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86화 (286/305)

128, 3일 요리. (2)

*

“몇 번을 말씀드렸는지 모르겠지만요. 한 달 후 무림대회가 열립니다.”

“그래서 반대야?”

남천휘의 물음에 사마의는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주군의 방식대로 하신다고요.”

“응, 사 군사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이지.”

사마의는 헛웃음을 흘렸다.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주군이 무당제일검보다 강할지언정 만 명을 당해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남천휘는 대답 대신 물끄러미 사마의를 응시했다.

“하아, 그런 눈빛은 뭡니까? 중지봉 혈사를 겪었으면서도 아직 모르냐는 듯한 눈빛인 걸요. 네, 좋아요. 주군은 어쩌면 만부부당의 신위를 보이실 수 있을 겁니다. 하나 모두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사마의는 잠시 말을 끊더니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남천휘의 반문에 사마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번에는 주군의 뜻대로 하소서.”

“반대하지 않는 거야?”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절강성은 주군의 방식이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구파오가가 없으니까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어도 된다는 거지?”

“아이고, 어쩌면 입안의 혀처럼 쏙쏙 알아들으시는지. 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군요. 아시다시피 절강성의 지형은 중원 전체를 통틀어도 손꼽힐만큼 독특합니다.”

“절강성(浙江省)은 성(城)이라. 유명한 말이지.”

절강성은 강소, 안휘, 강서, 복건, 그리고 동해와 맞닿아 있다. 하나 절강성을 성(城)이라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절강성에는 북쪽의 막간산과 천목산, 서쪽의 구룡산과 남쪽의 남안탕산이 존재했다. 산은 높고, 제대로 된 길이 없을 만큼 험난했으니 한마디로 절강성 전체가 성벽과도 같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외인은 몇 곳 되지 않는 험난한 협곡을 지나거나, 수로를 이용해야 절강성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절강성에는 구파오가와 비견할 만한 명문거파가 없습니다. 오늘도 없었고, 어제도 없었고, 백 년 전에도, 이백 년 전에도 없었지요.”

“보타암이 건재했으니까.”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보타암은 절강성이 아닌 동해의 주산군도에 위치했지요. 그렇기에 지배도, 군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존재했을 뿐입니다.”

“아! 나는 그렇게 못 살아.”

“절강의 무인들 또한 그렇게 못 살았지요. 그러니 신마대전으로 보타암이 세를 잃자, 저마다 들고 일어나 한 자리씩 차지했잖습니까.”

“그게 천목십이회라는 거지.”

사마의는 음흉하게 입고리를 올렸다.

“제 야욕을 채우기 위해 빈 집에 들어선 악당 같은 자들을 다섯 글자로 줄이면 천목십이회가 되겠습니다.”

남천휘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맹 소속이라고.”

사마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들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그고, 폐쇄적이라 칭하잖습니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든 누가 알기나 하겠습니까?”

“너, 오늘 엄청 악당 같다.”

남천휘의 말을 사마의는 칭찬으로 받았다.

“사 가의 병법은 암흑에서도 빛을 발하니 정도와 사도를 가리지 않지요.”

“그래서 네게 천목십이회에 관해서 물어볼 것이 있어.”

사마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군요. 주군은 뭐든 다 알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요.”

남위기를 쓰면 사마의보다 방대한 지식을 접할 수 있다. 하나 수하 앞에서 포인트가 아깝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윗 사람은 본래 끊임없이 아랫사람을 시험해야 하는 법이지.”

“제 머리가 부족하다는 평을 받을 줄이야.”

“자네는 평소에 머리를 중시하지 않았어. 자! 어디 한 번 답해보라고.”

반 각 정도의 질의응답 시간이 끝났다.

남천휘는 초조검이 된 사마의를 뒤로 한 채 군사부를 나섰다.

“바로 출발하시나요?”

소혜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무림대회가 코앞이니까.”

남천휘의 농에 소혜는 무심한 표정으로 보따리를 건넸다.

“새 옷입니다.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새하얀 무복이다.

방금 전까지 뜨거운 쇠로 다린 것처럼 반듯한 무복이 햇살을 받아 번쩍였다. 등부터 시작하여 앞섬까지 이어진 화려한 문양만 봐도 고가의 물품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어디서 났어?”

