허리아래까지 다리를 접었다.
- ?
“가만히 있어보시게.”
솔직히 정령에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흙덩이는 다른 정령들과 달랐다.
불릿이 남다른 애정을 가지는 존재이기도 했고, 정령이라기보다는 인간아이 같은 분위기를 풍겼기에 손이 가는 것이었다.
스윽, 스윽.
- ?? 그거, 왜 나한테 발라?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문지르는 불릿에게 흙덩이가 의문을 품자 그는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더러운 몬스터의 피를 제거하는 것이네. 가만히 있어보게.”
마치 부모가 아이를 세수시키듯 문지르자 무표정했던 흙덩이의 얼굴이 절로 찡그려졌다.
- 시러…, 싫어.
“어허, 가만히 있게나! 아직 덜 닦았네.”
구석구석 꼼꼼히 닦으려는 불릿과 불편했는지 자꾸 손길을 피하려는 흙덩이의 모습.
이 광경을 지켜보던 올리비아는 기가 찼는지 팔짱을 끼고서 헛웃음을 뱉었다.
“하, 참나. 자기가 얘 부모야, 뭐야? 아주 애아빠 납셨네.”
자신이 호의로 건네준 수건을 비록 정령이라지만 다른 자에게 사용하니 기분이 안 좋아진 올리비아였다.
저녁이 되자 토벌대는 진격을 중단하고 서둘러 야영을 꾸리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한층 강해지는 마물들 때문에 이에 영향을 받는 몬스터들 또한 덩달아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몬스터는 야행성의 기질이 다분해 밤눈이 어두운 인간이 감당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어차피 휴식도 취해야 했기에 불릿은 한쪽에 거처를 마련하고 몸을 쉬게 두었다.
- 힘들어, 불릿?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에 불릿은 마음이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흙덩이를 자신의 곁에 앉혔다.
포옥-.
바로 옆에 자리한 흙덩이는 멀뚱멀뚱 지나가는 용병들을 보며 말을 꺼냈다.
- 기분 나빠. 쟤네, 자꾸 나 봐.
용병이건 병사건, 하다못해 기사들까지 지나가면서 슬쩍슬쩍 흙덩이를 바라보자 기분이 상했나보다.
지금은 준 전시상황, 하물며 숲은 인간의 보금자리가 아니기에 위험에 대비하고자 시선이 쏠리는 것을 감내하고 흙덩이를 소환해두었다.
불릿으로서도 썩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으니 당사자인 흙덩이는 얼마나 기분이 나쁠지 짐작이 갔다.
그가 흙덩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야영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눈을 가렸다.
스윽.
“누구-게?”
- 불릿, 죽여?
‘어허, 큰일 날 소릴! 그러지 말게.’
기겁한 불릿이 강하게 의념을 전하자 실패가 빈번하던 것이 이번에는 잘 통했는지 얌전해진 흙덩이.
그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가린 손을 잡아 내리며 입을 열었다.
“올리비아, 당신 말고 내게 다가올 여인이 어디에 있겠소?”
전장터라고 여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은 남자로만 꾸려졌으나 용병은 의외로 비율이 꽤 높았고, 기사들도 간간히 여성들이 보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불릿과 인연이 있는 여자는 올리비아 단 한사람. 그렇기에 생각할 필요도 없이 즉답이 나온 것이다.
“뭐, 그러면 다행이고.”
뭐가 그리도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전장에 온 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죽은 자도 있으니 애도를 표하진 못할지라도 지나친 장난은 삼가시오.”
“내가 우리 아빠처럼 굴지 말랬지? 나이는 울 아빠 절반도 안 되는 게 말투는 대체 왜 저러는지…, 애늙은이야, 애늙은이.”
아니다. 불릿의 나이는 올리비아의 아버지보다 많을지도 몰랐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결코 어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올리비아가 알 리도 없었고, 불릿의 겉모습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기에 발생한 헤프닝이었다.
“…뭐야. 얘 표정은 왜이래?”
“무엇이 말인가?”
올리비아가 자신을 쳐다보는 흙덩이를 마주보더니 인상을 구겼다.
“왜 노려보고 난리야? 얘, 언니한테 불만 있니?”
“……정령의 나이를 겉모습으로 속단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오.”
“알게 뭐람? 왜 노려보고 난리야, 쯧.”
그 말에 불릿도 흙덩이를 쳐다보았다. 애달픈 눈동자는 올리비아에게서 자신에게로 시선이 이동했는데, 아무리 봐도 표정변화를 감지하기 어려웠다.
- 불릿, 쟤 때려도 돼?
살벌한 소릴 남발하는 흙덩이에게 불릿은 거듭 강조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절대 안 되네.’
- 치…
“끄응…….”
흙덩이는 시종일관 자신과 붙어서 지내며 인간세상을 배웠다.
불릿은 흙덩이에게 나쁜 것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어디서 저런 인격이 형성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여기 계셨습니까.”
