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광명대전(廣明大戰). (3)
그 순간 바람을 타고 흩뿌려진 분말이 광명정의 무인들에게 살포됐다. 광명문주와 어색하게 시선을 마주해야 했던 무인은 갑작스레 가슴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으으.”
그 순간 남천휘의 일갈이 내질렀다.
“이 새끼가 독을 써!”
쇄애애애액!
남천휘의 일격이 내리꽂히는 순간 당황한 광명문주가 검을 들어올렸다. 하나 제대로 힘이 담기지 못한 검은 거력을 받아내지 못했다.
쩡-
광명문주는 만세를 하듯 양 팔을 벌렸다.
하나 남천휘는 가슴이 활짝 열린 광명문주에게 일격을 날리는 대신 황급히 몸을 돌렸다.
“괜찮으세요?”
그는 쓰러진 광명정의 무인들에게 콩알만한 단환을 먹였다. 불그스름한 단환을 먹는 순간 광명정의 무인이 눈을 부릅떴다.
응, 육표처럼 생긴 녹선단이야.
광명정의 무인은 막혔던 숨통이 트인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아아아아.”
잠시 해독제라고 여겼던 단환에서 짭짤한 고기 냄새가 낫지만, 의구심을 가지기도 전에 남천휘의 걱정스런 한 마디가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은, 은공!”
남천휘는 무인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목소리 좋고, 분위기는 더 좋았고.
남천휘는 진중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때마침 대전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장포를 펄럭인다. 양 손을 늘어트리니 덩달아 두 자루의 쌍도가 날개처럼 장포 밖으로 삐져나왔다.
이러다가 바람을 타고 날아볼 수도 있을 듯.
‘조금 멋있지 않냐?’
재이에게 물었건만, 개똥이의 혼잣말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대단해.”
그렇지. 짜릿할 거야. 나를 볼 때마다 늘 새롭겠지.
그 순간 코끝이 찌릿했다.
광명문주가 살포한 분말이 미세하게 남았나 보다.
남천휘는 한 일자로 굳게 다문 입술을 슬쩍 벌리며 침을 뱉었다.
‘에퉤퉤.’
녹선단 하나 꿀꺽, 그리고 극복!
남천휘의 눈동자에 정광이 어렸다.
확실히 녹선단은 해독제가 맞다.
분말의 독기를 몰아내는 건 물론이고, 혈맥에 쌓인 화기(火氣)마저 몰아내는 듯하지 않은가.
장기 복용하면 피가 맑아질지도 모르겠다.
“방금 광명문주가 독을 쓴 건가?”
“뭔가 터트렸잖아. 그리고 저 친구가 쓰러졌어.”
“아, 아니겠지. 광명문주같은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독을 쓰겠어.”
마지막 놈은 이름이라도 적어놔야 할 듯싶다.
어찌됐든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독단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광명문은 명색이 유가의 성지인 신공부에서 봉례를 담당하는 곳이 아니던가.
‘아, 점점 죄책감이 사라지네.’
남천휘가 광명문주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이에도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무엇보다 광명문주의 기이한 행동과 그로 인해 벌어진 상황을 지켜본 사람만 해도 수백 명이다. 진위(眞僞)여부와 상관없이 웅성거림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으아아아아아!”
그래, 목소리가 큰 놈이 이긴다더라.
남천휘는 괴성을 질러대며 달려드는 광명문주를 향해 내달렸다.
‘하지만 여기는 내가 이겨!’
이미 광명문주의 고속검의 초식은 눈에 익을 만큼 반복됐다.
이것이 바로 S급 특기 ‘통찰’의 힘이지.
그리고 광명문주는 어설픈 통찰에 발가벗겨진 것처럼 모든 것을 선보였다.
남천휘는 섬전처럼 꽂혀드는 검을 피해 상체를 비틀었다. 궁신탄영을 쓰면 검격 밖으로 빠져나가니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초식을 회피한 셈이다.
스윽-
남천휘는 상체를 옆으로 비스듬히 누인 상태로 대지를 박찼다. 그 순간 그의 신형은 허공에 살짝 뜬 채 좌측으로 이동했다.
촤아악!
왼손의 직도가 횡으로 그었다.
그 뒤를 따라 붉은 선이 만들어졌고, 이내 피가 흩뿌려졌다.
“크악!”
남천휘는 누운 채 옆으로 몸을 띄웠다.
그렇기에 등으로 떨어지던 그는 자연스럽게 땅을 굴렀다. 찰나의 순간 쌍도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후 손을 땅을 밀쳤다. 그리고 쌍도를 다시 꺼냈을 때 전방에는 광명문주의 널따란 등판이 그를 맞이했다.
등 뒤를 공격하는 것만큼 신나는 일이 어디 있으랴.
남천휘는 지극히 안정적이고, 확실한 일격을 내질렀다.
촤아악!
무인들의 웅성거림에도 진실이 섞여 있었나 보다.
광명문주는 그간 복용한 영약의 힘을 자랑하듯 위기의 순간에서도 몸을 움직였다. 동시에 허리를 쥐어짜듯 비틀며 쌍장을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솨아아아악!
