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124화
“응? 정말? 네가 사비로 사서 기부하겠다는 거야?”
최 대표가 의외의 아이디어에 놀라 되물었다.
“네, 근데 음, 생각해 보니까 다들 사이즈가 다를 텐데, 아무 사이즈나 그냥 보내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어떤 방법으로 기부를 해야 할지 고민이 좀 되네요.”
“와, 우리 하준이 진짜 생각이 깊구나. 어쩜 이렇게 잘 자랐니!”
최 대표는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이렇게 심성 고운 하준과 어릴 때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게 뿌듯하면서도 자랑스러웠다.
“에이, 뭘요. 제가 사랑을 많이 받아서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은 것뿐이에요.”
“네가 이러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이뻐하지. 잘생겼지, 착하지, 연기 잘하지, 뭐, 안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하하. 아, 근데 뭐가 고민이라고 했지?”
최 대표는 하준을 칭찬하다가 깜빡 하준의 고민을 잊어버려서 다시 물었다.
“사정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나눠줄 교복 사이즈요.”
“아, 교복 사이즈! 그거 교복 상품권으로 주면 될걸? 교복 브랜드마다 상품권도 파는 걸로 아는데.”
“아하. 그건 몰랐는데, 잘됐네요! 상품권으로 기부해야겠어요.”
하준은 고민을 해결하고 홀가분한 미소를 지었다.
“참, 너 이번 K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후보에 오른 거 알지? 꼭 참석하라더라. 주려나 봐. 후후.”
“진짜요?”
“그럼. 참석하라고 신신당부하더라고. 세은이한테 그날 입을 정장 미리 준비해 놓으라고 했어. 너도 수상소감 준비해 놔.”
“네, 근데 참석했는데 안 줄 수도 있지 않아요?”
“으이구, 이번엔 준다니까. <우리들의 학교> 성적도 올해 KBC 드라마 중에 1등이잖아. 솔직히 난 신인상 준다고 해서 좀 아쉬웠어. 이 정도 인기면 대상은 좀 그래도 최우수 정도는 줘야 하는 건데. 네가 20살만 넘었어도 우수는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앞으로 드라마 계속 찍을 건데 뭘 그렇게 아쉬워하세요? 전 뭐, 무슨 상이든 받으면 좋아요.”
“하긴, 그건 그래. 앞날이 창창한 18살이니까. 하하.”
최 대표는 하준이 승승장구할 앞날을 상상하며 웃음 지었다.
***
며칠 후, 하준의 팬카페 ‘사랑하준’에서는 넘치는 떡밥에 쉴 새 없이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꺄아~ KBC 연기대상 신인상 ㅊㅋㅊㅋ]
[하준 배우님, 남자 신인상 축하드립니다~]
[역시 트로피 컬렉터! 작품 찍었다하면 상 받는 우리 배우님^^]
[현제 배우님이랑 베스트커플상도 추카요 ㅎㅎ]
[<신비종> 시즌 7 또 벌써 30개국 1위]
[<우리들의 학교> 넘 인기 많아서 막방 끝나고 특별방송 편성됐대요~ 대박!]
[우리 팬카페 회원수 드디어 7만 돌파ㅊㅊ]
[하준 오빠가 베스트스쿨 모델 됐대요!!]
[저 내년에 고등학교 가는데 무조건 베스트스쿨에서 맞출 거예요 ㅎㅎ]
[떡밥이 넘쳐나서 잠을 못잠 ㅠ]
하준은 예상대로 연말 시상식에서 <우리들의 학교>로 연기대상 신인상을 받았고, 덤으로 이현제와 베스트커플상도 수상했다.
거기다 12월 중순에 공개된 <신비종>의 마지막 시즌인 시즌 7도 엄청난 호평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준은 그동안 <신비종> 시리즈로 외국의 여러 유명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도 받았었고, 해외 토크쇼에도 초청되어 여러 번 출연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 <신비종> 시즌 7은 마지막 시즌이라서 이전 시즌들 때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러브콜이 오고 있었다.
그래서 하준은 <우리들의 학교> 특집 방송 녹화와 베스트스쿨 광고 촬영이 끝나는 대로 해외 스케줄을 다닐 예정이었다.
<우리들의 학교>는 16부작이었는데, 16화에 최고 시청률 26.5프로를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낮에 <우리들의 학교> 특집 방송 녹화가 진행되었다.
