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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길만 걷는 천재스타-53화 (53/150)

53화

53화

“진짜?”

송석원 총감독이 깜짝 놀라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얼른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낮춰 하준에게 말했다.

“나도 그 작품 드라마화 기사 봤는데! 그거 보고 이거 잘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스타 나오는 거 아니냐고 다른 감독들이랑 얘기도 했었어. 와, 근데 그 오디션을 보러 간단 말이지?”

“네.”

“잘하고 와. 우리 하준이 잘 되면 좋겠다. 하준이는 연기 잘하니까 가능성 있어!”

“감사합니다. 근데 연기보다 원작 소설 캐릭터 이미지랑 맞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본다더라구요. 그래서 결과는 아무도 몰라요.”

“음, 그렇구나. 그래도 잘 보고 와.”

송석원 감독의 딸 역시 이 소설을 좋아했기에, 송 감독은 이 소설의 내용을 대강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원작 소설 주인공과 하준이 매치가 잘 된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9살 박민후는 영리하지만 호기심이 많은 장난꾸러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준은 영리한 것은 맞지만 어른스럽고 의젓했기에 하준에게서 장난꾸러기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하준 역시 그 부분이 가장 걱정이었다.

‘장난꾸러기 이미지로는 우주가 딱 맞긴 하지.’

같은 반 친구이자,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의 열혈 팬인 고우주는 성격이 쾌활하고 익살맞은 구석이 있었다.

하준은 태어났을 때부터 근 8년을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살았기에 마음껏 장난꾸러기가 될 수 없었다.

최선희와 윤기철을 만난 이후 하준이 많이 밝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형성된 성격은 변하기 쉽지 않았다.

“엄마, 있잖아, 나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오디션에서 뽑힐 수 있을까? 엄마, 생각은 어때?”

하준이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최선희에게 물었다.

“그럼! 우리 아들은 할 수 있어!”

최선희는 무조건 하준의 편이었기에 하준을 응원해주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엄마도 읽어봤잖아? 거기 주인공이랑 내가 닮은 데가 있어?”

“음, 영리한 거? 호기심도 있는 편이지. 그리고 거기 묘사에 눈이 크고 맑았다고 했어. 우리 하준이가 그렇잖아?”

“근데 나, 장난꾸러기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우리 하준이는 의젓하지. 왜, 그거 때문에 오디션 안 될까 봐 걱정돼?”

“응, 아무래도 나랑 이미지는 좀 안 맞긴 한 것 같아서.”

하준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하준이 시무룩해하니 최선희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최선희는 하준의 고민을 해결해 주고 싶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최선희가 곧 입을 열었다.

“하준아, 근데 말이야, 하준이 특기가 메소드 연기잖아?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마치 그 사람처럼 연기하는 거 말이야. 그러니까, 장난꾸러기도 메소드 연기로 연습하면 되지 않을까?”

“근데 오디션에서 특별히 연기는 보지 않는대. 그냥 대사 몇 마디 읽어보라고만 하고, 인터뷰를 할 거랬어.”

하준은 월드 엔터의 최원상 대표가 오디션 접수를 하면서 알려준 구체적인 오디션 내용을 최선희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최선희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하준에게 제안했다.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어떻게?”

“어떤 배우들은 자기가 맡은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촬영 전에 자기가 진짜 그 캐릭터인 것처럼 행동하고 다닌대. 그 얘기 들어본 적 있어?”

“응, 기사에서 본 적 있어.”

“그치? 하준이도 그렇게 해보는 거야. 하준이가 그 책의 주인공이었다면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생각해보고 그렇게 한번 행동해보는 거야. 그럼 인터뷰에서도 정말 그 책 주인공처럼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어때?”

“오······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해보는 건 좋을 것 같아.”

하준이 기사에서 본 내용에 따르면, 어떤 배우가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사이코패스의 생각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 사이코패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어느 순간 정말 자기가 정상인이라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미친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물론 이 배우는 사이코패스 연기를 훌륭히 해냈지만, 해당 작품을 모두 촬영한 후에도 사이코패스 같은 생각에서 빠져나오는 데 몇 달을 고생했다고 하긴 했다.

하지만 하준이 행동하고자 하는 캐릭터의 성격은 호기심 많은 장난꾸러기였으니까 나중에 정신적으로 힘들 건 딱히 없을 터였다.

“좋았어. 엄마가 캐릭터 분석 도와줄게. 일단 같이 분석해보고 평상시에 그렇게 행동해보자.”

“응, 고마워, 엄마. 난 정말 엄마를 잘 만난 것 같아. 헤헤.”

그제야 하준의 표정이 환해졌고, 하준은 최선희에게 폭 안기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

일주일 후, 드디어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 오디션 날이 되었다.

“하준아, 짐 다 챙겼어? 다시 한번 확인해봐.”

“응!”

하준은 오늘 오디션에서 필요한 도구들을 가방에 다 챙겼는지 확인한 후, 가방을 메고 하준의 어깨높이까지 오는 지팡이를 하나 들고 방에서 나왔다.

이 지팡이는 도사들이 쓰는 지팡이였는데, 하준과 윤기철이 직접 함께 나무를 깎아 소설 속 지팡이와 흡사하게 제작한 것이었다.

“준비 다 됐어. 이제 가자!”

하준과 최선희는 김유택과 함께 곧 오디션장으로 출발했다.

오디션은 경기도의 외곽에 있는 어느 학교에서 본다고 해서 거리가 꽤 멀었기에 세 사람은 오디션 시간보다 약 2시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근데 오디션을 희한한 데서 보네. 학교라니. 그것도 폐교였던 곳에서······.”

최선희의 중얼거림을 들은 김유택이 그녀의 말에 공감하며 대꾸했다.

