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51화 (151/305)

70, 어긋난 신념은 개똥과 같아. (1)

70, 어긋난 신념은 개똥과 같아.

사람의 표정이란 연습과 경험으로 속내를 숨기는 것이 가능했다. 하나 눈빛마저 제어하기란 절정의 무인이라고 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초절정에 올라 내기를 갈무리할 정도가 되어야 가능할 터였다.

‘…….’

신공부주는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수양이 대단했다. 수십 년 간 쥐락펴락 했던 신공부가 와해되는 꼴을 지켜보면서도 동요하지 않았다.

‘하긴 제 아비를 죽여 신공부를 장악하고, 제 자식을 죽여 명분을 만들려는 악인이 아니던가.’

남천휘는 찰나간 신공부주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제야 신공부주가 반응을 보였다.

눈빛의 흔들림.

그것은 동요가 아닌 분노였다.

광명정의 무인들만 없었다면 수백 명의 수하를 이끌고 남천휘를 천 갈래 만 갈래 찢어버리고 싶었으리라.

그래, 그러시겠지.

남천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간 신공부의 존폐 이유를 몇 번이나 자문자답했다.

결론은 존속이다.

신공부를 무너트려도 곡부가 유가의 성지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유가를 중심으로 한 조직이 새로이 꾸려지리라. 그렇다면 쇄신 정도로 만족하는 편이 나을 터였다.

노국장을 위해서라도, 곡부남가를 위해서라도.

‘하나 당신은 아니야.’

메인퀘스트 1막, ‘강호행’의 최종 단계가 바로 ‘중간보스’였다.

퀘스트 완료조건은 간단했다.

공후탁의 죽음.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신공부주의 몰락이나, 실각만으로도 충분히 난이도를 자랑했다. 한데 시스템은 공후탁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고민했던 시기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일말의 망설임도 공후탁을 척살할 예정이다.

‘이 자가 살아 있으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곤란해진다.’

하나 공문십철 중 아홉 명을 쓰러트렸음에도 놈의 죽음은 장담하기 어려웠다.

남천휘는 가볍게 호흡을 흘렸다.

그가 공후탁 앞에 앉았을 때부터 등 뒤로 꽂혀드는 서늘한 기운은 여전했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그만큼의 살기.

천위검호 유백하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남천휘는 망설임 없이 공후탁을 향해 쌍도를 휘둘렀으리라.

중간보스의 두 번째 단계는 공문십철을 모두 쓰러트리는 것이다. 그로 인해 세 번째 단계로 진행된다고 했다. 한데 뭐가 됐든 공후탁만 죽으면 중간보스 자체가 완료되지 않던가.

굳이 퀘스트를 따라갈 필요가 없는 게다.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었다.

하나 천위검호 유백하가 존재하는 한 공후탁의 죽음은 예정이 될 뿐 실행되지 못했다.

‘뒤통수에 구멍 나겠네.’

남천휘는 옅은 미소를 지은 채 몸을 일으켰다.

등 뒤에서 살기가 꽂혀들었지만, 시선은 여전히 신공부주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등 뒤의 칼 보다 눈앞의 놈이 더 위험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저 태생적인 감과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특기가 어우러진 결과였다.

“마지막 칼춤을 춰야겠군.”

신공부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너는 아직 단상에 오를 자격이 없다.”

열 명을 이기지 못했다는 질책이리라.

하나 남천휘는 오히려 입꼬리를 올렸다.

신공부주의 목소리는 본래 타인을 현혹하듯 울림이 가득했다. 한데 질책을 빙자한 목소리는 모래를 씹은 것처럼 메말랐다.

흔들려. 더욱 흔들려라.

본능이 지식을 이기고, 감성이 이성을 짓누르는 순간 놈은 발악을 할 터였다.

“곧 다시 오겠소.”

남천휘의 명백한 평대에 신공부주의 눈빛이 한 차례 요동쳤다.

“너는 오지 못할 게다.”

“다시 왔을 때에도 앉아있을 수 있나 봅시다.”

남천휘는 그 말을 끝으로 훌쩍 몸을 띄웠다.

여전히 시선은 신공부주를 향한 채.

단상에서 내려섰다.

그 순간 천위검호가 움직였다.

천라쌍익처럼 살기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차례가 되었기에 나서는 듯했다.

미혼공에 걸린 사람처럼,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계단을 내려왔다.

그가 남천휘를 마주하고 처음 내뱉은 말은 광명정의 무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담대하구나.”

하나 남천휘는 천위검호의 의중을 눈치 챘다.

등 뒤로 꽂혀드는 살기에 감응하지 않은 것에 대한 칭찬일 터였다.

