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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정령사-25화 (25/241)

00025  새로운 마을로  =========================================================================

불릿은 기다렸다는 듯 늘어뜨렸던 팔을 들어 올려 창을 비스듬히 세웠다.

푸욱-

“크르륵-.”

뛰어오른 반동에 의해 깊숙이 찔린 창은 오크의 몸에 틀어박혀 빠지질 않는다.

“쿠후, 크췹! 크후.”

거친 숨을 몰아쉬던 오크는 창대를 잡고 반으로 부러뜨린다.

뚜둑!

오크의 팔은 징그러운 힘줄이 돋아났는데, 그것만으로도 불릿에겐 위협으로 다가왔다.

중상을 입은 오크가 고통을 무릅쓰고 다가오려 했지만 불릿은 그것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주먹 쾅.”

- 주먹 쾅.

흙덩이가 느릿하게 움직이는 오크의 머리를 정조준 하고선 조막만한 주먹을 발사했다.

퍼걱!

머리를 잃고도 오크는 몇 걸음 더 걷더니 이내 바닥에 쓰러졌다.

털푸덕.

마지막 오크까지 쓰러지자 흙덩이가 몸을 움직여 오크의 사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 불릿, 마정석 나왔어.

“잘했도다, 흙덩이여.”

그러면서 자칭 친밀의 의식인 머리쓰다듬기를 해주는 불릿.

이렇게 전투가 끝나고 나면 흙덩이가 몬스터의 사체를 뒤져 마정석의 여부를 확인하곤 했다.

수가 많진 않았으나 그렇게 찾아낸 마정석은 그의 주머니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온 것인가.”

그동안 몬스터를 피하며 다녔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그 경로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한 번, 두 번 잡다보니 잡은 수가 꽤 되는 오크. 고블린부락처럼 100이 넘는 수를 죽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수십 마리는 잡아냈다.

이로서 카인의 마을도 한동안은 안전할 것이다.

“한 마리 정도는 챙겨가야 하는 것인가.”

이제 하루정도면 촌장에게서 들었던 다른 마을이 나올 것이다. 불릿은 그곳에서 무얼 해야 할지 생각했다.

‘골드를 사용하면 촌장처럼 행동하겠지.’

1골드를 건네주자 돈맛을 본 촌장은 그의 곁을 서성이며 더 뜯어낼 순 없을까 수작을 부리려 했다.

힘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도망자나 마찬가지인 그도 돈에 눈이 멀어 앞뒤구분도 하지 않았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다를 리 없었다.

오히려 있는 것들이 더하다고, 돈맛을 본 놈들이 더 많은 돈을 원하는 법이었다.

“자다가 습격당할 수도 있지.”

불릿은 숙면 중에 공격당했던 경험이 있었다. 비록 그때는 돈 때문이 아니라 흑마법사들의 습격이었지만 그들이나 다른 이들이나 결국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일.

그가 많은 돈을 소지했다는 것을 알아채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마을의 규모가 크면 그에 따르는 어둠도 덩달아 크는 법.”

이는 굳이 마을뿐만이 아니라 도시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돈이 있는 곳엔 항상 인간의 어두움이 뒤따랐으니, 크고 작음의 차이만 있을 뿐 인간이 있는 곳은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골드를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돈은 필요하다. 그래서 그가 생각한 것이 몬스터사냥이었다.

몬스터는 위험한 놈들이지만 반대로 돈이 되기도 했다. 특히 놈들의 질기고 단단한 가죽이나 뼈는 방어구나 무기, 또는 마법실험에 쓰이기도 했다.

적당한 돈이 필요하니 오크정도면 눈에 띄지 않는 선에서 경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이런 자잘한 것들을 처리하려니 불편하군.”

본래 이런 일들은 그의 선까지 오지 않았었다. 영지에 있을 때는 당연히 그 일을 전담하는 이들을 고용해서 부리고 있었기 때문.

결사대에서는 그의 연륜이 많고, 물의 중급 정령사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전투보다는 보조역할을 많이 했었다.

뭐, 보조역할도 전쟁후기에 들어서는 많은 이들이 죽은 부재 탓에 앞장서야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간에, 그는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일단 연륜과 경험이 있기에 해나갈 수는 있으나 결코 좋은 기분일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 내가 할까?

불릿의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자 이를 지켜보던 흙덩이가 나섰다.

혼자라는 것에 다운된 기분이 흙덩이 덕에 한결 가벼졌다.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다.’

그에겐 영지민들과 가신들이 자신의 영토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 이 자리에는 오직 그만을 바라보는 일편단심 정령 흙덩이가 있지 않은가?

