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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45화 (145/150)

145화

145화

하준은 군대도 빨리 다녀온 것처럼 대학도 휴학 없이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졸업을 빨리 해야 그 이후 스케줄에 제약이 없어지니까.

“<지킬 앤 하이드> 하고 싶긴 한데······ 전 일단 학업이 우선이어서요.”

-그래, 알지. 그럼 일단 거절한다? 사실 너 졸업하고 난 후에도 네가 하겠다고 하면 할 수 있을 거야. <지킬 앤 하이드>는 워낙 인기 많아서 주기적으로 공연 할 테고.

최 대표는 하준이 워낙 실력도 출중하고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아왔기 때문에 졸업 후에도 충분히 <지킬 앤 하이드>를 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어요.”

-그래, 그럼 여름에 촬영할만한 영화 찾아봐.

하준은 전화를 끊고 너튜브에서 <지킬 앤 하이드>의 노래를 들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지금 이 순간~”

하준은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 넘버들을 흥얼거리며 대본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

“하준아, 아직 못 골랐어? 오늘 받은 것도 별로였어?”

최선희가 수업을 듣고 돌아온 하준에게 물었다.

“네, 음, 이번 여름 방학 때는 쉬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하준은 학기가 시작된 지금까지도 차기작을 정하지 못했다.

가끔 괜찮은 작품이 있긴 했는데, 촬영 기간이 안 맞았다. 그렇다고 휴학을 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은 아니었기에 차기작은 여전히 결정되지 않은 상태.

“괜찮아. 작년에 얼마나 열일했니? 좀 쉬어도 되지. 돈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 월드 엔터 주가 연일 신고가 갱신 중이더라. 호호.”

최선희와 윤기철도 월드 엔터 주식이 꽤 있었기에 최선희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제가 활동을 안 해서 떨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아, ‘보이즈세븐’ 나온다고 해서 그런가?”

“응, 그런가 봐.”

최선희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윤기철이 첨언했다.

“내가 종목토론실 둘러보니까, 신인 데뷔 같은 거 하면 기대감에 오른다더라고. 보이즈세븐은 네가 또 실력 인정한다고 인터뷰도 해줬잖아. 그래서 더 기대가 되는 모양이야. 보이즈세븐 잘 되면 좋겠다.”

“맞아요. 잘 되면 좋겠어요. 아! 어머니랑 아버지 영화는 캐스팅 어떻게 됐어요?”

주식 이야기에 활짝 펴 있던 두 사람의 얼굴이 영화 얘기가 나오자 급 시무룩해졌다.

“에휴, 아직 주인공 캐스팅 못 했어. 20대 초반이면서 이런 연기 잘 할 사람이 영 없더라고.”

“거기다 인지도도 좀 있긴 해야 되고······.”

“그럼 제가 할까요?”

하준이 불쑥 물었다.

하지만 윤기철과 최선희는 동시에 손을 휘저으며 거부의사를 표시했다.

“안 돼! 이거 정신적으로 힘든 역이란 말이야.”

“맞아. 넌 안 돼. 우리가 이 영화를 포기했으면 했지. 넌 절대 안 시킬 거야.”

“왜요? 도대체 무슨 내용을 쓰셨길래······ 저도 좀 보여주세요.”

윤기철과 최선희가 너무 과하게 거부하자, 하준은 호기심이 일었다.

안 그래도 최선희는 다른 시나리오는 하준에게 보여주면서 조언을 얻기도 했는데, 이번 영화 시나리오는 오로지 윤기철과만 의논하고 하준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다.

“괜히 네가 캐릭터 욕심 낼까 봐 아예 안 보여주는 거야.”

윤기철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준은 궁금했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는 걸 강요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알겠다고 단념했다.

“그럼 개봉하면 영화는 볼 수 있는 거죠?”

“응, 그건 당연히 되지.”

“네, 캐스팅 잘 되시길 빌게요.”

“그래, 우리도 너한테 딱 맞는 좋은 작품 들어오길 빌게.”

하준 가족은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며 훈훈하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하준의 2학년 1학기 수업이 전부 끝날 때까지 서로의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

“안녕하세요······?”

하준이 뮤지컬 대기실 문을 열고 머리부터 들이밀며 조심스럽게 인사했다.

“오, 하준아!!”

“어머, 하준 씨, 안녕하세요!”

“진짜 하준 님이다······! 안녕하세요!”