그러게 말이야.

‘왜 그랬을까?’

남천휘는 천위검호의 눈빛을 보고 침음을 흘렸다.

동경처럼 모든 것을 비춰주는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짚이는 바가 있었다.

‘저 자는 사심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랬다.

천위검호가 자신의 등을 찌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저 눈동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현 듯 천위검호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용봉쟁투의 부상으로 보물을 선택할 때였다.

남천휘는 부러진 창월과 칠야를 골랐다.

신풍수사 서림이 당황해하며 다른 것으로 바꿔주려 했을 정도였다.

그 때 천위검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 사내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법.

‘그리고 이것 또한 자신의 운이라고 했지.’

당시에는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행위라 여겼다. 한데 천위검호를 마주하니 그 때의 한 마디는 진심이 아니었을까 싶다.

심지어 공태령은 천위검호가 자신을 점혈하여 유운림에 가뒀음에도 원망하지 않았다. 모든 원한과 분노는 신공부주를 향했을 뿐이다.

“당신은…….”

남천휘는 천위검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마디를 흘렸다.

“검과 같군요.”

검객이 아니라 잘 벼려진 검.

신공부주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처럼 보였다.

“…….”

하나 천위검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늘어트린 채 길을 막아설 뿐이다.

어쩌면 무기력하게 보일 만큼 느슨한 자세였다.

저것은 여유일까?

아니면 방관일까?

남천휘는 태산의 초입에서 산적들과 얽혔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사건과 사고를 떠올렸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신공부주가 존재했다.

하나 천위검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공태령의 혈도를 점하고, 유운림에 가둔 것이 전부였다.

신공부주의 명령에 의한 행동이었으리라.

‘방관이군.’

이제야 천위검호의 언행을 납득하게 되었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은 진심이 분명했다.

‘그는 선악의 구분 대신 주인의 뜻을 따르는 검이 되기로 했구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할 뿐이로구나. 신공부주를 만난 것이 자신의 운이라 여기고 그대로 살아가려는 것에 불과했구나.’

남천휘의 입매가 비틀렸다.

“쳇.”

신공부주와 천위검호 사이에 어떠한 사연이 있든 궁금하지 않았다. 그저 200레벨을 넘긴 고수가 누군가의 개가 되어 목적도 신념도 없이 살아가는 꼴이 역겨울 따름이다. 차라리 강자존을 부르짖거나, 욕심이라도 부렸으면 이처럼 역겹지는 않았으리라.

“한심하네.”

천위검호는 반응하지 않았다.

수십 년 간 지켜왔던 삶의 기준이 남천휘의 한 마디에 바뀌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 아닌가.

무엇보다 남천휘는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한심하기는 한데 틈이 없네.’

광명정의 무인들에게는 두 사람이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게다. 하나 남천휘는 끊임없이 틈을 보이고, 기회를 노렸다. 천위검호가 반응하는 순간 통찰로 인하여 우위를 점할 생각이었다.

한데 천위검호는 대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천휘가 천위검호의 미세한 움직임에 몇 번이나 현혹당할 뻔했다. 낮은 단계의 통찰은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저 자는 진짜야.’

천위검호는 200레벨 이상의 무언가를 지녔다.

레벨로 승패가 정해지지 않듯 수치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능력 수치는 비등할지라도…….’

천위검호가 지닌 깨달음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마 자신이 지닌 특기와 천위검호의 깨달음의 우열을 정하려면 직접 붙어봐야 알 터였다.

남천휘는 거리를 좁혔다.

‘후우.’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다.

신공부주를 궁지에 몰아넣었지만, 남천휘의 사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광명정은 하늘이 만들어준 기회였다.

오늘을 놓친다면 신공부주는 손쉽게 재기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등 뒤에 강을 둔 건 마찬가지였다.

저벅-

남천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자신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천위검호도 움직였다. 그렇게 각기 세 걸음을 내딛은 후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 번 허공에서 격돌했다.

‘온다.’

남천휘가 인지하는 순간 천위검호의 손이 호선을 그렸다. 마치 채찍처럼 휘어져 들어온 검 끝을 마주하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쇄애애액!

남천휘는 막는 대신 피했다.

그만큼 천위검호의 공격은 예상 외였고, 은밀하게 꽂혀들었다. 공세의 강렬함을 논하자면 천라쌍익이 두어 수는 윗줄이리라. 내력의 강맹함을 논하자면 광명문주도 뒤지지 않았다.

하나 천위검호가 보여준 한 수에 남천휘는 미소를 지웠다.

‘이거 뭐야?’