“제가 만들었어요. 큰일 하러 가시니 새 옷을 입고 가셔야지요.”

남천휘는 소혜에게 받은 백의 무복을 살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재이의 상점에서 만 포인트는 줘야 살 수 있을 법한 품격이 느껴진다. 내 생각해주는 건 우리 개구리 밖에 없구나.”

“이건 절강성 까지 가시는 길에 위치한 무한상사의 지소를 그려봤어요.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이쪽에서 챙기시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이건 삼공자가 좋아하시는 음식을 파는 객잔과 다루의 위치랍니다. 아! 토끼탕은 이쪽의 객잔을 지나면 한동안 드실 수 없어요. 지나가기 전에 꼭 드시고 가세요.”

남천휘는 소혜의 말이 이어질수록 혀를 내둘렀다.

마치 대과를 보러 성도로 떠나는 자식을 챙기는 듯하지 않은가.

‘삼일이면 충분한데······.’

그는 소혜의 양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고맙다.”

“다녀오세요. 곡부남가는 제가 지키고 있을 게요.”

소혜는 결사항전을 준비하는 장수처럼 눈을 빛냈다.

이 또한 남추로부터 이어졌던 곡부남가의 의기(義氣)가 아니겠는가.

“오냐. 너만 믿는다.”

*

절강 정벌대의 인원이 늘었다.

혈검살의 마이와 성시, 그리고 제자인 오공의 합류였다. 저들은 중지봉 혈사로 큰 부상을 입었다. 오공은 피륙의 상처였지만, 마이와 성시는 혈맥이 상했다. 그들은 천마신의의 제자답게 의술에 능통했지만, 요양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나 남천휘는 혈검살의의 합류를 원했다.

연하연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지만, 마이와 성시는 기꺼이 아픈 몸을 이끌고 마차에 올랐다.

“걱정 돼요.”

“나만 믿어. 아니, 내 의술을 믿어.”

그녀는 남천휘의 호언장담이 있은 후에야 두 번째 마차로 사라졌다.

절강 정벌대는 두 대의 마차로 이동했다.

첫 번째 마차는 오공이 말을 몰았고, 남천휘와 마이가 탔다. 두 번째 마차는 천수련과 연하연이 번갈아 말을 몰았고, 성시가 휴식을 취했다.

“갑자기 절강까지 가자고 해서 많이 놀랐겠어요. 쉬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하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괴겁천마는 천마신의의 종적을 쫓고 있지 않은가.

무극중사 정도 되는 존재가 직접 발로 뛰고 있으니 저들을 곡부남가에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마이는 창백한 안색에도 억지웃음을 지었다.

“회주에게 많은 빚을 졌네. 두 다리가 성하고, 칼을 휘두를 수 있으니 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 전에 치료부터 하세요.”

남천휘의 말에 마이는 평소 챙겨놨던 약재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아! 치료는 제가 합니다.”

“자네가? 자네의 의술이 고명한 것은 알고 있지만, 혈맥이 상했기에 이런 마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치료 행위는 많지 않다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한 때 혈검살의를 흉내 냈던 사람입니다. 혈검살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보지요.”

마이는 남천휘의 자신감 넘치는 언사에 결국 등을 내줬다.

‘혈인도.’

남천휘의 읊조림과 함께 마이의 혈인도가 덧씌워졌다. 혈맥이 상한 지점과 기혈이 원활하게 휘돌지 못하는 이유가 한 눈에 들어왔다.

‘일단 단전을 먼저 보(保)하고······.’

벽선단을 주입했다.

한데 뭉치지 못했던 내력이 단전을 중심으로 응집되기 시작했다.

남천휘는 마이가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에 한 마디를 건넸다.

“말해도 됩니다.”

“하아, 방금 이건 무엇인가? 마치 보약을 먹은 것처럼 단전이 든든하군.”

“혈검살의만의 비기라고 합시다.”

마이는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농을 받았다.

“같은 혈검살의끼리 내외하기는.”

하나 남천휘는 표정을 굳혔다.

“내외를 논했으니 한 가지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생명의 은인에게 못 할 말은 없지.”

“천마신의가 살아 있습니까?”

마이는 잠시 침묵했다.