강맹한 기운이 휘몰아쳤다.
하나 이쪽은 +5 짜리 직도란 말이다.
등급은 특수에 불과했지만, 집중력과 절삭력은 물론이고 공기저항까지 감소시켜주는 부가 기능을 지녔다.
촤아아악!
그러니 내공을 잔뜩 밀어 넣은 장풍을 파해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강맹한 장풍이 봄바람처럼 흩어지는 가운데 천하도가 내리꽂혔다.
쇄애애액!
제아무리 강호인의 육신이 단단하다고 해도 내력이 없다면 살덩이에 불과했다. 게다가 광명문주는 일견하기에도 고된 수련을 자처할 만큼 열정적인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촤악!
광명문주의 양 손이 잘렸다.
“크아아악!”
부릅뜬 두 눈에는 살기가, 비명에는 악다구니가 담겨 있었다.
그래, 후환은 남기지 말아야지.
남천휘라면 광명문주의 하독 쯤은 봄날의 꽃가루와 다를 바가 없다. 하나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들에게는 저승사자의 손짓만큼이나 위협적이지 않겠는가.
남천휘의 좌수가 꿈틀거렸다.
그 순간 광명문주는 우측으로 몸을 틀고 있었다.
악독한 자답게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게다.
하나 정작 출수한 건 좌수가 아니라 우수였다.
이미 통찰을 통해 광명문주의 움직임을 예측한 상태가 아니던가.
남천휘의 우도가 광명문주의 목에 박혔다.
마치 광명문주가 남천휘의 도격에 스스로 몸을 던진 듯한 상황이었다.
콰직!
놈은 두어 번 입을 뻐끔거리더니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꼬꾸라졌다.
남천휘는 절명한 광명문주를 뒤로 한 채 돌아섰다.
악인과 다를 바가 없는 자에게는 인사조차 아까웠다.
“부끄러웠나보군. 스스로 몸을 던지다니.”
“그러게 말이야.”
광명정 무인들의 웅성거림이 이제는 노래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높은 단 위에서 내려다보던 신공부주의 위엄이 점차 하락함을 의미했다.
다만 천수련만은 자신에게 통찰을 배운 남천휘의 의도가 있었음을 눈치 챘다.
하나 그녀 또한 입을 닫았다.
‘이유가 있겠지.’
남천휘는 천수련을 향해 눈을 찡긋한 후 걸음을 내딛었다.
크게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어느덧 단상이 코앞이다.
이제 남은 건 단상 위에 자리한 신공부주와 공후탄, 그리고 천위검호가 전부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니.’
이제는 노도와 같이 몰아칠 차례가 아니겠는가.
남천휘는 공후탄을 힐끔 본 후 입꼬리를 올렸다.
그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리고 선불 맞은 멧돼지처럼 분노를 억누르고 있던 공후탄은 기꺼이 호응했다.
“놈!”
공문십철 중 아홉 번째 상대.
천라쌍익(天羅雙翼) 공후탄.
비격진천도를 대성한 200레벨의 고수.
평소였다면 경계해야 할 상대였으리라.
하나 이미 공태령을 통해 공후탄의 약점을 파악하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 없는 법.
지금부터 그것을 증명하겠다.
‘압도적인 힘으로!’
꽈드득-
천하도와 제일도를 쥔 손등에 거머리 같은 힘줄이 불끈거렸다. 그리고 단전의 내력을 모조리 휘돌리는 순간 청석 위에 흙먼지가 밀려나며 와류(渦流)를 만들었다.
팡-
동시에 남천휘의 신형은 사선(斜線)으로 솟구쳤다.
비천무상도와 오행군림보.
도법과 보법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찰나간 허공을 걷는 듯했다.
검후는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일학충천?”
상승 보법의 경지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닐 터였다.
하나 남천휘와 같은 나이에 저처럼 순후한 내력을 지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명문의 제자라고 해도 쉽지 않은 기행(奇行).
“강호에 신성이 출현했구나.”
천수련은 검후의 읊조림을 듣더니 검지로 코 밑을 훔쳤다.
왠지 모르게 으쓱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들뜬 사제와 달리 광명정의 무인들은 숨을 죽였다.
남천휘의 의지는 공염불과 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저처럼 어린 아이가 신공부 전체를 쥐락펴락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한데 신공부주의 주변을 보라.
신공부의 무인들은 어리둥절함을 숨기지 못했고, 투기를 내비치는 건 승천문과 천위장의 무인들이 전부였다. 그 많던 수하들이 어느새 신공부주와 조금씩 거리를 벌린 채 장내를 응시했다.
‘이거 어쩌면?’
‘정말 부주가 바뀔 수도…….’
그리고 마침내 천라쌍익과 귀협이 맞부딪쳤다.
내리치는 자와 올려치는 자.
쌍방의 우열은 극명했다.
하나 아래에서 치고 올라간 귀협은 더욱 높이 솟구쳤고, 천라쌍익은 단상 중간의 계단에 내려선 채로 허공을 올려다봤다.
남천휘는 그대로 몸을 휘돌렸다.
