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꽃길만 걷는 천재스타-38화 (38/150)

38화

38화

최선희는 차를 내왔고, 최 대표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서 하준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하준의 연주는 초등학교 1학년의 실력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정확하고 깨끗한 소리,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강약조절 등 기술적으로도 훌륭했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감정이 배어있는 황홀한 연주였다.

‘아니, 벌써 저렇게 실력이 늘었단 말이야?’

최 대표는 속으로 엄청 놀라고 있었다.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피아노 선생님이 하준에게 기본적인 운지법과 악보 보는 법 등만 가르쳐 줬었고, 몇 번 월드 엔터 연습실에서 피아노 치는 걸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어려운 곡을 치지 않았었는데······.

‘2달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2달 전쯤 윤기철이 피아노를 선물로 사준 후로 하준은 집에서 피아노를 연습했고, 최 대표는 그 사이에 하준의 피아노 연주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이다.

최 대표는 심오한 표정으로 하준의 연주를 들었고, 연주가 끝나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준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하준아, 최 대표 아저씨야.”

“어?”

하준이 놀라는 소리를 내더니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하준이 꾸벅 인사하자, 최 대표는 하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하준아, 너 피아노 엄청 잘 친다. 언제 이렇게 연습했어?”

“헤헤, 감사합니다. 그냥 틈틈이 했어요. 괜찮았어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 훌륭했어. 감동적일 정도로! 한 번만 더 쳐 볼래?”

“네! 뭐 쳐드릴까요?”

“아무거나. 하준이가 치고 싶은 거.”

“음, 그럼 바흐 평균율 1번 프렐류드 쳐드릴게요. 이게 잔잔하지만 아름답거든요.”

“응, 뭔지 난 모르지만 일단 해봐.”

“들어보시면 아실 거예요.”

하준은 의자에 다시 올라앉더니 프렐류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따라라라따라라라~

“오······.”

최 대표가 앞부분을 들어보더니 들어본 곡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 대표는 아름다운 선율에 빠져들어 눈을 감고 하준의 피아노 연주를 감상했다.

싱그러운 아침을 여는 새들의 노랫소리 같은 맑고 고운 멜로디.

듣기만 해도 마음에 햇살이 드는 느낌이었다.

최선희와 윤기철도 다가와 흐뭇한 미소로 함께 연주를 들었고, 몇 분 후 하준의 연주가 끝나자 박수로 화답했다.

“브라보!”

“하준아, 너무 좋다.”

“크으, 아름답다, 아름다워.”

최 대표는 하준의 피아노 연주를 모두 듣고 난 후 턱을 매만지며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하준에게 대뜸 물었다.

“하준아, 너 혹시 뮤지컬 해볼래?”

“네? 뮤지컬이요?”

하준이 눈이 동그래져서 최 대표와 부모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피아노 연주를 보다가 뜬금없이 뮤지컬이라니.

윤기철과 최선희도 다소 황당했다.

“영감이 떠오른다더니 그게 뮤지컬 얘기였어?”

윤기철이 최 대표에게 의아해하며 물었다.

“응, 맞아.”

최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하준이 걱정스러우면서도 관심은 있는지 슬그머니 끼어들어 물었다.

“근데 그거 하려면 노래, 춤, 연기 다 잘해야 하잖아요. 엄청 다양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이 하던데······.”

“그렇지, 근데 하준이는 노래 되고, 연기되니까, 춤만 좀 배우면 되잖아. 녹화가 아닌 라이브 공연이라 대사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되는데, 대사 외우는 것도 문제없고.”

최 대표의 말에 윤기철과 최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의 재능을 보면 뮤지컬을 못 할 것도 없었다.

“근데 하준이 같은 아이들도 출연할 작품이 있어요?”

최선희가 물었다.

“그럼요! 제가 영감이 떠오른다고 했던 게 하준이한테 딱 맞는 역할이 생각나서였어요. 며칠 전에 오디션 소식을 들은 게 있는데, 그게 피아노 연주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들었거든요.”

“음, 왜요? 뮤지컬인데 피아노 연주도 할 줄 알아야 된대요?”

“네, 베토벤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이니까요.”

베토벤 뮤지컬이라는 말에 하준이 갑자기 화색을 띠며 되물었다.

“와, 베토벤이요?”

하준은 피아노를 연습하면서 베토벤의 곡들을 몇 개 쳐 봤다. 그러다 베토벤에 대한 관심이 생긴 터였다.

