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일기당천(一氣撞天). (2)
일기당천(一氣撞天)이라는 한 마디는 곡부남가와 봉황곡을 가리지 않고 꽂혀들었다.
하나 남천휘의 눈에만 보이는 것이 따로 존재했다.
띠링-
◎ 백룡도와 흑린도를 사용합니다.
- 용린쌍도의 고유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특기 목록에 용린쌍도의 고유 특기인 분쇄와 참격이 적용됐다. 더불어 870이었던 공격력은 700이 증가하여 1570이 되었다. 내공전달력이 오 할 이상 증폭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첫 번째 강기다!’
용린쌍도를 쥐고 있으면 초절정의 경지가 아니어도 두 번이나 강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단전에 솟구친 내력이 임맥과 독맥을 휘돌았다.
기경팔맥을 찰나의 순간 휘몰아친 내력의 종착지는 양 어깨였다. 좌우의 균형을 맞춘 후 손끝까지 뻗어가는 것 또한 번개가 치듯 빨랐다. 이 모든 것이 찰나의 순간 이뤄졌고, 1초의 시간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일기당천이 발동됐다.
용린쌍도의 칼끝은 남천휘의 시선을 따랐다.
적의 예봉을 꺾기 위해서.
수백 명의 진군을 멈추기 위해서.
가장 위력적이고, 가장 화려한 초식이 필요했다.
백룡과 흑린으로 허공을 긁는 순간 마치 허물을 벗은 것처럼 잔영(殘影)이 남았다. 희고 검은 잔영은 서로 휘감겼다가 강제로 분리되는 순간 전방으로 예(乂)자 형태의 강기가 튕겨나갔다.
쩡-
선두에 선 장로의 두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그러나 이미 지척에 이른 강기는 장로의 진퇴를 허락하지 않았다.
콰콰콰쾅!
*
검풍이나 도풍을 만드는 건 쉽다.
그저 힘을 실어 휘두르거나, 찌르면 되는 게다.
위력을 지니는 건 다른 문제였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식이 생겼고, 심법이 만들어진 셈이다.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다는 절정의 상징인 검기(劍氣)도 꾸준한 수련을 통해 도달하는 것이 가능했다. 검사(劍絲)와 검막(劍膜) 또한 난이도의 문제일 뿐 다르지 않았다.
하나 강기(罡氣)는 달랐다.
아니, 틀렸다.
대저 내공이란 천지 간에 충만한 자연의 기운을 빌려오는 것에 불과했다. 남의 것을 빌려와 아무리 가꿔봤자, 원형과 완벽하게 일치할 리가 없다.
강기공(罡氣功)이라는 멋들어진 명칭은 고작 해야 자연지기에 근접했다는 의미가 전부였다.
꽈득-
봉황곡의 곡주인 봉황태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나이에······.’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였다.
심지어 연이어 펼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두 개의 강기를 흩뿌린 셈이다. 구파의 직계들이나 펼칠 수 있는 신위였다.
하나 봉황태후가 경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탄강이라니.’
강기를 발출하는 탄강(彈罡)의 경지는 단순히 무공의 고하로 치부할 수 없다.
자연지기를 흉내 낸 내력으로는 강기를 만드는 것이 한계였다. 하나 자연지기에 근접했다면 강기를 외부로 발출하는 것 또한 가능하리라. 즉, 지극히 정순한 내공을 지닌 자에게만 허락된 경지였고, 초절정을 지나 절대지경을 바라볼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그것을 남천휘가 선보인 것이다.
봉황태후는 탄강이 만들어낸 참혹한 현장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탄강에 직격당한 백묘선자는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 탄강은 봉황곡의 장로를 가루로 만든 후에도 여력이 남았다. 이 장 가까이 뻗어나간 기의 폭풍이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가 한 호흡에 뱉어냈다. 두 자리 숫자의 무희가 절명했고, 장로 중 한 명의 팔이 날아갔다.
탄강으로 인한 굉음과 충격파가 사라졌다.
“으으.”
그 자리에 조심스럽게 흘러들어온 건 팔이 통째로 뜯긴 장로의 신음이었다. 그리고 시야를 가득 채웠던 흙먼지와 혈향마저 잦아들었다.
“아아.”
“맙소사!”
곡부남가와 봉황곡을 가리지 않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탄강이 폭발한 지역은 하늘이 거대한 철추로 내리찍은 것처럼 움푹 패여 있었다.
누구도 섣불리 그곳을 지나지 못했다.
그리고 남천휘의 호언장담처럼 봉황곡은 진군을 멈췄다. 경악(驚愕)이라는 이름의 족쇄에 그들도 모르게 발이 묶인 게다.
‘박자 줘봐.’
남천휘의 읊조림과 함께 시야에는 세 종류의 악보가 등장했다. ‘소도회 서곡’과 ‘창해일성소’, 그리고 ‘남아당자강’이다.
‘지금은 약간 비장한 게 좋겠어.’
결정과 동시에 음률이 퍼져나갔다.
남천휘는 봉황곡 무희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소도회 서곡을 즐겼다.
