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61화
“먼저 해볼 사람?”
함고원이 간단한 시범을 보인 후,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이민혁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요!”
이민혁은 아까 보여주지 못한 실력을 이것으로라도 만회하고자 자신 있게 자원했다.
“적극적인 자세 좋아. 아, 민혁이는 와이어 액션 해본 적 있니?”
“아뇨.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이번 대답은 진실이었다. 이민혁은 와이어 액션까지는 미리 연습해오지 않았다.
하지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와이어가 알아서 자기 몸을 들어줄 테니 자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민혁아, 고소공포증 있니?”
“몰라요.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놀이기구는 잘 타?”
“잘 타요.”
“그럼 이 정도는 잘 할 수 있겠구나. 자, 들어봐. 넌 이렇게 서 있는 상태 그대로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올 건데, 균형을 잘 잡아야 돼. 양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아봐. 와이어에 매달려 있으니까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래 이렇게 두툼한 매트도 깔려있고 말이야.”
함고원은 이민혁의 몸에 와이어를 달아주며 설명했고, 이민혁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걱정 마세요. 하나도 안 무서워요.”
“자신감 좋아! 그럼 간다?”
“네!”
이민혁이 양팔을 벌리고 준비하자,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아이들의 와이어 액션을 구경하던 배우들이 이민혁에게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파이팅!”
“잘해라!”
주변의 이목을 한몸에 받게 된 이민혁은 이번에야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실력을 선보여 하준보다 주목을 받겠다며 속으로 의지를 불태웠다.
잠시 후, 이민혁의 허리에 달린 와이어가 그를 공중으로 쭉 끌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어어······!”
이민혁은 처음 느껴보는 부양감에 당황했지만, 잘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침착하려 애썼다.
하지만 의외로 와이어 액션은 이민혁의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엇!”
이민혁이 약 2미터 정도 위로 떠올랐을 때, 그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몸이 앞으로 푹 숙여져 엎드린 자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민혁아, 상체를 뒤로 젖힌다고 생각하고 힘을 줘봐. 똑바로 서야 돼.”
함고원이 이민혁을 향해 소리쳤다.
이민혁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구경하던 삼총사는 웃음이 터지려 했지만, 자기들의 미래도 저렇게 될까 봐 걱정이 되어 웃음기는 금방 다시 사라졌다.
“민혁아, 집중해. 팔을 버둥거리지 말고 몸을 뒤로 눕는다고 생각해!”
함고원은 계속해서 이민혁에게 조언했다.
그러자 이민혁은 함고원의 말대로 몸을 뒤로 누우려고 해봤고, 이번에는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 잘했······!”
“오, 됐다······ 으억!”
함고원이 칭찬을 하려는데, 이민혁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넘어 이번엔 벌러덩 뒤로 누워버리고 말았다.
마치 뒤집힌 거북이처럼 팔다리를 버둥거리던 이민혁은 결국 한 마디 외쳤다.
“사, 살려주세요!”
함고원은 얼른 와이어를 천천히 내려 이민혁을 살려주었다.
“괜찮니? 이게 보기보다 균형 잡는 게 쉽지 않단다.”
함고원의 위로에 이민혁은 얼굴이 벌게져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들 자기를 주목하고 있었는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으니 이민혁은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삼총사들 앞에서 벌써 두 번이나 체면을 구겨서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이민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자기 자리에 가서 섰고, 함고원은 다음 차례로 누가 할 건지 물었다.
이민혁이 저렇게 못하는 걸 보니 공정환과 서희수는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하준을 쳐다보았고, 하준은 두 사람의 눈빛을 알아듣고는 앞으로 나섰다.
“제가 해볼게요.”
“오, 그래, 하준이가 해보자.”
하준이 나서자, 이민혁은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졌다.
혹시 하준이 여기서 잘하게 되면 자기랑 더 비교되고, 더 쪽팔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민혁은 하준의 허리에 와이어를 걸고 있는 함고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쌤, 저 어지럽고 손목도 아파서 더 못하겠어요. 집에 갈래요.”
“아······ 그래, 아픈데 무리해서 연습할 순 없지.”
함고원은 이민혁이 집에 가는 것을 허락해주었고, 이민혁은 빠른 걸음으로 체육관에서 나가버렸다.
“자, 하준아, 아까 민혁이 하는 거 봤지? 이게 꽤 균형 잡기가 어려워. 원래 어려운 거니까 못한다고 실망하지 마. 계속 연습하다 보면 될 거니까. 이건 설명으로 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익혀야 하는 거라서 연습을 많이 해서 감을 익히는 게 중요하거든. 그럼 해보자.”
