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221화 (221/305)

98, 산동성의 주인이 정해졌다. (2)

남천휘의 호기로운 한 마디에 청하오검은 대소를 했다. 모용세가와 청하문은 새외나 다름없기에 강호와 교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껏 강호에 나왔음에도 황보세가에만 머물던 실정이 아닌가.

‘외인과 이렇게 검을 겨룬 것이 얼마만이던가?’

청하오검으로서는 이 순간이 즐거울 따름이다.

자신들을 귀하게 여겨 떠받들어주는 황보세가보다 강호의 선배로만 대우하는 남천휘가 마음에 들었다.

그들은 작금의 상황이 황보세가의 위기임을 잊은 채 자세를 바로 했다.

초식이 중단되면 처음부터.

그것이 청하오검의 실력일 터였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기수식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다. 기수식이란 말 그대로 초식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그러니 기습이 아닌 정정당당한 대결을 뜻하는 자세이기도 했다.

실리를 중시하는 남천휘로서는 생경한 광경이다.

한데 그것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멋이라는 것이 폭발하듯 주변 분위기를 고즈넉하게 만들지 않는가.

‘저런 걸 뭐라고 하더라?’

남천휘는 초초한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남위기를 활성화했다.

그리고 찾아냈다.

「고아하다.」

- 뜻이나 품격 따위가 높고, 우아하다.

- 유의어 : 고상하다. 고결하다.

그랬다.

저들의 모습은 일견 고리타분해보였지만, 명가의 고아한 정취가 여실히 느껴졌다.

지금껏 남천휘가 상대했던 자들과는 달랐다.

‘명문.’

남천휘는 한 숨을 흘렸다.

모용세가가 저럴 정도면 구파의 기상은 어느 정도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후배가 먼저 오게!”

청하오검의 수장이 손짓했다.

남천휘는 흔쾌히 내달렸다.

가볍게 연무장을 박차는 순간 그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쇄도했다. 일부러 궁신탄영을 사용하지 않았다.

타탓!

남천휘는 속으로 탄성을 흘렸다.

이미 오행군림보를 대성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보법은 투로를 따랐고, 거기에 내력만 더해졌을 뿐이다. 한데 오늘의 깨달음을 가미하는 순간 평소와 달랐다.

몸은 더 가벼웠고, 진기의 흐름은 자연스러웠다.

마치 무균실에서 보법을 펼치는 듯했다.

‘아!’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갑니다!”

남천휘는 청하오검을 앞에 두고 연무장을 박차는 순간 발목을 틀었다. 발목에서 시작된 회전력이 양 어깨를 타고 솟구치는 순간 용린쌍도가 전방을 찢어발겼다.

허공에 솟구친 후 세 번이나 몸을 비틀었다.

그 때마다 도영이 번뜩이니 마치 화살비가 쏟아지는 듯했다.

“좋구나!”

청하오검의 수장이 두 발로 연무장을 굴렀다.

그 역시 허공에서 몸을 비트는 순간 다른 노인들이 사방에서 솟구쳤다.

채채채채채채챙!

남천휘는 눈을 빛냈다.

저들이 다시 한 번 뭉쳐든다.

오늘만 세 번 째 지켜본 오행화엽이다.

맞상대하지 않으면 알아서 비켜갈 초식이다.

하나 남천휘는 일부러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검을 후려쳤다.

쩡!

노인이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검을 쉴 새 없이 흔드는 것으로 보아 반탄력을 해소하는데 애를 먹는 듯했다. 하나 그 사이 다른 노인들이 포위망을 완성했다.

낙화유망검진의 시작이다.

‘좋아. 기왕 볼 거라면 제대로 봐야지!’

반면 청하오검은 저마다 탄성을 내뱉었다.

이미 조금 전의 격돌로 인해 자신들의 수가 드러난 상태였다. 한데 남천휘가 스스로 발을 들였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호방하구나!’

‘진정 우리를 적이 아닌 선배로 생각하는구나.’

‘좋은 술을 나누고 싶어지는 녀석이로구나.’

‘남천휘라고 했던가? 진정 공자의 후예답다!’

‘이 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저마다 생각은 달랐지만, 검과 도가 부딪칠 때마다 입가의 미소가 짙어졌다.

“후배! 이번에는 좀 끈질길 것이야!”

삼노의 호방한 외침과 함께 그의 검이 달라붙었다.

그의 예고대로 검초는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전신을 옥죄기 시작했다. 애초에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붙잡아두려는 검초였다.