“괜찮으이. 사람은 저마다의 역할이 있는 법. 자네의 역할은 따로 있다네.”

다른 이들이면 모를까, 흙덩이에게는 너무도 익숙해져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는 데에 거북함이 사라져있었다.

그 스스로는 친밀을 위한 의식이라며 자위했지만 말이다.

불릿의 쓰다듬이 기분 좋았던 것일까, 흙덩이는 눈을 감고서 중얼거렸다.

- 사람…

무척 미약한 소리였기에 정령력을 제외하면 평범한 인간인 불릿은 흙덩이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 * *

“웃샤.”

한껏 멋을 낸 검을 닦던 발터는 햇빛에 검을 비춰보더니 반사광에 반짝이는 것을 보고 스스로 감탄했다.

“캬, 쥑인다, 쥑여.”

마을 어귀에 걸터앉아 검을 닦고, 한번 휘두르고서 스스로 감탄하며 다시 검을 닦기를 반복.

발터는 이 장면을 몇 번이고 계속하며 자화자찬을 했다.

“끝내준단 말이야, 진검이란 것은.”

아직 앳된 티를 벗겨내지 못한 발터는 주변을 지나는 이들이 혀를 차고 있어도 의식하지 못했는지 목소리를 줄이지 않았다.

“진검의 예리함, 뼈가 시릴 듯한 차가움이 참을 수가 없구나!”

그러면서 다시금 검을 휘두른다. 예전부터 용병이 되고 싶었던 발터가 돈을 모으고 모아 간신히 마련한 진검, 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웅-.

분명 검을 휘두르는 것일 텐데 어디서 둔탁한 몽둥이를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자세도 엉성하고, 몸에는 그 흔한 가죽갑옷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손은 굳은살 하나 없는 것이 말랑말랑해 보였다. 무엇보다 근육이 있는 곳을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이것만 보아도 그가 검을 휘두를 만한 직업군에 속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흐흐흐, 나도 이제 어엿한 검사라 이거야!”

뭐가 그리도 좋은지 딸랑 검 한 자루를 쥐고서 희희낙락하는 가운데 그의 곁으로 한 인물이 다가왔다.

“뭣 좀 묻겠소.”

“으허헉!”

쿠당탕-!

발터는 그가 다가온 것도 몰랐었는지 말을 걸자 깜짝 놀라 뒤로 벌렁 자빠졌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칼은 바닥에 널브러져 홀로 내팽겨졌는데, 먼지가 잔뜩 묻어 그가 닦고 닦아 만들어낸 광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확인할 겨를도 없었는지 발터는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간신히 물었다.

“뉘, 뉘슈?”

발터의 물음에 의문의 청년은 ‘뭐하는 놈이지?’라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나는 볼레트라고 하오만, 여기가 어느 마을인지 알려주실 수 있소?”

* * *

불릿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놈이 마을초입부터 나타나더니 저 혼자 놀라고 넘어졌다.

그놈이 뽀뽀라도 할 것처럼 애지중지하던 검은 얼마나 값지나 싶어서 봤더니 별로 대단치도 않았다.

그의 앞에 있는 청년이 뭘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전투를 생으로 삼는 이가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심약한 성격이로군.’

불릿이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다. 이런 케이스의 사람을 여럿 봐왔었기에 일부러 발소리도 내며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도 알아채지 못하고 저렇게 행동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장난칠 이유는 없을 테니 필시 유약한 사람이었다.

“으어, 심장이야….”

“기다려줄 터이니 우선 진정부터 하시오.”

이런 유형의 사람은 다그쳐봤자 해결되지 않는다. 차분히 기다려주는 것이 최선의 선택.

5분쯤 기다려주자 진정이 되었는지 숨을 크게 내쉬고서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휴휴- 깜짝이야. 죽는 줄 알았네.”

성격이 심약하다보니 엄살도 심했다. 어딜 다친 것도 아니고, 누가 협박한 것도 아니다.

그냥 길 좀 물었을 뿐이다. 그걸 깨달았는지 청년은 얼굴을 붉혔다.

“그래, 이제 좀 괜찮소?”

“우으…, 괘, 괜찮소. 흠흠!”

재빨리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의젓해 보이려 애를 썼으나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근데 뉘쇼?”

청년은 자신의 추태를 금세 잊어버렸는지 짝눈을 지으며 불릿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기껏 기다려주며 부끄러운 일도 모른 채 해주었더니 기분이 상해버린 불릿이 싸늘함을 흘리며 대꾸한다.

