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호만렙지존-145화 (145/305)

67, 신공부 탈출. (5)

광명정의 대전은 일견하기에도 황량했다.

그런 대전의 중앙에는 수십 명이 둘러앉아도 될 만큼 거대한 원탁이 놓여 있었다.

하나 그곳에 앉을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열 명이다.

신공부를 지탱하는 열 명만이 원탁에 둘러앉을 자격을 지녔다.

공문십철의 수장들이 바로 주인이다.

그리고 오늘 열 개의 의자는 모두 주인과 마주한 상태였다.

“크흠.”

누군가 헛기침을 했다.

그만큼 불편한 자리였다.

게다가 대전 내에는 소일거리로 삼을 서책이나 악기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원탁이기에 서로를 바라봐야 하지만, 시선을 마주하는 이가 없다. 그저 딴청을 피우거나, 시선을 내리깐 채 불편함에 익숙해지려 할 뿐이다.

하나 가장 불편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신공부의 이총관인 신풍수사는 좌불안석이다.

그는 광목재사의 부재로 인해 갑작스럽게 불려나온 상태였다. 그렇기에 긴급 대회의의 개최 이유조차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뭐라도 알아야 저들을 다독일 텐데…….’

그 때 상석에서 가장 먼 쪽에 앉은 노국장주가 말을 건넸다.

“어디 가셨소?”

노국장주의 말에 신풍수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껏 두문불출 했던 노국장주가 나선 것만 해도 큰일이다. 한데 좌석 배치를 보아하니 노골적으로 가장 먼 쪽에 배치한 듯하지 않은가.

그러니 오늘 일진이 사나울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곧 부주께서 오실 겁니다. 여러 귀인을 모셔 놓고 행사에 차질을 빚은 점 사과드립니다.”

신풍수사는 땀을 닦으며 커다란 원탁에 둘러앉은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천위검호와 천라쌍익을 비롯해 공문십철의 수뇌부는 제각기 표정이 달랐다. 하나 신풍수사라고 해도 저들의 속내까지 짐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별 일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이다.

‘재사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지?’

신풍수사는 시간이 하염없이 흐를수록 이마의 땀을 훔치는 횟수가 늘었다.

잠시 후 그를 구원해줄 사람이 나타났다.

공후탁이 드디어 등장한 것이다.

한데 그는 신공부주가 입어야 할 유가의 대정의(大淨衣)가 아니라 무복을 걸쳤다.

노국장주는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신성한 회의에 무복을 입고 나오다니…….’

신공부주는 복장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노국장주는 슬그머니 주변을 살폈다.

자신을 제외한 아홉 명의 수뇌부 중 세 명을 제외하면 모두가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

이미 신공부주에게 포섭된 자들이다.

게다가 당황스러워하는 세 명의 수뇌부 또한 중도를 표방했으나, 그저 우유부단한 자들이 아니던가.

힘으로 누르는 순간 알아서 굽힐 것이 분명했다.

‘흐음.’

노국장주는 분위기를 전화하기 위해 지팡이로 대전의 바닥을 찍었다.

쿵!

“늦으셨구려.”

“호오, 노국장주께서 오실 줄은 몰랐군요. 너무 얼굴을 비추지 않으셔도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그럴 뻔했지요.”

신공부주는 피식 웃으며 원탁 앞에 섰다.

“상황이 급박하니 인사는 미룹시다. 강호에 도적떼가 횡행하고, 삼정의 후계자는 피살당했으며, 산동 강호 밖의 세상은 사마외도가 꿈틀거리는 탓에 정세가 불안하오. 그러던 중 신공부의 건물이 불타고, 군사가 납치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소.”

수뇌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신공부 내에서 화재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나 불을 지른 자가 군사를 납치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었다.

신풍수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잊고 되물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신공부주는 신풍수사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수뇌부를 향해 일장연설을 토해냈다.

“광목재사는 지난 수 년 간 신공부를 위해 생명을 불태웠을 만큼 충직한 자였소. 그런 자를 납치한 흉수들의 의도는 불을 보듯 뻔 할 터.”

노국장주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위기에 휩쓸리다보니 입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신공부주는 선언하듯 말했다.

“더 이상 신공부는 고여 있는 물로 남지 않겠소. 고여서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느니 만인 앞에 신공부의 의지를 드러내고, 강호의 한 축으로서 대정대협의 선봉에 설 것을 천명하오!”

