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어긋난 신념은 개똥과 같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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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 의해 창시된 유교는 도덕적 성품을 중시하라고 가르쳤다. 인의예지신을 통해 인간과 짐승의 다름을 설파했다. 도덕적 지침으로 알려진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 인륜도 마찬가지였다.
삼강오륜(三綱五倫).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지침.
유자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하는 절대적 규범이 바로 이것이다.
“부주. 귀협의 말이 사실입니까?”
동주림주의 목소리가 광명정에 울렸다.
그는 중도를 표방하고, 정치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남천휘의 굳은 의지를 마주하고 감탄했지만, 평생 지켜온 신념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 그랬던 그가 귀신이라도 마주한 사람처럼 굳은 표정을 보였다.
신공부주는 침묵했다.
침묵으로 인해 장내의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전대 신공부주를 가둬 죽였다면 아들은 아버지를 섬겨야 한다는 삼강의 부위자강을 어긴 것이고, 자식 또한 그리 했다면 오륜 중 부자유친을 거스른 게다.
한 가지만으로도 패륜을 논할 만큼 중대사였다.
“부주!”
동주림주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신공부주가 입을 열었다.
하나 대화의 대상은 동주림주가 아니라 남천휘였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남천휘는 이미 적선단과 벽선단을 통해 체력과 내력을 회복한 상태가 아닌가. 그런 그가 신공부주를 올려다보며 최대한 목소리를 깔았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산울림을 방불케 하는 조롱에 신공부주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래, 천위검호도 쓰러졌잖아.
그러니까 대범한 척하지 말고 본성을 내보이라고.
하나 신공부주는 여전히 뭐라도 되는 양 근엄한 어조로 말했다.
“어리석은 놈, 광목재사가 귀계랍시고 가져왔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네가 이겼다고 해서 천하의 유자들이 너를 추앙할 듯싶더냐? 힘으로 나를 억눌렀으니 온갖 비방과 욕설이 쏟아질 것이다.”
동주림주를 비롯한 무인들은 표정을 굳혔다.
신공부주의 말은 곧 자백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당당했다.
그 이유가 지금 드러난 것이다.
공문십철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치지 못하고,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는 건 이미 유명한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 남천휘와 공문십철이 신공부주를 규탄한다고 해도 중원 각지에 퍼져 있는 유자들이 믿어 줄지는 불확실했다. 그 역시 남천휘가 힘으로 공문십철을 꺾은 후에야 신공부주의 비위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신공부주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공문십철을 비롯한 무인들은 남천휘를 바라봤다.
그들은 은연중에 남천휘를 대표로 여기기 시작했다.
“내 나이에 나와 같은 출신이면서 사부 없이 이 정도의 무위를 갖춘 사람이 있던가?”
남천휘의 동문서답에 무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늘이 나를 선택하여 잊힌 조상의 무공을 복원케 했고, 그것으로 타락한 두 명의 유자를 처단하라 명했다. 말도 안 된다고? 그렇다면 어린 내가 공문십철을 모두 쓰러트리고, 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은 말이 되는가?”
무인들의 웅성거림을 잦아들었다.
남천휘는 광명정에 모인 무인들을 등에 업고 신공부주를 향해 외쳤다.
“너야말로 감당할 수 있겠냐?”
콰쾅!
신공부주가 벌떡 일어나는 순간 단목(檀木)으로 만든 의자가 주저앉았다.
“건방진 놈!”
남천휘는 신공부주의 동요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유자가 나를 비방해? 당신이야 말로 권세에 눈이 멀었군. 당신이 유가를 등질까 두려웠기에 끝끝내 시행하지 못했던 광목재사의 열 번째 계획을 내가 사용한 까닭이 뭘까? 돈? 명예? 권세? 아니야.”
이럴 때에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는 유가를 지키기 위한 계획으로 광목재사의 열 번째 계획을 받아들였다. 겉으로는 눈웃음을 치고, 입에 발린 말만 내뱉는 너와 다르다. 수많은 양민과 강호인을 죽여 명분을 쌓으려던 너와 다르단 말이다.”