천라쌍익의 쌍도를 받아칠 때 만들어진 반발력으로 인해 솟구친 만큼 빠르게 추락했다.
“놈!”
공후탄은 눈매를 좁혔다.
일합만으로도 남천휘가 입만 산 애송이가 아님을 파악했다.
그리고 도법의 투로가 절묘하게 맞물리는 순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놈의 도법과 비격진천도는 놀랍게도 닮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짧게 간다.’
이이 광명문주가 내력으로 우위에 서려다 실패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시간을 끌수록 명성이 높은 자신이 불했다.
애송이와 어우러지는 건 짧을수록 좋았다.
솨아아아아-
천라쌍익은 자신의 별호처럼 양 팔을 펼쳤다.
날개처럼 펼쳐진 쌍도에 붉은 기운이 휘감기기 시작했다. 한데 도를 휘감던 적기가 촘촘하게 얽혀들더니 도신 밖으로 뻗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도기(刀氣)의 상위 단계인 도사(刀絲)였다.
도사는 내력을 유형화시키는 단계를 지나 외부로 발출하는 지경을 뜻했다. 그리고 초절정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라고 알려졌을 만큼 상승의 절기였다.
무인들은 공후탄의 별호가 천라쌍익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도신에 맺혀 있던 도기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게다가 총채처럼 흩날리는 도기는 그물을 연상케 했다.
천라쌍익의 도격 안으로 쇄도하는 남천휘의 모습은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차라라라라라락!
천라쌍익의 쌍도가 교차하며 공간을 갈랐다.
하나 선이 되어야 할 도격은 도사로 인해 면처럼 전방을 압박했다.
남천휘가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듯한 형세였다.
“궁신탄영.”
하나 나직한 읊조림만으로 공후탄의 천라(天羅)를 피해냈다. 남천휘는 단상의 계단에 내려서자마자 튕기듯 전방으로 꽂혀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
공후탄은 일갈을 내지르며 공간을 선점했다.
천라가 그물이라면, 쌍익은 칼이다.
천라가 유인이라면, 쌍익은 덫이다.
칼을 맞고, 덫에 걸리는 순간 남천휘는 갈가리 찢길 터였다.
불꽃처럼 타오르던 도사가 잦아들었다.
하나 도를 휘감은 도기는 더욱 짙게 번뜩였다.
“이것이 진짜 비격진천도다!”
공후탄의 일갈과 함께 훤한 대낮에 붉은 달이 내려앉았다. 두 개의 초승달은 좌우에서 남천휘를 향해 짓쳐들었다.
‘이 또한 예상대로.’
남천휘의 뇌리에는 공후탄의 조언이 스쳐갔다.
- 천라에 이어 쌍익이 등장하고, 쌍익은 비격의 시작이 됩니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이 없지만, 시작 할 수 없다면 두 번은 없습니다.
고오오오오-
남천휘는 벽선단을 통해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놓은 단전을 쥐어짜듯 내력을 흩뿌렸다. 1800에 달하는 내공 수치는 바닥이 될 때까지 빠르게 하락했다.
그리고 그 모든 내력이 도에 깃들었다.
제일도(第一刀)로 쌍익을 후려쳤다.
쾅!
강맹한 기운의 충돌로 인해 멀쩡한 공간에 파장이 일었다. 공후탄은 예상 외로 강렬한 일격에 미간을 좁혔다.
찰나간 초식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았다.
그 순간 우수에 쥐고 있던 천하도가 재차 공후탄을 벽처럼 감싼 쌍도를 후려쳤다.
쩡-
이번에는 파장이 일지 않았다.
남천휘의 도격이 고스란히 쌍도를 짓이겼기 때문이다. 그 순간 쌍도를 감쌌던 적기가 먼지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쌍도가 화병처럼 산산조각 나는 순간 남천휘의 좌수가 공후탄의 오른팔을 후려쳤다.
콰직!
서로의 호흡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남천휘의 우수는 공후탄의 본능적인 움직임보다 빠르게 솟구쳤다. 공후탄의 턱을 올려치는 순간 좌수에는 다시 제일도가 소환됐다. 올려치며 상체를 휘돌리는 순간 공후탄의 허리는 자연스럽게 제일도의 권역 안에 들어왔다.
촤악!
올려친 우수에 천하도가 소환되는 순간 도의 손잡이로 공후탄의 정수리를 찍었다.
빠각!
공후탄의 눈빛이 몽롱해졌다.
그 순간 남천휘가 허물어지는 공후탄의 멱살을 움켜쥔 채 회전했다. 고깃덩이처럼 날아간 공후탄이 단상 위를 나뒹굴었다.
쉬이이익!
신공부주는 자신의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동생을 보지 않았다.
그저 무심한 눈빛으로 남천휘를 응시할 뿐이다.
남천휘는 다시 한 걸음 내딛었다.
파팟!
그 순간 남천휘는 신공부주 앞에 섰다.
그는 공후탄을 깔고 앉은 채 신공부주와 눈높이를 맞췄다.
“언제까지 쌍칼춤을 추게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