아니나다를까 사노와 오노가 좌우에서 짓쳐들었다.

“옆구리를 조심하게!”

강호의 악적들은 말과 행동이 달랐다.

하나 남천휘는 믿었다.

청하오검보다 자신의 안력을 확신했다.

‘진짜 옆구리!’

보면 볼수록 존경할 만한 노인들이다.

어쩌다가 황보세가와 얽혀서 이 지경이 됐을까 안타까울 정도였다.

그 때 남천휘의 머릿속에 좋은 계획이 섰다.

‘꿩도 먹고, 알도 먹고!’

그는 아예 가슴을 상대의 검초에 무방비 상태로 내비쳤다. 대놓고 옆구리만 막는 모습에 청하오검은 다시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누군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행위가 아닌가.

“좋구나!”

그렇게 청하오검의 감탄이 십여 회를 넘어갔을 때였다. ‘장병기 마스터’가 완료됐다는 경쾌한 알림이 들려왔다.

쩡-

남천휘는 청하오검이 동시에 펼쳐낸 검사를 도막으로 밀쳐냈다. 가볍게 보이는 한 수에는 그가 청하오검을 상대하면서 깨우친 유(柔)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그렇기에 청하오검은 남천휘의 내력에 자신들의 것까지 함께 받아내야 했다.

타타타타탓!

청하오검이 일제히 뒷걸음질을 쳤다.

남천휘는 쌍도를 거꾸로 쥔 채 공수했다.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겸양 어린 한 마디에 화기애애한 대꾸가 돌아왔다.

청하오검도 남천휘처럼 검을 거꾸로 쥐었다.

“아닐세. 우리도 즐거웠네.”

“속이 뻥 뚫리는 것 같군.”

수장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담담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후배의 무학이 조금은 변한 듯 보이는군. 혹시 우리가 도움이 되었나?”

남천휘는 숨기지 않았다.

“청하문의 무학은 참으로 신묘합니다. 선배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증거가 알림으로 나타났다.

◎ 보법의 형을 넘어 의를 깨우쳤습니다.

◎ A급 특기 ‘신행’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보법의 운용이 한결 능숙해집니다.

운행과 신속을 합성하여 만들어낸 특기가 바로 신행(神行)이다. 한데 오행군림보를 아무리 펼쳐도 변화하지 않던 신행이 청하오검과 어울린 것만으로 상승했다. 결국 유검에 대한 깨달음이 심법과 보법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남 소협의 무공도 대단하네. 이번 일로 우리도 중원 무학에 대한 안목을 높일 수 있었다네.”

“과찬이십니다.”

겨울이 지나고 춘풍이 부는 듯했다.

하나 이곳은 황보세가였다.

*

황보관은 청하오검이 남천휘를 몰아붙일수록 웃음을 머금었다. 모용세가의 장로원주를 의형으로 삼은 보람이 있다며 내심 자화자찬을 금치 못했다.

‘애물단지라 여겼던 청하오검을 써먹는 날이 드디어 왔군.’

한데 어느 순간부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피와 살기가 난무해야 하는 싸움이 점차 비무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가. 마치 사문의 선배의 후배와 어우러지듯 검과 도가 교차했다.

‘뭐하는 거지?’

하나 연무장 내에 일진광풍이 몰아치고 있기에 섣불리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던 중 양측이 강렬하게 부딪치더니 떨어져 나왔다. 그러더니 서로 무기를 거꾸로 잡고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저, 저.”

황보관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청하오검의 수장인 모용청이 황보관을 돌아보며 말했다.

“가주. 우리는 남 소협과 더 싸우기 힘들겠소. 욕심을 부려 싸울 수는 있으나, 이미 꺾인 검을 바로 세울 수는 없지 않겠소이까. 그러니 가주께서 허락한다면 남 소협과과 세가의 중재를 맡고자 하오.”

황보관은 눈을 부릅떴다.

“이런 배은망덕한 자를 보았는가.”

모용청은 미간을 좁혔다.

“가주, 말씀이 심하시오.”

하나 황보관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아닌 말로 황보세가 전체가 이 꼴을 당하고 화해를 하라는 건 남천휘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된다면 황보세가의 명성은 땅에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지금껏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은혜를 이렇게 갚아? 모용세가의 법도가 그러하던가? 기르던 개도 이렇게 보답하지는 않을 것이야.”

모용청을 비롯한 청하오검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은 황보관의 초빙을 받고, 수천 리를 찾아왔다. 한데 집 지키는 개 취급을 받고,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황보관은 쐐기를 박듯 혀를 찼다.

