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50화 (250/305)

109, 도전! 황금종(黃金鐘). (2)

떴다.

드디어 특별행사가 떴다.

남천휘의 예상대로 입춘을 맞이하여 특별히 진행하는 행사였다. 이제 눈앞의 오십여 명만 찍어 누르면 그토록 원하던 회회회판을 최고의 조건 하에 돌릴 수 있게 된다.

그야말로 복수의 시간이 도래했다.

‘연말 행사 때 엿을 먹고, 연초 행사에 뒤통수를 맞았지. 지금껏 휘둘리면서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을 풀 수 있는 기회야!’

어쩌면 일원보다 자신을 농락하는 듯한 회회회판에 대한 분노가 더 극심할 터였다.

“후우.”

문사는 남천휘가 호흡을 가다듬자, 긴장했다고 여겼나 보다.

“준비되었소?”

남천휘가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문사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크흠! 두 가지 원본 중 어느 것으로 논리를 겨뤄보겠는가?”

마치 아이를 가르치려는 사람처럼 얕잡아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도덕경.’

남위기(南委記)는 남가에 위임된 기록을 의미하지 않던가. 그렇기에 남천휘가 읊조리는 순간 초록색의 네모난 칸에 도덕경이라는 세 글자가 적혔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목록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원형 검색.’

남천휘는 도덕경의 원형을 살피며 침음을 흘렸다.

그러자 문사는 시간이 아까운 듯 말을 건넸다.

“둘 중 뭐로 할 것이냐고 묻지 않는가. 후우,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두 가지란 한문제 때 하상공이 주석한 하상공본과 위나라 왕필의 왕필본을 뜻하네.”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너 딱 걸렸다.

“이상하군. 도덕경을 공부했다는 자가 둔황의 당사본과 육조인사본을 무시하는 건가? 응당 네 가지 중 무엇으로 논하고 싶은지 물어야 마땅하지. 게다가 아직 고증이 끝나지는 않았지만, 호남성 장사의 한묘에서 백서노자와 색담사본도덕경이라는 기록이 발견되었어. 도덕경은 노자에게서 비롯되었으나 오랜 기간 많은 사람의 뜻이 모여 지금의 형태로 고정되지 않았던가.”

“어, 어.”

문사는 눈을 끔뻑이며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슬쩍 심사를 맡고 있던 제갈우를 살폈다.

제갈우는 마뜩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남천휘의 말이 맞다는 뜻이다.

하나 문무를 겸비하여 만박지검이라 불리는 그 역시 호남성 장사의 한묘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본래 도덕경은 네 가지를 기본으로 논한다. 하지만 장사의 한묘는 처음 듣는군.’

아무래도 지난 몇 년 간 유림과 연을 끊은 탓에 소식이 느린 듯했다.

문사는 몇 번이나 헛기침을 했다.

오십여 명의 문사는 모두 재사라 할 만했지만, 뒤로 갈수록 고명한 자들이 모여 있었다.

‘끄응, 이래서야 내가 가장 못났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그는 원형 중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하상공본으로 논하려 했다.

“도덕경의 첫 구절에 의하면······.”

남천휘는 문사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읊조렸다.

‘도덕경의 전문을 띄워봐.’

그 순간 도덕경 81장의 구절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오천 자 정도의 구절을 살피며 문사가 질문할 때마다 대답을 했다.

구절의 해석에 관해서는 더더욱 막힘이 없다.

도덕경만 검색해도 고금을 통틀어 수백 명의 명사들이 자신의 논리대로 해석을 해놨기 때문이다.

“그, 그렇소?”

문사의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로 흔들렸다.

남천휘는 나직이 한 숨을 내쉬었다.

이런 속도로 언제 오십 명을 이기고, 보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기선제압이 필요했다.

‘슬슬 찍어 눌러야겠군.’

문사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44장의 듣기로는 도가의 말에 족함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고 했소. 이미 얻은 것이 많은데······.”

남천휘는 문사가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바닥을 강하게 내리쳤다.

쾅!

청석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의 진각이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문사는 딸꿈질을 하며 뒤로 넘어갔다.

남천휘는 문사가 상체를 일으키자, 준엄한 일갈을 내질렀다.

“상편 37장을 도경으로, 하편 44장을 덕경이라 하여 도덕경이다. 고래로 수많은 재사가 도덕경을 품었으나, 한 가지만은 변함이 없다.”

그 다음 구절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내력을 담아 외쳤다.

-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

- 천법도도법자연(天法道道法自然).