하준을 발견한 <지킬 앤 하이드> 출연 배우들은 놀라면서도 반갑게 인사했다.

그 중에서도 하준을 초대한 남은호가 가장 반가워하며 얼른 뛰어나와 하준을 와락 껴안았다.

“우리 하준이! 이젠 나보다 더 커서 귀엽다고 하기도 뭐하네. 아하하.”

“형, 오랜만이에요. 제대하고 바빠서 이제야 형 공연 보러 오네요.”

하준이 미안해하며 말했다.

남은호는 하준이 어릴 때 출연했던 뮤지컬 <루드윅 반 베토벤>에서 성인 베토벤 역 중 한 명이었고, 지금은 뮤지컬계에서 알아주는 베테랑 주연 배우였다.

그는 하준이 군대에 있을 때 <지킬 앤 하이드> 주연을 맡았었고, 이번에도 또 하이드 박사로 캐스팅된 상태였다.

하준이 제대한 후에 남은호가 주연을 맡았던 뮤지컬이 있었지만, 하준은 스케줄이 바빠서 남은호의 초대에 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 여름 방학에는 시간이 넉넉했기에 남은호의 <지킬 앤 하이드> 첫 공연을 보러 온 것이었다.

“다 이해하지. 우리 하준이가 작년에 얼마나 대단했어! 연기에 노래에, 상도 휩쓸고 작년은 네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잖아.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웠다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근데 이번 공연 너랑 같이 할 수 있을 줄 알고 기대했는데, 네가 학업 때문에 거절했대서 너무 아쉬웠어.”

“저도 형이 캐스팅됐다는 기사 보고 아쉽긴 했어요. 그래도 이번엔 형 공연 볼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

하준이 잠시 남은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남은호는 그 시선을 느끼고 너털웃음을 웃으며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아, 여기 이번 공연 같이 하는 배우들이야. 다들 언제 끼어들까 눈치 보고 있네. 얘들아, 이제 인사해도 돼. 아하하.”

30대 후반이 된 남은호는 이제 이들 중 가장 고령이라 편한 말투로 다른 배우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다른 배우들은 남은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앞다퉈 하준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준 씨, 진짜 팬이에요.”

“대상 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실물이 더 멋지시네요.”

“이번 공연 같이 하셨으면 진짜 좋았을 텐데.”

“공연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그것도 첫 공연에······.”

“노래 너무 잘 듣고 있습니다!”

하준은 고마워하며 이들과 악수를 나눴고, 사진도 함께 찍어 주었다.

“저 그럼 이제 공연 보러 갈게요. 파이팅입니다, 형!”

“응, 그래, 공연 끝나고 또 보자.”

하준이 인사를 하고 대기실을 나오는데, 복도에서 이번엔 <지킬 앤 하이드> 총감독을 맡은 신영림을 맞닥뜨렸다.

신영림은 꽤 유명한 뮤지컬 감독이었다.

“어머, 하준 씨!”

“엇, 안녕하세요, 감독님.”

“은호 씨 초대받고 온 거예요?”

“네, 방금 인사드리고 나오는 길이에요.”

“아휴, 이번 공연 진짜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너무 아쉬워서······.”

“죄송해요. 저도 너무 하고 싶었는데 빨리 학업을 마치고 나서 활동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저 졸업하면 다시 불러주세요. 그때는 꼭 할게요. 제가 안 그래도 <지킬 앤 하이드> 팬이라서 뮤지컬 넘버도 다 외우고, 공연도 여러 번 봤거든요.”

“어머, 그럼 나야 너무 좋지. 다음에 하게 되면 그때 같이 해요.”

“네, 감사합니다.”

“아, 혹시 곧 다른 작품 해요? 드라마나 영화나······.”

“아뇨, 이번 방학은 그냥 쉬려고요.”

하준은 딱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서 활동을 안 하는 것이었지만, 그냥 쉬려고 한다고 얼버무렸다.

“하긴, 작년에 신드롬을 일으켰으니까, 좀 쉬어도 되지. 아, 사진 한 장만 부탁해요! 우리 애들도 엄청 팬이거든요.”

대세남 하준과의 만남에 당연히 사진은 필수였다.

신 감독은 얼른 하준과 함께 사진을 찍었고, 연락처도 교환했다.

“우리 언제 밥 한 번 먹어요.”

“네, 감독님.”

진심인지 으레 하는 인사인지 모를 말을 주고받은 후, 하준은 곧 윤기철과 최선희가 앉은 관객석으로 돌아왔다.

