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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249화 (249/305)

109, 도전! 황금종(黃金鐘).

109, 도전! 황금종(黃金鐘).

제갈우는 제갈세가의 직계 중에서도 내일이 더 기대되는 후기지수였다. 약관의 나이에 절정의 고수가 되었고, 천문나진법 또한 비슷한 시기에 통과했다. 무림맹에서 이년 간 실무를 경험했고, 동정호 일대에서 삼년 간 강호를 떠돌았다.

그렇게 얻은 별호가 만박지검(萬博知劍)이다.

가문의 위세를 등에 업고, 만들어낸 별호가 아니었기에 더욱더 뜻 깊었다.

한데 그런 자부심이 일각 사이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를 뒤따르는 중년인과 청년 때문이다.

“마차 같은 건 없나? 교자라도.”

사부는 오래 전부터 제갈세가와 원한관계였던 자다.

한데 오랜만에 나타난 그는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청년에게 백두라 불렸다. 대머리에게 백두라는 별명은 치욕스러울 것이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심지어 아들 뻘로 보이는 자의 하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오래 전 사부는 마치 악귀와 같았다고 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바쁘니까 말 걸지 마. 당신 머리 때문에 눈이 너무 부시잖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부터 갖춰 봐.”

제갈우는 자신보다 어려보이는 청년의 말에 미간을 좁혔다. 하나 재해가 지나간 듯한 저자의 광경을 떠올리면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저 어린놈에게 쓰러진 본가의 무인만 해도 삼백 명이 넘다니······.’

다행히 죽은 자는 없었다.

악귀 같은 사부와 달리 손속의 자비를 베푼 게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그 때 청년이 제갈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어깨를 두드릴 때까지 조금의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만약 상대가 악의를 품었다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비명횡사했으리라.

“지금 우리 골탕 먹이려고 빙빙 도는 건 아니겠지?”

제갈우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잠시나마 좋은 놈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나약함을 반성했다.

‘근본이 없는 놈이로다.’

그 때 무언가 귓불을 스쳤다.

팟!

동시에 두어 걸음 앞에 있던 나무에 생채기가 났다.

제갈우는 나무에 박힌 것을 확인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육포를 박았어?’

청년의 시큰둥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아저씨, 우리가 친구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환대받으면서 가는 것도 아닌데 배려 좀 해주시지요. 머릿속에 이것저것 넣기 전에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갖춥시다.”

제갈우는 백두와 같은 취급을 받는 순간 짜증이 치밀었다. 하나 이번에도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고, 떨떠름한 어투로 대꾸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보여도 진법을 지나는 중이외다. 거의 다 왔소.”

그 때 백두의 중얼거림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거 봐. 몇 놈 죽여야 한다니까. 이 세상은 좋은 말이 통할 만큼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야.”

“빌어먹을 순리 타령은 그만 좀 해. 그리고 머리 좀 가려!”

제갈우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두 사람의 기행에 마음이 답답했다. 아마 걸음이 조금 빨라진 이유는 저들과 한 시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기 때문이리라.

“크큭, 저 놈. 움찔했나보네. 진즉 이랬어야지.”

*

제갈세가는 융중산 중턱에 자리했다.

그러니 아래보다 위쪽의 경계가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산등성이를 타고 이동하는 것은 극히 어려웠으나, 일단 성공만 한다면 제갈세가의 내원까지 이동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내원 곳곳에는 주변 전각(殿閣)보다 높은 망루(望樓)를 상당수 만들어놨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이 가주의 처소와 연결된 등천루였다.

본래 망루가 제 역할을 하려면 사방에 벽을 설치하지 않아야 마땅했다. 그래야 빠르게 사방을 경계할 수 있을 터였다. 하나 등천루(登天樓)는 작은 창문을 제외하면 사방이 막혀 있었다.

오직 가주만이 오를 수 있는 비처였다.

한데 오늘은 선객이 존재했다.

그것도 두 명이다.

끼익-

하나뿐인 문이 열렸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표가 들어섰다.

그는 급진적인 성향과 달리 냉철한 존재였다.

어린 시절 세가의 웃어른에게 한쪽 눈을 빼앗긴 후부터 더더욱 독심을 키워왔다. 한 쪽 눈으로 세상을 보는 이무기라는 뜻의 신목망(神目蟒)을 별호로 쓸 정도였다.

그는 망루에 들어서자마자 구석에 섰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각(死角)을 없애기 위함이다.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는 없지 않소?”

파진악이 비아냥거리듯 입꼬리를 올렸다.

하나 제갈표는 무심한 표정으로 대꾸할 뿐이다.

“팔 대신 혀를 잘렸어야 했는데 아쉽구나.”

“같은 병신이 되었거늘 동료애 정도는 발휘해줘야 하지 않겠소.”