“길 좀 물으려는 나그네인데 이곳이 어디에 속한 마을인지 알고 싶소이다.”

불쾌함이 한껏 깃든 목소리가 자신에게 향해지자 목을 움츠리며 다시금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청년.

이번에는 그도 위험을 느꼈는지 그제야 불릿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한다.

자신처럼 천옷을 입긴 하였으나 그 위에 걸친 가죽과 목제방어구, 허리춤에는 고풍스런 단검이 걸려있었고 등에는 무슨 용도인지 모를 기다란 나무막대기가 매달려있다.

무엇보다도 거친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운 얼굴.

은연중 발산되는 기품과 카리스마가 그를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파악한 청년은 조심스레 목을 빼어들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용병을 동경해서…, 헤헤.”

그러나 불릿은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 자기 할 말만 계속했다.

“대답하기 싫으면 비키시오.”

“어이쿠, 아닙니다, 아니요! 대답해야지요.”

“하려면 빨리 하란 말이다!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겐가?”

겨우 한마디. 지역의 이름만 말하면 될 것을 시간을 질질 끌며 헛소리만 지껄이자 자비롭게 기다려주던 불릿도 화딱지가 난 것이다.

호통을 치며 눈을 부라리자 그 기세에 청년이 벌벌 떨며 간신히 입을 떼었다.

“으, 으으…, 여, 여기는 우틀락 지방의 토빗이라는 마을입니다.”

“주둥아리 간수 똑바로 하시오. 다음에도 말을 늘여놓다간 그대의 신상에 어떤 이상이 생길지 모르니.”

웬만하면 영지로 복귀하는 동안 남들과 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불릿이지만 이러한 자를 보면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간신배의 상이 따로 없군.’

영지를 운영하다보면 이렇게 생긴 이들도 자주 보는데, 이러한 이들은 거의 십중팔구 간신배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자신의 영지가 아니기에 인내하고 넘어가려 했으나 자신의 시간을 잡아먹는 놈의 행태에 뚜껑이 열린 것이다.

“어이쿠, 네, 네. 알겠습니다요. 토빗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

“…말조심하시길. 그럼, 이만.”

“저기….”

“또 뭐요?”

원래라면 간단한 대화정도는 용인할 의양이 있었지만 불릿은 이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말투가 뾰족하게 날이 섰고, 그것에 또 움츠리는 청년이었지만 그래도 자기 할 말은 계속하였다.

“혹시 용병이십니까?”

“…….”

불릿은 대답을 않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확실히 이동의 자유에 있어 일반 백성보다는 용병이라는 간판이 훨씬 나았다.

게다가 어느 정도 무력의 소지도 허락됐으니 분란이 일더라도 살짝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소.”

“헤헤, 그럼 저기, 부탁이 있는데…….”

순간, 눈살이 팍 찌푸려지는 불릿.

‘이게 뭐하자는 수작이지?’

첫인상도 나쁘고 그가 싫어하는 타입이라 지금 눈앞의 청년에게는 좋은 감정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적대하는 감정도 있었는데, 그것을 간신히 억누르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 다짜고짜 부탁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표정관리가 되질 않았다.

흠칫.

그것을 본 청년도 놀랐고, 청년의 반응을 본 불릿도 놀랐다.

“왜, 왜 그러십니까?”

‘진짜 육체의 부작용인가? 감정조절이 되질 않는군.’

“아무것도 아니오. 그런데 당신은 나에 대해서 무얼 안다고 부탁을 요구하는 것이오?”

지금 이 상황에서 부탁이란 단어가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러니 불릿이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당연지사.

청년은 그가 불편한 심기를 보였음에도 비굴한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헤헤, 사실, 저는 이 마을의 주민입니다요. 이름은 발터, 발터라고 합니다.”

“…물은 적이 없소만?”

“용병이라고 하시길래 저도 모르게 그만. 꽤나 강해보이셔서 그랬나봅니다. 헤헤헷.”

또 다시 찌푸려지는 인상.

‘이놈은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인생을 말아먹을 놈이로군.’

한 지역의 군주로서 그는 간신배를 끔찍이도 싫어했기에 발터라는 청년이 점점 더 마음에 안 들었다.

“저기, 제가 요즘 검술을 배우는데, 좀 봐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아까까지만 해도 검을 가지고 푸닥거리를 치는 모습을 보긴 봤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서 검술을 수련하는 장면은 눈곱만치도 없었고, 새 장난감을 가지게 된 어린아이의 모습만이 엿보이고 있었다.

거기까지 떠올린 불릿은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렸다.

============================ 작품 후기 ============================

오늘 밤 12시에 이어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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