요즘 윤기철과 최선희는 캐스팅 난항으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지 못했고, 그 덕에 하준처럼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기분 전환 겸 함께 공연을 보러 온 것이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즐긴 문화생활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남은호 역시 잘하더라. 마지막에 이쪽저쪽으로 고개 돌리면서 두 사람 역 하는 거 굉장했어.”

“응, 근데 진짜 힘들겠더라. 애초에 1인 2역이라 에너지가 많이 쓰이는데, 마지막에는 심지어 1인 2역을 한 노래 안에서 막 바꾸면서 해야 되는 거였잖아. 뮤지컬 배우들은 진짜 대단해.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또 노래로 연기도 잘해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최선희와 윤기철은 남은호를 극찬했다.

하준 역시 남은호가 왜 베테랑인지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준아, 근데 더블 캐스팅된 다른 사람은 누구랬지?”

“노성찬 배우요.”

노성찬은 서른 살의 뮤지컬 배우로, 주연을 맡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실력은 인정받는 편이었다.

“아, 노성찬! 그럼 우리 노성찬 배우 꺼도 한 번 볼까? 재밌어서 또 보고 싶어. 근데 자리가 있나?”

노성찬의 티켓 파워는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지킬 앤 하이드> 작품 자체가 인기가 많아서 자리가 없을 수도 있었다.

“잠깐만요. 찾아볼게요.”

하준이 찾아보니 그래도 좌석이 좀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하준 가족은 예매를 해두었다.

그런데 이틀 후, 하준은 신영림 감독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아, 감독님, 안녕하세요.”

-하준 씨, 요즘 쉰다고 했죠?

신 감독은 다짜고짜 하준이 쉬는지 물었다.

“네.”

-<지킬 앤 하이드> 뮤지컬 넘버도 다 외운다고 했죠?

“네, 그건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지금 우리 연습실로 당장 와 줄 수 있어요? 급해요! 비상상황이거든요. 노성찬 씨가 다쳐서 공연을 할 수가 없어서요. 제발요.

“네에?!”

하준은 신 감독의 간절한 목소리에 당장 그녀가 찍어준 주소로 달려갔다.

하준이 연습실에 들어서니, 거기에는 남은호를 포함해 모든 <지킬 앤 하이드> 출연 배우들이 총집결해 있었다.

“와줘서 진짜 고마워요!”

“고맙다, 하준아.”

신 감독과 남은호가 하준에게 대표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노성찬 배우님이 다치셨다니, 어떻게 된 거예요?”

“어제 저녁에 술 마시고 계단에서 굴렀대요. 그래서 다리가 부러졌다나 봐. 내가 공연할 때는 금주하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진짜 돌겠다니까요! 아니, 아무리 술이 좋아도, 공연에 이렇게 피해를 주면 되냐구!”

하준의 물음에 신 감독이 화를 쏟아냈다.

남은호는 신 감독을 진정시키더니 대신 하준에게 설명했다.

“자기는 할 수 있다고 우기는데, 깁스 하고 공연을 할 수가 없잖아? 두 얼굴 연기할 때도 고개를 막 돌리면서 해야 하는데 발이 불편해서 어떻게 그걸 하겠어? 게다가 지금 이게 더블 캐스팅이란 말이지. 걔가 못하면 나 혼자 전 공연을 다 해야 한다는 소린데, 그건 절대 내 목이 감당 못 해. 그래서 오늘 아침부터 내내 전에 <지킬 앤 하이드> 했던 사람들한테 연락해 봤는데, 다들 스케줄 때문에 못 한대.”

“아······ 그래서 절 부르신 거군요. 근데 전 연습도 한 번 안 해 봤는데, 당장 노성찬 배우님 공연이 내일 아닌가요?”

“네가 연습이 필요하면 그동안 내가 대신 앞에 몇 회는 해줄 수 있어.”

남은호가 얼른 대답했고, 신 감독이 그의 말을 이어 말했다.

“맞아요. 근데 일단은 하준 씨의 뮤지컬 넘버를 들어보고 싶어요. ‘The Confrontation’ 한번 불러봐 줄래요?”

신 감독은 간곡히 부탁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제발 하준이 이 노래를 잘 부르길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엿보였다.

남은호를 비롯한 다른 배우들도 하준에게 희망을 걸었다는 듯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음, 정식으로 불러본 적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불러보겠습니다. 아아.”

하준은 목을 가볍게 푼 다음 노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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