노국장주가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나 신공부의 법규 상 무가로의 활동은 금지되어 있소이다. 유가의 법통을 지키고, 만민의 평안함을 위해야 할 신공부가 권세와 명예를 탐할 수는…….”

쿵!

신공부주가 소매 속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어 탁자 위에 내던졌다.

노국장주는 말을 끊었다.

차라리 신공부주가 칼을 뽑았다면 악다구니라도 썼을 것이다. 하나 낡은 책을 꺼내놓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신공부주를 보고 있자니 전신에 오한이 일었다.

신공부주는 노국장주를 노려보며 읊조렸다.

“그 빌어먹을 법규가 마침내 내 편을 들었구려.”

그 때 신공부주의 수족을 자처하던 수뇌부 중 한 명이 서책을 잡았다. 서책을 펼치는 모양새만 봐도 이미 말을 맞춘 듯했다.

그는 능숙하게 서책의 후반부를 펼친 후 낭랑한 목소리로 내용을 읽었다.

“신공부의 안위는 자구를 기반으로 하여야 한다. 다만 세 번 굽혀 대인의 풍모를 보여라. 하나 오욕과 불의를 참아내면서까지 유가를 더럽히지 마라.”

노국장주의 주름진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는 신공부의 법규를 눈 감고도 외울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저들이 명분으로 삼을 내용을 모를 리 없다.

‘이런.’

그 사이에도 수뇌의 목소리가 대전을 가득 채웠다.

“이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유가 또한 창칼을 들고 일어서지 않을 수 없으리라. 군주가 위험에 처하고, 유가가 더럽혀지며, 공부가 존폐를 걱정해야 한다면 신공부 또한 강호의 법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상입니다.”

노국장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신공부의 법규를 만든 공막은 유가의 사상으로 무장한 유자였다. 그렇기에 법규가 이런 식으로 사용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으리라.

신공부주는 열변을 토해냈다.

“청도문의 소문주가 죽었고, 신공부의 군사가 납치됐소. 그리고 지금껏 공문십철에 전하지 못한 비보가 있소이다.”

공문십철의 수뇌부들은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신공부주의 입만 바라봤다.

“내 후계자인 공태령이 사라졌소. 신공부를 드나드신 분들은 용봉쟁투 이후 녀석을 보지 못했을 거요. 나 또한 그랬소. 하여 광목재사는 비밀리에 공태령을 수색 중이었소이다.”

누군가 추임새를 넣듯 말했다.

“하면 광목재사의 실종 또한…….”

신공부주는 침음을 흘렸다.

“아직 밝혀진 바는 없소이다. 그리고 저간의 사정에 비춰봤을 때 지난 용봉쟁투에서 삼정을 노렸던 세력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재사들의 결론이외다.”

신풍수사로서는 생전 처음 듣는 소리다.

하나 수뇌부들은 이미 고개를 끄덕이며 근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던 중 누군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지 않소? 청도문은 소문주가 죽었고, 신공부는 건물이 불탔소. 심지어 소부주는 행방불명이고, 군사는 납치당했지. 하면 황보세가는?”

신공부주는 속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일부러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황보세가를 의심할 수 있도록 입단속까지 시켰다. 그 결과 중도를 자처하던 수뇌 중 한 명이 황보세가를 거론한 것이다.

“비약이외다!”

노국장주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하나 증거 없는 반론은 공허한 울림에 불과했다.

신공부주는 근엄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광명정에서 신공부가 새로 태어나는 것을 축원하고, 만천하에 널리 알리는…….”

“잠깐!”

신공부주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는 노국장주를 보며 협박을 하듯 말했다.

“적당히 하시구려. 도대체 신공부를 돕겠다는 거야? 아니면 방해를 하려는 게요?”

하나 노국장주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혹자는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으리라.

‘유가의 교세를 확장하고, 만민을 선인으로 인도하기 위한 신공부가 아니었던가.’

자신의 대에서 변질되는 걸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법규에 의하면 긴급 대회의는 신공부의 존폐를 논의해야 하오.”

“그래서 하고 있잖소.”

“그리고 긴급 대회의는 사안의 중차대함을 논의하는 자리이기에 숙고와 논의를 거치라 했소.”

신공부주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래서?”

“법규에 적힌 긴급 대회의의 기간은 삼일로 정해져 있지 않소이까. 오늘 부주의 뜻을 알았으니 공문십철에게도 생각할 시간을 줘야 하오. 그러니 결정은 모레 하는 것이 옳소이다.”