“쯧쯧, 이래서 머리가 검은 짐승은 거두는 법이 아니라 했거늘······.”

혼잣말치고는 너무 크다.

모용청이 표정을 굳힌 채 물었다.

“황보 가주. 지금 본 가 전체를 모욕하는 것인가?”

기분 내키는 대로 투덜거리던 황보관이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렇지는······.”

그 때 남천휘가 강하게 발을 굴렀다.

쾅!

연무장에 깔려 있던 청석은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남천휘는 잠시 자신에게 이목이 집중된 틈을 노려 일갈을 내질렀다.

“청하오검 선배들께 무례하기 짝이 없군. 황보세가는 지난 날 용봉쟁투 때부터 강호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지 않았던가. 한데 황보세가는 어찌 강호와 공생하지 않고 홀로 야욕을 드러내는가?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구나!”

청하오검이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남천휘는 슬쩍 황보관과 청하오검 사이에 끼었다. 그리고 청하오검을 돌아보며 읊조렸다.

“선배들은 모르고 계셨군요. 사실은······.”

없는 말까지 보태서 황보세가를 폄하했다.

남천휘의 말만 들으면 황보세가는 무능하면서 많은 것을 바라는 탐욕스런 문파였다.

황보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어린놈의 새끼가 언제까지 개소리를 지껄이게 둘 셈이냐?”

이미 머릿수로는 누를 수 없음이 증명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오대의 무인들은 나서지 못했다. 게다가 쾌활십이장이 모조리 패배했으니 남은 건 팔대부가 전부였다.

이대부와 삼대부는 곡부남가를 도모하기 위한 준비를 하러 떠났다. 지금에 와서는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불러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리고 사대부부터 팔대부라 칭하던 청하오검이 스스로 물러났다.

결국 태대부(太大父)가 나설 차례였다.

황보장천은 자신의 뒷배인 태대부 황보황이 나서자 초조함을 숨기지 못했다.

‘이러다가 우리 망하는 거 아닐까?’

하나 황보황은 조카의 우려와 달리 호기롭게 몸을 날렸다.

높다란 계단을 박차고 연무장에 내려서기까지 다섯 번이나 몸을 비틀었다. 마치 허공을 내달리듯 삼 장이나 날아온 것이다. 높이를 활용한 꼼수였지만, 시선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놈!”

황보황은 노기 가득한 일갈과 함께 도를 뽑았다.

칼끝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유엽도였다.

오구의 일종인 유엽도는 칼날 자체가 버들잎을 닮았다. 게다가 오구의 특성 상 무게가 가벼웠기에 두 자루를 동시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니나다를까 황보황의 양손이 겹쳐졌다가 떨어지는 순간 유엽도는 둘이 됐다.

“본가의 뇌전진천도를 받아라!”

황보황의 일갈과 함께 두 자루의 유엽도가 공간을 갈랐다. 쉴 새 없이 도영이 교차하는 가운데 강맹한 도풍이 몰아쳤다.

쉭쉭쉭쉭쉭!

남천휘는 뇌전진천도(雷轉振天刀)라는 명칭에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헛웃음을 지었다.

‘하, 이 새끼 봐라!’

하나의 초식만 봐도 비천무상도의 변형임이 확실했다. 흑린과 창에 저장되었던 VR의 영상대로 황보세가의 조상은 백파도 남추의 무공을 익힌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허락 없이 익혔으리라.

‘좋아.’

남천휘는 눈을 빛냈다.

본래 그가 사마의를 등용한 후 황보세가로 달려온 까닭은 이 기회에 황보세가와의 관계를 정립하기 위함이다. 황보세가가 앞으로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물러날 용의가 충분했다. 어찌됐든 황보세가는 무림맹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하나 계획을 달리 했다.

채채채채채챙-

남천휘는 황보황의 초식을 받아넘겼다.

몇 번이나 황보황을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애써 비등한 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의 눈은 황보황이 아닌 다른 쪽을 향하고 있었다.

‘당신들 정도의 무위라면 분명 눈치 챌 수 있을 거야.’

아니나다를까 청하오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형님,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황보 장로의 도법이 남 소협과 흡사하군요.”

“흐음, 나도 그렇게 느꼈네. 그리고 흡사하기보다 따라한 듯보이는군. 마치 남 소협의 무공을 황보 장로가 어설프게 익힌 것처럼 말이야.”

남천휘는 청하오검의 대화를 들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내가 산동성이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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