따라라라라라-
징을 치듯 고조되는 음률 속에서 일보를 내딛었다.
쿵!
용린쌍도(龍麟雙刀)를 쥔 채 양 팔을 휘돌렸다.
도의 끝을 타고 흐르는 내력이 유형화되어 허공에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내력을 거둬들이기 위해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았다.
솨아아아아-
초식이 마무리를 알리듯 양 손으로 커다란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양 손을 교차하여 휘두르는 순간 묘한 광경이 벌어졌다.
쌍도가 채찍처럼 흐느적거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애초부터 연검이었던 것처럼 허공을 주유했다.
봉황곡주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것은······.’
큰 원을 물결치듯 반으로 갈라놓고, 흑도와 백도의 잔영을 흩뿌리니 마치 태극(太極)과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남천휘가 앞발을 길게 뻗고, 무게 중심으로 뒤로 했다. 동시에 백룡도가 위로 향하고, 흑린도가 아래를 향했다. 그렇게 태극문양에 방점을 찍듯 위아래에 백과 흑이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것이 아닌가.
“아아.”
그 모습은 하늘이 남천휘에게 호응하여 태극을 그려준 것처럼 몽환적이었다.
그리고 남천휘가 반탄력을 털어내듯 상체를 흔드는 순간 백룡도와 흑린도가 출렁거리며 귀를 찌를 듯한 도명을 토해냈다.
쩡-
동시에 곡부남가 쪽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아아아아!”
양방언의 선창을 시작으로 곡부남가에 속한 모두가 괴성을 내질렀다. 그렇게 이목을 사로잡은 후 양방언이 주변을 보며 눈짓을 했다.
그리고 외쳤다.
“봉황곡주는 나오라!”
선창과 복창이 음률처럼 맞물린다.
“봉황태후는 용린협의 칼을 받으라!”
용린협이 누구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으리라.
남천휘는 용린협이라는 별호가 울릴 때마다 자세를 고쳤기 때문이다.
‘어때? 철귀유협보다는 훨씬 낫지 않아?’
◎ 자신의 평가를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스스로 쟁취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스럽습니다.
아! 재이와 상성이 좋지 않은가?
저 녀석은 무슨 말을 해도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나 울컥할 필요는 없다.
일견하기에도 똥을 뒤집어쓴 것처럼 부르르 떨고 있는 자가 있지 않은가.
‘저러다 피 토하고 쓰러지면 안 되는데.’
저처럼 값비싼 먹잇감을 상하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다행히 봉황태후의 평정심은 범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높여 반론을 펼치거나, 목적 없이 수하들을 독려하지 않았다.
“원주.”
그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장로원주를 부를 뿐이다.
장로원주인 노파 또한 강호에서 먹은 칼밥은 반백년이 아니던가.
“예. 하명하시지요.”
“어디서 개가 짖는 구려.”
“그렇습니다. 먹물이 든 개답게 구린내가 사방에 진동하는군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는 모두 내력을 일으킨 채 이어졌다. 그러지 담담한 어조의 대화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이것이 즉효였다.
수뇌부가 동요하지 않으니 아랫사람 또한 자신도 모르게 안도하기 시작했다.
“원주, 냄새도 남기지 말고 깡그리 밀어버려요.”
장로원주가 잠시 미간을 좁혔다.
잠시 사기를 회복했으나, 곡부남가의 기세는 예상보다 드높았다. 게다가 남천휘의 범상치 않은 무위로 봤을 때 퇴각하는 편이 나을 듯했다.
하나 그녀는 봉황곡주의 성정을 떠올린 후 반문하지 않았다. 봉황곡주는 돌다리라고 해도 한 없이 두드려볼 만큼 완벽을 추구했다. 그러나 한 번 다리 위에 올라서면 결코 멈추지 않을 격렬함도 지녔다.
‘기호지세로구나.’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내릴 수 없다.
호랑이가 지칠 때까지 버티든, 목에 칼을 꽂아 넣어 죽이는 수밖에 없으리라.
장로원주는 잠시 주변을 살핀 후 칼을 향해 턱짓을 했다.
칼로 선정된 이는 팔대장로 중 벽화였다.
장로원주에 버금가는 무위를 지닌 벽화선자가 나서는 순간 봉황곡의 기세가 들끓었다.
“첫 합 직후 총공격한다.”
봉황곡주의 나직한 한 마디에 장로원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그것을 알 리 없는 벽화선자는 여인과 어울리지 않는 패검을 늘어트린 채 다가섰다. 그녀는 남천휘와 가까워질수록 입꼬리를 올렸다.
멀리서 봤을 때에는 멀쩡했다.
한데 가까이서 보니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긴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네 또래에서 으뜸이라 할 만하다!’
벽화선자의 무위는 장로원주에 버금갔다. 하나 장로원주의 노쇠한 육신에 비할 바가 없을 만큼 건강한 체구를 자랑하지 않던가.
‘장로원주도 제대로 붙으면 내 상대가 아니다!’
그녀는 통통 튕기듯 가볍게 걸음을 내딛다가 한 순간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죽어!”