“네, 쌤.”
하준이 와이어를 달고 준비하자, 이번에도 구경하던 배우들이 하준에게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하준이, 파이팅!”
하준은 그들을 향해 가볍게 묵례했고, 곧 하준의 몸은 와이어에 달려 공중으로 붕 뜨기 시작했다.
“좋아, 그대로만 올라가면 돼!”
꼿꼿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하준을 지켜보며 함고원이 외쳤다.
하준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며 3미터 가까이 올라갔고, 그 상태 그대로 3미터 상공에서 멈춰 있었다.
“와, 하준이 균형감각이 아주 좋구나! 아주 잘했어! 박수.”
함고원이 먼저 박수를 치며 말하자, 공정환과 서희수도 감탄하며 힘찬 박수를 보냈다.
구경하던 다른 배우들도 조심스럽게 박수를 쳐주었는데, 이는 혹시나 박수를 크게 보냈다가 하준의 균형이 무너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준아, 그럼 이번에는 상체를 앞으로 45도만 숙여서 자세 유지해볼래? 보통 하늘을 날아다닐 때는 그 자세를 많이 하거든.”
“네, 해볼게요.”
함고원의 주문에 하준은 아랫배에 힘을 팍 주고 상체를 앞으로 조금 숙였다.
하준이 정확히 45도 각도로 몸을 숙여 자세를 유지하자, 함고원이 활짝 웃으며 외쳤다.
“오! 그렇지!! 진짜 잘하는데? 하준이는 못하는 게 없네. 하하.”
“우와, 잘한다!”
공정환과 서희수도 입을 쩍 벌리며 하준의 균형감각을 칭찬했다.
함고원은 하준이 잘하니 신이 났는지, 균형 후에 할 다양한 팔, 다리 포즈도 시켜보았고, 하준은 함고원이 주문하는 대로 척척 포즈를 해냈다.
“와, 하준이는 운동신경도 대단하구나! 와이어 액션 연습도 금방 끝나겠다. 엄청 잘했어! 자, 이제 내려줄게.”
함고원은 하준을 극찬하며 금방 하준을 아래로 내려주었다.
하준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자, 그제야 주변에 구경하던 배우들도 우렁찬 박수를 보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야, 하준이 엄청 멋있다!”
“기가 막히네!”
“균형감각도 감각인데, 라인도 이쁘더라. 우리도 저렇게 포즈 멋있게 잡기 어려운데 말이야.”
공정환과 서희수 역시 너무 잘한다며 박수를 쳤다.
함고원은 하준에게 와이어를 처음 달아본 소감을 물었다.
“하준아, 와이어 액션 해보니 어땠어?”
“너무 재밌어요! 하늘을 나는 것 같아서 신났어요!”
하준은 와이어를 타고 공중에 올라간 게 무섭지 않고 마치 새가 된 것 같아 즐거웠다.
“오, 하준이 와이어 체질인가보다! 아, 그럼 내친김에 하나 더 해볼래? 이건 다음 진도인데······.”
“네, 해볼래요!”
하준은 재밌어서 또 하고 싶었다.
“뭐냐면, 백 텀블링인데, 공중에서 하는 게 아니고, 여기 선 상태에서 발로 바닥을 탁 차면서 몸을 뒤로 한 바퀴 돌려서 착지하는 거야. 해볼래?”
“음, 네.”
“좋았어! 선생님이 시범 보여줄게. 잘 봐.”
함고원은 훌륭한 제자를 만나서 신이 난 듯 얼른 백 텀블링 시범을 보여주었다.
하준은 함고원의 시범을 유심히 보며 동작을 기억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를 따라 백 텀블링을 돌아보았다.
하준은 백 텀블링을 성공하고는 스스로 놀라 외쳤다.
“우와, 이게 되네!”
하준의 백 텀블링을 본 함고원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 역시 입을 쩍 벌리고는 놀라 외쳤다.
“와, 진짜 이걸 한 번에 따라한다고?”
“하준이는 타고났나 봐. 몸을 너무 잘 쓰네!”
“하준이 춤도 잘 춘다잖아. 난 잘 할 줄 알았어!”
함고원은 ‘브라보’를 외치며 하준에게 다가오더니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잘했어! 하준이는 나중에 크면 액션 꼭 해봐. 너무 잘할 것 같으니까.”
“네, 헤헤. 감사합니다.”
“자, 정환이랑 희수! 하준이가 하는 거 잘 봤지? 너희도 이렇게 할 수 있어.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해보자. 오케이?”
“네에!”
공정환과 서희수는 이민혁과는 달리 하준이 쉽게 와이어 액션을 해내자 자신감이 생겼다.
