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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132화 (132/150)

132화

132화

“어머, 꽤 유명한 배우들도 많이 지원했네요?”

최선희가 오디션 지원서를 훑어보며 놀라워했다.

그러자 오지훈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도 놀랐어요. 하하. 이 중에 자존심이 꽤 센 배우들도 있는데, 오디션을 보러 오겠다고 해서요. 하준이 남주라는 게 크게 작용했을 거예요. 하준이랑 같이 연기해보고 싶다는 여배우들 굉장히 많거든요.”

하준은 많은 여배우들의 인터뷰에서 함께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로 자주 꼽히는 배우였다.

“호호, 많이들 지원해줘서 너무 좋네요. 선택의 폭도 넓어지고요. 어? 여기 세아도 있네요?”

임세아는 <월야>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아역 배우였다. 물론 지금은 성인이 되어 계속 배우일을 하고 있었다.

“네, 세아는 저한테 직접 연락 와서 대본 좀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꼭 같이 하고 싶다면서요.”

“와, 세아 너무 예쁘게 잘 자랐던데, 같이 하면 좋겠네요.”

최선희가 어릴 때의 단아한 미모 그대로 자란 임세아를 떠올리며 반가워했다.

그러자, 하준이 최선희에게 슬쩍 지적했다.

“어머니, 세아랑 아는 사이라고 편애하시면 안 됩니다. 오디션은 어디까지나 공정해야 돼요. 사사로운 감정은 배제해 주세요.”

“아, 그래, 그래.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최선희는 얼른 표정 관리를 하며 입꼬리를 내렸다.

“자, 그럼 이제 오디션 볼까요?”

제작사의 정 CP가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다른 심사위원들, 하준과 최선희, 오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고, 제작사 직원이 첫 번째 지원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윙크’의 한미소입니다. 나이는 스무살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상큼발랄하게 생긴 한미소가 온갖 장신구에 화려한 한복을 입고 등장했다.

오디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양갓집 규수 복장을 하고 왔다.

그 이유는 <암행연인> 측에서 작중 인물의 복장을 착용하고 와 달라고 부탁했기 때문.

이것은 외모가 사극에 잘 어울릴지 보기 위해서였다.

“걸그룹 ‘윙크’ 멤버네요. 연기 경력은 1년 정도고······ 사극은 처음이죠?”

“네, 처음이지만, 열심히 연습해 왔습니다. 작품이 너무 좋아서 꼭 하고 싶어요.”

“그럼 지정 연기부터 보죠.”

지정 연기는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게 된 좌의정이 딸인 여주인공에게 도망가라고 하고, 여주인공은 그걸 거부하면서 오열하는 장면이었다.

“그럼 좌의정 역할은 누가 해주시는 건지······?”

한미소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그러자 하준이 손을 가볍게 들며 대답했다.

“제가 대사 맞춰드릴게요. 시작하겠습니다.”

하준은 차분하게 말하더니, 갑자기 돌변해서 굵은 목소리로 다급하게 대사를 시작했다.

“지금 당장 무영이를 따라가거라! 지금 당장!”

“아버지는요? 아버지도 함께 가요, 네?”

“내가 따라가면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나는 역적으로 몰린 이상 이미 죽은 목숨이야. 너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싫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명을 같이 할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 없이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으흐흑.”

한미소가 닭똥 같은 눈물을 후두둑 떨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너를 이리 약하게 가르쳤더냐? 시간이 없다. 이것이 이 아비의 명령이자, 소원이다. 알겠느냐? 무영아, 어서!”

“아버지, 아버지! 싫습니다! 아버지이!”

한미소는 마지막으로 목에 핏대까지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잘 봤습니다. 음, 사극 액션은 좀 할 줄 아나요? 말을 탈 줄 안다거나, 검을 휘두를 수 있는지······.”

오 감독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한미소는 얼른 눈물을 닦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말은 조금 탈 줄 알고요, 액션은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제가 운동신경이 좋다는 소리 많이 듣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만 나가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뽑아주시면 열심히 할게용!”

한미소는 마지막에 콧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리고는 오디션장을 나갔다.

“하하, 왜 걸그룹인지 알겠네.”

“상큼하네요. 귀여워요.”

“근데 수련 역이랑은 안 어울리죠?”

“네, 사극톤도 좀 어색하고요.”

심사위원 네 사람은 만장일치로 고개를 저었다.

다음으로 요즘 신예로 떠오르고 있는 23살의 여배우 하예린이 등장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심사위원들을 향해 대뜸 이렇게 외쳤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전작 <하늘과 별> 정말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최 작가님, <그대 이름은 장미> 너무 재밌었어요! 하준 선배님, 저 <신비종> 완전 팬입니다! 제가 너무 존경하는 분들이 함께 하는 드라마라서 꼭 하고 싶습니다!”

