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북조산(北朝山).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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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산(北朝山) 정상은 곳곳이 눈밭이다.
잡초와 자갈, 그리고 그것을 덮은 새하얀 눈.
하나 누구도 북조산의 정취를 논하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일출(日出)을 앞둔 북조산 정상에는 여전히 귀기가 감돌았다.
남천휘는 정상에 가득한 주인 없는 묘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대충 고르기는 했지만······.’
그저 삼생삼사 십리도화를 완료하기 위해 십 리 정도 떨어진 산을 골랐을 뿐이다.
‘북망산인 줄 누가 알았겠어? 기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뭐 없냐?’
◎ B급 특기 ‘귀접’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 귀접(鬼接)은 공동묘지나 전장에서 투기와 활력을 증진시켜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시체가 많아야 한다는 뜻이구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잖아. 있으면 줘야지. 왜 뜸을 들여?’
◎ 사기에서 비롯된 귀접은 S급 특기 불굴과 반대의 효력을 지닙니다. 귀접을 등록 시 불굴의 레벨이 1 포인트 하락합니다.
됐다. 치워라.
어차피 불굴로 인해 꺾이지 않는 의지를 자랑하지 않던가. 쓸데없이 때를 묻혀서 더럽힐 이유는 없으리라.
‘그나저나 저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
그는 제집에 온 것처럼 신나 하는 달파란을 보며 한 숨을 내쉬었다.
달파란과 몸의 대화를 나눈 게 벌써 삼 일째다.
생사를 겨루는 대결이 아니었기에 틈틈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저 자의 이름은 거듭 말했듯 달파란이 아니다.
산혼자(散魂者)답게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
달파란은 기억에 남겨진 이름이라더라.
쌍미랑 또한 그랬단다.
그래서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은 것을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부(邪否).
귀기(鬼氣)와 사기(死氣)가 구체화된 것처럼 사기(邪氣)를 뿜어내는 자가 사파를 부정한다니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달파란.”
달파란은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아 있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인간 저러다가 시체라도 파먹는 게 아닐까 우려스럽다.
“나는 달파란이 아니다.”
“그래, 사부. 처음 깨어났을 때가 언제라고?”
사부는 손가락을 꼽더니 누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기억이 나지 않아. 아주 오래 된 것은 확실해. 그리고 내가 깨어났을 때 뇌리에 남아 있던 건 간단하다네. 사를 부정하라. 비천무상도를 찾아라. 집백등으로 평온을 찾으리라.”
집백등의 말뜻으로 보아 혼백을 모으는 등불일 터였다.
‘사를 부정하고, 비천무상도를 찾으라고 할 사람은 할아버지뿐이잖아.’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사부를 바라봤다.
나이는 사십 줄을 훌쩍 넘긴 듯보였다.
하나 아무리 높게 쳐줘도 할아버지와는 시대가 맞지 않았다.
‘이유가 뭘까?’
백파도 남추가 보냈다고 해도 사부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찌됐든 사령신의 무공을 익힌 자가 아닌가.
“자! 나의 집백등이여, 내가 이제 뭘 해야 하지?”
사람은 등불 취급하는 듯한 말투에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재빨리 남위기에서 사부에 대한 정보를 찾았지만, 장강 이남에서 벌어진 수많은 악행만 검색될 뿐이다.
‘그런 놈한테 모른다고 하면······.’
언제 웃었냐는 듯 살기를 보이겠지.
그리고 지금처럼 화기애애한 비무 대신 뼈와 살을 갈라야 하는 생사투가 끝없이 펼쳐지리라.
남천휘는 미간을 좁힌 채 목소리를 깔았다.
“성급하다. 성급해.”
“내가 할 일을 알려달라니까?”
“태초에 일원이 삼재로 나뉘며 정사마가 솥을 받치는 다리처럼 절묘하게 균형을...”
“야! 지금 시간 끄는 것 같은데.”
사부가 미심쩍은 눈빛을 내비쳤다.
대머리 주제에 눈치까지 빠르네.
하나 미친놈과의 기 싸움에서 한 번 밀리게 되면 회복이 불가능할 터였다.