시선 집중은 제대로 됐고.
남천휘는 품에서 한 권의 서책을 꺼냈다.
피에 젖은 서책을 높이 들고 외쳤다.
“지금껏 너는 교대와 휘대를 운용하여 방해가 되는 중소방파를 멸문에 이르게 만들었다. 그 밖에도 곤륜산인을 조종하여 흑도 세력을 운용하게 했지. 광목재사는 네 밑에서 저지른 악행을 후회하며 내게 이 증좌를 넘겼다. 그런데도 유가가 나를 규탄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더냐?”
남천휘의 정명한 눈빛과 맑은 목소리는 광명정 밖으로 사라졌다가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신공부주의 눈빛이 심하게 요동쳤다.
‘자! 이제 미끼를 던져 볼까.’
남천휘는 혀를 차며 서책을 던졌다.
쉬리릭-
서책이 떨어진 위치는 정확하게 신공부주와 남천휘의 중간 지점이다.
‘물어라. 물어라. 물어라!’
물론 서책은 가짜다.
이미 인벤토리에 들어가는 순간 고인이 된 광목재사가 무슨 증좌를 남겼겠는가. 하나 신공부주는 패륜의 상징이 되었고, 남천휘는 무너진 신공부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 신성이 아니던가.
게다가 남천휘의 일갈은 대부분 광목재사의 도움이 없다면 알기 힘들만큼 고급 정보였다. 동주림주를 비롯한 무인들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으리라.
‘설마?’
‘진짜인가?’
하나 저간의 사정을 꿰고 있는 신공부주나 직속 수하들의 반응은 달랐다.
“크흑!”
그 순간 상처를 다스리고 있던 천위검호가 비틀거리며 몸을 날렸다. 그는 구르다시피 하며 서책을 낚아챘다. 그리고 그의 손에 잡힌 서책은 한순간에 갈가리 찢겨 허공으로 흩어졌다.
‘물었네. 그것도 아주 콱 물어버렸네!’
천위검호는 주인을 지킨 개처럼 보무도 당당하게 남천휘를 마주했다.
“증거를 없앴군.”
남천휘의 말에 천위검호는 코웃음을 쳤다.
“이걸 증거라고 누가 증명할 수 있는가?”
하나 천위검호의 언행은 남천휘의 주장을 뒷받침할 뿐이다.
평생 줏대 없이 검으로 살아온 작자답구나.
어긋난 신념은 역시 개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신공부주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천위검호는 자신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저런 멍청한 놈.’
반면 남천휘는 무무혁명을 펼쳐놓고 춤이라고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죽했으면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특기 ‘무희’가 저절로 발동됐겠는가.
이것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유운림의 초옥에서 아무거나 뽑아온 서책이 아니던가. 하여 누군가 내용을 확인하기라도 했으면 당장 거짓이었음이 밝혀졌으리라.
그렇기에 아군이 잡으려 했다면 중요한 증거임을 주장하며 누구의 손도 타지 않게 하려 했다. 반면 신공부주가 읽었다면 책을 바꿨다고 주장할 셈이었다.
한데 천위검호는 예상을 웃돌 만큼 훌륭하게 일을 처리했다.
‘당신의 무식함에 즉묵노주로 삼배!’
이제 반쯤 넘어왔다.
신공부주는 패륜은 물론이고 잔악무도한 악행까지 저지른 악당으로 여겨졌다.
좋아, 쐐기를 박을 차례다.
“네놈들의 오랜 악행이 어디 증거를 처리한다고 해서 없어질 듯싶더냐?”
남천휘가 엄지와 검지를 튕겼다.
그 순간 광명정에 모인 무인들 사이에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어!”
천수련은 익숙한 외형에 탄성을 흘렸다.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자가 방갓을 벗었을 때 탄성은 광명정 전체에 전염됐다.
신공부의 소부주인 공태령이다.
용봉삼협의 수장이자, 산동 강호의 후기지수 의협으로 으뜸이라는 백협 공태령의 절묘한 등장이었다.
‘야! 누구보고 수장이래.’
공태령은 흙투성이였다.