그녀의 포부는 당찼고, 외모도 무척 아름다웠지만, 연기는 조금 부족했다.

“그래도 사극 발성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니까, 일단 후보로 두자고. 요즘 인기도 많고 얼굴도 너무 예쁘잖아.”

정 CP는 하예린이 마음에 드는지 후보로 두길 원했고, 어차피 막판에 비교해서 결정해야 하기에 다른 사람들은 그의 의견에 따랐다.

이후로 한 다섯 명의 여배우가 오디션을 보고 나갔고, 여덟 번째로 임세아가 들어왔다.

임세아를 아는 하준, 최선희, 오 감독은 활짝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임세아입니다.”

“응, 세아야, 반갑다. 어릴 때도 한복이 잘 어울리더니 지금도 단아하니 너무 잘 어울리네.”

하준과 최선희도 오 감독님 말에 동의했다.

하준은 솔직히 하예린이 예쁘긴 더 예쁘지만, 단아하고 우아한 매력은 임세아가 더 있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지정 연기 보여주세요.”

임세아는 확실히 아역 때부터 연기를 해왔고, 사극 경험도 있었기에 연기를 잘했다.

“연습 많이 해왔네. 하하. 그럼 자유 연기도 보여줄래?”

자유 연기는 지정 연기를 잘한 사람들에게만 추가적으로 더 시켜봤는데, <암행연인> 1,2부 대본 중에서 자기가 원하는 부분을 연기하면 되었다.

임세아는 의적 노릇을 하다가 쫓기게 된 세자 이훈이 허름한 집에 숨으려 들어갔다가 홍수련과 맞닥뜨리는 장면을 연기했다.

이 장면은 대사는 거의 없고, 표정 연기가 주를 이루는 부분이었다.

“뉘, 뉘시오?”

“이보시오? 괜찮소?”

“아니······ 설마······?”

임세아는 자신의 앞에 기절한 이훈이 있다고 가정하고 연기를 펼쳤다.

임세아의 연기는 지금까지의 오디션 지원자들 중에 가장 괜찮았다. 심사위원들은 서로 만족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하준도 임세아의 연기가 괜찮다고 느꼈으나,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음, 액션 연기도 꽤 비중이 있는데, 액션 연기는 잘 할 수 있나요?”

하준이 심사위원으로서 존댓말로 물었다.

하준은 과거에 임세아가 몸 쓰는 연기를 잘 못해서 대역을 많이 썼다는 비하인드 썰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임세아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게······ 대역으로 하면 안 되나요? 솔직히 제가 조금 몸치예요. 운동을 못하고요······.”

“그래도 대역으로 안 되는 부분도 있는데······ 아, 말도 못 타죠?”

“네에······.”

임세아의 목소리는 기어들어갔고, 표정은 울상이 되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확인할 건 해야 해서 물어본 거니까.”

하준이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으나, 이미 임세아는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오 감독이 얼른 수습했다.

“오늘 연기는 정말 좋았어. 이만 가봐.”

“네, 잘 부탁드려요······.”

임세아는 그래도 잘 부탁한다는 인사는 잊지 않았다.

임세아가 나간 뒤 심사위원들은 잠시 상의를 했다.

“하준아, 넌 세아가 액션 못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냥 2년 전쯤 세아가 아역으로 나왔던 드라마 비하인드 인터뷰에서 봤어요. 개인적으로 좀 알기도 하고요. 세아가 연기는 참 잘하는데······.”

“그래, 연기도 좋고 마스크도 좋아. 근데 수련이가 거의 여장부처럼 나오니까, 액션도 멋있어야 좋은데······.”

“네, 맞아요. 저도 그런 캐릭터를 염두에 두고 스토리를 짰거든요.”

“일단 임세아도 후보에 두고, 마지막에 결정합시다.”

정 CP가 대화를 끝냈고, 오디션이 이어졌다.

그리고 어느덧 마지막 지원자만이 남았다.

“마지막이네요. 음, 경력은 독립 영화랑 연극 몇 개······. 근데 나이가 좀 많네. 아무튼 들어오라고 해요.”

정 CP의 말에 한 여자가 무사 복장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심지어 그녀는 허리에 칼까지 차고 있었다.

“오?”

그녀는 지금까지 오디션 지원자들 중에 유일하게 무사 복장을 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신인 배우 심가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심가은은 당찬 목소리로 인사했고, 심사위원들은 의외의 복장에 관심을 보였다.

“다들 양갓집 규수들이 입는 고운 한복을 입고 왔는데, 왜 혼자 무사 복장인가요?”

