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52화
“하준아, 생일 축하해! 팬들이 보낸 선물 가져왔어.”
김유택은 어디서 구했는지 택배 기사들이 많이 사용하는 핸들카까지 대동해 선물을 잔뜩 싣고 왔다.
“우와아!!”
하준은 또 한 번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좋아했다.
“그리고······ 대표님은 오늘 급한 일이 있으셔서 같이 못 오셨어. 생일 정말 축하한다고 전해 달래. 이건 대표님 선물이고, 이건 내가 주는 선물. ”
김유택이 따로 예쁘게 포장된 선물 두 개를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뭔지 뜯어봐도 돼요?”
“그럼. 내건 별 거 아니야.”
하준이 뜯어보니 하나는 작곡 책이었다.
“오!! 이걸 어떻게! 형, 이거 형 선물이에요?”
“응, 네가 작곡에 관심 있는 거 같아서······.”
“역시! 맞아요, 저 요즘 작곡에 관심 많거든요. 진짜 감사합니다!”
하준은 안 그래도 조만간 작곡 책을 하나 사볼까 했는데, 매니저 형이 먼저 선물로 사줘서 무척 기뻤다.
최 대표가 준 선물은 애플패드였는데, 작은 카드도 함께 들어 있었다.
[우리 회사 보물, 하준아! 생일 축하한다.
노트북을 사줄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네가 그림도 잘 그리잖니? 그래서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애플패드로 준비했어.
항상 건강하고, 밝고, 행복하게 자라렴.]
“헤헤. 대표님께 내일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지.”
하준은 애플패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비싸고 멋진 물건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매니저 형은 선물만 전해주고 빨리 가봐야 한다며 돌아갔고, 하준은 최선희와 함께 팬들이 준 선물을 하나씩 열어보기 시작했다.
팬들이 보내준 다양한 선물 중에는 팬카페 ‘사랑하준’에서 보낸 선물도 있었다.
“오! 엄마, 이거 봐! 팬카페에서 본 작품들 모음집이야!”
“어머, 솜씨들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준이만 있네. 호호.”
팬카페 회원들은 여기에 더해 커스텀 인이어까지 보내주었는데, 인이어를 본 하준은 깜짝 놀랐다.
“어? 이거 매니저 형이 나한테 골라보라고 했던 디자인 중에 하난데······! 아아!!”
하준은 무언가 생각난 듯 탄성을 질렀다.
한범우 콘서트에서 사용할 요량으로 미리 인이어를 맞췄는데, 그때 매니저 김유택이 몇 가지 디자인을 가져와서 하준에게 어떤 게 마음에 드는지 물었었다.
하준은 그때 지금 선물로 받은 것과 똑같은, 짙은 보라색과 파란색이 그라데이션 된 바탕에 금색의 떡잎이 그려진 걸 골랐다.
하지만 정작 한범우 콘서트에서는 아직 제작이 안 되었다면서 평범한 인이어를 줬고, 하준은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그때 디자인을 고르라고 한 이유가, 바로 이 커스텀 인이어를 생일선물로 제작해 주려는 팬들의 부탁을 받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하준은 팬들의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세심하게 준비해서 이렇게 예쁘면서도 실용적인 선물을 주다니!
“와, 팬분들 진짜 대단하시다······.”
“어머, 이거 황금 떡잎 표현한 거지? 반짝반짝 너무 예쁘다! 우리 하준이랑 찰떡이네. 호호.”
최선희도 인이어가 너무 예쁘다면서 감탄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돌아온 윤기철도 인이어의 퀄리티에 혀를 내둘렀다.
“크으, 이거 누가 디자인 아이디어 냈는지, 진짜 예쁘다. 딱 하준이한테 맞는 황금빛 떡잎에다가, 색깔도 그렇고, 꼭 무슨 보석 같네!”
“엄마, 아빠, 어때?”
하준은 인이어를 직접 끼고서 최선희와 윤기철에게 어떤지 물었다.
“엄청 이뻐! 멀리서 보면 보석이라고 생각할 정도야.”
“우리 하준이 이 인이어 보여주려면 음악 무대에도 많이 서야겠다. 하하.”
“그렇네! 팬들도 좋은 무대 많이 보여달라고 선물로 줬을 거야.”
하준은 연기도, 노래도, 뮤지컬도 꾸준히 해서 팬들의 사랑에 보답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준은 이날 많은 선물과 축하를 받았고, 세상에 태어난 것이 이렇게 축복받을 일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준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을 원망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중에 가장 행복한 생일이었어. 태어나길 정말 잘했다!’
***
다음 날, 하준은 팬들에게 받은 선물도 인증하고 감사인사도 할 겸 팬카페에 접속했다.
그런데 거기서 눈에 띄는 게시글이 있었다.
[한범우 콘서트-하준 ‘으르렁’ 직캠 영상](154)
“어? 내가 춤춘 걸 누가 찍었었나? 근데 댓글이 154개?!”
하준은 사실 자기가 직접 춤을 추니까 스스로 어떻게 춤을 췄는지 보지 못했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차에 영상이 있다니 한번 보고 싶었다. 댓글 반응도 궁금했고.