남천휘가 문사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슨 뜻이더냐?”

도덕경의 핵심이나 마찬가지인 구절이기에 문사는 구원의 동아줄을 잡듯 빠르게 대꾸했다.

“도는 언제나 무위지만 하지 않는 일이 없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는 말이외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남천휘의 일갈에 문사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도덕경은 모든 거짓과 인위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한데 도덕경을 가장 자신 있다며 들고 나온 네 놈은 여전히 거짓되고, 인위하며, 껍데기에 머물러 있구나! 그러고도 네 머릿속에 도가 있다고 할 수 있느냐?”

문사는 변명을 하듯 되물었다.

“당신도 도덕경을 알지만, 도를 좇지 않잖소.”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너는 도덕경만 잘 알지만, 나는 모든 걸 다 잘 알아.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모르면서 눈으로 보지 못하는 곳에 도가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문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

그는 영혼이 튕겨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고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가 장탄식을 하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양 손을 모아 땅을 짚었다.

“대인의 말이 옳소. 나는 도덕경의 모든 구절을 외웠지만, 단 한 글자의 뜻도 담지 못했구려.”

이 아저씨, 왜 이래?

문사가 잠시 후 몸을 세웠다.

한데 그의 눈동자는 별을 박아 넣은 것처럼 반짝였다.

‘설마?’

그는 남천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 머릿속에는 도가 없으니, 이제 도덕경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 있을 자격도 이유도 없으니 내가 앉을 곳을 찾아봐야겠습니다.”

단어가 다를 뿐 도덕경의 첫 구절인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사명’의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남천휘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 말에 깨달음이라도 얻은 거냐?’

그가 애써 표정을 관리하는 사이 문사는 제갈세가의 학사의를 벗고, 관과 건을 풀었다. 문사는 늦겨울임에도 속곳만 걸친 채 휘적거리며 제갈세가를 뒤로 했다. 그러나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가슴을 활짝 펴고 나아가는 뒷모습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아! 짜증난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았다.

남천휘의 눈앞에는 여전히 도덕경의 구절과 해석본이 가득했다.

‘에잇! 치워라!’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문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남천휘가 움직이는 대신 저들보고 오라는 듯하지 않은가. 문사들은 서로 눈치를 봤고, 결국 제갈우가 턱짓을 했다.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니 이런 사소한 일로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두 번째 문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첫 번째 문사가 앉았던 곳에 엉덩이를 붙인 채 인사를 했다.

“상명관의 우초동이외다. 내가 시험해볼 것은 시화요. 이 자리에서 그림을 두고 논할 수 없으니 시문을 겨뤄봅시다.”

하늘이 돕는구나.

남위기의 검색은 기본적으로 문자를 바탕으로 했다.

‘그림은 쥐약이지.’

그 때 재이가 자랑하듯 말을 건넸다.

◎ 남위기의 확장판은 이미지 검색이 가능합니다.

무슨 원리냐고 물었더니 눈에 비친 사물을 그대로 남위기에 올린 후 같은 형태를 검색할 수 있단다.

‘지금 돼?’

◎ 당연히 안 됩니다.

그럴 줄 알았다.

재이의 대답을 알면서도 물어본 까닭은 우초동이 시를 읊조렸기 때문이다. 이미 첫 구절을 읊조리는 순간 남위기로 검색하여 전문을 띄워놓은 상태였다.

남천휘는 여유롭게 시제(詩題)를 확인한 후 상세 검색을 통해 정보를 모았다.

‘나 이 시가 좋다.’

◎ 언제부터요?

지금부터.

‘너를 만나기 전에 내가 꿈꾸던 여유로움이야.’

우초동은 당대(唐代)의 명인인 백거이의 유오진사시를 읊조렸다. 오진사(悟眞寺)를 거닐며 풍광을 논한 유오진사시의 전문은 천(千) 자가 넘었다.

“때는 원화 구 년의 가을이고, 팔월이라 달이 상현이라 했습니다. 당시는 당나라 말엽으로 나라의 혼란함과 백거이의 상황을 분석하여 서두의 의미를 논해보고자 하오.”

어렵게 말을 하지만, 결국은 백거이가 이 시를 왜 썼냐는 질문이 아닌가.

그렇다면 대답해드리는 것이 도리겠지.

‘일단 검색부터.’

남천휘는 당시 시대 상황을 띄워놓은 채 말을 이었다.