안색은 마치 생매장 당했다가 겨우 살아나온 사람처럼 초췌했다. 게다가 누더기처럼 낡은 옷에는 핏자국까지 선명하지 않은가.
“아버지!”
공태령의 애절한 일갈을 광명정에 울렸다.
“정녕 자식인 저를 죽이려고 하셨습니까?”
신공부주는 어느새 주먹을 쥔 채 부르르 떨었다.
“조부를 죽이고, 자식을 죽여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 하십니까? 차라리 제가 용봉쟁투 때 섬예검귀에게 죽었다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크하, 목소리의 떨림 보소.
헉! 진짜 우는 거냐?
남천휘는 공태령의 열연을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누가 보면 친우의 서글픈 사연에 감정이 북받치는 줄 착각할 정도였다.
‘자식, 연기 잘하네. 신공부를 떠나도 먹고 살 걱정은 없겠어. 저 얼굴에 경극 배우까지 하면 아주 수많은 여인네들이……. 아니지. 남정네들이 아주 쓰러지겠네.’
그러나 공태령과의 거래를 떠올리는 순간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본래 남천휘가 증인 역할을 부탁했을 때 공태령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아비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기보다 그냥 피곤하기 때문이란다. 그저 한 시라도 빨리 꼴도 보기 싫은 신공부를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어 했다. 만약 특기 ‘변설’이 아니었다면 공태령은 벌써 산동성 밖으로 사라졌으리라.
- 자유도 돈이 있어야 즐거운 거야?
- 신공부 돈은 쓰기도 싫다며?
- 내가 정착 자금을 대마.
- 은자 이천 냥이야! 이 정도면 항주에서도 장원 한 채 정도는 충분히 살 수 있을 걸?
- 뭐라고? 적다고? 야! 이 새끼야!
- 사람 성격이 하루아침에 변하면 죽어!
- 은자 껴안고 죽는 게 낫겠다고?
결국 은자 사천 냥에 명배우를 섭외할 수 있었다.
‘백협은 개뿔! 돈의 노예 같은 놈이었어.’
한데 공태령은 정녕 신공부주에 대한 마음을 접은 듯했다. 그렇지 않다면 제 아비를 저렇듯 사지로 밀어 넣지는 못하리라. 결국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어도 원망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
공태령의 구구절절한 하소연에 몇몇 심약한 무인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한데 여기서 천위검호가 다시 한 번 사고를 쳐주는 것이 아닌가.
“놈! 멀쩡히 유운림에 갇혀 있었잖느냐. 내가 네놈을 직접 가뒀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불같은 노기를 토해내던 자가 꼬리를 만 개처럼 말꼬리를 흐렸다.
제아무리 천위검호가 꼭두각시처럼 살았어도 눈치라는 게 있지 않겠는가. 장내의 있는 무인들의 싸늘한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와 꼽혔다.
천위검호는 낯선 경험에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더니 자신도 모르게 신공부주를 돌아보는 것이 아닌가.
최고다! 천위검호!
남천휘는 신공부주가 입을 떼기도 전에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내가 공문십철을 모두 쓰러트린 이상 네 놈의 퇴출은 확정이다! 당장 무릎을 꿇고, 하늘과 땅을 향해 죄를 자백해라!”
꿇지 마. 광분해라. 미쳐 날뛰어라.
신공부주는 안팎에서 자신을 몰아치니 한순간 분노를 삭일 뿐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 때 제 삼의 인물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남천휘로 인해 중상을 입고 혼절했던 천라쌍익이 깨어난 것이다. 그는 피가 잔뜩 묻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형님,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다 쓸어버립시다!”
남천휘를 노려보는 천라쌍익의 눈동자가 광기로 인해 번들거렸다.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남천휘는 이미 갈가리 찢겼으리라.
“무슨 짓이냐?”
신공부주가 뒤늦게 외쳤지만, 눈이 돌아간 천라쌍익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대뜸 품에서 호각을 꺼내 불었다.
삐이이이익-
남천휘는 뜻밖의 광경에 헛웃음을 흘렸다.
‘오른팔, 왼팔이 다 병신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