하준은 얼른 그 글을 클릭해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은 꽤 가까이서 하준을 촬영해서 하준이 춤추는 것이 잘 보였다.
그리고 관객석의 말소리도 다 녹음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반응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와, 미쳤어! 진짜 잘한다!”
“아하하, 너무 귀여워!! 으르렁 으르렁!”
“와아악!! 잘한다! 아기 사자같애!!”
하준은 춤과 노래에 신경 쓰느라 느끼지 못했었는데, 하준이 춤추는 내내 객석에서는 엄청난 환호와 탄성이 계속해서 터져나왔다.
“와······ 다들 엄청 좋아하셨네!”
하준은 관객들을 만족시켰다는 것이 뿌듯했다.
하준은 영상을 본 팬들은 어떤 반응들일까 궁금해서 154개의 댓글을 살펴보았다.
[와······ 뮤지컬 왜 뽑혔는지 이유를 여기서 알게 됨 ㄷㄷㄷ 하준이 춤선 대박!!]
[우리 하준이는 못하는 게 없다 증말 ㅠㅠ 이러니 팬 안 되고 배겨??]
[저걸 직관 못 한 게 한이다 ㅠㅠ 한범우 콘서트는 티켓팅 넘 힘드러.. 실패한 내 손꾸락을 원망한다 흑흑..]
[영상 찍으신 분 복 받으셔야 함!! 이건 진짜 길이길이 남겨야 한다! 하준이 최고bb]
[치명적으로 귀엽 ㅋㅋㅋㅋ 너무 잘하고 안무 존똑으로 추는데 왜케 귀여운 것 ㅋㅋㅋ]
[왜 랩 얘기는 없음?? 랩도 잘해!! 게다가 라이브라니 하준이 잠재력 무한대다 무한대 ㅎㄷㄷ]
[이거 영상 조회수 벌써 30만 넘음 댓글도 귀엽고 멋있다고 난리 ㅋㅋ 아니, 우리 하준이 원래 귀엽고 멋있거든여??ㅋㅋㅋ]
‘조회수가 30만이나?’
하준은 댓글에 놀라 직접 너튜브 영상으로 넘어가 보았다.
영상은 올라온 지 일주일 정도 됐는데, 벌써 조회수가 30만이 넘었고, 좋아요도 3천이 넘었다.
댓글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애기한테 반하긴 처음.. 랩, 노래, 춤, 전부 갓벽!!]
[여러분은 앞으로 우리 연예계를 이끌어갈 영재를 보고 계십니다~]
[끼가 정말 대단하네. 제발 이대로만 자라다오!!]
[아기 사자 같다는 말에 초공감 ㅋㅋ 근데 춤 개잘춤 ㅋㅋ 멋짐 + 귀여움 = 하준, 인정?]
[지금까지 이런 아역 배우가 있었나 싶네요. 외모, 노래, 춤, 연기,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니!!]
칭찬 일색의 댓글들에 하준은 싱글벙글 웃었다.
하지만 하준은 계속해서 댓글을 읽으려다가 최선희가 해준 이야기가 생각나서 얼른 영상 창을 닫아버렸다.
팬카페에 올라온 댓글 외에는 읽지 말라는 조언.
최선희는 아무리 좋은 영상이어도 꼭 흠을 잡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혹시 모를 악플들이 걱정된 최선희는 하준에게 댓글은 직접 보지 말라고 조언했던 것이다.
하준은 이 정도 선플에 만족하고 다시 팬카페로 돌아와 처음에 쓰려고 했던 감사글을 올렸다.
하준은 감사 인사와 함께 현재 뮤지컬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는 근황도 알렸고, 곧 방송될 <메모리즈>도 재밌게 봐달라고 부탁했다.
***
“형, 어제 <메모리즈> 봤어요?”
“당연히 봤지! 하준이 나오는 건데. 하준이는 진지한 역할도 잘하더라. 표정 연기도 좋고.”
“그쵸? 근데 노은지 작가님 드라마라 그런지 내용도 재밌더라고요.”
“맞아. 나도 봤는데, 하준이도 연기 좋고, 다른 배우들도 다들 잘하더라.”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출근한 <루드윅 반 베토벤>의 출연 배우들이 모여앉아 어젯밤 방송된 <메모리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준이 오늘은 10시에 오겠지?”
“그럴걸요. 오늘 토요일이라 학교 안 가잖아요.”
원래 연습은 오전 10시부터 밤 10시쯤까지 하는데, 하준은 평일에는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오후에 오곤 했다.
하지만 오늘은 토요일이고, <메모리즈> 이야기를 나누던 배우들은 다들 하준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드디어 하준이 연습실에 도착했다.
배우들은 수다를 떨다가 연습실로 들어오는 하준을 발견하고는 전부 그에게로 몰려갔다.
“하준아!!”
“드디어 하준이 왔다!”
“<메모리즈> 봤어. 시청률도 잘 나왔더라. 축하해!”