노국장주의 말 또한 법규에 의함이다.

신공부주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되물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소?”

“법규대로 하자는 말이오.”

그 때 신공부주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천라쌍익 공후탄의 양손이 허리춤의 도를 매만졌다.

여차하면 일수에 노국장주를 베어버릴 셈이다.

하나 신공부주는 다 된 밥에 코를 빠트리고 싶지 않았다.

그는 눈짓으로 동생을 만류한 후 말했다.

“좋소. 이틀 후 결정을 내립시다. 그 후에도 신공부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노국장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법규는 반드시 따라야 하오.”

신공부주는 조소를 흘리며 한 마디를 건넸다.

“그렇지. 법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겠지.”

신풍수사는 멀뚱히 자리를 지키다가 신공부주의 눈짓을 받고서야 앞으로 나섰다.

“오늘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공문십철의 수장들은 불편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노국장주가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남은 이틀은 좌불안석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불편한 시간이 될 터였다.

“크흠, 괜한 짓을…….”

“원단을 앞두고 여기서 이게 뭐하는 거야?”

노국장주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비난과 불평을 감내했다. 하나 대전에 들어설 때보다 축 쳐진 어깨는 다시 펴지지 않았다.

‘이틀의 시간을 벌었으나, 무슨 의미가 있으랴?’

*

공태령은 한 사람이 겨우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공간에 등을 기댔다.

서늘한 지기(地氣)로 인해 등이 축축하다.

하나 그의 입가에 드리워진 옅은 미소는 사라질 줄을 몰랐다.

“비격진천도의 후반부는 불과 같아요. 짚단을 태워 만든 불길에 장작을 넣는 느낌이랄까요? 마치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도법은 빠르게 펼쳐집니다.”

남천휘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후우, 후우, 그럼 어느 정도나 지속되는 거지?”

“비격진천도의 사십팔초식은 순환을 기반으로 하기에 내력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다만 쾌속함에 집중하다보니 초식과 초식의 연결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 때는 사람마다 다를 테고요.”

“그렇구나. 그런데 나 헉헉 거리는 거 안 들리니?”

“피곤하십니까?”

남천휘는 땅을 파고, 파낸 흙으로 벽을 다지느라 온 몸이 흙투성이였다. 마치 처음 마주했던 공태령과 다를 바가 없는 몰골이다. 반면 공태령은 휴양을 온 사람처럼 느긋하게 서늘함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슬슬 교대하는 게 어때?”

공태령은 남천휘의 말을 귓등으로 흘렸다.

“그러고 보니 천라쌍익과 비무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그 때 어땠더라? 워낙 오래 전의 일인지라…….”

남천휘는 인상을 썼다.

‘젠장! 내가 너무 아쉬운 소리를 했어.’

공태령은 한 번 잡은 꼬투리를 놓지 않았다.

하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찾는 법.

남천휘는 속내와 달리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봐. 땅은 내가 팔 테니…….”

공태령은 그제야 탄성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생각났습니다.”

그렇겠지. 이 영악한 자식아.

남천휘는 남몰래 적선단을 읊조렸다.

지친 몸뚱이에 활력이 돌았다.

‘벌써 몇 개를 먹은 거야?’

잠시 후 공태령은 동굴의 벽을 매만졌다.

“밖에 비가 오는 듯하네요. 물기가 강해졌습니다. 일단 벽을 다져놓고 잠시 나갔다 오는 것이 좋겠어요.”

하나 그 순간 남천휘의 손이 벽을 뚫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동시에 남천휘는 손등 위로 빗방울이 들이쳤다.

“뚫었다.”

“네?”

“뚫었다고. 밖이 보여!”

남천휘는 개가 숨겨놓은 뼈다귀를 찾듯 빠르게 양 손으로 벽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남천휘는 겨울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두 다리로 우뚝 섰다.

탈출했다.

“비가 이렇게 시원할 줄이야!”

뒤따라 나온 공태령이 시큰둥한 어조로 말했다.

“유운림에도 비는 옵니다만.”

남천휘는 미간을 좁혔다가 한 숨을 내쉬었다.

순간 공태령을 영구 은거시킬 뻔했던 것을 겨우 참아낸 것이다. 무릎을 꿇고 땅을 판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는 공태령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 은거하기 전에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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