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귀환정령사-26화 (26/241)

00026  산골마을 토빗  =========================================================================

“당신이 하던 장난질에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시오.”

“아, 그게 아니라, 조금만 봐주시면!”

“그럼 돈을 가져오던가.”

멈추지도 않고 걸어가면서 불릿이 던지는 말에 발터는 그대로 굳더니 이내 잡으려던 손을 내리며 투덜거렸다.

“쳇, 그거 좀 가르쳐주면 어디가 덧난다고.”

그리고 그것을 들은 불릿.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마을로 들어섰다.

“어디서 쥐새끼가 찍찍거리는군.”

딴에는 속삭인다고 했지만 발터의 목소리는 컸고, 불릿도 그를 따라하며 대사만 바꾸었다.

발터 또한 그의 말을 들었는지 얼굴이 벌게지며 팩하니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쓰레기로군.’

저런 사람이 거주하는 마을이라면 오래 머물 곳이 못 된다 생각하며 불릿은 여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불릿은 화전마을과는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차이가 있군.’

그 차이란 꽤나 컸다. 일단 화전마을은 도망자들의 마을, 정상적으로 생겨난 곳이 아니기에 없는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한 번에 많은 물건을 가져갈 수도 없고, 상인들의 정식루트로 등록될 수도 없는 악순환.

그 고리를 끊으려면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들 스스로 일어서야 했다.

‘이정도 규모는 넘어서겠지.’

그 누구도 아닌 불릿 본인이 직접 나선 일이다. 그러니 화전마을은 적어도 여기보다는 더욱 발전하여 존속을 이어갈 수 있으리라.

불릿이 마을 안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다가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간혹 그의 잘생긴 외모를 주시하는 시선이 있었지만 대부분 여성들이기에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곳인가.”

간판은 글자 대신 접시와 포크, 나이프가 그려져 있었고 그 위의 다른 간판은 침대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글을 모르는 이가 모더라도 숙식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곳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양.

마을의 규모가 이전보다는 크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개가 존재할 정도로 거대하진 않았다.

이곳에 묵기로 결정한 불릿이 여관에 들어갔다.

끼이익-.

안에 들어서자 바깥과는 냄새가 달라졌다. 짐승 특유의 노린내와 얼핏 새어나오는 피냄새.

이곳을 이용하는 자들이 어떤 이들인지를 알만한 대목이었던 것이다.

그가 들어서자 주인으로 짐작되는 이가 그릇을 닦으며 물음을 토해냈다.

“……직업이 뭐요?”

“용병이오.”

“휴, 그렇구만.”

딱딱하게 굳었던 주인의 얼굴이 풀린다.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불릿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그의 심경을 알아챈 주인이 해명을 시작했다.

“외모가 워낙 곱상해서 귀족인 줄 알았소. 귀족은 세리오 남작님을 제외하곤 질이 안 좋아서 말이지.”

누가 들으면 불경죄로 잡혀갈 소리를 태연하게 했으나 멀리서 술을 홀짝이는 이들이 ‘옳소!’라고 술에 취한 목소리로 대꾸하는 것이 들렸다.

“그래, 무얼 원하오? 식사? 침실?”

용병이란 것을 알게 되자 한결 편해진 말투와 태도. 이를 통해 불릿은 그들이 귀족에게 나쁜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 나라의 귀족 또한 이기적인가 보군.’

개인주의자는 자기만 챙긴다. 이기주의자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면서 이득을 취한다.

그리고 이기주의적인 귀족들이 대다수이기에 불릿과 같은 이가 찬양을 받았던 것이고.

“둘 다.”

“식사는 지금?”

“그렇소.”

“잠시 기다리시오.”

간결한 대화가 오가고 주인이 뒤편으로 사라지더니 부산스러운 소란이 들리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탁탁탁.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주인이 모든 일을 겸하는 모양.

중년남성 혼자서 꾸리기엔 다소 큰 게 아닌가 싶었으나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이 크기에 여럿 고용했다간 적자가 나겠지.’

사람의 유동이 많지 않은 마을이기에 이러한 구조를 띠게 된 것 같았다.

아마 다른 상점들의 사정도 마찬가지.

‘여관의 분위기도 그렇고.’

슥 주위를 둘러보니 술을 홀짝이는 사내 두 명과 이제 막 위에서 내려오는 남성이 있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짐승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두 가지를 의미했다.

하나는 짐승을 전문적으로 잡는 사냥꾼이기에 그 냄새가 몸에 밴 것.

또 하나는, 죽이는 것을 생업으로 삼아 자신들도 짐승처럼 노린내를 풍기게 된 것.

말하자면 용병이란 뜻이었다.

“여깄소.”

달칵, 달칵.

어느새 완성된 음식들이 그의 탁자에 놓이고 있었는데, 간단한 스튜와 빵이었다.

기본중의 기본이랄 수 있는 식단이었기에 불릿은 달리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요금은 선불이니 지금 내시면 되오.”