한데 절묘한 기습에 대처하는 남천휘의 표정은 느긋하기만 했다. 그는 벽화선자가 지척에 이르는 순간 무게 중심으로 옮겼다.
앞발에 힘이 더해지는 순간 그의 신형이 전방으로 튕기듯 이동했다. 궁신탄영을 펼치는 순간 벽화선자의 패검이 미간 사이로 꽂혀들었다.
‘너무 빨라도 문제니까.’
오행군림보의 두 번째 스킬인 잔영은무를 펼쳤다.
그 순간 남천휘의 신형은 허리가 잘린 것처럼 위아래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가.
“엇!”
벽화선자가 헛바람을 들이키는 순간 옅은 코웃음이 귓가에 벼락처럼 꽂혀들었다.
“킥!”
그 순간 벽화선자의 턱밑에서 주먹이 솟구쳤다.
콰직!
남천휘는 마치 땅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벽화선자의 하관을 으스러트린 채 등장했다.
“으으으.”
스릉-
손을 쥐었다 펴는 순간 흑린도가 나타났다.
백룡과 흑린 중 후자를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촤악!
피의 흔적이 남지 않아서 좋구나.
벽화선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절명했다.
그녀가 뒤로 넘어가는 순간 봉황곡 무희들이 한 누에 들어왔다.
남천휘는 주먹을 흔들며 외쳤다.
“자! 이제 뒷발에 맞아볼 사람?”
봉황곡주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호랑이가 날뛰면서 물어뜯으려는 형국이다.
이제 남은 건 전력을 다해 함께 물어뜯는 것이 전부였다.
“죽여!”
봉황곡주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뜨거운 일갈이 터져 나왔다. 장로원주를 필두로 세 명의 미부가 사방진을 펼쳤다.
아이고! 고마워라.
일부러 모으기도 힘든 장로가 네 명이나 알아서 모인 상황이다. 이제 저들만 처리하면 다섯 개의 완료조건 중 하나가 충족될 터였다.
“정파의 후기지수란 자가 이처럼 간교하다니!”
너무나도 봉황곡의 입장에서 내뱉은 한 마디에 한 숨이 절로 나왔다. 물론 노인에 대한 공경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어쩌면 간교할 수도 있겠지.
“기왕 그렇게 된 거 정말 간교하게 놀아주지!”
남천휘는 빠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온갖 성소에 쌓이는 포인트만 봐도 배가 부를 지경이다.
“혼무! 산재! 오도!”
삽시간에 코끝이 촉촉해지는 듯하더니 옅은 안개가 들이친다. 그리고 산으로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전장에 퍼졌다. 마지막으로 비가 온 다음날처럼 딱딱하던 대지가 진창으로 변했다.
갑작스런 변화에 장로들은 미간을 좁혔다.
완벽해보였던 사방진이 찰나간 틈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 정도면 족했다.
‘소리 최대로!’
소도회 서곡이 절정에 이르는 순간 남천휘의 신형은 찢기듯 좌우로 퍼졌다. 그리고 땅에 발을 대지도 않은 채 공간을 질주하여 팔을 뻗었다.
촤라라락-
길게 뻗은 팔에 도가 쥐어졌고, 그것이 연검처럼 출렁이는 순간 장로 두 명의 목에는 회초리에 맞은 것처럼 핏물이 고였다.
“크헉!”
“아악!”
한 명은 목이 잘린 채 절명했고, 다른 쪽은 반쯕 베인 채 피를 분수처럼 쏟아냈다. 검까지 집어던진 채 목을 감싸는 것으로 보아 뒷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장로원주는 주름 속에 감춰졌던 눈동자를 만천하에 드러냈다. 저대로 뒀다가는 졸도라도 하지 않을까 우려가 될 만큼 눈빛이 혼탁했다.
그래서 편안하게 모셨다.
촤악!
흑린도를 올려치는 순간 장로원주는 검과 함께 두 동강이 났다. 홀로 남은 장로는 창졸간에 벌어진 참극에 넋이 나간 듯했다.
시간 충분하고요.
‘그렇다면 한 번 더!’
봉황곡의 무희들이 모두 들을 수 있게 일기당천을 외쳤다.
마지막 장로가 등을 보인 채 내달리려 했다.
하나 이미 몸뚱이가 강기에 쓸려나간 후였다.
쾅!
남천휘는 일부러 돌이 있는 곳을 밟았다.
큰 울림과 함께 이목이 집중됐다.
“누가! 감히 남가에 대적하려는가?”
이쯤 되면 봉황곡주가 분기탱천하여 달려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한데 봉황곡주의 선택은 달랐다.
“일백환희멸정무를 펼쳐라!”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
쯧, 또 미혼공인가?
절체절명의 순간 미혼공에 매달리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웠다.
하나 남천휘는 백체환희멸정무(百體歡喜滅精舞)가 펼쳐지는 순간 웃지 못했다.
사라라락-
백여 명의 여인들은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옷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나신(裸身)을 가감 없이 드러낸 채 검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가.
남천휘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 이건 좀 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