앉아있던 불릿이 고개를 들자 앞에는 예의 그 기사, 카를로스가 다가와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카를로스의 시선은 또 다시 불릿이 아닌 뒤편을 빠르게 훑고서 돌아왔다.
‘내가 아닌 올리비아의 눈치를 본다?’
분명 인사는 불릿에게 해놓고 눈치는 올리비아의 것을 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지만 곧이어 터져 나오는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두 분과 함께 저녁을 들며 앞으로의 여정을 논의하고 싶은데, 괜찮겠소?”
카를로스의 제안에 불릿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준다면 우리야 좋소.”
“그럼 이리로 따라오시오.”
용병들이 요리를 아무리 잘해봤자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기사들의 식사만큼은 못했다.
불릿도 사람인지라 맛있는 음식이 좋았으므로 흔쾌히 수락했던 것이다.
‘저게 이유의 전부는 아닐 터지만.’
무언가 더 있는 듯했지만 그로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기에 따라나섰다.
그를 따라가자 그럴듯한 천막 안에는 호화롭진 않았으나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는 구색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런저런 고민에 잠겼던 불릿이 무의식중에 올리비아를 먼저 배려해 자리에 앉히자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고, 고마워.”
“…음? 아아, 별거 아니오.”
레이디 퍼스트(lady first), 귀족이라면 누구나 익히는 예법 중 하나였다.
딱히 올리비아를 생각해서 한 것이 아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행한 행동에 기사들의 시선이 쏠렸다.
‘…뭐지? 이상하게 호의적인데….’
론 타로 왕국 특성상 용병과 상인을 우대하는 정책이 펼쳐져 있기에 그런가 싶었지만 그래도 조금 부담스러웠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카를로스가 입을 열었다.
“이 자리는 준 전시상황이기도 하고, 그대들은 초대를 받아 온 것이니 식사예절에 구애받지 않아도 될 터이오.”
“알겠소.”
“그럼, 식사를 시작하지.”
달그락.
덜그럭.
“…….”
“……….”
식사는 의외로 조용했다. 몸을 쓰는 이들이지만 용병들과는 달리 기사들은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그러나 빠르게 음식을 섭취해나갔다.
* * *
“후우.”
풀썩.
불릿은 자신에게 배정받은 막사의 간이침대에 몸을 눕히고 생각에 잠겼다.
‘우리와 함께 일할 생각은 없소?’
‘거절하겠소. 나에겐 할 일이 남아있소.’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 대화가 있었는데, 정령사라지만 겨우 하급이며 용병나부랭이에게 지나칠 정도로 호의를 보이고 있었다.
이 막사만 하더라도, 아무리 활약했다 한들 올리비아와 불릿은 용병일 뿐이었다.
그것도 A급, B도 아닌 C급의 용병. 올리비아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C나 B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렇게 대규모로 이동하는 야외에서 개인막사를 지급해주는 것은 여러모로 특혜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올리비아의 눈치를 계속해서 보았단 말이지.”
왜 그녀의 눈치를 보았을까? 기사가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랬는지 불릿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영지에 깊은 관련이 되어있는가 싶으면, 종자기사의 행동이 거슬렸다.
지금 그들이 중요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밝힐 수 없는 궁금증은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움을 안겨주고 있었다.
- 잘 자.
불릿의 보호를 위해 곁에 나란히 누워있던 흙덩이가 인사를 건네자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친밀의 의식(?)인 머리쓰다듬기를 해주며 그도 속삭였다.
“내일보세나.”
짹.
째짹-.
이런 깊은 숲속에도 작은 새들은 있나보다. 짤막한 새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불릿은 몸을 가꾼 후 막사를 나섰다.
“일어났어? 가자.”
“알겠소.”
올리비아는 언제 일어났는지 불릿이 막사를 나서자마자 마주쳤는데, 아무래도 기다렸던 모양이다.
딱히 불릿이 늦었던 것도 아닌지라 간단히 대꾸한 후 그녀를 따라갔다.
불릿과 올리비아는 이번에 참가한 용병들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기에 전력보존을 위해 불침번을 서지 않았다.
용병들도 겨우 불침번 때문에 그들이 피로해서 자신들이 죽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행군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몬스터들과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크아아악!”
“끼긱, 끼끼끽!”
“취이익!”
토벌대만이 숲의 적막을 깨고 있던 찰나, 갑작스레 몬스터들의 괴음이 울려 퍼지더니 그들의 앞에 떼거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지! 정지! 방어대형!”
“방어대형!!”
“씨팔, 무슨 일이야!”
“마물이다! 마물이 나타났다!”
그들의 예정보다 빠른 시점에서 원래 계획대로가 아닌, 하급 마물이 그들을 사냥하기 위해 기습을 가해왔던 것이다.
올리비아를 포함해 모두가 당황하는 사이, 불릿이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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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저녁 6시, 12시 2연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