“수련이 초반에 좌의정의 딸로 잠시 나오지만, 대부분은 몰래 사병을 키우고 진짜 역모를 꾸미는 여장부로 나오지 않습니까? 저는 여장부의 비중이 더 크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차려 입고 왔습니다.”

“오호. 옳은 말이네요.”

하준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일단 지정 연기를 시켜보았다.

심가은은 지정 연기에서 훌륭한 감정 연기를 선보여서, 자유 연기까지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자유 연기는 뭘 보여줄 겁니까?”

“치료만 받고 사라진 이훈을 다시 만나 따지는 수련을 연기해보겠습니다. 하준 씨가 대사 좀 맞춰주시면 좋겠습니다.”

하준은 당연히 맞춰준다며 먼저 대사를 시작하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생명의 은인에게 온다간다 말없이 가버리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심가은이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며 대사를 시작했다. 그러자 하준은 이훈의 대사를 바로 맞춰주었다.

“미안하오. 근데 사정이 좀 있었소.”

“무슨 사정인데요?”

“그것은······ 비밀이오.”

“그럼 그때 어쩌다가 다치신 건지도 비밀이겠군요?”

“그렇소······.”

“어느 댁 자제분인지도 비밀이고요?”

“그렇소.”

“좋습니다. 우린 서로 통하는 게 있네요. 저도 비밀이거든요. 하여, 우린 벗이 될 수 있겠습니다.”

심가은은 마지막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는데, 그 미소가 참 맑아 보였다.

자유 연기가 끝나자, 하준은 이번에도 역시 액션 연기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액션 연기는 잘하시나요? 말도 탈 줄 아시는지 궁금합니다.”

“말은 잘 타는 편이고요, 액션 연기는 여기서 조금 보여드릴까요? 제가 이 옷을 입고 온 이유가 있거든요.”

심가은은 자신 있게 허리춤에 걸린 칼을 뽑아 들더니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칼을 멋지게 휘둘러댔다.

“와, 폼이 굉장히 좋네요.”

“움직임도 빠르고,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심가은을 끝으로 모든 오디션이 끝났다.

이제 심사위원들의 결정만이 남아 있는 상태.

심사위원들은 어떤 지원자가 가장 나은지 서로 의견을 나눴다.

“일단 하예린, 임세아, 심가은 이렇게 세 명 중에 고르죠.”

“네, 근데 이 중에서는 하예린이 제일 낫지 않을까요?”

정 CP가 하예린을 지목하며 말했다.

“CP님은 하예린 씨가 제일 마음에 드시는 거예요? 어떤 점이요?”

“일단 현재 인기도 이 중에서 가장 많고, 얼굴도 제일 예쁘니까요.”

“에이, 외모는 뭐 셋 다 괜찮죠. 근데 하예린 씨는 연기가 이 셋 중에서 가장 부족한데······.”

오 감독이 고민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임세아는 액션이 전혀 안 된다고 하니, 그게 좀 걸리잖아요? 심가은은 너무 신인이고요. 그것도 이름 없는 신인이라서······.”

“으음······.”

“음, 그럼 하예린 배우의 장점은 인지도, 단점은 연기. 임세아 배우의 장점은 연기, 단점은 액션 연기. 심가은 배우의 장점은 연기와 액션연기, 단점은 인지도. 이렇게 되겠네요.”

하준이 심사위원들의 의견을 종합해 세 사람의 장단점을 종이에 적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음, 저는 배우에게 중요한 건 연기력이지, 인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 심가은 배우님을 캐스팅하고 싶어요.”

“으음, 근데 심가은은 나이도 너보다 4살이나 많아. 불편하지 않겠어?”

정 CP가 하준에게 물었다.

“네, 전 괜찮아요. 심가은 배우님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머니 생각은 어떠세요?”

사실 최선희는 개인적으로 임세아에게 마음이 갔다.

하지만 액션이 안 되는 건 작품의 완성도에 치명적이었다. 대역을 많이 쓰면 시청자들의 몰입이 잘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내린 결론은 심가은이었다.

“나도 심가은 씨가 제일 나을 것 같아.”

“근데 너무 신인인데······ 우리 제작사는 일단 지금 인기 있는 게 작품을 흥행시키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 감독님?”

“으음, 그렇긴 한데······.”

오 감독이 고민하는 듯하자, 하준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전 시나리오 자체가 재밌기 때문에 꼭 인기 있는 배우가 여자주인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기 있는 배우 캐스팅 했는데도 망하는 경우 많고요. 저는 대본을 잘 살리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작품을 더 빛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준의 단호한 발언에 결국 오 감독도 하준의 편으로 돌아섰다.

“심가은으로 갑시다. 솔직히 화제성은 하준이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결국 정 CP는 뜻을 굽혔고, <암행연인>의 여주인공은 심가은이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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