“<메모리즈> 너무 재밌더라. 우리 하준이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쏟아지는 칭찬에 하준은 방긋 웃으며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다들 보신 거예요?”
“그럼! 하준이 나오는 건데 무조건 봐야지.”
“근데 좀 짧아서 아쉽더라. 예고 보니까 오늘 너 거의 안 나올 것 같던데?”
“네, 맞아요. 앞에만 잠깐 나올 거예요, 아마.”
하준은 약 1화 반 정도의 분량을 찍긴 했으나, 편집하는 과정에서 좀 축소돼서 2화 초반에 잠깐 나오고 바로 성인 주인공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하준이 더 많이 보고 싶은데, 다음에는 많이 나오는 거 해. 주인공 아역으로 나오는 거 말고, 아예 가족 이야기 같은 거에 아들로 계속 나오는, 그런 거.”
“그래, 일일연속극 이런 거 하면 좋겠다!”
“그럴까요?”
안 그래도 하준은 일일연속극을 하고 싶었다.
이유는, 일일연속극은 저녁 7시쯤 방송하니까.
<메모리즈>도 <월야>처럼 밤 10시에 방송이 됐는데, 하준이 잘 시간이라 어제 또 졸면서 첫방송을 봤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엔 일일연속극을 해야지 싶었다.
“근데 참 하준아, 뮤지컬 연기는 따로 배운 거야?”
베토벤의 아버지 요한 역의 안강훈이 하준에게 물었다.
어제 <메모리즈>에서의 드라마 연기도 훌륭했는데, 뮤지컬 연기까지 잘하는 하준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네, 저희 기획사 대표님이 아는 뮤지컬 배우 분이 계셔서 조금 지도받았어요.”
“오, 그렇구나. 드라마 연기랑 헷갈리진 않니?”
뮤지컬은 무대 연기라서 소리 전달을 정확하게 멀리까지 해야 했다. 그래서 드라마 같은 매체연기와는 발성부터가 좀 달랐다.
간혹 뮤지컬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연기를 하면 너무 오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바로 이런 연기의 차이 때문이었다.
안강훈은 혹시 이런 점을 하준이 헷갈려 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에 물어본 것이었다.
“네, 아직은 그렇진 않아요. 근데 지금 이렇게 뮤지컬 하다가 다시 드라마 하면 어떨지는 모르겠어요.”
“하긴 뭐, 하준이는 총명해서 잘할 거야.”
“감사합니다.”
“아, 뮤지컬 끝나면 드라마 또 하는 거 있니?”
“아직 확정된 건 없는데, 오디션 보긴 할 거예요.”
“그래, 이번엔 일일연속극으로다가! 파이팅!”
안강훈이 하준에게 파이팅을 외쳐주었고, 하준은 씽긋 웃었다.
그때, 안무감독이 연습실로 들어오며 시크하게 하준에게 말했다.
“하준아, 어제 <메모리즈> 재밌게 봤다.”
“감사합니다.”
“자, 다들 모였죠? 그럼 이제 안무 연습 시작하겠습니다!”
안무감독의 말에 배우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각자 자기 위치에서 대기했다.
가장 먼저 연습하는 안무는 베토벤 가족들이 함께 노래하는 ‘우리는 음악가’라는 곡에 맞춰 추는 춤이었다.
안무감독은 반주 음악을 틀었고, 베토벤 아버지 역인 안강훈의 노래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대대로 이어져 온 음악가 집안~”
안강훈이 앞으로 한 발짝씩 걸어나가며 노래하자, 베토벤의 다른 가족들도 그를 따라 걸어나가며 V자 대형을 만들었다.
하준은 피아노에 앉아 있다가 여기에 합류하는 터라 다른 방향에서 안강훈의 옆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때, 앞에서 매의 눈으로 배우들을 스캔하고 있던 안무감독이 큰소리로 외쳤다.
“어깨! 어깨 걸쳐! 앞사람 어깨 걸쳐야 대형이 맞지!”
안무감독의 외침에 뜨끔해진 몇몇 배우들이 번개처럼 이동해 앞사람 어깨에 자신의 어깨가 겹치게 만들어 대형을 맞췄다.
하준은 안강훈의 앞에 서서 안강훈과 똑같이 움직이며 노래를 함께 불렀다.
“누구나 어디서나 알아주는 음악가 집안~ 그 집안을 이끌어갈 천재 꼬마 음악가~ 그건 바로 루드윅이지~”
오전 내내 안무 연습은 계속되었고, 오후에는 연기와 합창 연습 등이 이루어졌다.
연습을 모두 마친 하준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송석원 총감독에게 다가가 말했다.
“감독님, 저 다음 주 토요일 오후에 오디션이 있어서 그날 연습 못 나올 것 같아요.”
“아, 그래? 하준이야 뭐, 혼자 하는 건 이미 다 잘하니까 좀 빠져도 괜찮지. 근데 무슨 오디션인데?”
송 감독의 질문에 하준은 조금 망설이다가 조용히 답했다.
“발표날 때까지는 감독님만 알고 계세요. <신입 도사와 비밀의 종소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