요리를 내온 주인장이 어째서 곁에 멀뚱히 서있는가 했더니 돈을 받으려던 것이다.

확실히 용병이나 사냥꾼들은 벌이가 불규칙하기에 수중에 돈이 없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외상으로 받으면 가게를 운영하기 힘드리라.

불릿은 잠시 멈칫했다. 돈은 있지만 그것은 금화, 섣불리 보여줬다간 마을에서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었다.

잔돈이 없는 현재,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던 불릿은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작은 돌을 하나 꺼내들었다.

“이것으로 되겠소?”

그가 꺼내든 것은 최하급의 마정석. 고블린과 오크를 죽이다보니 꽤 많은 마정석을 보유할 수 있었는데, 사실 최하급이 대부분이라 그리 아까울 것도 없었다.

그리고 최하급 정도라면 사냥꾼들도 간간히 보는 물건. 희귀할 것도 없었다.

마정석을 받아든 주인은 그것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말을 툭 내뱉었다.

“최하급이니 상품의 질은 안 따지는 것은 알고 있소?”

불릿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잔돈을 찾더니 금액을 나누고 있었다.

마정석도 경지를 나누듯 상중하로 나뉘는데 최하급은 간신히 마력을 품은 돌인지라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었다.

“며칠을 묵고 식사는 어떻게 할 거요? 식사는 별개, 하루 묵는데 10쿠퍼, 방금 내온 식사로 한 끼에 5쿠퍼요.”

평민들의 생활은 대부분 쿠퍼로 계산된다. 100쿠퍼가 1실버, 100실버가 1골드가 되지만 골드까지 소유할 일은 거의 없었다.

하루에 10쿠퍼. 그 말은 이렇게 질이 좋지 않은 여관에서 하루 묵으면 무려 2끼를 먹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5쿠퍼의 식사. 묽지 않고 걸쭉하긴 했으나 안에 건더기는 별로 없었고, 빵은 시중에서 파는 3쿠퍼짜리의 1/3을 내온 것.

언뜻 폭리를 취하는 것 같았지만 이곳은 지리적으로 인근에서 유일한 여관인데다가 이용자가 용병이나 사냥꾼밖에 없었다.

이 정도도 안 받으면 여관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소리.

그들도 이 사실을 아니까 불만은 있더라도 항의하지 않고 이용하는 것이었다.

“여기는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도 아니니 많이 쳐줄 수 없소. 저기 건너편에 마탑에서 설치한 지부가 하나있긴 한데, 그놈은 좌천된 놈인지라 물건을 사더라도 터무니없이 후려친다오.”

말하자면 자기도 싸게 책정하겠지만 적어도 이곳의 마탑지부보단 낫게 쳐준다는 소리였다.

주인장의 말에 불릿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있어 최하급은 그다지 상관없었다.

이제는 품에 가지고 다니기에도 수량이 많아 최하급엔 별로 미련조차 없었으니까.

불릿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인의 얼굴도 약간 밝아졌다.

“시원해서 좋군. 최하급 마정석은 저 앞의 놈은 3실버에 쳐주지만 나는 4실버로 계산하겠소. 도시에 가면 더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알잖소? 머니까 여기서 파는 거지.”

뭔가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틀린 말도 아닌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상행위라는 것이 다 그렇다. 물건이 나오는 산지에서는 싸지만 그것이 안 나는 곳에선 가격이 올라가는 것.

그래서 상인들이 지역을 오가며 특산물을 사고 다른 지역에 파는 것이었다.

“귀찮으니 1주일 치 계산하고 식사도 그만큼. 다만 식사마다 고기와 과일도 내왔으면 좋겠소만.”

“크, 이 사람,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구만!”

감탄사를 터뜨리며 환히 웃는 주인장. 그가 누렁니를 드러내며 찬사를 보내는 것은 불릿이 돈 깨나 쓰는 대박손님이기에 그렇다.

“주인장, 보아하니 지금은 한가한 모양인데 앉아서 술이나 한잔하며 정보나 좀 풀어보시오. 먹는 비용은 내가 계산하지.”

“오…. 당신, 센스가 장난이 아니오?”

“정보를 푸는 대가라고 생각하시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은 허튼 생각하지 말라하고.”

“크흠.”

“…흥.”

술을 마시며 그들을 주시하던 이들이 불편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돌렸고, 위에서 내려오던 사람은 아직도 안 나가고 멀뚱히 쳐다보다가 불릿의 시선에 황급히 밖으로 나섰다.

마을입구에서 만난 발터라는 청년 때문에 심기가 불편했던 불릿은 사전에 사건을 차단할 요양으로 그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말끔한 외모로 그래봤자 위협이 안 되겠으나, 그는 전장을 겪을 대로 겪은 역전의 용사.

기세만으로도 그들을 제압하기엔 충분했다.

드륵-.

의자에 앉은 주인장은 그새 가져온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안주를 집어먹었다.