물론 두 사람은 하준처럼 단번에 와이어 액션을 능숙히 해내지 못했지만, 연습을 거듭하며 와이어에 점차 적응해나갔다.
***
“징글벨 징글벨~”
하준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흥얼거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길가의 상점들에는 12월이 되어 그런지 크리스마스 장식이 하나둘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준은 산타 할아버지는 믿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좋아했다.
또한 캐럴도 좋아했는데, 캐럴 음악 반주 대부분에 포함되어 있는 청아한 종소리가 좋았다.
“하준아, 오늘 일찍 집에 가니까 좋아?”
매니저 김유택이 하준이 노래를 흥얼거리니 기분이 좋은가 싶어 물었다.
“네, 좋아요. 오랜만에 엄마랑 아빠랑 같이 저녁 먹을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액션 연습이 일찍 끝나서 약 3주 만에 저녁을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님이 맛있는 거 많이 해 놓으셨대지?”
“네, 헤헤.”
하준이 생각만 해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었다.
잠시 후, 하준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 앞에 웬 택배박스가 와 있었다.
하준이 들고 들어가기에는 꽤 컸기에 하준은 일단 집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집 안은 온갖 맛있는 냄새로 가득했다.
최선희가 오랜만에 거한 저녁 식사를 준비했던 것이다.
불고기, 잡채, 소고기뭇국, 버섯볶음, 감자조림 등 식탁 가득 반찬이 꽉 들어차 있었다.
“우리 아들 왔어?”
“힘들었지? 얼른 손 씻고 와. 밥 먹자!”
최선희와 윤기철이 하준을 반기며 말했다.
“우와, 맛있는 냄새!! 응, 근데 엄마 문 앞에 택배 뭐야?”
“그거 이따 밥 먹고 보여줄게. 일단 밥부터 먹자.”
“응, 알겠어.”
하준은 후다닥 손을 씻고 식탁으로 달려왔다.
세 사람은 맛있게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먹은 뒤에는 문 앞에 있던 택배 박스를 개봉했다. 택배 박스 안에는 트리 재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우와아!! 아빠, 이거 트리 만드는 거야?”
“응, 이제 곧 크리스마스인데 우리도 기분 내야지.”
“신난다! 나도 트리 꾸미는 거 해보고 싶었어! 불 반짝반짝 켜놓으면 너무 예쁠 거야.”
하준은 만세를 부르며 너무 좋아했다.
사실 윤기철과 최선희는 지금껏 집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놓은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금전적 여유가 있게 된 것도 몇 년 되지 않았고, 여유가 된 이후에는 아이를 가지지 못해 심리적 여유가 없어서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는 달랐다.
하준이라는 이쁜 아들이 생겨서 허전한 부부의 마음을 가득 채워주었기에 크리스마스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또한 부부는 하준에게 이런 소소한 행복과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던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 용품을 구입했던 것이다.
“그렇게 좋아?”
“응! 얼른 해볼래. 예쁘게 설치해서 사진도 찍어야지! 아, 사진 찍어서 팬카페에도 올려줄래.”
하준은 벌써 잔뜩 들떠 있었다.
최선희와 윤기철은 하준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트리를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캐럴 틀어놓고 할까?”
“응, 좋아! 용구야! 크리스마스 캐럴 틀어줘.”
하준은 집에 설치한 AI 어시스턴트에게 음악을 틀어달라고 요청했고, 곧 온 집안에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하준은 입으로는 캐럴을 따라부르고, 엉덩이로는 실룩거리며 리듬을 탔다. 또한 손으로는 트리 장식을 걸었다.
최선희는 그런 하준이 귀여워서 웃으며 말했다.
“호호, 우리 하준이는 멀티가 정말 잘되네.”
“하하, 그러게.”
세 사람이 이렇게 즐겁게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있는데, 갑자기 하준이 얼음이 된 것처럼 몸을 멈췄다.
“잠깐! 어디선가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
“응? 정말? 엄만 모르겠는데?”
“아냐, 용구야, 정지!”
하준이 캐럴을 정지시키자, 정말 식탁 위 하준의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오, 우리 하준이 귀 엄청 밝다.”
윤기철이 감탄했고, 하준은 얼른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발신자는 월드 엔터의 최원상 대표였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어, 하준아. 집이니?
“네, 방금 저녁 먹고 크리스마스 트리 만드는 중이었어요.”
-오, 그랬어? 재밌겠네. 아, 급한 부탁이 있어서 연락했어.
“뭔데요?”
최 대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크리스마스 캐럴 앨범에 하준이가 참여 좀 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