“당 헌종은 수성지군으로 이름이 높소. 안사의 난 이후 당은 진공에서 수성으로 나라의 기조를 바꿨지. 그로 인해 내실을 다질 수 있었으나, 외세의 견제로 인하여 나라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였소. 백거이는 원화 8년에 이르러 위박절도사 전계안이 죽고, 전흥이 병력을 물려받던 상황에 오진사를 찾았소. 당신은 전계안과 전흥의 성향을 아는가?”

우초동은 백거이를 논하다가 난데없이 군부의 일을 물으니 눈만 끔뻑였다. 무엇보다 일개 장수의 이름까지 어찌 기억할 수 있겠는가.

“전계안은 헌종의 뜻을 받들어 수성에 힘썼으나, 전흥은 능력에 비해 공을 세울 수 없었기에 답답한 상황이었소. 그렇기에 전흥의 대에 이르러 수성은 다시 공진으로 바뀌었고, 회서절도사 오소양의 사후 그 자식인 오원제가 삼주를 장악하여 봉기하게 되었소. 결국 당헌종은 전흥의 뜻에 따라 구만의 병사를 일으켜 토벌에 나섰으나 오랫동안 성과를 내지 못했지.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당의 몰락을 가속화하게 된 시초라 할 수 있소.”

“그, 그걸 그대가 어찌 아는가?”

남천휘는 고개를 들어 문사들을 바라봤다.

“그대들 중 병법과 군문에 통달한 자가 있는가.”

스물세 번째 있던 노문사가 몸을 일으켰다.

“그대가 묻고자 하는 것이 진위라면 내가 대답할 수 있소이다. 당의 몰락은 당신의 말처럼 그 시기를 기점으로 명확하게 정해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소.”

제갈세가에서 내보냈다고 해서 마뜩치 않았으나, 최소한 자신의 재주에 대한 자부심은 가득한 듯했다.

남천휘가 고갯짓으로 감사를 표하자, 노문사는 헛기침과 함께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그러니 백거이의 유오진사시는 당의 중흥과 몰락이 결정되는 시기를 절묘하게 논하는 역사적인 사료가 될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원화 구 년의 가을을 서두에 적은 의미가 아니겠는가?”

“어, 어.”

남천휘는 우초동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 아까는 주인님이 꿈꾸던 여유로운 삶의 기록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후훗, 본래 시란 본인이 느끼는 대로 해석하는 게 제일 좋지 않겠냐.

‘어차피 내가 대과를 볼 것도 아닌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

하나 우초동은 남천휘처럼 이 사안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위기로 검색된 수백 명의 명사들이 오랜 세월 논쟁을 하여 도출해낸 유오진사시의 진의였다.

남천휘가 입을 열 때마다 우초동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명사들의 해석이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그러니 그로서는 마치 어린 시절 스승에게 호되게 혼났을 때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너 또한 조금 전의 그 자처럼 껍데기만 핥으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구나. 붓을 들어 글을 쓰는 자로서 부끄러운 줄 알라!”

남천휘의 일갈에 우초동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행히 그는 조금 전의 문사처럼 깨달음을 얻는 대신 평생 지울 수 없는 패배를 선물받았다.

“졌소.”

남천휘는 턱짓으로 우초동을 밀어냈다.

세 번째 문사가 맞은 편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는 병법과 군진의 묘리를 논하고자 하오.”

남천휘는 문사의 소개를 귓등으로 흘리며 인상을 썼다.

‘아! 이 짓을 마흔여덟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거야?’

그냥 판을 엎어버리고, 혈겁이라도 일으키는 편이 나을 듯했다.

한데 그런 남천휘의 짜증은 세 번째 문사를 꼬꾸라트리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 병법과 군진의 묘리를 파악했습니다.

- 인체의 운행을 병법으로, 발놀림을 군진의 형태로 변화하여 깨우칩니다.

- 팔황지존보의 숙련도가 상승했습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초절정을 웃도는 백두와 삼일밤낮을 싸운 결과 숙련도 1을 올렸다. 한데 눈앞의 문사와 반각 정도 논쟁을 한 것만으로도 숙련도가 상승했다.

‘이런 식으로도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냐?’

◎ 상승의 공부는 육신의 단련만으로 깨우치기 어렵습니다. 세상만물의 이치를 습득할수록 숙련도가 쉽게 상승합니다.

남천휘는 고개를 들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마흔일곱 명의 문사들을 훑어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귀찮기만 했던 존재들이다.

하나 이제는 저들이 최소한 천년설삼(千年雪蔘)으로 보였다.

‘이것이야 말로 기연 밭이로구나!’

자! 이제 신나게 뽑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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