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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만렙지존-211화 (211/305)

94, 진짜 일기당천이다!

94, 진짜 일기당천이다!

옷을 벗은 백 명의 여인이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기이했다.

‘아, 이건.’

사내라면 주지육림이라는 글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을 터였다. 하나 눈앞의 광경과 주지육림을 연결시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천휘는 슬쩍 주변을 살폈다.

신교대를 비롯한 곡부남가의 무인들은 눈살을 찌푸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다.

저건 과해도 너무 과하지 않은가.

한두 명의 여인이 옷을 벗고 달려들었다면, 제아무리 수양이 깊은 무인이라고 해도 반응을 보였으리라. 게다가 신교대는 혈기왕성한 청년들로 이뤄지지 않았던가.

아예 상대의 눈도 쳐다보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백 명은 달랐다.

게다가 야릇한 눈빛도 아니고, 칼을 들이대는 형국이니 누구 음욕을 품을 수 있겠는가.

다만 저들의 접근은 예법에 익숙한 무인들을 곤욕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저게 끝?’

남천휘가 미간을 좁히는 순간 백체환희멸정무의 요체가 드러났다.

무희들의 피부가 도홧빛으로 물들었다.

저건 뭔가 있다!

칼바람으로 인해 추위를 느꼈다면 빨갛게 달아올랐으리라.

아니나다를까 재이가 알림으로 경고를 했다.

《부정한 기운이 스며듭니다.》

《대상자의 스탯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일전 백타선자의 수하들에게 맥문을 허락했을 때 울렸던 알림과 다르지 않았다. 그 때에도 육신은 멀쩡했지만, 뭔가에 홀린 듯하지 않았던가.

‘오감증폭제!’

◎ 시각을 활성화할까요?

남천휘는 얼굴을 붉힌 채 읊조렸다.

‘미쳤냐! 후각 증폭해.’

잠시 후 코끝을 맴도는 묘한 냄새가 있다.

‘살 냄새 같은데?’

무희들이 한데 뭉쳐서 휘돌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들의 손끝을 타고 도홧빛 기류가 봄바람처럼 살랑거렸다.

이거다!

남천휘는 녹선단을 복용하는 즉시 양 손을 휘저었다. 강맹한 일수에 돌풍이 일며 도홧빛 기운이 밀려났다.

‘재이, 바람을 북동풍으로 바꿀 수 있어?’

안개를 만들고, 비도 내리는데 바람의 방향쯤이야 우습지 않겠는가.

실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입꼬리를 올렸다.

여기에 쏟아 부은 성소 포인트가 얼마던가?

남천휘는 실행을 명령하는 즉시 전장을 향해 일갈을 내질렀다.

“불어라! 북동풍!”

그 순간 이내 바람의 방향이 바뀌며 적을 향해 불기 시작했다. 포인트를 소모할수록 바람의 세기가 달라졌다. 오만 포인트 이상을 소모한 후에 제법 돌풍이 일었다.

‘좋아! 그럼 정리해볼까?’

한데 몇몇 무인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이미 백체환희멸정무가 발동한 듯했다.

‘내가 막은 건 보이기 시작한 후의 것인가?’

도홧빛으로 번들거리기 전에 미혼약이 살포됐다면 그도 막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다를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자들이 가슴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기 시작했다.

‘젠장! 외원 정체를 정화할 수 있어?’

◎ 곡부남가의 외원 9200평을 정화하시겠습니까.

- 성소 포인트 184000점이 소모됩니다.(y/n)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땅을 언제 이렇게 늘인 거야?’

그로 인해 성소 포인트를 바닥까지 긁어모아야 시행이 가능할 지경이다. 이렇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기각!

남천휘는 신교대원들이 앓는 소리를 귓등으로 흘렸다. 어차피 상황만 마무리되면 혈인도를 통해 해독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포인트를 모으는 것도 쉽지 않단다.’

그러니까 꾹 참으렴.

“으으!”

신교대 2조장인 위강이 신음을 흘렸다.

“크흑! 남 대협을 도와야 하는데······.”

야야,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위 형, 나한테 의지하시오. 함께 남 대협을 보조합시다!”

그러는 3조장 윤석명은 검에 의지한 채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남천휘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녀석들의 읊조림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거야?’

이건 다 합리적인 지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냉철한 판단력이 아니던가.

그가 투덜거리는 재이가 경고했다.

◎ 2초 후 적과 조우합니다.

흥! 빨리도 알려준다.

남천휘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손을 올려쳤다.

그 순간 인벤토리에서 소환된 백룡도가 전방을 갈랐다. 도풍이 몰아치는 순간 마치 여러 자루의 암기를 던진 것처럼 피바람이 불었다.

“까악!”

남천휘는 죄책감을 벗어던졌다.