“갈! 비천무상도를 보고도 아직까지 미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사를 부정한다는 건 곧 정을 추구한다는 뜻. 그러니 협행을 통한 정의구현만이 흩어진 혼백을 모을 수 있는 집백등의 길이 아니겠는가!”
되는대로 내뱉었지만, 의외로 그럴 듯했다.
남위기야 말로 보배로구나.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어줘. 너보다 낫구나.’
◎ 검색에 의지한다면 진정한 지식을 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남위기의 과용은 곧 무지의 소치를 자랑하는 것이니······.
되는대로 내뱉는 것 같은데.
‘의외로 그럴 듯해!’
남천휘가 재이의 말에 현혹된 사이 사부도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것이었어. 집백등의 말이 옳아!”
본래 야생의 말은 진정시킨 후 길들여야 했다.
“그러니까 기다려!”
“응.”
사부는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았다.
때마침 떠오르는 태양이 사부의 정수리를 어루만졌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는 부처의 현신처럼 거대한 후광이 등장했다.
‘쓸데없이 성스럽잖아.’
남천휘는 햇빛을 피해 돌아앉았다.
황보세가로 돌아가 아침을 먹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퀘스트.’
《제3막 신마행을 진행 중입니다.》
퀘스트 목록에는 신마행이 유일했다.
‘재이야, 신마행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겠지?’
◎ 퀘스트 진행은 주인님의 기간 대비 성장······.
재이의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때가 되면 길이 보인다는 의미였다.
자신이 사부에게 한 말과 같다.
남천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결국 진인사대천명인가.’
이번에는 VIP 등급을 살폈다.
최종 등급이 개방됐지만, 여전히 4레벨이다.
그도 그럴 것이 5레벨 개방에 필요한 VIP 포인트는 십만 점이다. 하나 지금껏 성소를 강화하고, 특기 레벨을 이것저것 올리다보니 남은 포인트는 6만 점에 불과했다.
남은 4만점을 퀘스트로 올리는 건 어불성설.
남천휘는 특별 행사를 기다렸다.
아마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올 즈음 계절맞이 특별 행사가 있지 않을까 싶다. 회회회판의 성공 확률이 올라간다면 VIP 포인트도 그만큼 당첨될 터였다.
‘후우, 이것도 기다려야 하는 건가.’
제3막이 시작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상위 정보가 공개되어 검색의 폭이 넓어졌다.
하나 남위기는 특정 단어를 알고 있어야 검색이 용이했다.
‘이것도 기다리고······.’
남천휘는 입술을 실룩였다.
레벨이 올라가고, 무위가 고강해질수록 답답하기만 했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졌지만, 정작 할 일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천하를 질타하고 싶지만,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길을 찾지 못했다.
이래서야 사부보다 나을 게 뭔가 싶었다.
“헤헤, 금팔찌라니. 횡재했구먼.”
남천휘는 사부가 무덤에서 부장품을 파내는 모습에 한숨을 흘렸다.
‘내가 낫다. 쟤보다는 내가 나아.’
사부의 콧노래를 피해 다른 것에 집중했다.
그래, 이거다!
▼ 능력 ▼ 장비 ▼ 성취
▼ 특기 ▼ 비책 ▼ 인맥
처음부터 개방됐던 목록과 달리 특기와 인맥은 성장에 따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야 회백색으로 존재하던 비책(秘策)이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촤라라라라락-
비책을 누르는 순간 다른 목록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비책을 중심으로 강렬한 빛이 번쩍이더니 하나의 족자로 바뀌었다. 그리고 족자에 묶였던 끈이 풀리며 두루마리의 내용이 드러났다. 하얀 백지 위에는 생소한 능력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구현지책(求賢之策).
- 천하재사에 대한 검색의 폭이 넓어집니다.
이간지책(離間之策).
- 특정 대상에 대한 모함이 가능합니다.
가장 상위에 적힌 두 가지를 볼 때만 해도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특기에 있어도 크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수롭지 않았다.
한데 세 번째부터는 인세의 능력이라 보기 어려웠다.
축지지책(縮地之策)
- 성소 간의 이동속도가 2배로 증가합니다.
처음에는 특기 신속과 겹치는 것이 아닌가 했다.
하여 재이에게 축지지책의 활용도를 물었고, 이내 경악할만한 사실을 전해 들었다.