최 대표는 하준이 베토벤에 관심을 보이자, 얼른 물었다.

“하준아, 베토벤 좋아?”

“네, 멋진 곡들을 많이 남겼잖아요. 나중에는 귀가 안 들렸는데도 작곡하고······ 베토벤은 천재 같아요.”

“그렇지, 너처럼! 하하. 그러니까 더 딱이란 말이야. 윤 감독, 잘 들어봐. 내가 베토벤 오디션 공고를 봤는데, 필수 조건으로 피아노를 잘 쳐야 한다고 되어 있더라고. 사실 난 하준이가 굳이 이걸 안 해도 할 건 많으니까 신경 안 썼어. 근데 오늘 우연히 하준이가 베토벤의 월광을 연주하는 걸 들어 버린 거야! 그리고 느낌이 딱 왔지. 이건 운명 같은 거야. 운명!”

최 대표는 갑자기 피아노를 ‘빠빠바밤!’하고 쳤다.

엉망진창의 음률이었지만, 최 대표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앞부분을 친 것이라는 것은 다들 알 수 있었다.

“이야, 최 대표, 말빨 장난 아닌데?”

윤기철은 최 대표의 서사에 홀렸다.

윤기철은 운명을 믿는 사람이었다.

최선희를 만난 것도, 아이를 못 가지는 것도, 그러다 하준을 만나게 되어 이렇게 가족이 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하지만, 결정은 하준이가 하는 거야. 우린 권한 없어.”

윤기철이 어깨를 으쓱하며 하준을 쳐다보았다.

하준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 지금 제 나이에 베토벤 아역을 못 하고 지나가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없겠지? 사람이 다시 어려질 수는 없는 거니까.”

“음, 한 3학년까지는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나이 들면 못하겠지? 물론 베토벤 뮤지컬이 내년, 내후년에도 계속 공연한다는 전제하에.”

“그럼 도전해 볼래! 난 안 해본 건 다 해보고 싶어. 베토벤 이야기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

하준의 결정에 최 대표가 주먹을 꽉 쥐며 좋아했다.

“좋아! 아주 현명한 결정이야. 하준아, 그럼 오디션 신청해 놓는다?”

“네, 대표님. 좋은 이야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이, 뭘. 하준이가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해놔서 기회가 온 거지. 아, 하준아, 여기 네 앞으로 온 선물들이니까 풀어봐. 제가 일요일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이만 가볼게요.”

최 대표는 윤기철과 최선희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하준은 자기 앞으로 왔다는 팬들의 선물을 보고 입이 귀에 걸렸다.

“와, 이게 다 내 선물이란 말이야?”

“응, 회사로 팬들이 보내준 거래. 여기 밑에 팬레터도 잔뜩이야.”

“너무 감동이야. TV에서만 날 봤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사랑을 많이 주시는 거지?”

“우리 하준이는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니까 그렇지. 다들 우리 하준이가 착하고 사랑스러운 줄 아시나 봐. 호호.”

하준은 벅찬 표정으로 선물을 하나씩 뜯어보기 시작했다.

선물은 장난감에서부터 하준이의 초상화, 사진첩, 모자, 과자 등 다양했다.

윤기철과 최선희는 함께 하준의 선물을 뜯어보다가 행복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이거 우리 하준이 선물방 하나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니야?”

“맞아! 연예인들은 다들 그런 공간 있던데. 음, 근데 그러기엔 집이 좀 좁아. 우리 다음에는 방 4칸짜리로 이사해야겠다.”

“그래, <죽지 않는 백화점> 대박 나면 이사 가자!”

“좋아. 근데 참, 그거 개봉일은 정해졌어?”

“그게 말이야, CG랑 편집 작업은 올 7, 8월쯤엔 끝날 것 같은데, 좀비물이라 내년 6월쯤에나 개봉하게 될 거 같아.”

“아하. 그렇구나. 시기가 중요하지. 6월이면 좋네.”

원래 영화는 촬영을 완료한 후에도 후반 편집 작업 등이 몇 개월 정도 걸리고, 상영관을 잡으려면 보통 1년 정도는 후에 개봉하게 된다.

특히 좀비물이나 공포물은 여름에 수요가 많아서 6,7월에 개봉하는 게 가장 좋았다.