특집 방송에는 방청객으로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를 초대했고, 극중 2학년 1반 학생 전체와 주요 배우들이 모두 참석했다.
방송의 초반에는 미공개 영상들을 공개하며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반쯤에는 배우들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자, 이제 주인공인 하준 군부터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우선 얼마 전 신인상 받으신 거 축하드립니다.”
MC가 축하의 말을 건네자, 다른 배우들이 박수로 함께 축하해주었고 하준은 마이크를 잡았다.
“감사합니다.”
“하준 군이 맡았던 김지한이라는 캐릭터가 혹시 이해가 잘되지 않았던 부분은 없었나요?”
“음, 사실 앞부분 대본만 봤을 때는 김지한이 굳이 변해버린 장현석을 다시 착하게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게 좀 일반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김지한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장현석은 김지한을 무시하고 차갑게 대하잖아요.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이해가 됐어요. 김지한도 외로웠고, 또 장현석과 즐거웠던 중학생 시절을 그리워했구나 싶었죠.”
“그렇군요. 사실 보면 김지한이나 장현석이나 둘 다 꽤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잖아요? 내적이나 외적으로요. 둘 중 누가 더 힘들다고 생각했나요?”
극중 장현석의 부모는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해서 빈털터리가 되었고, 아버지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 어머니는 충격으로 우울증에 걸리더니 결국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장현석은 삐뚤어지고, 생활비가 없으니 친구들에게 돈을 뜯는 일진이 된다.
반면 김지한의 어머니는 50억짜리 복권에 당첨되고, 처음에는 행복하게 지내지만 몇 달 만에 아버지가 도박으로 몇 억을 탕진해 결국 이혼하고, 어머니는 하나뿐인 아들에 집착하며 교육열을 불태운다.
김지한은 어머니의 교육열 때문에 매일 늦게까지 학원을 다녀야 했고, 등수가 떨어지면 매를 맞아야 했다.
“둘 다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현석이가 조금 더 힘들지 않을까요? 김지한은 돈이 많아서 힘들어진 케이스고, 장현석은 돈이 없어서 불행해진 케이스잖아요? 장현석은 가정불화에, 돈 걱정까지 2가지를 해야 하고, 김지한은 그래도 돈 걱정은 없으니까요.”
하준의 말에 방청객들과 배우들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약에 하준 군이 장현석의 상황이라면 하준 군도 삐뚤어질 것 같나요?”
“솔직히 저도 삐뚤어질 것 같아요. 현제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하준이 옆에 앉은 이현제에게 동의를 구했다.
“어, 나도 그 상황이면 그랬을 거 같아. 근데 둘 중 더 힘든 건 내 생각엔 김지한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하준과는 다른 의견에 MC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장현석은 방목, 김지한은 완전 가두리잖아요? 방목은 자기 멋대로 삐뚤어질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가두리는 자유가 없어서 삐뚤어질 수도 없어요. 그러니까 외부적으로 풀 수 없어서 스스로를 해치게 되는 거죠. 전 그런 면에서 내적 상처는 김지한이 더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극중 김지한은 정말 딱 하준이처럼 너무 착하잖아요.”
“아,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김지한이 더 힘들었을 거다?”
“네, 전 자유가 중요한 편이거든요.”
극중 장현석은 벗어날 수 없는 고통에 자살시도를 한 김지한을 구하면서 김지한을 이해하게 된다.
“두 분이 서로를 더 힘들었을 거라고 이해했기 때문에 극중 두 친구가 진정한 화해를 하고 다시 절친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베스트커플상 받을 만합니다. 하하.”
MC의 말에 녹화장의 사람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의 학교>는 선생님들,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까지 생각할 화두를 던져줬는데요, 덕분에 게시판에 참 훈훈한 이야기들이 많이 올라왔어요. 그래서 몇 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MC는 간략하게 이야기를 요약해서 소개했다.
“어떤 어머님은 지한이네 어머니를 보면서 자기 같아서 소름이 끼치셨대요. 그래서 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눠보니 아들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고 해서 그날로 학원도 줄이고 각서도 쓰셨대요. 성적으로 압박하지 않겠다고요.”
“와······!”
“또 어떤 선생님의 글도 있었는데요, <우리들의 학교>를 보고 학생들을 좀 이해하게 되었고, 교육자로서의 마음가짐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하셨어요.”