“그러게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학교도 생소한데, 심지어 폐교라니······ 애들이 무서워하지 않으려나? 아! 기사 보셨죠? 주인공 최종 지원자가 3천 명을 넘었다는 기사요. 허허, 지원자가 3천 명이면 경쟁률이 3천 대 1이란 건데······. 이번엔 진짜 치열하네요.”

김유택의 기막혀하는 말을 들은 최선희가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아, 경쟁률이 이렇게 높으니까, 사실 이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오디션이야. 물론 하준이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만, 혹시 안 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말자. 알겠지?”

하준은 일주일 동안이지만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의 주인공인 박민후의 성격으로 살아보려고 무척 노력했다.

뮤지컬 연습과 병행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하준은 틈틈이 최선을 다해 자신의 성격을 박민후에게 맞춰갔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 어딘가에 묻혀 있다는 전설의 보물상자를 찾아내기 위해 운동장 곳곳을 파보기도 했고, 하굣길에 아파트 단지에서 발견한 길고양이의 뒤를 쫓아가 보기도 했고, 집에서는 최선희가 하준을 찾을 때 집안 어딘가에 숨어 있어 보기도 했다.

최선희는 하준이 친구들과 운동장 보물찾기를 했다며 흙을 뒤집어쓰고 나타났을 때도 하준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었겠다면서 하준의 보물찾기 실패의 과정을 경청해 주었다.

길고양이의 뒤를 쫓을 때는 함께 쫓아 주었고, 집에서 하준이 사라지면 윤기철까지 합세해 숨바꼭질도 함께 해주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하준은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꼈고, 호기심도 더 많아지고, 재밌는 일들도 많아졌다.

물론 그렇다고 하준이 과한 장난을 치지는 않았다.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의 주인공 박민후가 치는 장난은 일반적인 주위 사람들에게는 가볍고 유쾌한 장난을 주로 쳤고, 나쁜 사람들에게만 골탕을 먹이는, 정의의 장난꾸러기였기 때문이다.

“응! 오디션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었으니까 괜찮아.”

하준이 빙긋 웃었고, 최선희는 기특하다며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후, 하준의 차가 오디션장인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운동장에는 20대가량의 차들이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었다.

주인공 박민후의 오디션의 경우, 지원자들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 약 100명씩 오디션을 봤다.

그래서 오늘 100명가량이 오디션을 보게 되지만 25명씩 시간대가 나눠져 있었기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최선희와 김유택은 하준을 오디션 대기실 앞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차에서 대기했고, 하준은 안내직원을 따라 오디션 대기실인 3학년 3반으로 들어갔다.

하준을 본 다른 오디션 참가자 아이들은 다들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하준을 빤히 쳐다보았다.

몇몇 아이들은 서로 수군거렸지만, 대부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 그런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뜨는 정도에서 그쳤다.

“안녕!”

하준은 손을 흔들며 무작정 밝게 인사했다.

“어어, 안녕.”

“안녕······.”

서너 명의 아이들이 얼떨결에 하준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하준은 방긋 웃으며 자신의 번호가 붙은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아이들은 모두들 하준에게 관심을 보이며 접근했을 테지만, 지금은 다들 하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하준이 얼굴이 알려진 아역 배우다 보니 일반 아이들보다 합격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곧 25명의 아이들이 교실에 모두 도착하자, 안내직원이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일단 모두들 여기서 대기하고 있으면 한 명씩 부를 거예요. 그럼 다들 조용히 자기 자리에서 대기해주세요.”

안내직원은 이 말만 남기고 교실에서 나갔고, 지원자 아이들은 가만히 자기 자리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런데 5분이 지나도 교실의 누구 하나 불려 나가지 않았다.

하준은 대기시간이 좀 길다고 생각하면서 교실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폐교라더니, 우리 학교랑 별로 다를 것도 없는데?’

폐교라지만, 현재 학교로 운영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교실은 잘 꾸며져 있었다.

교실 뒤편의 게시판에는 종이로 만들어진 다양한 크기의 꽃봉오리가 여러 개 붙어 있었고, 교실 양옆 벽에는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근데 왜 꽃잎을 안 펼치고 다 저렇게 접어놨을까?’

하준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이 교실 안에서 무엇보다 하준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교탁 위에 올려진 검은 상자였다.

‘저건 도대체 왜 저기 있는 거지? 교실을 꾸미려고 한 건 아닐 테고······. 앗, 설마?!’

순간, 하준의 뇌리에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하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교실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준이 돌아다니자, 아이들은 하준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분명 안내직원이 자기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했는데, 왜 저러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하준을 말리지 않았다.

‘저러면 찍히겠지? 잘 됐다.’

일부는 이런 생각을 하며 더 정자세를 잡고 자리에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하준은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본 후, 뒤편 게시판의 꽃봉오리로 향했다.

그리고 접혀있는 종이꽃들 중에서 가장 큰 것부터 꽃잎을 펼쳐보았다.

큰 꽃 안에는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의 주인공인 박민후의 삽화가 붙어 있었다.

하준은 이걸 보고 확신했다.

‘일부러 교실을 이렇게 꾸민 거야, 분명해.’

하준은 이어 다른 꽃잎들도 하나씩 차례로 펼쳐보았다. 다른 꽃들 안에는 역시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삽화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꽃의 꽃잎을 펼치자 그 안에는 작은 열쇠가 테이프로 붙여져 있었다.

‘역시! 이거 뭔가 있어!’

하준은 재빨리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을 훑어보았다. 다들 정면을 쳐다보고 앉아 있을 뿐 하준을 보고 있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준은 얼른 조심조심 열쇠를 떼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교탁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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