여인을 벤다는 죄책감이 아니라 대원들의 안위보다 포인트를 아꼈다는 죄책감이다.

“그러니까!”

퍼퍼퍼퍼퍼퍽!

“왜 남의 집을 노려?”

푹푹푹푹푹푹!

“다 너희들의 탓이다!”

책임전가를 위한 일격이 공간을 짓누르는 순간 십여 명의 무희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벌써 삼 할에 이르는 무희가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니 백체환희열정무는 힘을 잃은 지 오래였다.

피로 물든 나신은 아름답지 않았고, 잔뜩 찡그린 얼굴 또한 고혹적이지 않았다.

“후퇴하라! 후퇴하라!”

오십여 명 남짓 남은 무희들이 황급히 물러섰다.

그러면서 저들이 벗어놓은 옷가지를 챙기는 것으로 보아 염치가 사라진 것은 아닌 듯했다.

“전력을 다해 놈을 죽여라!”

봉황곡주의 일갈에 무희들이 마지막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는 법(法)도 식(式)도 없이 막무가내로 몰려올 듯했다.

‘퀘스트 상황은 어때?’

《봉황곡 최후의 날》

- 봉황곡주 봉황태후 척살(0/1)

- 봉황곡 비영쌍위 척살(1/2)

- 봉황곡 팔대장로 척살(8/8) - 完

- 봉황곡 환희십처 척살(0/10)

- 봉황곡 전력의 7할 이상 괴멸(146/277)

순조롭구나.

어라? 그 사이 비영쌍위 중 한 명이 죽었다.

슬쩍 내원을 살피니 혈검살의 사이로 시신이 보였다. 이제 살수는 한 명만 남았으니 더 이상 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오랜만에 뒤를 봤더니 신교대의 무인들이 당장이라도 달려 나올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은 그냥 구경만 해라.’

남천휘는 한 손을 슬쩍 들었다.

그러자 당장이라도 봉황곡을 향해 달려들 것처럼 움찔거리던 무인들이 자세를 바로 했다.

‘지켜보자.’

남천휘는 봉황곡이 나타나기 직전 엄명을 내렸다.

- 그대들은 남가를 지킴으로 자격을 증명했다.

- 그러니 나는 봉황곡을 막아 자격을 증명하겠다.

홀로 수백의 적을 감당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천휘는 미소를 유지했다.

“몸풀기는 끝났으니까.”

두 팔을 흔드는 순간 길게 늘어졌던 소매가 저절로 휘말리며 팔뚝을 감쌌다.

스릉-

용린쌍도가 소환되는 순간 남천휘의 경쾌한 한 마디가 울렸다.

“지금부터는 남아당자강이다! 소리는 당연히 최대로!”

소도회 서곡이 남아당자강으로 바뀌는 순간 둔중한 울림과 함께 웅장한 연주가 시작됐다. 수백의 적을 앞에 두고 개선장군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나아갔다.

“진짜 일기당천을 보여주마!”

남천휘의 일갈과 함께 전방에 굉천뢰가 터진 것처럼 파장이 퍼졌다. 내력의 폭주는 수십 개의 도기가 되어 공간을 갈랐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스무 명에 가까운 적이 짚단처럼 쓰러졌다.

스무 명에 가까운 적이 나뭇잎처럼 흩날렸다.

적의 진형이 흐트러지는 순간 남천휘의 신형이 비조처럼 스며들었다.

남천휘는 지금까지 빠르고, 은밀한 공격으로 우위를 점하지 않았던가. 하나 곡부남가의 가솔들에게 무예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크고, 화려한 동작이 연이었다.

무희들은 초식과 초식 사이의 틈을 노리려 했다.

하나 과감한 동작 사이마다 내력의 흐름이 방패처럼 채워졌다.

촤악!

도끼를 방불케 하는 널따란 도기가 백룡도의 도신을 휘감았다. 백룡도가 잔영을 남길 때마다 백색 도기가 빛무리를 이루는 것처럼 공간을 점했다.

그리고 허락 없이 드나드는 모든 것을 베어버렸다.

그 모습은 늑대 무리에 뛰어든 호랑이와 같았다.

포효하고, 후려치고, 부딪치는 모든 행위가 늑대에게는 사형선고였다.

“크흑!”

봉황곡의 약물로도 원초적인 공포를 지우지 못했다.

결국 무희들이 혼란스런 눈빛으로 주춤거렸다.

‘안 오면 내가 가야지!’

남천휘는 허공으로 궁신탄영을 시전했다.

찰나의 순간 그의 신형이 일 장 높이까지 솟구쳤고, 재차 스킬을 활용하는 순간 적진의 한복판에 내리꽂혔다.

촤아아아악-

횡으로 그은 쌍도가 교차하는 순간 재차 도명이 터져 나왔다. 귀를 찌르는 굉음에 무희들이 비틀거리는 사이 비천무상도의 초식이 이어졌다.