<죽지 않는 백화점>은 3월 말쯤 촬영이 끝났고, 지금은 후반 작업 중이었는데, 시기가 애매해진 탓에 내년 6월 개봉으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엄마, 그럼 이거 다 내 방에 갖다 놔?”

하준이 선물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다 놓으면 하준이 좁을 수도 있어. 몇 개는 거실에도 놓자. 아, 초상화는 여기 TV 옆에 놓자. 너무 이쁘게 잘 그려졌네. 우리 하준이 팬들 중에는 금손들이 많은가 봐.”

“응, 여기 팬레터에 중간중간 귀엽게 캐릭터처럼 나 그려준 누나팬도 있어.”

“정말? 엄마도 보여줘.”

최선희는 하준이 읽으려고 펼친 팬레터를 건네받아 귀여운 그림들부터 구경했고, 내용도 읽어보았다.

[귀여운 하준이에게.

하준아, 누나는 하준이를 <유이열의 음악노트>에서 처음 봤어. 너무 귀여운데 노래도 정말 잘해서 깜짝 놀랐지뭐야. 그래서 기사도 찾아보고 했는데, 네 팬카페는 없더라고. 아쉬운 마음에 팬카페까지 직접 만들었단다^^ 팬카페 이름은 ‘사랑하준’이야······ ]

“어머? 하준아, 이 분이 네 팬카페를 만드셨다는데? 이름이 ‘사랑하준’이래! 이름부터 너무 좋다!”

“내 팬카페?”

최선희는 물론 하준과 윤기철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윤기철은 곧바로 노트북을 켜서 검색을 해봤다.

“어? 진짜 있다, 있어! 사랑하준!”

“정말?”

하준이 후다닥 윤기철 옆으로 달려왔다.

하준의 팬카페 대문에는 커다랗게 ‘사랑하준’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하준이 세자 이준의 모습으로 걷는 전신 사진이 있었는데, 합성을 했는지 하준의 발밑과 길에는 온통 핑크빛 벚꽃들이 깔려 있었다.

꽃길을 걸으라는 의미 같았다.

“와, 너무 예쁘다! 이거 팬레터 쓴 누나가 꾸민 거겠지? 이 누나 진짜 금손이다, 금손.”

“그러게. 이쁘게도 꾸며 놨다. 하하.”

하준 가족은 팬카페의 첫 페이지만 구경했는데도 이미 너무 행복했다.

“개설일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됐는데도 팬카페 회원수가······ 벌써 2400명이나 되네! 와, 우리 하준이 팬 많다.”

최선희가 기뻐하며 외쳤다.

하준도 감격해서 작은 손을 기도하듯 모아 잡고 좋아했다.

“우와, 우와! 너무 감사하다. 아빠, 나 여기 가입할래. 팬분들한테 인사하고 싶어.”

“아, 그래! 엄마, 아빠도 가입해야겠다.”

팬카페 회원만 글을 볼 수 있었기에 일단 세 사람은 가입 신청을 했다.

잠시 후, 가입 허가가 떨어졌고, 윤기철은 올라온 글들을 클릭해보았다.

하준이 기사를 모아놓은 게시판, 하준의 사진을 모아놓은 게시판, 하준의 영상을 모아놓은 게시판 등 하준에 관련된 정보가 가득했고, 그 내용들에는 어김없이 관심과 사랑이 듬뿍 담긴 댓글들이 잔뜩 달려있었다.

“여기가 진짜 하준이 보물창고네. 하준이에 대한 기록이 여기 다 있어. 팬들은 정말 대단하다. 우리보다 더 잘 정리하고 잘 꾸며 놨어.”

윤기철이 팬카페 회원들의 노력에 혀를 내둘렀다.

윤기철과 최선희가 준회원 등급에서 볼 수 있는 글들을 구경하는 사이, 하준은 가입인사 게시판에 글을 썼다.

[안녕하세요, 하준입니다!

오늘 팬카페가 있다는 걸 알았네요. 저를 사랑해주시고 이렇게 팬카페까지 만들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올려주신 기사, 사진 다 잘 봤어요. 금손 누나들이 많으시네요. 감동 받았습니다.

앞으로 자주 놀러 올게요.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등업 좀 부탁드려요~ (준회원은 기사랑 사진밖에 못 봐서요) 팬분들이 만들어 주신 거 보고 싶어요~]

하준은 인증샷으로 자신의 사인을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함께 올려주었고, 하준임을 확인한 팬카페 회원들은 댓글을 달며 한바탕 난리가 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