“같잖은 소리. 하늘 아래 함께 할 뿐 서위의 애송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생각은 없다.”

파진악이 미간을 좁힌 사이 백결공이 공수했다.

“서위의 백결이 동위의 오행좌께 인사드립니다.”

“훗, 흑천괴뢰의 제자 중에서도 예의를 아는 자가 있었군. 사마세가의 후손이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이인자 집안답게 예의를 아주 잘 배웠어.”

백결공은 제갈표의 도발에도 쉬이 흥분하지 않았다.

“마천종과 흑천괴뢰는 하늘 아래 동등했던 사성신위라 배웠습니다. 하늘의 뜻을 따라 가주께서도 선을 넘지 않으셨으면 좋겠군요.”

제갈표는 코웃음을 쳤다.

하나 더 이상 도발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괴겁천마의 수족이었던 사성신위는 신분과 세력이 다양했으나, 일인지하만인지상의 대우를 받았다.

사성신위 중에서도 남위(南位)인 천마신위와 서위(西位)인 흑천괴뢰는 세력이 전무했다. 강호를 독행하다가 괴겁천마의 수하가 되었을 뿐이다. 반면 동위(東位)인 마천종(魔天宗)은 마교의 교주였고, 북위(北位)의 한빙천자(寒氷天子)는 빙궁의 궁주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사마천세의 시절이 끝났을 때 마천종은 마교에서 쫓겨났다. 괴겁천마가 사라지고, 신마대전이 끝났으니 마교도 살 길을 강구한 탓이다.

하나 괴겁천마의 유지는 이어졌다.

일원이 만들어졌고, 좌사와 우사가 대립했다.

우사인 마천종이 강호의 음지로 숨어들어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오행좌(五行座)였다.

제갈표는 제갈세가주와 신목망이라는 지위 외에 오행좌 중 목좌(目座)를 맡았다.

“인사는 이 정도로 하지. 죽지 못한 꼭두각시들을 모조리 끌고 여기에 나타난 이유나 들어볼까?”

백결공은 슬쩍 파진악의 눈치를 살폈다.

파진악은 제갈표와 말을 섞기 싫은 듯 손을 내저었다.

‘팔을 잘린 후 냉철했던 성격이 많이 퇴색됐군. 다혈질에 조급증까지 생겼으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겠어.’

백결공은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하늘께서 계시를 내리시길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가 융중산에 나타날 것이라 했습니다.”

“필살자?”

제갈표는 백결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좁혔다.

“당금 강호에 하늘께서 관심을 가질만한 존재가 있던가?”

백결공은 끝까지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좌사의 부림을 받지만, 내일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 아닌가. 사마세가를 부흥시켜야 할 사명을 지녔기에 생존은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사부와 남천휘입니다.”

제갈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하나 속으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놈의 제자가 아니라 현월회주였군. 한데 정파의 현월회주가 어째서 본가를 공격한 거지?’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무림맹의 승인을 받아 조만간 가맹할 것처럼 보였던 조직이 아니던가. 하나 좌사의 수하들에게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한데 내 선에서 끝내지 못할 것이라 여긴 겐가?”

작은 창문의 틈으로 밖을 살피고 있던 파진악이 코웃음을 쳤다.

“크큭, 이미 세력의 절반이 무너졌거늘 오만함은 여전하시군.”

“나머지 팔이라도 간수하고 싶으면 혀를 살살 놀리는 것이 좋을 게다.”

제갈표의 스산한 한 마디에 파진악이 살기를 드러냈다.

“내 팔을 다시 붙일 수 없으니 당신의 남은 눈을 파내면 다시는 외팔이 얘기를 하지 않으려나?”

“크흠, 계시입니다. 두 분 다 진정하시지요. 사부와 남천휘는 가볍게 여길 상대가 아닙니다.”

백결공이 중재했다.

제갈표 역시 파진악과 끝을 볼 생각이 없었기에 말을 아꼈다.

“본가에 발을 들인 이상 살아서 빠져나갈 수 없다. 날개가 있어도 이곳에서 뼈를 묻게 되리라.”

그러자 파진악이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들을 믿고 그러는 거라면 다시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게요. 당신은 실패할 테니 마무리는 우리가 지어야겠군.”

제갈표는 외눈을 번뜩였다.

“좋다. 놈이 만약 저것을 깬다면 갈 곳은 뻔하다. 신무대진의 길을 열어주마. 그 안이라면 너희들의 뜻대로 할 수 있으리라.”

파진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자. 오래 있을 만큼 편한 곳이 아니야.”

백결공은 제갈표에게 눈인사를 한 후 자취를 감췄다. 홀로 남은 제갈표는 등천루를 뒤로 한 채 내원을 바라봤다.

“좌사의 수하들은 어찌 할까요?”