“오······!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배우들은 드라마의 선한 영향력에 감동을 받았다.
<우리들의 학교>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교훈과 변화를 남기고 웰메이드 드라마로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
며칠 뒤 하준은 베스트스쿨 광고를 촬영했고, 그 후에는 <신비종> 삼총사와 세계 여러 나라의 방송에 출연하느라 거의 한 달을 해외에 머물렀다.
그리고 하준은 한 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 하준아!!”
하준이 집으로 불쑥 들어가자, 최선희가 화들짝 놀라며 현관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하준과 일단 진한 포옹을 한 뒤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너 뭐야, 내일 온다더니?”
“일정이 갑자기 당겨져서 빨리 왔어.”
“아니, 그럼 연락을 해줘야지! 그래야 맛있는 것도 만들어 놓잖아. 아, 먹을 거 없는데, 뭐 해주지? 너 내일 온다고 오늘 장보러 가려고 했는데, 지금 갔다 올게.”
최선희는 장을 보러 가야 한다며 허둥지둥거렸다.
“엄마, 서두르지 마. 나 안 급해. 천천히 해도 돼.”
“그래도 너 한 달 만에 오는데 외국에서 얼마나 한국 음식이 그리웠겠어! 내가 한식으로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줄 거야. 뭐 먹고 싶어?”
“솔직히 말해도 돼?”
“그럼! 설마 또 돈가스는 아니겠지?”
하준은 어릴 적 식성이 아직도 그대로 이어져서 여전히 돈가스를 제일 좋아했다.
“엇, 어떻게 알았어?”
“뭐야, 진짜 돈가스야?”
“하하, 농담이야, 농담. 튀긴 거 지겨워. 외국에 널린 게 튀김이라서.”
“그래, 외국에 튀김 천지였을 텐데, 또 돈가스라고 해서 깜짝 놀랐네. 그래서, 이제 진짜 먹고 싶은 거 말해봐.”
“우리 이따 아빠 오면 감자탕 먹으러 가자.”
“감자탕?”
“응, 옛날에 고모가 미국에서 오자마자 감자탕 먹었다고 했잖아? 왜 그랬는지 알 거 같아. 나도 감자탕 완전 먹고 싶어. 감자탕 다 먹고 볶아주는 밥까지 다 먹을 거야.”
“너 나 힘들까봐 일부러 사 먹자고 그러는 건 아니지?”
“에이, 속고만 사셨나. 진짜 감자탕 먹고 싶다니까 그러네.”
하준이 진심이라며 빙긋 웃었다.
“그래, 그러자. 그럼 아빠 올 때까지 한숨 잘래? 피곤하지?”
“음, 일단 씻고 누웠다가 졸리면 자지, 뭐.”
“그래, 네 짐은 엄마가 정리해줄게. 들어가서 쉬어.”
“고마워, 엄마.”
하준은 방으로 들어가서 방에 달린 욕실에서 씻고 편히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으아, 역시 내 집이 최고다!”
하준은 오랜만에 자기 침대에서 편히 뒹굴대며 휴대폰으로 연예기사들을 구경했다.
“뉴클리어?”
하준은 자신의 기사들을 검색해보다가 작년에 데뷔했다는 ‘뉴클리어’라는 6인조 아이돌 그룹을 발견했다.
하준이 본 기사는 하준과 이현제 등이 베스트스쿨의 모델이 된 후 교복 브랜드 4곳의 선호도 변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거기서 타 교복 브랜드들의 광고모델들이 언급되었는데, 뉴클리어는 이번에 4대 유명 교복 브랜드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스마트핏의 교복 모델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쓴 기자가 뉴클리어의 소속사인 스타우드 엔터와 친한지 기사의 절반 가량이 뉴클리어의 이야기였다.
“스타우드 소속이라서 팍팍 밀어주나보네.”
하준은 대충 그런 아이돌이 있구나 하고 기사를 넘기고 다른 기사들을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과 1시간 전에 올라온 하준의 기사가 하나 보였다.
[월드스타 하준, 마음씨도 월드급, 경기도 일부 보육원 청소년들에 3000만원 상당의 베스트스쿨 교복 상품권 기부]
하준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니, 이게 어떻게 공개된 거지? 비밀로 하기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