적진을 무인지경(無人之境)으로 휘저었다.

그가 머무는 곳마다 피가 튀었고, 적은 앞을 막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처럼 스킬 ‘일기당천’을 몸소 보여줬다. 홀로 천 명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산의 조자룡처럼 곡부에 남천휘가 있다고 외쳐도 이상하지 않을 광경이었다.

띠링-

남천휘는 한껏 흥을 내다가 재이의 알림이 상태창을 살폈다. 봉황곡주를 향해 내달리다보니 어느새 환희십처(歡喜十妻)를 모두 처리한 것이 아닌가.

‘곡도는 열 명 정도 남은 건가?’

그 정도면 봉황곡의 전력 중 7할을 꺾은 셈이다.

남천휘는 칼끝을 돌리려 했다.

그 순간 뼈가 시릴 듯한 한기와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전방을 휩쓸었다.

봉황태후가 참다못해 나선 게다.

“놈!”

대갈일성과 함께 등장한 봉황태후가 손잡이부터 검신까지 하얀 검을 내리쳤다.

쩌쩌쩍!

빙정지의 대가답게 일수마다 공간이 얼어붙는 듯했다. 제아무리 남천휘라고 해도 전력을 다해야 맞받아쳐야 할 만큼 엄청난 공력이다.

한데 남천휘는 슬쩍 한 걸음 물러서더니 스킬을 활용하여 자취를 감추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뒤늦게 신교대를 향해 달려가는 무희들의 앞을 막아섰다.

“아직은 안 돼!”

촤라라라라락-

내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했다.

십여 명 넘게 피를 쏟아내는 순간 퀘스트 알림이 울렸다.

“네 놈이 감히 나를 모욕해!”

모욕이라는 의미가 저쪽 동네에서는 다른 의미일까.

남천휘가 의아해했지만, 봉황태후로서는 무시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나삼을 흩날리며 절초를 펼쳤다.

한순간 회백색 기운이 뭉쳐들더니 천지간에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한 형태를 만들어냈다.

검강(劍罡).

봉황태후는 초절정의 경지를 자랑하듯 첫 수부터 강기로 남천휘를 노렸다.

쇄애애애액!

남천휘는 생전 처음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기운을 마주한 듯했다.

‘후아, 진짜 강기는 이렇구나.’

생명의 위험이 없는 철투 내에서 마주했던 강기와는 급이 달랐다.

강기는 강기로만 상대하는 것이 가능했다.

한데 남천휘는 이미 스킬 ‘일기당천’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재사용 대기 시간만 해도 반 시진 넘게 남은 상태가 아닌가.

하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너한테 강기가 있으면 나한테는 이게 있지.’

남천휘가 무게 중심을 뒤로 하는 순간 기사가 벌어졌다. 누군가 엄청난 힘으로 그의 뒷목을 잡아당긴 것처럼 미끄러지는 것이 아닌가.

‘적선단! 벽선단!’

물약의 효율이 예전보다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나 물약의 수량은 예전보다 몇 배로 늘어난 상태가 아닌가. 그렇기에 생명력과 내공력을 가득 채울 때까지 물약을 들이켰다.

띠링-

◎ 심신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섭섭할 게다.

누가 뭐라해도 이곳은 곡부남가가 아닌가.

남천휘는 유지로서의 모든 권리를 아낌없이 사용했다.

안개가 짙게 드리워지고, 바닥은 물처럼 출렁거렸다.

먹구름이 몰려오며 국지적으로 비를 뿌릴 기세였다.

아! 포인트만 넉넉했으면 벼락도 부르는 건데.

“놈! 진법이라도 펼친 게냐?”

진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란다.

자연지기를 인간의 방식에 맞게 변형한 것을 강기라 했다.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강의 기운이었기에 강기로만 상대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급이 다르지!’

하나 재이가 일으킨 풍운조화(風雲造化)는 자연지기 그 자체였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양의 안개가 휘몰아쳤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대지의 변형이 끊이지 않았다.

“이 놈!”

봉황태후는 안력을 돋워 안개를 꿰뚫어 보려 했다.

하나 세상의 그 어떤 계곡에서 만들어질 안개보다 짙은 운무가 시계를 가득 채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심지어 안개가 흩어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것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안개는 모든 기척과 소리를 잡아먹었다.

솨아아아아-

봉황태후는 안개가 갈라지면서 백룡도가 내리꽂히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촤아아악-

옅은 핏물이 흩날렸다가 안개에 휘감겨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떠돌던 남천휘의 한 마디가 봉황태후의 귓가에 들려왔다.

“내 땅에 온 것을 후회해라!”

남천휘가 쌍도를 흩뿌리는 순간 어디선가 피가 튀었다.

“성소에서는 내가 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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