“크으…, 여관이 내 것이긴 하지만 맘 편히 먹을 수가 없다오. 그놈의 돈이 뭔지, 나 원 참. 아, 돈을 안 드렸군. 잠시만 기다리시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뒤적이더니 돈을 꺼내 불릿에게 건네주었다.

“여기 있소. 105쿠퍼. 1주일 숙박 70쿠퍼에 하루 두 끼 30쿠퍼. 일주일이면 210쿠퍼지. 매 끼니마다 고기와 과일이 곁들어지니 비싸도 이해하시오. 거기에 내 술값 15쿠퍼. 그래서 105쿠퍼가 거스름돈이오.”

“겨우 그거 먹고 15쿠퍼로 계산하시오?”

주인장의 손엔 맥주 한 잔과 안주로는 마른 육포가 전부였다.

고기와 과일, 스튜와 빵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것이 15쿠퍼라는 것을 생각하면 같은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구성이었기에 불릿이 물어본 것.

이에 주인장이 쓰게 웃으며 대답했다.

“좀 봐주시오. 이런 식으로라도 돈을 벌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오. 저들만 봐도, 식사는 1인분인데 술잔은 하나씩 기울이잖소? 안주를 시킬 돈이 모자라니 저렇게라도 마실 수밖에.”

주인장이 조그맣게 속삭이자 불릿도 곁눈질로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두 사람을 보았다.

언제부터 먹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맥주는 여럿 먹는 것 같았으나 안주가 된 스튜와 빵은 딱딱히 굳어가는 것이 보였다.

“쯧. 일은 안 하고 술만 마시는군.”

“목숨 걸고 하는 일이니 술이라도 먹어야하지 않겠소? 그러는 당신은 희한하게 술은 안 마시는군.”

용병들이 돈을 많이 벌면서도 재산을 모으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흥청망청 쓰면서 현실을 잊고, 그게 안 되면 싸구려 맥주라도 홀짝이며 취해있어야 공포를 내리누를 수 있었다.

그러니 식사를 하면서 그 흔한 맥주도 안 마시는 불릿이 신기했던 주인장.

“별로. 이제 막 이곳에 와서 지명도 모르는데 취하면 어떤 꼴을 당할지 누가 아오?”

“신중하시군. 나쁜 건 아니지. 사냥꾼도 자기관리를 하는데 보아하니 용병이신 것 같은데 이름 좀 날리셨겠소?”

“뭐, 아직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깨를 으쓱하는 불릿. 그러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본래 귀족은 식사하며 입을 떼지 않았으나 그는 지금 ‘평범한’ 용병청년.

그 연기에 충실하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우물우물, 일단 묻겠는데, 여기가 우틀락이라는 지방이라고 들었소만,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겠소. 그것에 대해 알려주시오.”

“꿀꺽…, 크. 우틀락 지방을 모른단 말이오? 당신은 자기가 어디에 온 것인지도 모르는군.”

“산에서 산으로 이동하니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턴다. 원래 이러한 것에 익숙하진 않았으나 화전마을에서의 경험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서 감을 잡게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여기는 어디 소속이오?”

불릿의 물음에 주인장은 입가를 닦으며 대꾸했다.

“이곳은 우틀락 지방의 세리오 남작이 다스리고 있소. 마을 이름은 토빗, 뭐, 다스린다기 보다는 상납 받는다고 해야 옳겠지.”

“…세리오 남작? 혹시 나라 이름이?”

“이 사람, 어디 산속에서 살다 왔나? 아는 것이 없구만 그래. 흑마법사들을 몰아낸 연합체소속의 론 타로 왕국도 모른단 말이오?”

콰광!

불릿은 마치 머릿속에 번갯불이 떨어진 것과도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디라고?”

“어허, 이 사람이. 연합체 소속의 론 타로 왕국. 당신, 술 안 마신 게 맞소?”

거듭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들자 그의 정신상태를 의심하는 주인장.

그러거나 말거나 불릿은 주인장에게 신경 쏟을 새가 없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론 타로 왕국? 마지막 결전지는 본인의 왕국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헌데 이곳은 완전 반대방향이지 않은가?’

적어도 몇 개의 나라를 지나야지 자신의 영지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암울함이 공존하는 불릿이었다.

기껏해야 다른 나라의 숲을 헤매고 있다 생각했는데 상상이상으로 먼 거리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음…….”

“왜 그러시오? 문제 있소?”

“…아니오. 그럼 인근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는 며칠 거리에 있소?”

“흠. 산맥을 타고 5일정도 가면 영주직할도시 ‘라 쓰랑’이라는 곳이 있소. 마차라도 타고가야지, 혼자서는 가기 어려우니까 돈이나 넉넉히 벌어두시오.”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아직은 작가라는 이름이 어색한 구도팔문입니다.

오늘은 본의치 않게 예고했던 2연재가 아닌 5연재를 해버렸는데요, 그래서 이번엔 미리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내일도 5연재가 기다리고 있사오니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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