내원의 군사 중 한 명인 제갈숙이다.

그 또한 제갈표를 따라 일원에 포섭된 지 오래였다.

“천주봉에 매설한 폭약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겠지?”

“그렇습니다.”

“어차피 사부가 노리는 곳은 뻔하다. 그러니 놈이 천주봉의 신무대진에 들어섰을 때 봉우리 째로 날려버려. 물론 냄새 나는 흑천괴뢰의 꼭두각시들도 함께 정리한다. 하늘이 열렸을 때 강호는 우리 동위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존명.”

제갈숙은 공수한 후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제갈표는 처소를 벗어나 내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때 내원의 문이 열리며 사부와 남천휘가 등장했다.

‘망월량이 죽고, 파진악은 병신이 되었어. 백결공은 정체를 들켰으니 공적으로 쫓기겠지. 이 기회를 통해 좌사의 세력을 짓밟아야겠어.’

그는 저들이 제갈세가의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오만이나 자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제갈세가는 무로 몰락할지언정 문으로는 언제나 천하제일임을 자부했다.

“풋내기들을 맞이하라.”

제갈표의 읊조림을 시작으로 가솔들은 청석이 깔린 연무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

남천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헛웃음을 지었다.

외원을 그냥 통과하기에 의아했던 참이다.

한데 내원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반긴 건 열 명씩 오 열로 앉은 학사였다. 마치 같은 가게에서 맞춘 것처럼 새하얀 백의를 입고 비장한 표정으로 무릎까지 꿇었다. 각자 앉은 자리 앞에는 손바닥 길이의 목패가 놓였다.

‘전부 다 상대하라는 뜻인가?’

남천휘가 입꼬리를 올리는 사이 백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건 뭐야? 죽여 달라고 꿇어앉은 건가?”

만박지검 제갈우는 혀를 찼다.

문무를 겸비한 그에게 사부는 힘만 쓸 줄 아는 무뢰한이나 마찬가지였다.

“본가는 강호의 방파지만, 은원을 칼로 풀지 않소. 태생이 문인인바 지혜로 은원을 가리려 하오.”

백두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진짜 머리에 먹물만 차서 기억력이 감퇴한 건가? 칼 들고 덤벼들 때는 언제고, 불리하니까 지혜를 가져다 붙이네.”

남천휘는 백두를 향해 인상을 썼다.

“쓰흡, 그냥 좀 빠져.”

백두는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뒷걸음질 쳤다.

“어, 그래.”

제갈우는 한 숨을 내쉰 후 말을 이었다.

“천문나진법은 들어봤겠지.”

“들어봤지. 그런데 천문나진법은 십오 단계가 아니었던가?”

“크흠, 진짜는 오십 단계다!”

남천휘는 코웃음을 쳤다.

그래, 재미지게 놀아보자꾸나.

제갈우는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저들은 경전과 진법, 병법, 시문과 화악, 기보를 비롯한 잡기까지 천하에 손꼽히는 재사들이다. 만약 오십 명을 모두 논파한다면 그대의 뜻대로 될 것이다.”

“내가 뭘 원할 줄 알고?”

남천휘의 말에 제갈우는 인상을 썼다.

“기문팔각을 노리겠지.”

그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백두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지난 날 저 자가 기문팔각에 침입하려다 신무대전에 갇혔던 사실은 잊은 건가?”

남천휘는 백두를 돌아보며 이를 갈았다.

선물과 보상을 논하며 꼬드기더니 결국은 꿍꿍이가 있었던 게다.

‘빌어먹을 대머리를 믿은 내가 등신이지.’

남천휘는 한 숨과 함께 가슴에 일(一)을 적어놓은 문사 앞에 섰다.

“뭐로 대결하고 싶은데?”

문사는 바닥의 목패를 뒤집어 적힌 것을 보여줬다.

노자(老子).

도가의 조종은 왜?

“나는 무도한 그대에게 도덕경을 논하고자 한다!”

남천휘의 두 눈은 문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제갈우는 그 모습에 고소를 머금었다.

‘클클, 놀랐군. 놀랐어. 힘만 쓸 줄 아는 멍청이에게 본때를 보여주자!’

하나 남천휘는 문사의 얼굴 앞에 반투명하게 겹쳐진 퀘스트 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돌발 퀘스트라니.’

《최후의 일인!》

- 최고 난이도의 천문나진법을 돌파하라.

- 현재 논파 횟수(0/50)

※ 보상 1, 1회성 아이템 황금종이 지급됩니다.

※ 보상 2, 천문나진법을 통과하는 순간 신화급 물품에 대한 위치가 지도에 표시됩니다.

남천휘가 시선을 떼지 못한 것은 세 번째 보상 때문이다.

※ 보상 3, ‘입춘대길 특별 행사’가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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