어찌 연검이 아닌 검의 궤적이 휘어질 수 있단 말인가. 궁신탄영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검상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남천휘는 굳은 표정으로 천위검호를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검을 늘어트렸을 뿐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인 걸?’

지금껏 궁신탄영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고, 이점을 취하기도 했다. 하나 방금 전의 궁신탄영은 달랐다.

단순히 피하기에 급급했던 스킬이었다.

“후우.”

남천휘는 숨을 길게 내쉬며 쌍도를 쥔 손을 쥐락펴락했다.

“제대로 해봅시다!”

천휘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남천휘는 인상을 썼다.

마치 자신이 매달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그는 최강의 비기라고 할 수 있는 질풍난무와 궁신탄영의 연계를 염두에 뒀다.

‘질풍난무 중 궁신탄영을 펼친다면 당신도 그리 여유로울 수는 없을 겁니다.’

남천휘는 다시 한 번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천위검호의 권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 다시 한 번 채찍처럼 무언가 꽂혀들었다.

쇄애애애액!

이번에는 좌측이 아니라 전방이다.

남천휘는 쌍도를 교차시킨 채 천위검호의 검을 흘려내려 했다. 한데 그 순간 뱀이 머리를 움직이듯 검 끝이 흔들렸다. 동시에 쌍도의 사이를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궁신탄영!”

이번에도 스킬을 외치기에 급급했다.

남천휘는 빠르게 물러난 후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때 신공부주가 외쳤다.

“검호! 언제까지 칼춤을 출 셈인가?”

남천휘의 말이 뼈아프기는 했나 보다.

천위검호는 신공부주의 명령이 떨어지자, 금세 자세를 바꿔 선공을 취했다.

그는 일 장의 거리를 한 걸음에 좁혔다.

‘빠르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천위검호의 검법을 제대로 확인한 사람이 없다고 했다. 공태령조차 천위검호 유백하의 검법을 논할 때에는 어깨를 으쓱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쉭쉭쉭쉭쉭!

남천휘는 궁신탄영을 연거푸 외치며 이리저리 몸을 뺐다. 하나 한 번 시작된 천위검호의 검 끝은 여전히 그를 쫓았다.

“맙소사!”

“저것이 진정한 천위검호의 실력이던가?”

광명정의 무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지금껏 소문으로만 들었던 천위검호의 검법은 예상보다 엄청났다. 빠르고, 가볍고, 느리고, 무거우면서 거리의 제한을 두지 않는 묘한 검법이었다.

마치 도검창(刀劍槍)을 동시에 사용하듯 절묘하게 몰아치는 초식의 흐름에 절정을 넘어선 무인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쳇!”

남천휘는 버텼다.

궁신탄영과 벽선단이 존재하는 한 아슬아슬할지언정 천위검호의 절초를 피하는 것이 가능했다.

‘단 한 번의 기회만.’

천위검호의 검 끝이 위아래를 동시에 노렸다.

두 개의 검을 찌르듯 동시에 꽂혀드는 공세에 범인이라면 소변을 지르며 주저앉았으리라.

하나 남천휘는 눈을 빛냈다.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왔다.

이미 두 번이나 반복된 초식이었고, 이제 세 번째 마주하는 절초가 아닌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두 번째에는 노리기로 결정을 했고, 세 번째로 마주했으니 실행할 차례였다.

쉬이이이익!

남천휘는 궁신탄영을 연이어 사용했다.

그의 신형은 잔영을 남기듯 좌우로 흩어졌다.

찰나간 천위검호조차 남천휘의 기척을 온전히 잡아낼 수 없었다.

“흐음.”

남천휘는 천위검호의 가슴을 향해 달려들면서 질풍난무를 사용했다. 그리고 동시에 궁신탄영을 활용하는 순간 일 장 거리에 존재하던 천위검호의 거리가 코앞까지 좁혀졌다.

쇄애애애애액!

남천휘는 내력이 잔뜩 담긴 천하도를 역으로 쥔 채 휘둘렀다.

‘됐다!’

한데 그 순간 천위검호는 피하거나, 물러서는 대신 오히려 자세를 낮췄다. 동시에 그가 양 손으로 검을 쥐고 휘젓는 순간 시뻘건 기운이 만들어졌다.

검을 휘감은 검기가 불꽃처럼 타오르며 검사를 만들더니 이내 빈곳을 스스로 채웠다.

촤라라라라라라락!

마치 시뻘건 벽이 눈앞을 가로막는 듯했다.

남천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검막?’

초절정 고수의 상징인 강기의 초입이라 할 수 있는 검의 장막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순간 장막의 한가운데에서 천위검호의 검이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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