“천마신의는 우리 혈검신의에게 있어서 빛이자, 그림자라네.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의술을 받았고, 약자를 지킬 수 있는 검술을 받았지. 하나 그렇다고 해서 천마신의가 괴겁천마의 사성신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남천휘는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저 또한 공으로 과를 덮는 다는 말을 즐기지 않아요. 하나 사령신이 등장했고, 괴겁천마의 수하들이 나타났어요. 그것도 혈검살의를 노골적으로 노리면서 말입니다.”

“······.”

“그들이 천마신의를 찾고 있어요.”

“그랬군.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면 이미 사제들은 모두 죽었다고 봐야겠어. 그들이 턱밑까지 쫓아왔으니 나는 더 이상 곡부남가에 머물 수 없을 듯하네.”

“그건 안 됩니다.”

“내가 있으면 자네가 지키고자 하는 곡부남가가 위험해질 것이야.”

남천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안 됩니다. 만에 하나 마 형이 강호에 나갔다가 저들에게 잡힌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무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언사였다.

하나 마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남천휘는 무림맹주와 총군사에게도 제대로 전하지 않은 산신자(散身者)와 산혼자(散魂者)의 비밀을 밝혔다.

“불멸과 불사?”

“네. 그들이 불멸과 불사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나 사령신이 혼백을 되찾은 이상 괴겁천마도 육신을 되찾으려 할 것입니다.”

남천휘의 말에 마이는 침음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가설이지만, 만에 하나 육신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천마신의에게 답이 있겠군.”

“제 생각도 그래요.”

“그는 죽었네.”

“좋은 소식이군요.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사마천세 시절에 의술의 으뜸은 천마신의와 만독노옹이라고 하더군요. 만독노옹은 중지봉에서 제가 죽였으니 괴겁천마가 무엇을 생각하든······.”

마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괜찮아. 우리가 천마신의의 의술과 검술을 전수받았지만, 사제 관계는 아니라네. 우리에게 의술과 검술을 가르쳐 준 분도 그렇게 말했지. 천마신의는 속죄의 의미로 자신의 모든 것을 세상에 전했으니까.”

이렇게 되면 천마신의는 염두에 두지 않아도 될 듯했다.

한데 마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엇다.

“한데 천마신의가 남긴 말이 있네.”

“유언요?”

“유언이라기보다 간혹 악몽을 꾸었을 때 흘러나온 말이라더군.”

“그게 뭔가요?”

“둘을 상대하기 어려울 때에는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가 되었을 때 셋을 상대하는 듯하다면 돌이킬 수 없다고 했다더군.”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이거 아무리 봐도 괴겁천마가 사령신의 몸뚱이를 욕심내는 모양새인 걸?’

사마천세 시절을 돌이켜보면 답이 나온다.

사령신은 홀로 강남을 피바다로 만들었고, 괴겁천마는 수하들과 함께 강북을 지배했다. 어쩌면 일신의 무위만 논하자면 사령신이 윗줄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러나 무력에 치우친 사령신은 모든 것이 뛰어난 괴겁천마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그 머리에 저 몸이면······.’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사령신은 생각보다 어수룩했기에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하나 만약 그가 치밀한 심계를 지녔었다면 제갈세가는 지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으리라.

‘할아버지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어째서 불멸과 불사를 미끼로 둘을 유인한 걸까?’

아무래도 특급강호인 승급체계의 제3막인 ‘신마행(神魔行)’의 핵심은 남추의 행보를 밝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남천휘는 잠시 상념을 멈췄다.

벽선단과 특기 ‘의술’을 통해 마이의 혈인도가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이의 등을 다독이듯 두드렸다.

“아! 정말 괜찮아. 위로할 필요 없네. 아무렇지도 않아.”

“그게 아니라 치료가 끝났습니다.”

마이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금을 통틀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중상을 치료하는 의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 운기조식을 하자마자 남천휘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자네는 진짜······.”

“대단하지요.”

남천휘는 그 말을 남기고 몸을 일으켰다.

“성시를 보고 올 게요. 혈맥은 치료했지만, 원기가 상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한 숨 자요.”

“알았네. 고금제일의 신의가 하는 말이라면 당연히 들어야지. 절강성에 도착하는 순간 쉬지 않고, 칼춤을 출 테니 너무 걱정 마시게.”

남천휘는 어색한 웃음을 남긴 채 두 번째 마차로 향했다.

‘그냥 쉬는 게 돕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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