‘레벨을 올리면 축지법이 가능하다는 거지.’
◎ 공간 이동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 출발지와 도착지에 왜곡 점을 만든 후 포인트를 소모하여 이동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남천휘는 혀를 내둘렀다.
신법의 최상승 경지에는 이형환위가 존재했다.
하나 빠르게 움직여 잔영이 남을 뿐 진정한 공간의 이동은 불가능했다. 고금제일인이라고 해도 검을 타고 하늘을 날 수는 있어도, 공간 자체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법이다.
한데 그것이 가능하단다.
남천휘가 매일 같이 비책을 살피며 눈을 떼지 못하는 까닭이다.
절도지책(絶道之策).
- 대상 지역의 출입을 통제합니다.
이것 또한 볼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며칠 전 ‘삼생삼사 십리도화’의 퀘스트 때 시스템은 만서각을 통제하지 않았던가. 그 후 가솔들에게 물었더니 만서각 주변에 안개가 자욱했고, 왜인지 모르게 꺼려지는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하지 못했단다.
분명 ‘나노 플레이트’의 힘일 터였다.
“에잇!”
그 순간 찰진 소리가 들려왔다.
사부가 무덤 주변을 산책하던 중 자신의 뺨을 때린 것이다.
“날벌레가 왜 이렇게 많아?”
남천휘는 눈을 끔뻑였다.
‘그 날벌레가 설마 나노 뭐시기는 아니겠지.’
아니라고 생각하자.
미친놈의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말자.
“아! 먹었어.”
사부는 방금 전까지 무덤을 파헤치던 손으로 자신의 혓바닥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보지 말자. 보지 말자.’
남천휘는 눈을 지그시 감고 비책을 확인했다.
축지지책과 절도지책에 뒤지지 않는 비책이 남아 있었다. 하나 이것은 작금의 포인트로도 구현이 불가능한 듯 회백색으로 번들거렸다.
‘자! 이제는 대망의······.’
남천휘는 손을 쥐락펴락하며 심호흡을 했다.
제3막의 보상 중 가장 화려한 신화급 무공의 등장이었다.
‘무공총람.’
두루마리 펼쳐지는 소리마저 아름답구나.
《팔황지존보》
- 보신경의 극의(極意)
- 무공 등급 : 신화(神話)
- 정(正)과 반(反), 순(順)과 역(逆)의 대립마저 포용할 수 있으며 절대지경의 단초가 됩니다.
- 숙련도(1/100). (가치 : 무가지보)
※ 숙련도 10 당 1성의 위력을 보이며 축지지책과 연동됩니다.
남천휘는 한 숨을 내쉬었다.
오행군림보를 대성했을 때의 가치는 800이었고, 비천무상도는 2000이다. 한데 팔황지존보(八荒至尊步)는 가치를 따질 수 없다는 무가지보(無價之寶)였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등장한 절대지경이라는 한 구절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는 사부를 흘겨보며 읊조렸다.
‘저 미친놈하고 삼일 밤낮으로 싸웠는데도 숙련도가 1밖에 오르지 않다니.’
시작이 반이라지만, 느려도 너무 느렸다.
한데 사부가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집백등, 자네 그렇게 서운했는가?”
이건 또 무슨 신선한 개소리이실까.
저 인간은 몸의 대화에 이어서 사람의 감정까지 농락할 셈이던가. 그러고 보면 기억만 잃은 것이 아니라 머리 자체를 어딘가에 놓고 온 사람 같았다.
“활이 부러졌다고 그렇게 울먹일 필요까지는 없잖아. 안 그래?”
남천휘는 사부의 말에 눈을 매만졌다.
눈물이 있네.
‘젠장! 너 때문이 아니라 팔황지존보······.’
사부는 사죄를 하듯 몇 번이나 더러운 흙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하나 어찌나 머리가 매끈하던지 흙이나 모래가 달라붙지 않았다.
“됐어요.”
“아니야. 소중한 활이었던 것 같으니 내가 보상할게. 자네가 울고 있으니까 내 마음까지 찢어질 것 같아.”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상?”
사부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래! 보상.”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알림이 이어졌다
띠링-
《3-1, 강호출도요!》
- 산혼자와 함께 산동성을 벗어나세요.
그렇게 산동성을 벗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